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속담에 부효자효(父孝子孝)라는 말이 있다. 속담에 얽힌 얘기의 주인공은 시어머니를 소홀히 모셨던 며느리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구박했고 밥도 작은 그릇에 담아줬다. 시어머니가 일은 하지 않고 밥만 축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를 보다 못한 손자가 할머니의 밥그릇을 깨버렸다. 손자는 밥그릇을 찾는 어머니에게 "내가 나중에 결혼하면 밥그릇을 쓰려고 따로 챙겨 놓았다"고 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며느리는 반성하고 시어머니를 잘 모셨다고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에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mey)'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 효도에 현금이 최고인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살뜰한 마음을 담은 전화 한 통이 더 소중한 것 같다.
북한에는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없고 어머니날이 있다. 집권 첫해인 2012년 김정은은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다. 11월 16일은 1961년 평양에서 열린 제1차 전국어머니대회가 열린 날이다. 이날 김일성은 '자녀 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라는 연설을 했다. 이날을 기념하여 제정한 것인데, 갑작스러운 기념일 제정 소식에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의 생일로 이날을 오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무엇을 최고 어머니날 선물로 생각할까? 1순위는 단연 꽃다발이다. 꽃에 대한 여성들의 사랑은 북한에서도 각별하다. 평양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꽃다발은 15달러 정도다. 한국과 비교해도 싼 가격은 아니다.
이 밖에 고급 화장품이나 옷을 선물하기도 한다. '현금은 드리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법한데, 사실 그 정도 수준이면 부모가 더 잘산다. 북한의 계층적 지위는 대부분 대물림됐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을 듣기 어려워졌다. 꽃다발을 살 정도면 재력이나 권력이 대단한 부모를 뒀을 가능성이 높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일성은 일찍부터 사회의 세포로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특히 어머니의 역할을 앞세웠다. 그는 자녀들을 사상적·정신적으로 교양하기 위해서라도 어머니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1960년대에는 북한도 당 일꾼보다 판검사가 더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그러자 1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김일성은 노동을 무시하면서 법률 공부에 치우쳐 판검사를 꿈꾸는 실태를 비판했다. 김일성은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을 계속 독려했다. 어머니의 발언과 행동이 자녀의 성격과 습관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여성들이 먼저 혁명가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 여성들에게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가정에서 역할을 둘 다 잘 해내는 슈퍼우먼이 되라고 한 것이다.
6·25전쟁을 치른 뒤 북한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많은 아버지들이 사라졌다. 여기에 국가 계획경제시스템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것이 북한에 슈퍼우먼이 필요한 이유였다. 김일성의 바람과 달리 혁명가 부모들은 자식들 교육과 출세에 열의를 아끼지 않았다. 남이나 북이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다. 자식들이 남들보다 쉬운 길을 걷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현재 북한의 젊은 층, 즉 김정은 세대는 대부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들은 국가의 혜택보다는 장마당 혜택을 톡톡히 보며 자랐다. 가슴에 빛나는 훈장이나 한 장의 표창장보다는 미국의 달러나 일본의 엔화가 가진 위력을 그들은 잘 안다. 북한도 이제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가 됐다.
김정은도 그의 할아버지처럼 어머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어머니날을 제정했고, 여성들이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담당하라고 했다. 그는 당과 국가에 충성하는 자식들을 키운 김일성 시대 어머니들이 다시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변했다. 기아로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었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쌀 1㎏보다 가벼움을 몸소 체험했다. 더불어 자식들도 변했다. 돈으로는 명예를 살 수 있지만, 명예로 쌀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어머니날 북한 최고의 인기 선물인 15달러짜리 꽃다발을 사려면 정상적인 월급으론 불가능하다. 노동자 월급이 보통 북한 화폐로 2500~5000원(달러로 0.4~0.7)이기에 직장 생활만 해서는 효도는커녕 일상생활조차 힘들다. 당에 대한 충성에 앞서 나를 낳아준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게 더 마땅하다는 인식이 북한에도 번지고 있다. 이제 자식이 효도하는 것이 불법 혹은 비법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북한이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