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거세해 환관宦官의 삶을 살었던 오리게네스185-254.
영지주의 신학자 오리게네스의 삶은 흥미롭고 인간의 욕망이 영적인 삶에 큰 장애가 된 것은 인간의 창조 당시 아담과 이브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깨달음을 위해 스스로 거세하는 것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의 환관들 중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꽤 있었을 수도 있겠다.
또 흥미로운 부분이 신의 독생자인 예수와 무수히 많은 부처의 존재가 기독교와 불교의 중요한 차이라는 사실이다.
아래는 신의 역사(카렌 암스트롱저) 중 발췌한 것이다. 신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를 설명한 680쪽의 책이지만, 영성수련을 하는 내게는 동서양 조상들의 수련방법의 변화를 공부할 수 있는 엄청난 자료이다. 지금4번째 읽고 있는데 내가 워낙 아둔해 전체 내용을 디테일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플라톤 주의자로 신과 영혼의 동족성을 확신했다. 따라서 신에 관한 앎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영적 존재인 인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을 관조하고 성찰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인간은 신에 대한 완벽한 관조가 지겨워져 신성한 세계로부터 육체의 세계로 전락했으며 육체는 인간의 감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영혼은 죽음 뒤에 길고도 꾸준한 여행을 통해, 관조-테오리아와 신에 대한 앎-그노시스를 통해 신에게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오리게네스의 특이한 점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거세했다고 한다. 고대 말기에는 신성 훈련을 위해 스스로 거세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신의 독생자인 예수와 무수히 많은 부처의 의미:
바울은 예수의 자기 희생이 유일무이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불교의 무수한 붓다들과 힌두교의 많은 신들이 신자들에게 일깨워주는 중요한 사실은 궁극적인 실재가 어떤 한 가지 형태 속에 충분히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의 무궁한 실재 전체가 특정한 한 사람 안에서 모두 구현되었음을 시사하는 기독교의 단일 성육신론은 잘못하면 미성숙한 유형의 우상 숭배로 이어질 수도 있다.
Paul Koo2025.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