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제주 서귀포시 제주신라호텔의 ‘캠핑&바비큐 존’ 전경. 지난해 11월 개장한 이 캠핑장을 찾는 여행객들은 호텔이 준비한 텐트와 바비큐 용품 등을 사용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제주신라호텔 제공
제주신라호텔은 이런 점을 파고들었다. 설거지 등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호텔이 맡고 여행을 온 사람들은 ‘분위기 깨는 일’ 없이 캠핑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제주신라호텔의 ‘캠핑&바비큐 존’을 찾은 여행객들은 호텔이 준비한 텐트와 바비큐 용품 등으로 오직 낭만적인 분위기만 즐기다 돌아가면 된다.
○ 제주도 푸른 밤…낭만은 흐르고
17일 제주신라호텔 캠핑장에 들어서자 최성원이 부른 ‘제주도의 푸른 밤’이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캠핑장이 있는 곳은 호텔 ‘숨비공원’ 안. 하얀색 요트가 석양에 반짝이며 파란 제주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원이다.
카바나 4개 동과 야외수영장 옆 ‘풀사이드 바’에서 예약한 이름을 말하고 캠핑용품을 받아 공원에 들어서면 야자수로 둘러싸인 이국적인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못과 폭포를 끼고 오솔길을 가로질러 걸으면 ‘스노 피크’, ‘오가와’의 최상급 노란 텐트가 푸른 잔디 위에 펼쳐진 캠핑장이 나온다. 지난해 첫 개장 당시 텐트 10동으로 시작한 이 캠핑장 남쪽에는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탄 ‘쉬리 벤치’가 제주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있다. 반대편에는 12동의 텐트가 더 설치돼 있다. 겨울인데도 찾는 사람이 많아 이달 초 테니스장을 메우고 잔디를 깐 뒤 캠핑장을 늘린 곳이다.
17일 경기 광명시에서 제주신라호텔의 캠핑장을 찾은 장문혁(54·오른쪽), 김인순 씨(48·여·왼쪽) 부부가 바비큐 요리를 하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직접 바비큐를 해 먹거나 캠핑장에 있는 조리장에게 요리를 부탁할 수도 있다.
어둠이 깔리자 노란 캠핑장 주변을 감싼 낮은 잔디 언덕 사이로 피아노 연주가 흘렀다. 이날은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나왔지만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기타리스트가 추천 곡을 받아 직접 연주한다. 밤이 깊어지자 음악은 더욱 밀도 높게 섬을 감쌌다. 어둠에 지워진 바다 저편 멀리서는 등대불이 깜빡였다.
텐트 안도 아늑한 분위기였다. 텐트는 잠을 잘 수 있는 곳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잠을 잘 수 있는 곳은 4인용으로 전기장판이 깔려 있고, 그 바깥에는 4인용 나무 식탁이 놓여 있다. 식탁 위에는 ‘빨강머리 앤’이 봄맞이 소풍을 갈 때 들었을 것 같은 바구니가 있었다. 안에는 그릇과 물 티슈 등이 담겨 있고, 물과 컵라면, 과일도 준비돼 있다. 텐트 안에 설치된 휴대용 램프 2개와 스탠딩 조명 1개는 노란색 빛을 내며 어둠을 밀어냈다. 이날 캠핑장에서 만난 장문혁(54), 김인순 씨(48·여) 부부는 “대학에 들어간 딸이 장학금을 받아 여행을 보내줬다”며 “분위기는 물론이고 모든 게 다 준비돼 있어 번거롭지 않다.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 몸만 와서 분위기만 즐기면 OK분위기를 살려주는 장치들도 곳곳에 숨어 있다. 누구나 장작 잘 패고 손쉽게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부랴부랴 번개탄 구해 와 연기 풀풀 내면서 불 지피다 폼 상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툴게 고기 굽다 새카맣게 태울 일도 없다. 조리장 6명과 스태프 10여명이 항시 대기하며 여행자들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17일 결혼기념일 맞아 캠핑장을 찾은 이호욱 씨(38·왼쪽) 가족이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 씨는 “어린 아이들이 있어 캠프는 엄두도 못 냈는데 이 곳에는 모든 장비가 다 갖춰져 있어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어지간해서는 칠 엄두도 안 나는 커다란 텐트도 미리 세팅돼 있으니 가족이나 연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땀 뻘뻘 흘리며 텐트 치느라 스타일 구기는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분위기 잡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 치우는 건 더 편하다. 그냥 떠나면 된다. 제주신라호텔 관계자는 “텐트도 잘 못 치고, 고기도 못 굽는 남성들은 캠핑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데 여기선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캠핑 뒤 설거지와 쓰레기 처리를 하면서 분위기 깨는 일도 있는데 여기서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들 때문에 캠핑을 망설였다면 그런 걱정도 잠시 놔둘 수 있다. 호텔 안에 있는 어린이집 ‘키즈 아일랜드’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짐보리’에 아이를 맡기면 부부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키즈 아일랜드에는 레저전문직원 G.A.O.은 물론, 일본에서 들여온 2500만 원 정도의 ‘포뮬러 원(F1) 시뮬레이터’ 게임기 등도 있어 서운하겠지만 놀이에 빠진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 않는다. 실제로 이날 결혼기념일을 맞아 가족과 캠핑장을 찾은 이호욱 씨(38·서울 강동구)는 “아이들이 세 살, 네 살이라 캠핑은 엄두도 못 냈는데 이곳은 용품부터 아이들 돌보는 것까지 챙겨줘 오로지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 패키지로 잠은 호텔에서그러니 인기도 좋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22개 동이 거의 다 찬다. 꽃샘추위가 몰아친 이날도 20개 동에 손님이 들었다.
제주신라호텔 조리장이 캠핑장에서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캠핑장에는 6명의 조리장과 10여 명의 스텝들이 여행객들을 돕는다. 제주신라호텔 제공
이용시간은 주말 오전 11시∼오후 3시, 평일 오후 5시∼자정이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캠핑장의 이용료는 6만7000원(세금 봉사료 별도). 텐트 이용과 바비큐 재료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음식은 제주흑돼지오겹살과 LA갈비, 새우, 전복, 오징어에 가래떡, 흰 밥과 볶음밥, 고구마와 계란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 된장찌개와 각종 쌈장, 야채, 김치는 기본이다. 제주흑돼지오겹살 대신 꽃등심을 선택하려면 3000원을 더 내면 된다.
텐트에서 숙박은 할 수 없다. 캠핑 뒤 숙박도 하고 싶다면 호텔 객실을 이용하면 된다. 이때 따로 객실을 예약하기보다는 패키지 상품을 사면 싼값에 호텔을 이용할 수 있다. 제주신라호텔 ‘캠핑&올레 패키지’를 이용하면 캠핑장 이용은 물론이고 G.A.O.가 함께하는 올레길 걷기, 야외 스파, 수영장, 호텔 숙박과 다음 날 아침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다. 값은 세금과 봉사료를 빼고 2인 1실 기준으로 1박에 28만 원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