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MTV의 개국이 장차 급변하는 '음악 산업'의 태풍의 눈이 될지, 그 누가 알았을까?최근 영국 TV 채널 VH1이 선정한 '금세기 최고의 뮤직비디오'만 보더라도 팝 음악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티스트가 만든 음악과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뮤직 비디오.' 1위부터 5위까지만 보더라도 1위에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2위에 퀸의 'Bohemian Rhapsody', 3위에 아하의 'Take On Me', 4위에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 5위에 자미로콰이의 'Virtual Insanity' 순이다. 이제 음악과 뮤직 비디오는 실과 바늘처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VH1 선정 '금세기 최고의 뮤직 비디오' 1위가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80년대를 풍미하면서 지금까지도 팝계의 황제로 군림하게된 마이클 잭슨. 사실 마이클 잭슨이야말로 MTV 개국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물론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인 성과를 제쳐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들려주는 음악으로 음악성을 평가받던 시대와는 다르게 보여주는 음악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로 변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음악의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서의 뮤직 비디오가, 그 선을 넘어 음악적 상업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한국음악계의 현 세태는 아티스트가 대중들 앞에 서서 음악을 들려주기 전에 공중파의 연예 채널을 통해 뮤직 비디오를 먼저 내놓는 시스템이 되어 버렸다. 내친 김에 말하면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뮤직 비디오'는 이제 온데간데없어, 그것마저도 음악적 변종이라는 수사로 여겨질 만큼 애교스럽게 보이게 되었다.
가령 반항적인 불량 청소년(나나나, 유승준 2집)에서 의지의 권투 선수(열정, 유승준 3집)로 탈바꿈한 유승준의 경우는 가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해 볼 때 그래도 애교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뮤직 비디오 어디를 살펴보아도 가수는 얼굴도 내밀지 않는 뮤직 비디오가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그룹의 리더가 C군이라는 가요괴담까지 떠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뮤직 비디오는 이제 더 이상 소위 '음악을 하는 사람들만'의 새로운 표현 수단이 아닌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뮤직 비디오는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게 되었고, 그건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나, 음악을 듣는 팬들이 거역할 수 없는 '음악 산업의 상업적인 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비슷한 음악적 구도를 갖는 영화와 영화음악의 관계로 따져보자. 흔히 항간에서는 영화음악이라고 하면 영화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대다수 가수들은 자신이 만든 곡을 영화음악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음악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상황에서 단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평가절하(?)되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상업적인 이유에서든, 아티스트의 자각에서든 스스로 뛰어 드는 경우가 있다. 스팅의 경우가 대표적일 것이다. 스팅은 스스로 영화음악에 관심을 갖고 영화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하지만 주변의 기우와는 다르게 영화의 배경음악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스팅을 영화음악가로 보는 견해는 전무하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뮤직 비디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적어도 필자의 견해로는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관계는 영화와 영화음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여진다. 처음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영화음악이 발전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 서면 영화는 자신의 품에 두기 어려울 만큼 훌쩍 커버린 자식, 즉 영화음악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때부터 영화음악은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음악은 뮤직 비디오를 낳고, 뮤직 비디오는 새로운 실험 정신과 어우러져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대중음악에 보여지는 뮤직 비디오는 우려의 소리 없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굴 없는 가수 Sky. 아티스트는 간 데 없고, 스타급 배우들만 스크린에서 총질을 하고 추격을 한다. 유명 배우의 뮤직 비디오 픽업 소식이 공중파의 연예 채널을 채우고 스포츠 신문의 판매를 조장한다. 스타급 배우들이 쌓아온 이미지와 뮤직 비디오의 스토리 보드에 무임승차해서는 어디론가 표류하는 것이다. 여기에 CF 감독이나 뮤직 비디오 감독을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 위한 오프닝으로 바라보는 상업주의도 한몫 거들고 있다. 아무리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고 하지만, 음악의 진정성은 그것과 다를 것이다.
뮤직 비디오는 대중음악의 한 가지로서 음악적 표현 수단과 볼거리라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그것이 상업적인 토대에 놓여있더라도 이 두 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서로가 궁합이 잘 맞아야하지 않을까? 음악과 볼거리가 따로 노는 뮤직 비디오는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왠지 보고 나면 씁쓸하다. 10대를 주류로 하는 대중들은 말 그대로 자신들의 아이돌(idol)을 무작정 따르게 마련이다. 심지어 뮤직 비디오의 주인공이 불쌍하다며 슬피 울기까지... 그들의 가녀린 정서까지 뭐라고 탓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노래는 간데 없고, 배우만 떠오르는 뮤직 비디오는 아티스트의 영혼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결국 그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