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특별한 인물들] 의인 노아가 알코올 의존증?
평소에는 말도 없고 점잖은데 술만 마시면 집안 물건을 두드려 부수는 중년 가장이 있었습니다. 송년 모임에서 얼큰하게 취해 비틀대며 밤늦게 집에 들어온 그 남자는 갑자기 망치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 주차된 자신의 차를 마구 부숴버리고 방으로 돌아와 쿨쿨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정신을 차려 일어났더니, 아뿔싸! 자신이 전날 밤 부순 차는 자신의 차가 아닌 이웃의 고급 차가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과거에 우리 사회는 술 문제에 비교적 관대했습니다. “저 사람 술만 빼면 참 괜찮고 좋은 사람인데…. 술이 원수야.” 그리고 술에 만취해 실수를 한 사람도 다음날이 되면 멀쩡해지니 가족들은 물론 본인도 스스로 알코올 의존증이라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술주정을 한다고 해서 모두 알코올 의존증(중독)이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알코올 의존증이라면 이를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질병(疾病)이란 것을 분명하게 알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계속 술을 마시면 대뇌피질의 문제를 일으켜서 기억장치에 문제가 생기고 알코올성 치매, 블랙아웃 등으로 이어집니다. 무서운 것은 간에서 해독·분해되지 않은 알코올 독성이 혈액을 타고 뇌에 가서 직접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전두엽의 흥분, 분노, 호르몬 대사 이상으로 점점 폭력성을 띠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일반적으로 한잔 반 정도가 간에서 해독이 되려면 3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처음 알코올로 문제를 일으킨 인물은 노아입니다.(창세 6,5-9,29 참조)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는 산기슭을 개척하여 포도밭을 일굽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장막 안에 들어갔다 아연실색합니다.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 옷을 다 훌훌 벗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집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술에 취해 마루에 나체로 벌렁 누워있다면 어떨까요? 생각하기조차 힘든 일 아니겠습니까?
노아는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 사건의 주인공입니다. 하느님은 죄로 물든 이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려고 하셨지만, 노아만은 살려둘 정도로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노아는 죄를 짓지 않고 흠 없이 살며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인물이었지만, 이미 자신의 가족들에게 수차례 술주정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느님에게도 인정받은 의인 노아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술에 취해 옷을 벗는 행위는 그의 무의식을 나타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한 인간이지만 의인으로 평생 살아가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감이 풀리고 교만해졌을까요? 그 이유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노아의 음주 후 이어진 기이한 행동이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합니다. 대개 알코올 의존성에 빠지게 된 사람들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들의 가족입니다. 술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절제 있게 마시면 술은 사람에게 생기를 주지만(집회 31,27) 절제를 잃으면 인간은 패가망신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2022년 1월 9일 주님 세례 축일 서울주보 5면, 허영엽 마티아 신부(홍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