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에 차는 장식물을 패물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패물로는 노리개와 주머니를 들 수 있다. 노리개는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옷고름에 차게 된 것이다. 궁중은 물론 상류계급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성들에 애용되었다. 예물로 받기도 하고, 양반계급에서는 자손대대로 물려주면서 가풍을 전하기도 했다.
노리개는 맨 위에 노리개를 고름에 거는 띠돈, 노리개의 본체, 이들을 띠돈에 연결하는 끈목, 매듭, 술로 구성된다. 노리개는 하나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여러 개를 같이 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삼작노리개가 많았다. 삼작노리개가 많았던 것은 동양인들의 3이라는 숫자를 길상의 수로 보는 이유가 있었고, 세 점으로 구성해 놓으면 가장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삼작은 하늘, 땅, 인간을 상징하거나 조선시대 조부모, 부모, 아들과 며느리 삼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안정된 조화를 뜻한다고 한다. 노리개를 차는데도 격식이 있어 석 줄로 된 것을 ‘삼작(三作)노리개’로 주체(主體)가 되는 패물 세 점이 한 벌이 되는 노리개로 크기에 따라서 대삼작, 중삼작, 소삼작으로 구분한다.
순종(純宗)의 정해(丁亥) 관례(冠禮)때 대전 패물(大殿 貝物) 단자(單子) 및 임오(壬午) 가례(嘉禮) 패물(佩物) 목록을 살펴보면 당시 궁중에서 사용한 삼작노리개의 양상을 짐작 할 수가 있다. 재료 면에서는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세 가지가 각기 다른 것을 조화를 이루게 마련하여 한 띠돈에 걸어 삼작이라 하였고, 형태면에 있어서는 재료는 달라도 형태가 같은 것이 있고 각기 다른 것도 한 띠돈에 걸어 매듭 하여서 삼작이라 하였다. 이것이 조선조 말엽에 이르러서는 세 점이 모두 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같은 형태로 만들어 사용한 것도 있으며 형태도 열 가지가 생겼다. 그런데 형태가 같고 재료가 다르면 색채가 다양하며 아름답고, 형태와 재료가 같은 경우는 단순하면서도 단아한 멋이 있었다
대(大)삼작노리개는 가장 호화롭고 큰 것으로 주로 왕실에서 왕비와 세자빈(世子嬪) 또는 정일품(正一品) 품계를 받은 내명부(內命婦, 嬪, 後宮)나 외명부(外命婦, 공주 옹주 왕자군부인(王子君婦人)) 등에 한정해서 사용하였다. 그 외에도 궁궐에 들어갈 때 종친(宗親)부녀들이나 양반부인들도 머리에 첩지를 하고 노리개를 차야만 들어 갈 수 있는 것이 불문율(不文律) 이었다. 노리개를 패용하는 여인들은 스스로의 미를 가꾸기 위한 장신구로써 사용함도 있지만 여인각자의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으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中)삼작노리개는 왕실과 상류계급에서, 소(小)삼작노리개는 젊은 부인이나 어린이들이 찼다. 삼작노리개는 홍색 남색 황색을 기본으로 하는 매듭술을 기본으로 하였고 분홍 연두 보라 자주 옥색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큰머리정장에는 대삼작노리개, 당의(唐衣)에는 중삼작노리개, 평상시에는 소삼작노리개를 사용하였다.
궁중에서는 여인들이 노리개를 항상 차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명절(名節)이나 의식(儀式)이 있는 날 또는 특정한 궁중행사가 있는 특별한 날은 평상시에 패용(佩用)하고 있던 노리개를 격식에 맞는 노리개와 바꾸어 차도록 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장도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예로 한국여성은 노리개에 달아 사용하다가 차츰 사대부 부인들이나 양반규수들의 가장 큰 호신무기로 정절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노리개는 패물의 하나로 허리에 찼기 때문에 요식(腰飾)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시대의 귀부인들이 허리띠에 금탁(金鐸), 금향낭(錦香囊)을 찼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후기에는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고 옷고름이 보편화되면서 패물 허리띠는 물론 옷고름에도 차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후 노리개로 불리게 된 것이다. 겉고름, 안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차기도 하면서 우리 고유의 복식미를 한층 고조시킨 장신구이다.
