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 2,1-5; 마태 12,14-21
+ 찬미 예수님
어제까지 제1독서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사야서가 아직 안 끝났는데 오늘 미카 예언서가 나와서 당황하셨어요?
이사야 예언서 1장부터 39장까지는 기원전 8세기에 활약한 이사야 예언자가 썼지만, 40장부터는 제2 이사야라 불리는 후대의 다른 예언자가 쓴 것으로 생각되고, 56장부터는 제3 이사야라 불리는 또 다른 예언자가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2 이사야부터 배경과 내용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대 순서에 맞게 미카 예언서로 넘어갔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그리고 미카 예언자가 활동했는데,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이사야와 미카는 남유다에서 활동했습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 귀족 출신이었는데 비해, 미카는 대지주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살고 있던 모레셋 출신이었습니다. 어제 제1독서에서 들은 바와 같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의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을 제외한 다른 고을들은 대부분 아시리아에 정복되었습니다. 지주들의 착취와 점령군들의 횡포를 목격한 미카 예언자는 그들의 불의를 고발하면서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 예언합니다. ‘미카’라는 이름은 ‘누가 주님과 같으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고는 아침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기며 남의 밭과 집, 주인과 집안, 재산을 유린하는 이들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재앙의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두고서 조롱의 노래를 부르고 너희는 서럽게 애가를 읊으리라”고 예언합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은, 불의한 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당신 얼굴을 감추고 계신 듯이 보이는 하느님께 드리는 애원의 노래입니다. “주님, 가련한 이들을 잊지 마소서.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시나이까?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어 계시나이까? … 악인은 뽐내며 탐욕을 부리고, 강도는 악담을 퍼부으며 야훼를 업신여기나이다.” 어쩌면 미카는, 착취하는 이들의 횡포를 보며, 이 시편의 저자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드리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뒤이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고,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하였다.”는 구절은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앞두고 자주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모의는 결국 실행으로 옮겨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고쳐 주시면서도 당신께서 누구이신지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당신에 대한 오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시지 않고 이렇게 행동하시는가에 대해 묵상하다가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사야서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지난 목요일 복음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십니다. 당신을 거스르는 적대자들의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다투지 않고 소리치지 않으십니다. 적대자들과 예수님의 근본적 차이점은, 적대자들이 제도적인 것을 손에 넣은 데 비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영을 받아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카 예언자는 그들이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고는 아침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긴다’고 고발합니다. 뉴스를 보면,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만큼만 한 줄 알았는데, 어느새 더 해 놓았고,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참 부지런합니다.
그에 비해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복음 말씀처럼 온유와 겸손으로 선을 행하기에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면 악의 힘이 더 강한 것 같고 어둠이 승리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결국 올바름이 승리할 것입니다. 악이 부지런한 것처럼 보일 때, 선은 항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올바르심과 항구하심과 성실하심이 결국은 승리할 것이기에, 우리는 그분의 이름에 희망을 겁니다.
사람들은 부러진 갈대는 꺾어 버리고, 연기 나는 심지는 꺼버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손을 대시면 부러진 갈대는 다시 붙고, 그분께서 입김을 불어 넣으시면 연기 나는 심지에 불이 다시 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그렇게 느끼더라도,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느끼더라도 말입니다.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2015년, 신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