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벤츠라고 하면 고급 수입차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져 왔다. 그래서 그 차 모양은 자세히 기억 안 나도 특유의 엠블럼은 누구나 기억했다. 동그란 원을 삼등분 한 그 엠블럼은 하늘, 땅, 바다의 3개 부분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벤츠의 모기업이었던 다임러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자동차만이 아니라 비행기, 고속정 엔진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엄청난 포부를 담고 있는 엠블럼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이미지의 효과는 상당하다. 벤츠는 아무나 탈 수 있는 차가 아니라는 걸 그 엠블럼 하나로 압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급 브랜드 이미지는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누구나 탈 수 있는 대중적 이미지가 되지 못하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급 수입차들도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 그래서 벤츠는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위기는 또한 기회가 되기도 하는 법. 벤츠는 위기를 직시하며 혁신을 추구해 대중의 사랑을 받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 변신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최근 벤츠가 협찬하는 드라마 tvN <화유기>가 공교롭게도 드라마 2회 만에 방송사고와 현장의 사고까지 겹쳐 큰 위기를 맞았다. 과연 <화유기>는 벤츠가 그랬던 것처럼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자동차 전문기자인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1부에서 계속됩니다)
정덕현(이하 정) : 사실 <화유기> 같은 판타지물에서 차량 협찬은 조금 어색함을 줄 수도 있다. 자동차라는 실물이 판타지라는 비현실과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벤츠는 어떤 면에서는 그 이미지가 판타지에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이 벤츠를 기억하는데 있어서 그 디자인을 떠올리기보다는 엠블렘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엠블렘이 갖는 기호적 상징성이 워낙 크다보니 자동차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데, 그래서 차량 자체가 판타지적인 느낌을 준다.
강희수(이하 강) : 벤츠라는 자동차 브랜드의 기술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기술력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화유기>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주로 차의 이미지에 집중 돼 있더라. 예를 들면 길거리에 주차 된 벤츠를 배경으로 이승기와 오연서가 실랑이를 하는 장면 같은 거다. 일반적인 자동차 PPL이면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올 테지만 <화유기>는 삼각별을 드러내고 배경으로 등장하는 화면이 유독 잦다. 세련되고 매혹적인 디자인을 드러내는 게 벤츠 PPL의 더 큰 목적이라는 얘기다.
정 : 실제로 <화유기>에 등장하는 벤츠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해왔던 다소 딱딱한 이미지가 아니라 굉장히 화려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다양하게 보여주더라. 그건 아무래도 지금 현재 벤츠가 진행하고 있는 변화를 담아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강 : 메르세데스-벤츠의 변신에서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라인업 구축이다. 한 클래스 안에도 사양별, 엔진별, 배기량별로 수 가지의 트림이 나눠지는데, 2014년 말 AMG와 마이바흐라는 서브 브랜드까지 성공적으로 론칭하면서 벤츠라는 이름 아래에는 이루 다 셀 수 없는 차종이 포진하게 됐다. 메르세데스-AMG는 폭발적인 성능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최상의 럭셔리를 표방하는 서브 브랜드로 벤츠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화유기>에 8종의 벤츠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손오공 역의 이승기는 메르세데스-AMG GT S를, 저팔계 역의 이홍기는 메르세데스-AMG SLC 43을, 진선미 역의 오연서는 E 300 AV를 탄다.
정 : <화유기>에 등장하고 있는 벤츠들 그 각각의 특징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냥 캐릭터들과 차를 매칭하지는 않았을 테고.
강 : 이승기의 메르세데스-AMG GT S는 매혹적인 2인승 스포츠카로 최고 출력 510마력(6,250rpm), 최대 토크 66.3kg.m(1,750-4,750rpm)의 엄청난 화력을 지녔다. 최고 속도 310km/h, 정지 상태에서 100km/h를 3.8초 만에 주파한다. 밉지 않은 악동, 손오공의 근두운과 잘 어울리는 차다. 가격은 가볍게 2억 원을 넘어선다.
