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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화샘인터넷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쉬아
예수님의 기도론
Ⅰ. 서 론
얀 밀리치 로호만(Jan Milic Lochman, 1922-1982)은 그의 저서 주기도문 강해의 한국판 서문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과 신학활동에서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기도는 신앙생활 및 교회봉사와 신학활동의 생명이요, 중심이다. 그래서 기도가 끊길 때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호흡은 중단이 되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약해지고 사역의 열매가 빈약해 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약해지면 그의 모든 삶과 활동이 따라서 약해지게 될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활동에 이처럼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경에서도 상당한 분량으로 할애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조직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본 소고에서는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얼마나 신중하게 가르치고 있으며 어떻게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기초로 하여 그의 기도 론을 구성하는 것인데, 그렇게만 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기도의 모범이 빠지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Word)뿐만이 아니라 행동(Action)을 통해서도 가르치셨기(행 1:1)때문에 예수님의 기도 론에 주님의 기도 모본(행위)도 종합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중의 기도에 관한 구절을 조사해 보면, 마태복음에
는 33 구절(5:44; 6:5-13, 31-34; 7:7-12; 11:25-27; 18:18-20; 20:20-23;21:12-13,18- 22; 24:20; 26:53; 27:46)이고, 마가복음에는 29절(9:16-29; 10:35-40; 11:15-18,23-25; 12:40; 13:18; 15:34)이고, 누가복음에는 36구절(6:28; 10:21-24; 11:2-13, 12:29-31; 18:1-14; 19:46; 20:47; 21:36)이고, 요한복음에는 8구절(14:13-14; 15:16; 16:23-27)로서 총 106구절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신 기도는 마태복음에는 5회(11:25-27, 14:23; 19:13,15; 26:36-44,53; 27:46), 마가복음에는 4회(1:35; 6:46; 14:32-41; 15:34), 누가복음에는 11회(3:21; 5:16; 6:12; 9:18,28-29; 10:21-24; 11:1; 22:31-32; 22:39-46; 23:34,46)나 되고, 요한복음에는 3회(11:41-42; 12:27-28; 17:1-26)가 나온다.
이와 같이 조사된 모든 구절을 귀납적으로(inductive) 정리하여 다시 주제별(deductive)로 정리하면, 주님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서, 말씀을 통한 가르침과 행동(모범)을 통한 가르침으로 나눌 수 있다. 말씀을 통한 가르침과 행동 즉 기도모범을 통한 가르침을 다시 세분하여 주제별로 정리하였다.
Ⅱ. 본론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여 있는 내용을 그대로 귀납적으로 정리하면 첫째,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직접적인 교훈(마태복음에는 16구절, 마가복음에는 2구절, 누가복음에는 26구절, 요한복음에는 7구절이다.), 둘째, 기도에 관한 간접적인 교훈(마태복음에는 15구절, 11구절, 누가복음에는 7구절, 요한복음에는 1구절이다), 셋째, 예수님의 실제적인 기도 혹은 기도 모범(마태복음에는 5회, 마가복음에는 4회, 누가복음에는 11회, 요한복음에는 3회이다.), 넷째, 기도에 관한 비유적인 교훈(마태복음에 하나, 누가복음에 셋이 있다)으로 되어 있다. 이런 네가지 내용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다 있는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기도에 관한 비유적인 교훈이 없다.
따라서 4복음서에 있는 기도에 관한 이 모든 내용들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주제로 다시 정리하였다. 즉 크게 나누어 예수님의 기도의 교훈(기도의 정의, 기도자, 기도의 대상, 기도의 자세 등 15 주제)과 예수님의 기도의 모본(계시에 대한 감사의 기도, 사역후의 기도, 하루 시작 전 등 20가지의 모본)이다. 이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예수님의 기도의 교훈
1. 기도의 정의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 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3-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 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 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3-24).
성경에서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사전적으로 정의해 놓은 본문은 없다. 그러나 상기의 몇 구절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예수님이 사용하신 "구한다"( )라는 용어의 뜻을 통해서 알 수 있다. Gustav St hlin 은 가 "요구하다" (to demand) 와 "간청(혹은 간구)하다" (to request) 의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예수님은 이 단어를 자기의 기도를 의미하는 데에는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하는 기도에만 사용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단어의 근본적인 의미는 우선적으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원하는 요구라고 한다. 그래서 김상복 박사는 "간구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무엇을" 혹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의 뜻을 종합해 보면 "기도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기도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3).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 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 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9).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 니라" (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 니라" (눅 11:10).
