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375)... Ice 대신 Rubble 버킷 챌린지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2014년 여름부터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 ALS) 환자 치료비 모금 운동으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통해 급격히 퍼져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 조지 부시 전(前) 미국 대통령을 위시하여 많은 세계 유명 인사들이 이미 동참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기업인, 사회단체장들이 얼음물 양동이를 머리에 쏟아 붓는 캠페인(campaign)을 펼쳤다.
일명 ‘루게릭병’이라고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筋萎縮性側索硬化症)ㆍ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는 퇴행성 신경질환(神經疾患)으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차가운 얼음물이 피부에 닿을 때처럼 근육(筋肉)이 수축되는 루게릭병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자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캠페인 참가자는 도전을 받을 세 명을 지목하고, 지목 받은 사람은 24시간 이내에 100달러를 루게릭병(ALS)협회에 기부하거나,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이를 SNS에 올리면 된다.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참여하여 1억 달러가 넘는 기부금(寄附金)이 모아졌다. 기부를 하면서도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기부 이벤트로서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5’도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다. 삼성전자 영국(U.K.)법인은 지난 8월 22일 ‘갤럭시S5’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15초 분량의 동영상을 유튜브(You Tube)에 올렸으며, 영국의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 단체에 기부금을 냈다. 해당 동영상은 등록된 지 사흘 만에 조회수 300만건을 넘길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한편 이건희(李健熙ㆍ72)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후 100일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 온라인 사내게시판에는 이 회장의 쾌유(快癒)를 기원하는 글이 7000건에 육박한다고 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를 모방하여 아이만 알 알룰 기자(記者)가 가자 지구(Gaza Strip) 참상(慘狀)을 알리기 위해 지난 8월 24일 가자지구 내 무너진 건물 앞에서 잡석(雜石)무더기를 뒤집어쓰는 ‘러블 버킷 챌린지(Rubble Bucket Challenge)’를 실행하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스라엘(State of Israel)ㆍ팔레스타인(Palestinian Authority) 분쟁의 근본 원인은 하나의 땅을 두 민족이 공유하면서 끝없는 비극(悲劇)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대표적 진보 일간지 하레츠(Haaretz)의 간판 칼럼니스트 기드온 레비(61)는 30여년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비판하고 가자 지구 시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칼럼을 주로 써왔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이 가장 증오하는 남자’인 동시에 해외에서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양심(良心)’으로 불린다.
유대인 10대 소년 3명이 납치ㆍ살해된 것을 계기로 7월 8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은 50일 동안 지속되어 팔레스타인 주민 2200여명 사망하고 1만여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파손된 가옥도 2만여채에 이른다. 양측은 지난 8월 26일 장기 휴전(休戰)에 합의했으나 가자지구 재건(再建) 비용으로 최소 5조원을 추산하고 있으며, 국제사회 원조에 기대야 한다. 가자지구 봉쇄를 풀지 않으면 이ㆍ팔 분쟁은 다시 터질 것으로 예상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West Bank 인구는 약 272만명이며, Gaza Strip에는 약 17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월간 가이드포스트(Guideposts) 최근호(2014년 8월호) 표지에 루게릭병과 투병하고 있는 박승일(43) 코치와 가수 션(42)이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으며,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부른다’는 제목의 ‘Cover Story’가 10쪽에 걸쳐 실려 있다. 박승일과 션은 2009년 가을에 처음 만났으며 친구가 되었다.