정 : <화유기>의 손오공은 거침없는 캐릭터다. 악동처럼 보여서 어딘가 철이 덜 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선이고,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요괴들이 등장해도 전혀 놀라는 기색 자체가 없다. 그건 아무래도 공력 자체가 달라서일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메르세데스-AMG GT S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것 같다.
강 : 이홍기의 메르세데스-AMG SLC 43은 367마력을 내는 V6 바이터보 엔진을 장착한 2인승 로드스터다. 한껏 멋을 부린, 뚜껑이 열리는 고성능 소형 스포츠카다. 오연서가 타는 E 300 AV은 작년에 출시 된 더 뉴 E클래스의 아방가르드 트림이다. 벤츠 정통 세단의 준대형 세그먼트로 BMW 5시리즈와 함께 우리나라 수입차 1, 2위를 다투는 모델이다.
정 : 이 드라마에서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왔던 저팔계와 사오정 캐릭터가 뒤집어져 있다. 저팔계는 돼지 캐릭터지만 <화유기>에서는 한류스타 가수다. 갖은 폼을 다 잡고 다니며 멋을 내는 모습이 그 자동차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사오정 역할을 장광 같은 중견배우로 선택하고 그런 이미지를 붙인 것도 반전 코미디를 위한 한 수로 보인다. 흔히들 생각하는 사오정은 귀가 안 들려 엉뚱한 소리를 하는 캐릭터가 아닌가.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국내 최대의 휴대폰 회사의 회장이다.
강 : 국내 최대기업의 수장이자 사오정인 장광이 타는 차는 마이바흐 S 560 4매틱이다. 지금은 병석에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마이바흐 애호가라는 사실은 재계에 익히 알려져 있다. 또 마비서 역의 이엘은 메르세데스-AMG C 63 S 쿠페를, 우마왕 역의 차승원은 SUV인 GLS 350d 4매틱과 S 클래스의 롱바디 모델 S 560 4매틱 Long (FL)을 번갈아 탄다. 옥룡 역의 윤보라는 GLC 220d 4M Coupe Standard를 애용한다. 럭셔리 세단 마이바흐를 필두로 스포츠카, 쿠페, 로드스터, SUV까지 메르세데스-벤츠 라인업의 특성을 어필 할 수 있는 차들이 총출동한다.
정 : 하지만 <화유기>는 안타깝게도 시작과 함께 위기에 처한 드라마가 됐다. 물론 시청률은 6%를 넘기며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지만, 벌어진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고 향후에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단단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지 같은 걸 확실히 보여주지 않으면 <화유기>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울 듯싶다. 물론 이런 위기를 제대로만 해결해나간다면 오히려 반전의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지만.
강 : 메르세데스-벤츠가 <화유기>의 곳곳에서 거부감 없이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벤츠의 대담한 응전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 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화유기>에는 대기업 회장에서부터 40대 엔터테인먼트 사업가, 20, 30대 청춘남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제각기 자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차를 타고 있으니 말이다. 3, 4년 전 메르세데스-벤츠가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면서 꺼낸 프로모션 키워드 중에 ‘드림카’가 있었다. 시대별로 드림카는 항상 있어 왔지만 이 당시 메르세데스-벤츠가 외친 드림카는 그 어느 때보다 꿈이 현실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강조했다. 개성 표현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디자인이라는 드림카 마케팅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판타지물 <화유기>에서 드림카를 논하는 것이 유달리 자연스럽다.
정 : 드라마 <화유기>는 숙제를 남겼지만 이 드라마에 들어간 벤츠가 보여준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도 성공적이라고 보인다. 모쪼록 드라마도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
epilogue. 역경을 극복하면 기회가 열린다
항상 어찌 평탄한 길을 갈까. 살다보면 누구나 갑자기 맞닥뜨리는 역경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역경이란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래도록 존재해왔으나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큰 문제로 도래할 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 터지는 역경들은 모든 것들의 파국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신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잘못된 것들은 그래서 되도록 빨리 인정하고 고쳐나가야 그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기회를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