기도 자는 누구인가? 즉 누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가?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cf. 롬 8:15, 갈 4:6). 그러므로 예수님이 "너희가 구하라"고 하셨을 때 "너희"는 그의 "거듭난 제자들"이거나 아니면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무리들(cf. 마 7:8, 28)"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자의 보편성이다. 주님은 "구하는 이마다" 혹은 "찾는 이마다" 혹은 "두드리는 이 마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열려진 초청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진 기도에의 초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3. 기도의 대상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 6: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눅 11: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예수님은 기도의 대상으로 두 분을 언급한다.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다. 물론 이 두 분은 삼위일체로서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예수님 자신도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간구를 받으시고, 시행하시는 분 즉 응답하시는 분으로 소개하셨다. 특히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라는 것이다. Joachim Jeremias 는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언사(sayings)를 "아버지(The Father, 인칭 대명사 없이)", "너희들의 아버지(Your Father)", "나의 아버지(My Father)" 등 세가지로 보면서 "너희들의 아버지"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자들에 대하여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시고, 그들의 구원을 준비하시는 그런 자상하신 아버지로 보여 주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필요를 이미 다 아시고 스스로 채워 주시 주지만 또한 우리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채워주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이시다.
4. 기도의 자세
마태복음 6장 5절 이하에 있는 예수님의 기도의 교훈은 4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교훈에서 맨 먼저 언급된 것은 기도의 여러 가지 교훈 중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자세"이다. 기도의 자세가 중요한 것은 기도의 응답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외식하는 자의 기도는 이미 "자기 상"(마 6:5)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자의 기도에는 응답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암시하셨다. 요컨대 기도자세가 응답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기도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기도의 교훈들 중에서 기도의 자세는 모든 기도의 응답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유추하여 알 수 있다.
a. 외식하는 자세를 버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 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5-6).
외식하는 자의 기도의 특징은 첫째,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려고 하는 것"(마 6:1)이다. 이런 기도는 의도하는 바대로 이미 사람들로 부터 자기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부터는 상을 얻지 못하는 것"(마 6:1)이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하는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하셨다.
b. 중언부언으로 기도하지 말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 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6:7-8).
'중언부언하지 말라'( )는 이 말(원형은 )이 '무의미한' 혹은 '쓸데없는' 이란 뜻을 가진 아람어 에서 유래되었는지 일종의 의성어인 (말더듬이)에서 유래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은 생각 없이 말을 많이 하거나 같은 말을 의미 없이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길게 기도하는 것이나 반복적인 기도자체를 금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게 기도를 하셨고(마 6:12), 반복하는 기도도 하셨다(마 26:44).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은 길게 하는 기도가 효력을 보장한다는 이교도들의 주문(呪文)형식의 기도를 금하신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효력이 있는 것은 주문형식의 무의미한 반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를 강력하게 금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구하라고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기도는 나의 시급한 형편에 있는 정보를 하나님께 알리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사정을 다 아시는 것을 전제하고서도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무능력함의 고백이요, 그 도움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부터 찾을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으로 부터도 그 도움을 찾지 않겠다는 공언된 포기인 것이다. 바로 이 고백과 승인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요,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요,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이다.
c. 지속적으로 담대하게 구하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7-12).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5-13).
예수님은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논증법은 랍비들의 소위 "경한 것에서 중한 것으로의 논증법"(argument from minor to major)이다. 즉 인간의 아버지가 자식이 구하는 대로 주고, 인간친구가 강청하는 대로 필요를 준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기도에로 초청하시는 강력한 자애로운 권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도에의 초청을 마음 놓고 신뢰하라는 자세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d.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3-24).
이 교훈은 기도할 때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까?" 하는 회의와 의심을 가지고 기도해서는 안 되며, "내가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는 것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전자는 문자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산을 바다로 옮기는 것은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기적적인 일, 즉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한 일들이 필요한 때가 있으며 이런 일은 실제로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후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요컨대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e. 낙심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1-8).
