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는 나이지리아의 니제르델타 와리 지역 출입니다.
지역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 발견되면서 경쟁부족이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땅을 빼앗기 위해
집에 방화를 일으켜 부모님이 불에 타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소유 토지의 유일한 생존자인 렉스가 상속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경쟁부족의 무장 군들이 렉스를 찾는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렉스는 와리시의 지주들을 무장 군들이 와서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어려움을 거쳐 한국으로까지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렉스는 몇 달 전 피난처에 오기위해 집을 나오던길에
갑작스럽게 쓰러진후 병원에 실려갔으며
제1형 당뇨 인슐린을 동반한 심부전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현재 난민소송은 모두 끝난 상태로 재판에서 패소하였습니다...

[렉스는 몇 달 전, 친구의 자원으로 신장을 기증받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그 친구의 기증소식으로 렉스와 피난처 식구 모두가 기뻐했었지만,
친구가 어떠한 이유였는지 마음을 돌려 신장기증이 취소되었습니다..]
P. 요즘 기분은 어때요?
많은 것들을 할 수가 없어서 감정적으로 힘들때가 있어요.
다른 모든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걸 난 할 수 없을 때 힘들어요.
난민소송 등 법적인 문제들로 너무 힘들지만, 나이지리아로는 돌아갈 수는 없어요.
우선적으로 의료 시스템이 아주 낮아요.
그냥 돌아간다면 지금 겪고 있는 병은 치료받을 수가 없을 거에요.
P.한국에서 난민신청자로 살아가는 시간은 어떤가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일 것 같아요.
저는 누구에게 날 돌봐달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집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먹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ID card 를 얘기하는 것뿐이에요.
사람들이 난민신청자가 가진 G-1에 대해서 몰라요.
그래서 한 은행에 가면 통장을 만들 수 없다고 하고,
또 다른 은행에 가면 또 통장을 만들어 줄 수 있데요. 너무 어려워요.
[난민신청자들이 소지하게 되는 비자 G-1은 기타 비자입니다.
G-1비자로는 난민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 합법적인 체류,
운전면허증 취득, 핸드폰 개통, 통장개설 등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G-1비자 자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대부분의 경우 거부를 당하곤 합니다.]
보다 더 힘든 건 나이지리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봐요.
제가 미국사람이라고 할 때와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할 때 너무 태도가 달라져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국 사람이라고 얘기할 때도 많아요.
지하철에 타면, 제 옆에 분명히 자리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 앞에서 2시간을 서서 가는 걸 봤어요.
그리고 또 한 번은 두 여자 사이에 자리가 있어 앉았는데
저를 피해 다른 자리로 옮긴 적도 있었어요.
또 하루는 수영장에 갔어요. 너무 신나서 물에 뛰어들어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물에서 나가고 어느새 저 혼자 남아있는 거에요.
아마도 제가 물을 오염시킬 거라 생각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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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에게 많은 상처가 보입니다..]
P. 인생에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 나눠줄 수 있어요?
어린 시절에…? 사실... 그런 기억이 없어요...
왜냐하면 정말 어렸을 때 엄마를 잃고, 이모와 함께 살았어요.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저는 아이였지만 어른처럼 굴어야 했어요.
8살 때, 9살 때부터 벌써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해야 했고,
학교에 다녀오면 정말 멀리 떨어진 농장에 가서 일을 해야겠고요.
가족들과 차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울었어요.
“ 왜 나는 저럴 수 없는 거지” 라고 생각하고 울었어요.
TV에서 보는 삶과 내 삶은 너무 달랐거든요. 왜 난 저렇게 될 수 없지?”
17살 때 부터 저를 도와주는 아저씨와 살았는데, 20살까지 맞으며 살았어요.
살아있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에요. 너무 감사해요.
삶이 고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삶을 통해 저는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 됐어요.
그러던 중 머물 수 있는 한 교회를 찾았어요.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면 저는 교회 바닥에서 자곤 했어요.
그렇게 1년을 지내다, 교회가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제게 잘 곳을 마련해주었어요.
몸이 좀 회복되고 저는 남아공으로 갔어요.
P. 오. 렉스 꿈이 뭐에요?

낫는 거에요. 기적적인 방법이든 치료방법을 통해서든 낫길 원해요.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처럼 보통의 삶을 살고 싶어요.
P. 피난처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음…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정말 존경할 일이에요.
한국에서 이런 친절한 사람들을 처음 만났어요.
하나님께 당신들을 계속해서 축복해주시길 기도 드려요.
당신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고, 결국 여러분에게 돌아올 거에요.
시간 낭비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들은 단순이 직업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같이 인내성이 없는 사람은 못 할 일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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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는 너무 감사하게도 선한 의사선생님의 도움으로
현재, 신장투석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사실, 수술을 통해 신장을 이식받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겠지요.
이전에 신장이식을 해주기로 했던 친구는 마음을 돌렸지만
렉스와 난민들의 피난처는 계속해서 기적의 손길을 찾고 있습니다.
렉스의 이야기처럼 기적적인 방법이든 수술을 통해서든 건강해져서
렉스의 꿈을 이루어가길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첫댓글 극한 상황속에서도 너무나 긍정적이네요.. 반성할게 많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