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예배 10
예배당 안에서 목격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공동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우리함께 영광에 박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박수를 치지 않으시는 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성경봉독을 한 다음에 ‘이는 우리주님에 거룩하신 말씀입니다.’ ‘주님 영광받으시옵소서’ 아멘. 하지만 같이 고백드리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집중이 안되어 내가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관람을 하는 것은 아닌지 헷갈리 때가 있습니다.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또 어떤 모습으로 모여있던 간에 우리가 주님께 공동예배를 드린다는 곳에는 관람객이라는 모습은 전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주님에 백성들로 부터 예배를 받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개신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는 모습에서 집례자 성가대 지휘자와 대원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설교하는 설교자만 예배를 드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치 관중이 되어 인도자가 일어나서 찬양합시다 혹은 앉으세요 하면 따라서 자기 스스로가 아닌 무의식적으로 편한 의자에 앉아서 설교를 들으며 내 마음에 들면 아멘으로 호응을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굿이 박수를 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이런 모습이 어디로부터 나왔습니까? 내가 예배를 관람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의시적이든 무의식적인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목회자가 얼마나 설교를 잘하는지 들어보자. 아 이찬양은 내가 잘 아는 찬양이야 아니면 내가 모르는 찬양이네 하고 관심을 엉뚱한 곳에 두고 예배당 인테리어나 조명만을 쳐다보는 마치 이방인처럼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가 아니다는 것을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기 백성의 하나된 공동체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주님은 정직하게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어디서 누구를 구원해 내셨나요. 그분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에게 대적하고 속이는 정직하지 못한 사단 고발자라고 얘기하는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악한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정직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구출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 있던 무슨 상황가운데 있을지라도 정직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공동체가 함께 더불어서 드릴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12편 1절-2절에 저자가 노래합니다. “ 주님, 도와주십시오. 신실한 사람도 끊어지고 진실한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거짓말을 해대며 아첨하는 입술로 두 마음을 품고서 말합니다.” 한 것입니다. 어쩌면 한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 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하게 예배드리고 있는 모습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무엇인가를 동일하게 놓고 예배드리는 그런 우상숭배자들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신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예배를 드려야만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예배시간에 방관자처럼 아니면 관람자가 되어 내 마음에 들면 아멘이요 아니면 화답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 생각이나 감정이 붙잡힌 우상숭배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실하고 정직하게 내가 너희를 구원해낸 것처럼 너희는 내게 신실하고 정직하게 예배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속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삶 = 예배. 왜요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청지기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다시 하나님에 형상으로 회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에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로부터 온전한 예배를 받으시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내신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요? 우리는 정직하게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순간순간마다 어렵고 힘들게 우겨쌈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합니다. 여러가지 것들이 계속해서 옵니다. 예배드릴 때 온전히 진실되게 참으로 드리고 싶지만 우리가 그렇게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붙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힘들고 지친줄 내가 안다 내가 이해한다. 그러나 너는 나를 끝까지 붙들고 의지하라 하십니다. 그렇게 끝까지 붙들고 의지하며 나가는 모습이 어떤 것이냐면 정직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정직하신 주님 우리가 정직한 주님에 백성으로서 오직 주님만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나아갈 때 주님은 어떻게 인도하신다고요. 기쁘고 참되고 온전한 예배를 그리고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평화가 계속해서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받은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