기도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지속적으로 신뢰를 가지고 기도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여기서도 역시 랍비들의 논증법인 "경한 것에서 중한 것으로의 논증법"(argument from minor to major)을 사용하신다. 즉 이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도 한 과부의 소송을 들어준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는 응답이 늦어진다고 생각되는 때에도 실망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기도 할 것을 가르치셨다.
f. 겸손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9-14).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기도응답의 원리와도 연관된다. 즉 기도응답은 율법의 규정들을 그대로 다 지킨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규정들을 다 지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죄인 됨을 통감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가져야 할 기도의 영적인 자세이다.
g. 기도에 경성하라.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막 14:37-38).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눅 22:45-4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 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6).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이고, 육신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을 때에라도 오는 시험이 면제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심으로서 기도에 얼마나 경성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세에 있는 고난이나 세상의 쾌락의 유혹 앞에서도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특히 마음이 둔하여 질 것을 경계하셨다. 그 만큼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때문에 기도에 경성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맥으로 볼 때 유혹과 시험이 있다는 것은 마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더욱이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기도와 장소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13).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 11:17).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 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 19:46).
예수님께서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은 공적인 장소에서 기도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기도의 내적인 은밀성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공석(cf. 마 11:25-27; 19:13-15; 26:36-44; 27:46; 막 14:32-41; 15:34; 눅 3:21; 9:28-29; 10:21-24; 22:39-46; 23:34,36; 요 11:41; 12:27 17:1-26)에서도 기도하셨지만 내적인 은밀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종종 홀로 산이나 조용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기 때문이다(cf. 마 14:23; 막 1:35; 6:46; 눅 5:16; 6:12; 9:18; 11:1; 22:31-32).
예수님은 성전을 기도의 장소로 언급하셨다. 예수님께서 은밀한 기도를 위하여 골방을 말씀하셨는데 반드시 공간적인 장소만을 언급하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장소에 영향을 받는 것을 고려 할 때,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장소 보다는 교회당이나 기도원이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2장 21절에서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시라는 것을 고려할 때 영적인 공간 즉 "예수님 안에서" 혹은 "성령 안에서"(엡 6:18)의 기도가 필요함을 암시하셨다. 고도 할 수 있다.
6. 기도와 시간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 더니" (마 14:23),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 더니" (막 1:3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막 6:45-4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예수님은 몇 시에 기도해야 된다고 하는 가르침은 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할 수 있는 한 자주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의 모본을 통해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은 유대인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관습(시 55:17; 단 6:10,13)을 따라 새벽(막 1:35)에, 혹은 정오(눅 5:16)에, 혹은 저녁(마 14:23)에 기도하셨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눅 6:12), 상황에 따라 기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군중들을 멀리 하시고 즉시 기도하시기도 하셨다(막 6:45-46).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보면 하나의 패턴 즉 주옥과 같은 하루하루의 삶이 기도라고 하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7. 기도와 성화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막 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 시니라" (눅 20:47).
특별히 서기관들은 과부의 재산을 관리하도록 지명된 자들이다. 그런데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지위를 악용하여 과부의 가산을 약탈했다. 구약성경에서 과부와 고아의 물건을 늑탈하는 것은 가장 잔인한 죄악으로 말한다. 이러한 죄악을 범하면서도 이들이 길게 기도한 것은 그들의 약탈을 위장하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였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의 기도는 단지 사람의 생각과 눈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행위와 여기에다가 이들의 위선적인 죄악의 긴 기도에 무거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것은 기도에 성화된 삶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을 역설적(逆說的)으로 강조하는 기도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8. 기도의 권세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53).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 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기도응답의 결과로 완전한 평화를 가지셨을 것이다.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 베드로는 검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침으로서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셨다. 예수님께서 폭력을 사용하여 자신을 보호하시기를 원하셨다면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즉 기도를 통하여 천사군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볼 때,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의 권세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 기도의 권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즉 기도를 통해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들린 소년을 고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9. 기도의 목적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3).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원리는 예수님을 통해서이다. 예수님은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셨고, 또한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하셨다(요 17:1, 4). 그래서 주님은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요한 계시록에서 하늘의 천군천사들과 장로들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등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찬양하였다(계 5:12-13). 기도의 응답이나 기도의 역사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얻으시도록 의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 기도의 내용
먼저 "주의 기도"에 대하여 정리한다. 주의 기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부분은 하나님을 부르는 부분(Invocation;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고, 둘째 부분은 여섯 개의 간구(Supplications;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고, 셋째 부분은 결론부인데 신앙고백(Confession;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이라고 할 수 있다.
