어느 소년의 가출이야기/전 성훈
가출과 출가는 어휘의 앞뒤를 바꾸면 똑같은 말인데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 가출(家出)은 단순하게 가족과 살던 집을 등지고 나가는 것을 말한다. 출가(出家)는 집과 세속의 인연을 떠나 불문에 들어 수행 생활을 하거나 집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글자 그대로 집을 떠난다는 뜻도 포함한다.
도봉문화원 수필수업 시간에 내가 무척 좋아하는 프랑스의 유명한 단편 작가 알퐁스 도데의 작품 <쓰갱씨의 염소>를 읽고 독서 토론을 가졌다. 알퐁스 도데는 중고교시절 교과서에 <별>과 <마지막 수업>이 소개되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작가다.
<쓰갱씨의 염소>, 도입 부문에서 알퐁스 도데는, ‘파리에 계신 피에르 그랭와르 시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 ‘아저씨,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사실건가요? 아저씨는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생각하지 않으시나 봐요!’라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이야기를 던진다. 아기염소, ‘블랑께트’는 늑대로부터 보호해주는 아저씨네 우리를 탈출한다. 외양간을 벗어난 아기염소는 낮 동안 아주 신나게 여기저기 핀 풀을 제멋대로 뜯어먹거나 마음껏 풀숲을 뒹굴기도 한다. 계곡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야생 영양 무리를 만나 검은 영양과 사랑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유로운 행동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된다. 어둑어둑한 저녁에 늑대소리가 들릴 때 쓰갱아저씨가 아기 염소를 부르는 나팔소리가 들린다. 아기염소는 아저씨에게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아저씨 집 울타리에 갇힐 바에는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있는 산, 늑대가 있는 산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몹시 배가 고파 시장한 늑대와 밤새도록 싸움을 하다가 다음 날 새벽까지 견디지 못하고 늑대의 밥이 된다. 이 작품에 대하여 자유롭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아기 염소처럼 자라면서 집을 떠나 본 적이 있는가하는 물음에 몇 사람이 대답을 하였다. 나 또한 중고교시절 집을 나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여성분들이 와~와하고 웃었다. 선생님께서 내 경험을 글감으로 글을 써보라고 말씀하셨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수 년 동안 월남(지금의 베트남)에 가서 일을 하셨다. 난 어머니와 여동생 셋과 함께 서울 삼양동 달동네 전셋집에 살았다. 힘들게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시는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맏이인 나에게 말씀하셨다. 첫 번째 가출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께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어머니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회초리를 가지고 오셨다. 나는 어머니의 회초리를 빼앗아 마당에 던져버리고는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지자 집 근처 만화가게 앞을 서성거렸다. 때마침 밖에 나와 있던 첫째여동생이 내 팔을 끌기에 못이기는 척 집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가출은 고등하고 1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공부는 하지 않고 친구들과 매일 놀러 다닌다고 어머니께 야단을 맞았다.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자 화가 나신 어머니께서 잘못했다고 반성하지 않으려면 보기 싫으니 아예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바로 집을 뛰쳐나와 친구 집으로 갔다. 친구 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가출도 고교시절이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들은 골덴 바지의 폭을 10인치 이상 넓게 하는 게 유행이었다. 어머니를 졸라서 연한 베이지색 골덴 바지를 사서 폭을 13인치로 하였다. 골덴 바지를 좋게 보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 가위로 골덴 바지를 짧게 싹둑 잘라버리셨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고 원망스러워 집을 나와 버렸다. 이틀을 친구 집에서 지냈다.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가출했던 동기가 너무나 유치하여 부끄럽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말썽 많은 학창시절을 마감하고 어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하였다. 아들이 중학생, 딸이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여름 날,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강원도 가평 숲속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 때 나의 가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정색하면서,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라고, 부모로서 무엇이 자랑이라고 가출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아이들이 철딱서니 없었던 아비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거울삼았던지 아니면 아내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학교생활을 하면서 가출한 아이는 없었으니 아이들이 아비를 닮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아이들은 지금은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인으로 각기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성장과정에서 조금 유별나게 행동하거나 남들과 동떨어진 짓을 하는 것도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부모님 속을 썩인 자식이었지만, 지난날 내 행동이 크게 잘못되거나 못쓸 짓을 한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2018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