박승일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국내 최연소(最年少) 농구 코치고 발탁되어 2002년 귀국했다. 그의 미래는 탄탄대로(坦坦大路)처럼 펼쳐질 것 같았으나 6개월 후 루게릭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발병 후 처음에는 휠체어를 타고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박승일 코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루게릭병을 알리고 싶어서 ‘눈으로 희망을 쓰다’라는 책을 지난 2009년 10월에 출판하였으며, 루게릭병 환우(患友)들을 위한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승일 코치는 말을 못하기에 글자판으로 문자를 보낸다. ‘승일희망(希望)재단’도 루게릭병 환우들이 희망을 갖고 지금의 고통스런 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한편 2009년에 상영된 영화 ‘내사랑 내곁에’는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루게릭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백정우와 그의 곁을 지키는 이지수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담은 감동 휴먼스토리이다. 어릴 적 친구였던 두 주인공이 루게릭병 환자(김명민 역)와 장례지도사(하지원 역)로 다시 만나 병중 결혼식을 올린다. 이지수는 백정우의 근육이 말라가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지막 장례까지 치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김명민은 실제 루게릭병 환자들의 병 진행속도에 맞춰 체중을 20kg이상 감량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루 게릭(Lou Gehrig)은 미국 프로야구(MLB)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의 4번 타자로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선수였다. 승승장구(乘勝長驅)하던 그의 몸에 이상이 나타난 것은 1938년이었다. 그는 “피곤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시 잘 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루 게릭 야구선수에게 내려진 진단명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근육에 마비가 와서 음식을 삼키지도, 말도 못하고, 걸을 수도 없었다. 그는 발병 3년만인 1941년 3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루 게릭 사망 후 이 병을 ‘루게릭병’이라고도 부른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은 뇌(腦)와 척수(脊髓)에 있는 운동 신경원(neuron)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 난치성질환이다. 대뇌 피질의 상부운동신경세포(upper motor neuron)와 뇌간 및 척수의 하부운동신경세포(lower motor neuron)가 점차적으로 파괴된다. 루게릭병은 10명당 약 2명꼴로 발병하며, 남성이 여성에 비해 1.4〜2.5배 정도 발병률이 높다. 국내 루게릭병 환자는 약 3000명이며, 전 세계적으로 환자 수는 35만명에 달한다.
루게릭병의 임상 증상은 서서히 진행되는 사지(四肢)의 쇠약 및 위축으로 시작된다. 병이 진행되면서 음식을 씹거나 삼키지도 못하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며, 호흡근 마비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숨을 쉰다. 대개 호흡부전이나 흡인성 폐렴(음식물 등이 식도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로 잘못 흡인되어 생기는 폐렴)으로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루게릭병으로 진단된 환자의 수명은 평균 3〜4년이지만 10% 정도는 증상이 점차 좋아지는 경과를 보이기도 하며 10년 이상 생존하기도 한다. 장기 생존자 중 한명이 블랙홀(black hole)에 대한 다양한 이론으로 우주 물리학은 물론 세계 물리학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이며, 50년 넘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194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난 호킹은 1962년 케임브리지 대학원 입학 후 중동여행 뒤 루게릭병이 발병하여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時限附) 선고를 받았다.
그는 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후 폐렴(肺炎)에 걸려 1985년 기관지 절개 수술로 가슴에 꽂은 파이프를 통해 호흡을 하고,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 합성기를 통해서 대화를 한다. 그는 신체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두 개의 손가락으로 컴퓨터를 작동시켜 강의도 하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둔 호킹 박사는 1990년과 2000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강연을 한 바 있다.
루게릭병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게 없지만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글리아세포가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바이러스, 대사성, 감염성, 면역성, 환경오염으로 인한 중금속 축적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드물게 유전되는 경우도 있다.
증상은 초기에는 팔과 다리의 경련 또는 힘이 빠져 자주 넘어진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게 되어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말기가 되면 삼킴 기능 장애로 음식을 삼키지 못하게 되어 사래에 쉽게 걸리게 되고 호흡곤란이 나타난다. 이에 환자는 주로 호흡부전, 폐렴으로 사망한다.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므로 의식과 감각, 지능장애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진단은 일차적으로 임상적 증상에 근거하며, 신경전도검사 및 근전도검사를 통해 확진할 수 있다. 뇌 또는 경추부의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근육 생검 등을 시행할 수 있으며,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혈액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루게릭병은 신경계 질환으로 분류되므로, 병원의 진료과는 신경과(神經科)이다.
치료는 루게릭병의 발병 원리 및 경과 등에 맞추어 약물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효과가 입증된 약제는 없다. 현재 사용 인증 약물인 리루텍정(Riluzole)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목적으로 사용하면 환자의 생존을 수개월 정도 연장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근력(筋力)을 회복시키는 효과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루게릭병 환자에게 대증적 요법으로 근력약화방지, 통증관리, 호흡재활, 언어재활, 양양요법 등을 실시한다. 현재 줄기세포와 호르몬 영역에서 치료약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한양대학병원 세포치료센터가 연구해 개발한 줄기세포치료제를 식약처에서 신규 희귀 의약품으로 올해 1월에 지정한 바 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캠페인을 통하여 루게릭병을 모르던 많은 사람들이 이 희귀질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 곳곳에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향한 손길은 일회성 캠페인이나 동정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어야 한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축복(祝福)이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375). 2014.9.10. www.nandal.net www.ptc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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