노리개는 외형상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호화로운 장식이기도 하였지만, 신체에 패용해서 호신용의 노리개를 쓰는 경우, 가지고 있는 부의 척도로써 보화를 남에게 과시하려는 장식적인 경우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종류는 그것을 만드는 재료, 색상, 문양, 의미 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소재로는 은이나 은에 파란을 올린 것이 가장 많이 쓰였고 자수로 만든 것, 매듭과 장식적 부품 등으로 장식되었던 것이 많이 전해져 오고 있다.
또한 값비싼 소재 대신에 서민적인 소재가 널리 쓰여 특정한 계층 없이 궁중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애용된 점 또한 노리개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노리개의 명칭은 재료, 형태, 개수 등의 순으로 붙여지는데 이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은파란 방아다리 삼작, 대 삼작 자수 나비 노리개, 옥 노리개 등이 있으며 자손만대 번영을 누리라는 의미로 표주박 삼작이나 고추모양의 노리개를 했고 박쥐, 나비 , 매미 등은 복이나 신의 사자로서 장수를 뜻하며, 당의나 저고리 고름에 찼다.
●대삼작(大三作)노리개
크기 : 33cm
대삼작노리개는 노리개를 대표하는 패물로서 궁중과 반가의 대례복(大禮服)에 많이 패용(佩用)되었다. 이 노리개 양식(樣式)의 특징은 붉은 산호가지와 노랑색 밀화불수(蜜花佛手)는 매죽문을 조각한 은에 물렸고 파란을 입혀 구워낸 후 금도금으로 마무리 한 것이며 그 위에 두 개의 백옥(白玉)에는 역시 은에 당초무늬 조각을 하였고 파란을 입혀 구워낸 후 금도금으로 마무리 하였다 . 몇 개의 산호와 청강석을 거미발이 물고 있다. 이 세 줄 노리개는 사각은판(四角銀板) 띠돈이 묶고 있으며 세가지 색의 국화매듭에 낙지발술을 달아 장식하였다.
* 은 파란 (도금) 대삼작 노리개 : 왕의 탄일(誕日)이나 정초(正初),동지(冬至) 문안 일에 차던 삼작노리개로 화려한 큰머리에 칠보단장(七寶丹粧) 하고 진주낭(眞珠囊)과 함께 패용하였다. 노리개는 외형상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호화로운 장식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부귀다남(富貴多男), 불로장생(不老長生), 백사여의(百事如意) 등의 시대적인 행복관을 바탕으로 하는 여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패물은 액을 막아주는 의미를 지닌 투호(投壺)와 건강을 상징하는 방아다리 형태, 화문(花紋)이 아름답게 조각된 은장도가 달려있다. 아래로는 세발 낙지발술이 달려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은파란 띠돈으로 마무리된 칠작노리개 숙대박물관소장
그림 위의 노리개의 띠돈에 올려진 은파란의 아름다운 색상
* 은 파란 칠작(七作) 노리개 ;
은으로 만든 칠작노리개로 실제로 패용하기보다는 조선시대의 양반가문에서는 이와 같은 노리개를 가풍과 권위.애정의 상징물로 자손들에게 가보(家寶)로서 대대로 물려주었다. 이 노리개의 양식은 당초문 조각의 을자형장도. 매죽문 조각을 단 표주박. 매죽문으로 장식된 방아다리. 고추형태 3개. 보상화와 좌우에 붙여져 산호를 물린 두 마리 도룡뇽. 네모진 금속판 위에 각각 수(壽) · 복(福) · 강(康)을 염원하여 새긴 길상문자가 있고. 뒷면은 보상화문이 조각되어있다. 연화문과 당초문으로 아로 새겨진 침통 등 일곱 점의 은 노리개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노리개는 일곱 가지 색상의 국화매듭에 금사가락지매듭을 돌린 낙지발술로서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재현할 때는 더욱 다채로운 색의 칠보유약을 조화시켜 보았다