a. 하나님을 위하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눅 11:2).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성품이며, 그 자신이며,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그의 인격이다. 그리고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원래 구별한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고 섬기는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으로 높임 받고 경외받기를 소원한다는 것이다. 여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헬라어는 로서 누가 거룩하게 하느냐? 즉 인간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문제의 애매성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한쪽만을 주장할 수 없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는 일의 가능성은 온전히 하나님께 있는 일이나 우리들의 삶과 신앙인격을 통해서 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같은 산상수훈에서 "우리들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마 5:16)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b.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라이 임하옵시며"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눅 11:2),
여기 나라는 "당신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인데 이것은 예수의 주된 선포내용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그 나라를 지상에 도래하게 하셨으며, 또한 앞으로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이 기도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not yet)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도래하기를 소망하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미(already)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측면이 나타나기를 소원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즉 복음이 증거되는 곳 마다 사람들이 변화되는 역사와 사탄과 흑암의 세력들과 질병의 세력들이 물러가는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다.
c.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온전하신 것(롬 12:2)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고(요 6:38-39), 그의 뜻을 따라 죽으셨고(눅 22:42), 이런 점에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신앙과 삶의 모본이 되셨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목적이요, 경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은 체념이나 절망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나의 뜻 보다 더욱 더 선하고 온전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과 소원에서 비롯되는 간구이다.
d.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1).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눅 11:3).
이 기도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음식을 비롯하여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인 필요를 의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관점이다. 즉 미래에 있을 하나님 나라의 양식인 생명의 떡을 구하라는 뜻이다. 예수의 선포가 종말론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관점은 그렇지 않은 비종말론적인 관점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의 본문을 참고해 보면 물질적인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물질적인 필요와 아울러 영적인 필요를 구하라고 하는 기도라고 볼 수 있다.
e. 서로의 용서를 위하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눅 11:4).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8-20).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 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막 11:25).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용서 이전에 인간끼리의 용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즉 내가 남을 용서하였사오니 하나님께서 저의 죄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특별히 죄의 용서를 위하여 둘 이상이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응답이 된다고 가르치신다. 이러한 기도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은혜가 있고, 사죄의 은혜가 있다고 하셨다.
f.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하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눅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눅 11:4).
우리는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을 얻었고, 자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면제된 것은 아니다. 죄와 사탄의 세력은 여전히 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해 더욱 더 자극될 수도 있다.
g. 의식주보다도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1-34).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29-31).
기도의 내용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기도문의 내용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h. 원수 사랑을 위하여.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하라" (마 5:44).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8).
예수님은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주님께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은 원수에 대하여 보복하는 일반적인 자세 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을 요구하셨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 한 차원 높은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이다(마 5:48). 즉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성품의 반열에 갖다 놓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들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아들을 주신 것(롬 5:8)"처럼,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므로 하나님을 본 받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엡 5:1)을 갖추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므로(눅 23:34) 기도의 가르침(말)과 행동이 일치되었다.
i. 예상되는 환란 앞에서도 기도로 은혜를 구하라.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0).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막 13:18).
예수께서는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대 환란에 대비하여 기도로 준비할 것을 가르치셨다. 도망하는 일이 왜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겨울에는 피난하기가 힘들다. 안식일에도 힘들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않다"(막 2:27)고 말씀하셨고, 또한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곤란한 지경에 빠지면 얼마든지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참고, 마 12:11). 그러나 그 당시에 안식일에 대한 편만한 의식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규례와 법조문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환란으로 사람들이 도망갈 때 곤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못할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겨울에나 안식일에 피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예상되는 환란 앞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도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1. 기도의 응답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 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 16:23).
기도는 신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응답은 아버지 하나님이 하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도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하셨다. 즉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다.
12. 기도응답의 확신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마 21:22-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예수님은 기도응답의 확신을 심어주시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셨고,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든지 예비 되어 있으나 기도라는 촉매가 올 때까지는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야고보 기자도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할 것을 믿음으로 구하라(약 1:6-8)고 가르쳤다.
13. 기도응답의 원리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3-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 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 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3-24).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 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예수님은 기도응답의 원리로 첫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둘째, 믿음으로 구하고, 셋째, 은밀한 가운데 구하고, 넷째, 예수님 안에 거하고, 다섯째, 말씀 안에서 순종함으로 구하고, 여섯째 경외함으로 구할 때에 기도응답이 있다고 하셨다.
14. 기도응답의 표증(혹은 그 결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28).
바울은 기도응답의 표증으로 평안을 말하였고(빌 4:6), 예수님은 기쁨을 말씀하셨다. 물론 이 기쁨은 기도응답을 볼 때에 비로소 생기는 기쁨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기도응답의 전조로 주시는 기쁨이기도 하다. 이 기쁨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 가운데에서 얻어지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다.
