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장애인.
지하철 안에서,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길을 터주는 마음만으로도 이미 선비”라던
어떤 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일견, 무어 그리 어려운 문장이 아닌 데도 그 울림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예의나 범절, 교양이나 배려가 매우 간단하면서도 주변에
상당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간단한 마음가짐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삭막해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서삼경의 시경에 녹명(鹿鳴)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사슴의 울음이라는 의미인데, 조금 더 알아보면, 지구상 동물 가운데 먹이를 발견하고나서, 동료를 불러내어 같이 나누어 먹는 동물은 유일무이하게 사슴 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해 무얼 할까 마는, 실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나누어 먹자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각박해진 탓이긴 하지만 모두의 지적처럼 간단한 배려나 예의범절도 사슴의 나눔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서 끄집어 내어본 얘기이다.
얼마전, 어느 티브이 프로에서 목격한 일이다.
지체장애인인 젊은이가 등산을 하는데, 주변의 도움을 단호하게 뿌리치면서 당당하게 정상에 오르는 광경을 보면서 그 젊은이에게 존경심이 솟구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타인의 도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는 아무나 흉내 내기가 어려운 일이다.
아직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인지부조화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아기 실정이다.
겉과 속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말이다.
이를 극복하는 일은 정부나 비장애인들의 역할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절대 몫이라는 점을 깨닫고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 노력하고, 공부하고, 똑똑해져서 이 엄하고 험한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정상을 향하던 그 등산 청년처럼 말이다.
비록 장애를 가진 몸이라 할지라도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양보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들이 점진적으로 교정되어 가리라는 확신이 있다.
“장애인이니 동정심을 가지라”는 것보다 “ 장애가 어때서” 라는 자신만만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그런 날을 앞당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야 나도 이익, 타인도 이익 서로 이익인 자리타리(自利他利)라는 것이다.
부디 당당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