시 대 : 조선 , 문 양 : 식물문. 동물문. 문자문 , 재 질 : 은.파란, 산호. 견사
크 기 : 세로 45cm ,숙명여자대학교 소장
그림 ) 은 파란 칠작 노리개 재현, 노용숙
* 은파란 방아다리노리개 ; 은으로 된 단작노리개로 옥색의 쌍봉 술에 금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귀다남(富貴多男)의 길상문자가 각각 원형에 투각되어 작은 고리로 연결되어있고, 그 옆에는 튼튼한 다리, 곧 ‘건강’을 뜻하는 방아깨비의 다리 형상 장식이 패물로 달려있다. 조선시대 농경사회에서는 방아를 잘 찧는 건강한 여성인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정서가 노리개에 반영되어 방아다리가 주체(主體)패물로 달려있는 노리개가 많다. 이 노리개의 은파란 방아다리노리개에는 매화문양이 상단에 하나 하단부에 세 개, 그 아래로 두 개가 더 있어서 산호가 물려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현재 복원된 상태로 재현하였다. 은으로 만든 오작노리개로 양반가문에서 패용하기 보다는 의식용으로 전해지는 노리개로 보인다. 양식은 음각된 복(福)자와 화문장식 등이 화려한 두 점의 투호(投壺)모양이다. 투호(投壺)는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화살을 병 속에 던져 넣어 승부를 가리던 놀이로 이 투호의 몸체 중앙에는 복(福)자가 새겨져 있고 양쪽 귀 부분은 잎새 모양의 장식이 있다. 나비형 띠돈의 뒷면에는 ㄷ 자 형으로 구부린 은봉(銀棒)을 땜하여 고리를 만들었다가 여기에 노리개의 매듭실을 고정시켰다. 주체인 속이 비어있는 투호(投壺)에 을(乙)자형장도. 두개의 귀이개가 있는 방아다리 모양과 함께 국화매듭에 낙지발술로 노랑 빨강 파랑 자주색을 늘여 5작으로 꾸몄다. 패물장식하나는 유실되었다. 시 대 : 조선 문 양 : 식물문, 동물문, 물상문, 문자문 , 재 질 : 은, 파란, 산호, 견사 크 기 : 세로 42cm ,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 은파란 침통 가지노리개 :
침통노리개는 은침(銀鍼)을 넣고 응급조치를 위하여 평상시에 휴대하는 것으로서 비상시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조선 여인의 지혜가 담겨있다. 육각기둥형태의 침통이 주체(主體)로 달려있으며 표면에는 장수와 다복을 기원하는 ‘연년익수(延年益壽)’가 새겨져 있는 것과 위의 그림과 같이 착용감이 좋은 각지지 않은 형태도 애용되었다. 적, 청, 황의 쌍봉술 하나하나에 원앙 한 쌍, 파란 치레한 가지 세점, 침통달린 노리개 아래로는 국화매듭을 맺고 장식하였다. 쌍희자를 아로새긴 띠돈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이 노리개는 초혜집이라고 불리우면서 늘 들고 다니는 부채에 매달아 사용한 예와 비슷하게 쓰였다. 은 파란 칠작(七作) 노리개, 은 파란 가지 삼작 노리개 , 은 파란 길상벽사 오작(五作) 노리개 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은파란 투호형 노리개 ;
은으로 된 투호(投壺)형태의 노리개로 화살을 던져 넣으며 놀이를 하던 투호놀이의 항아리를 축소한 형태이다. 항아리의 뚜껑을 덮은 것에는 액을 면하고 한 해를 편히 지내라는 해학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투호(投壺)는 육모형이나 원형에 길상문(吉祥文)과 당초문이 조각된 형태이다. 중앙상단에 작은 산호가 물려있고, 양쪽 귀 부분은 잎새 모양의 장식이 아름답게 장식된 노리개이다. 투호(投壺) 밑으로는 국화매듭과 세벌감개매듭이 노란색의 쌍봉술과 화려한 조화를 이룬다.