15. 기도의 여러 가지 상황
a. 죄 용서가 필요한 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8-20).
b. 시험과 유혹이 있을 때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40-41),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 하 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막 14:37-38),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이르시 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눅 22:40,46).
c. 기도응답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1-8).
d. 나에게 원수가 있을 때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하라" (마 5:44).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8).
e. 개인 및 우주적 종말에 있을 환란에 대비하여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0).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막 13:18).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 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6).
f. 감사 한 일이 있을 때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5-27).
g. 하나의 사역을 마칠 때에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 니." (마 14:2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 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막 6:45-4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h. 중보기도 요청이 있을 때에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마 19:13)
i.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눈앞에 둘 때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36-53; cf. 막14:32-41; 눅22:39-46).
j. 고통스러울 때에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 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cf. 막15:34).
k. 하루의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 하시더니" (막 1:35).
l. 하루의 사역이 끝날 때에.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막 6:46).
m. 세례를 받을 때에.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눅 3:21).
n.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 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 (눅 6:12-13).
o. 중요한 사안을 예상하면서.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 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눅 9:18).
p. 중요한 일이 일어날 때에.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28-29).
q. 전도사역의 보고가 있을 때에.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눅 10:21-24).
r. 기도를 가르치기 전에.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s. 다른 사람이 영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는 일이 예상 될 때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 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t. 임종 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 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 23:36).
B. 예수님의 기도의 모본
1. 세례를 받으실 때에 기도하심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 3:21-22).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대속적인 죽음을 예표하기도 하지만(눅 12:50), 메시야 직무수행의 공적인 임직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눅 3:22)고 확증해 주셨고, 동시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 이로써 주님은 성령에 힘입어 메시야 사역을 수행하시기 시작하셨다(행 10:38). 이렇게 중요한 세례를 받을 때 주님은 기도하셨다. 즉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직무를 임직 받을 때에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2. 하루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하심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예수님은 하루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하셨다. 바로 그 전날에 있었던 사역은 매우 늦게 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막 1:32-34). 그런데도 이튼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 나셔서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여기서 기도하신 후에 새로운 사역지로 향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막 1:38-39). 그런데 예수님께서 새로운 사역지로 떠나시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을 볼 수 있다(막 1:36-37).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은 문맥으로 볼 때 틀림없이 병든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다른 동네로 가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기도를 통해 새로운 사역이나 새로운 사역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3. 사역 후에 혼자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심.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 14:23).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막 6:4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예수님은 하루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도 기도하셨지만 하나의 사역을 마치신 후에도 조용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마 14:15-21; 막 6:35-44), 그리고 문둥병을 고치신 후에(눅 5:12-15) 기도하러 가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이어서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대접과 박수를 받아야 하는 시간에 무리와 작별하시고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의 사역 후에 기도로 자신을 다스리시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기도의 교제 가운데에서 사역의 새로운 방향을 의논하셨을 것이다.
4. 어린이들을 위해 축복기도하심.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마 19:13-15).
제자들은 예수님께 데려오는 아이들을 꾸짖고 위협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물론 그 당시의 유대교는 아이들을 근본적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제자들이 아이들을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이유로 꾸짖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예수님은 그 바쁘신 사역 중에서도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5.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에 기도하심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날 밤에 밤 새워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완성되면 전 세계에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또한 교회의 초석들이다. 이들을 중심해서 기독교회가 탄생할 것이고, 기독교의 역사가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선택하는 문제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해야 했을 것이다. 특히 가룟유다의 결정 문제로 하나님과의 더 깊은 기도의 씨름이 필요했을는지도 모른다.
6.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전에 기도하심.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눅 9:18).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로 부터 신앙고백을 받으시기 직전에 기도하셨다. 이것은 베드로의 대답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볼 때 더욱 더 자연스럽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할 때 예수님은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라고 깨우치셨다. 즉 베드로가 이런 신앙고백을 하도록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미 중보기도를 해 놓으셨다.
7. 중요한 일이 예상될 때에 기도하심.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28-29).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시는 중에 용모가 변화되셨다. 그때 문득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담화하였는데 주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시는 일이었다. 즉 구속사역에 대한 담화였다. 예수님 자신의 용모가 변화되는 것이나 담화의 주제 모두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 중요한 일을 예상하시면서 예수님은 기도하시기 위하여 산에 올라 가셨고 기도하시는 중에 갑자기 용모가 변화하셨다. 이것은 중요한 일을 예상하시면서 하나님과 상의하신 일이라고 여겨진다.
8. 전도보고를 받으실 때에 기도하심.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눅 10:21-24).
