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를 풍미했던 백설희선생이 오랜 투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는 한국전쟁 시기에 배출된 걸출한 최고의 여가수엿다.
당대의 중요 대중음악인들이 그랬듯 그녀 역시 군예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을 누비며
격동의 시기에 가수로서의 공적 소임을 다했다.
'봄날을 간다'는 말이 필요없는 그녀의 대표곡이고 '가는 봄 오는 봄'도 봄 시즌송으로는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다.
또한 '물새 우는 강 언덕' '아메라키 차이나타운''카르멘 야곡'' '청포도 피는 밤' '코리아 룸바' 등 그녀가 남긴 히트곡은 무수하다.
대중가요 1세대는 아니지만 최 원로급의 고령가수로 건재했던 그녀는 해방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생성된
무차별적인 미국문화에 대한 당대 대중의 욕망을 대변했던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 영화에 직접 출연해
’아베크 토요일’을 불렀을 정도로 50년대 최고의 여가수 중 한 명이었다.
백설희선생은 자유부인 말고도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리고 박시춘서생이 제작한 영화 ’딸 칠형제’에는 남편 황해선생과 동반 출연했고
’가는 봄 오는 봄’, ’가거라 슬픔이여’ 영화에서는 주제가를 직접 노래했다.
그녀의 남편은 영화배우 황해 그리고 아들이 바로 가수 전영록이다.
1992년 세 사람은 함께 음반을 취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걸그룹 타이라의 멤버 전보람으로 이어진 가계는 3대 연예인 명가로서 손색이 없다.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선생님은 1943년 조선악극단이 운영하던 음악무용연구소에 들어가며 악극계에 입문했다.
1949년 뮤지컬의 대부로 평가해야될 작곡가이자 가수 그리고 뮤지션으로 이름을 떨쳤던 김해송이 지휘했던
KPK악단의 뮤지컬 '카르멘 환상곡'의 주인공 카르멘역을 맡으며 악극 스타로 떠올랐고,
53년 작곡가 박시춘씨를 만나면서 한국 대중가요 사상 최고의 여심곡 '봄날은 간다'로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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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본명은 김희숙이다.
예명 백설희는 '에베레스트 산의 눈이 낮이나 밤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녹지 않고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듯이
연예인으로서 높은 곳에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빛나라'라는 뜻이다.
백설희 선생님이 소속된 KPK악단의 단장이었던 김해송선생님의 작품이다.
전성기 시절 남편 황해는 나레이션으로 음반을 여러번 취입했었고 백설희 황해 두 사람은 부부듀엣을 프로젝트로 결성해
황백 가요극장이란 음반을 지구레코드를 통해 발표하기도 했다.
96년 KBS가요대상 특별공로상, 2010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생전에 4남 1녀를 남겼다. 아들 전영남(건설업) 학진(자영업) 영록(가수) 진영(작곡가), 딸 옥(주부)씨다.
고인은 2005년 별세한 영화배우 황해(본명 전홍구)씨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 입단한 새별악극단에서 만나 결혼해 해로했다.
전영록씨는 이날 "새벽에 홀로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는 제게 높은 산이었다"고 말했다.
조문을 온 한국대중가요의 대명사 이미자선생 또한 '대중가요계의 큰 별이 지셨다'고 애통한 심정을 피력했다.
두 분은 여러차례 함께 음반을 발표했을 정도로 음악적 인연이 깊은 사이다.
백설희선생의 낭낭한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배여있어 듣는 이를 뭉클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오랫동안 그녀의 노래는 한국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