* 은파란 투호(投壺) 수자(壽字) 오복(五蝠)문 노리개삼작의 재현, 노용숙 ;
은칠보 투호삼작 오복노리개 재현, 노용숙
은칠보 투호삼작 노리개를 재현 하면서 박쥐를 다섯 마리 디자인으로 보충하여 금형을 뜨고 제작에 임하였다. 우리 선조들께서 박쥐로 무늬를 쓸 때는 반드시 다섯 마리 (五蝠)를 넣어 ‘ 오복(五福) ’ 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기록된 오복(五福)은 오래 삶 ‘수(壽)’ , 부자가 됨 ‘부(富)’ , 안락하게 삶 ‘ 강녕(康寧) ’ , 덕을 베풀기를 좋아함 ‘유호덕(攸好德)’ 제 명을 마침 ‘고종명(考終命)’ 으로 이 다섯 가지는 동양인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행복관이었다.
길상(吉祥)을 의미하고 수복(壽福) 을 바라고자 하는 데는 반드시 편복문을 사용해 왔는데 이는 박쥐의 강한 번식성과도 결부되지만 편복의 蝠과 福이 독음(讀音)이 같아서 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중국에서도 역시 박쥐와 복의 독음이 [ Fu㇀]로 서로 갖기 때문에 복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해져 오는 박쥐문 노리개에 박쥐가 네 마리만 새겨져 있었으므로 본인은 원래의 오복( 五福 , 長壽 · 富 · 貴 · 康寧 · 多男 )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되살리고자 둥근모양의 수자문 주위에 다섯 마리의 박쥐를 배치하여 오복봉수(五福捧壽), 최대의 행복을 의미하는 문양으로 원본을 제작하였다.
* 은파란 박쥐노리개 : 박쥐형태를 간략하게 도안하여 그 위에 칠보로 장식했다. 박쥐는 한자로 편복(蝙蝠)이라고 하는데 암컷 박쥐‘복(蝠)’의 중국어 발음이 ‘복(福)’자와 같고 다산(多産), 다남(多男)을 상징하기 때문에 조선여인들의 규방용품 경대 장 농 손잡이 등의 혼수감이나 밥그릇에 까지 장식 도안으로 애용되었다.
심영미매듭 은칠보 박쥐삼작노리개 ( 박술녀 한복 )
칠보 박쥐삼작노리개 : 박쥐 세 마리가 주체(主體)로 달린 삼작노리개이다. 이 노리개는 주로 왕의 탄일(誕日)이나 동지(冬至)문안 등 왕실의 행사 때 궁중이나 반가의 여인들이 주로 패용했던 삼작노리개로, 큰머리에 용잠이나 칠보단장을 하고 이러한 삼작노리개를 달았다 노랑, 보라, 빨강색의 쌍봉 술이 매우 화려하며, 국화매듭에 세벌감개매듭을 맺어 장식하였다
* 은 칠보 박쥐 삼작 노리개의 재현, 노용숙
예로부터 복의 상징으로 여겨온 박쥐 두 마리를 쌍으로 배치한 문양은 쌍복 즉. 복이 겹쳐서 들어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은 파란 원앙 노리개의 재현, 노용숙 ; ‘囍’자가 띠돈의 전면에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한 쌍의 원앙이 주체(主體)로 걸려있는 단작노리개이다. 은으로 직접 원앙의 형태를 세공하여 입체감이 나면서 사실적 느낌이 나도록 만든 것이다. 머리에는 산호 구슬을 끼울 수 있도록 알집을 땜하여 날개부분에 파란유약을 올려 구워낸 후에 산호를 끼워 색이 조화를 이루는 노리개이다. 외형상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호화로운 장식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부귀다남(富貴多男), 불로장생(不老長生), 백사여의(百事如意) 등 시대적인 행복관을 바탕으로 하는 여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각각의 원앙을 연결하는데 있어 매듭술은 붉은색의 쌍봉 술과 국화매듭, 세벌감개매듭을 맺고 금색실로 감아 화려한 느낌을 준다.