예수님께서 70인의 전도보고를 받으시면서 성령으로 기뻐하셨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기도의 내용은 "세상에서 지혜롭다는 현자들이나 어른들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 복음이 증거 된 사실과 아들(예수님)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알 수 있는 자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예수님은 복음을 증거하고 돌아 온 자들의 보고를 들으면서 기도하셨다.
9. 계시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하심.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5-27).
10.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기도하심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예수님은 수시로 기도하셨고, 아침에 혹은 저녁에 기도하셨고,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도, 일을 마치신 후에도, 일을 하시면서도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누구 보다도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또한 배우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의 삶을 사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의 중요성과 의미를 간접적으로 깨우치시고 기도를 가르치시기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신 것 같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을 아신 주님은 역시 기도로 준비하셨다. 예수님이 한곳에서 기도를 마치시고 나오실 때 제자 중에 하나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다.
11.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기도하심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1:41-42).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그 동안 해 왔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 아버지께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 달라고 우회적으로 간구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무리로 믿도록 하기 위하여 나사로를 살려 달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기도는 사적인 욕구를 채우시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 하여 사람들로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12. 중요한 구속사역을 생각하시며 기도하심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요 12:27-28).
예수님은 자기가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항상 기억하고 계셨고(막 1:38; 막 10:45; 요 12:27; 18:37; 마 9:13; 10:34 등등), 그 목적을 향하여 대담하게 진행해 나가셨다. 따라서 때때로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셨고, 그것이 생각나실 때 기도도 하셨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생애 중요한 목표를 두고 수시로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13. 대제사장으로서 중보기도를 하심
a. 자신을 위한 기도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 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 17:1-5).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중보기도를 하실 때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즉 아들과 아버지의 영화를 위하여 기도하셨고, 자신의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신 것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신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이해를 하나님과 공감하고 창세전에 가졌던 영화를 회복해 주실 것을 간구하셨다.
b. 제자들을 위한 기도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 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6-19).
예수님은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신 사역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시면서 자신의 말에 믿음으로 순종한 제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는데, 이들의 연합과 성결을 위하여 간구하셨다.
c. 장래신자(일반교회)를 위한 기도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0-26).
예수님은 장래에 있을 모든 신자들 즉 지상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시는데, 신자들의 연합을 위하여, 모든 성도가 주의 영광을 보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가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간구하셨다.
14. 제자가 시험에 빠질 것을 예상하시면서 중보 기도하심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기 직전에 예수님은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셨다. 사단은 제자들 모두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 개인을 위하여 기도한 것은 베드로 개인이 특별한 방식으로 시련에 빠질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베드로의 신앙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를 간구하시는 것이었고, 그 기도는 응답이 되었다.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격려 속에 암시되어 있다. 이것은 내 주위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중보기도를 해 주어야 하는 좋은 모본이다.
15.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앞에 두고 기도하심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36-53; 막14:32-41; 눅 22:39-46).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앞에 두고 한 것이었다. 이 때의 기도는 고통 중(마 26:38, 막 14: 34)의 기도였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긴 기도였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볼 때 자아와의 투쟁이었다. 결국 자신을 승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실 때 새 아침이 밝아 왔다. 이 기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모본을 제시해 준다. 즉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상충될 때 자신의 뜻을 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투쟁적인 긴 기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16. 자기를 죽이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심.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 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새" (눅 23:34).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가르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직접 자신에게 죄를 짓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17. 고통스런 상황에서 기도하심.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 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제 구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막 15:34).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하셨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최악의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도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인 기도를 쉬지 않으셨으며 필요하고 합당한 기도를 드리셨다. 특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말은 기도이면서도 동시에 고통의 절규이기도 한 것이다. 즉 심각한 고통을 기도형식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 마지막 죽음 앞에서 기도하심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 23:46).
예수님은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이 기도는 어릴 때부터 몸에 베인 습관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의 기도이다.
19.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심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이 기도가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지상에 계실 때의 기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이 본문의 문맥이 인간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의 특성인 인간의 연약함을 설명하는 것이고, 또한 "육체에 계실 때에" 라는 말이 원문에서 " (in the days of his flesh)" 로 되어 있다. 이 말은 어느 특정한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전 기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십자가의 길이었다(막 8:34; 10:45; 눅 9:23).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는 처음부터 죽으시기로 되어 있었다(요 1:29, 36). 그래서 그는 수 많은 기도가운데에서 점점 다가오는 구속적인 사역과 더불어 오는 죽음의 공포로 인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