원앙이 노리개 감이 공방에 전수 되는 것 중에 두 종류를 재현 할 수 있었다. 달랑 거릴 수 있도록 양 쪽에 걸어 놓은 양식은 비슷하나 머리 부분 (벼슬?) 장식의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 은 칠보 영지난초 투호 작은 노리개삼작의 재현, 노용숙 ; 예전의 장인들이 남겨 놓은 본은 손에 들어오기도 하나 주변에서 완성작을 찾아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칠보작업의 원본으로 사용하기에 충분한 작업이 되어 있는 것을 착색만 하여 시중에서 파는 것들도 허다하다. 어설프게 이상한 색상으로 칠보작업이 되어 있는 것 보다는 은으로만 간직하겠다는 취향을 가진 애장가들도 있겠지만 이런 물건들은 대개 구입해다가 여러 가지 전처리 작업을 거쳐 칠보작업을 해 보는 것이 내 자습 방법이다. 내가 기획할 수 없는 것들, 내가 간직하고 싶은 본들을 수집하고 작업을 해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기에 ...이 작은 노리개 삼작이 내 손에 들어 왔을 때 손쉽게 완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주 작은 면들에 칠보유약을 올리는 일이 노솔치 않았다. 양면에 같은 문양으로 난초와 영지가 합성된 것이기에 더욱 손이 많이 갔지만 완성해 놓고 보니 아주 예쁘고 귀한 노리개가 되었다. 하나씩 완성한 것은 목걸이로 걸어보니 완벽한 조형감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은 칠보 노리개 - 자수 서각노리개로부터의 재현, 노용숙 ; 살구 빛의 가지방석매듭과 주체(主體)로 놓여 진 연두 빛의 자수(刺繡)부분이 은은한 조화를 이루는 노리개로 서각(犀角)은 튼튼하다는 뜻이며,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은종이를 삼각형으로 접고 자른 것을 앞뒤로 붙이고 그 사이에 실을 놓고 풀로 붙인 실 술을 길게 달았다. 잔물결과 잎사귀를 수놓은 서각 2개를 교차하여 배치한 노리개이다. 다양한 색사로 수놓은 물결문과 잎사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매듭은 도래매듭과 가지방석 매듭을 맺고 그 위에 은사로 둘레를 장식하였으며, 술은 다홍색, 분홍색, 황금색, 주황색, 남색 등으로 9등분하여 길게 늘였던 아름다운 소재를 칠보로 재현하기 위하여 주체를 은으로 재현하고 칠보 작업하였다.
서각의 멋진 형태와 가장 장 어울릴 것으로 짐작 되는 노리개를 노랑, 파랑, 분홍 세 가지 색으로 먼저 맞추어 놓고 칠보의 색상을 맞추어 보았다. 형태 자체의 특징으로 인하여 다채로운 배색 보다는 유사색상의 배치로 마무리 하여 구워내 보니 전체적인 맵시가 그만 하였다.
향갑노리개, 숙대박물관소장
* 은 파란 향갑노리개의 재현 , 노용숙
* 은파란 향갑 노리개 ; 현대 여성들은 액체로 된 향수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여러 가지 향 가루를 섞어 문양 틀에 넣고 찍어내거나 형태를 빚어 구슬모양으로 만들어 금, 은빛과 색깔을 올리거나 색실로 망을 떠서 구슬을 감싸 줄줄이 꿰어 줄향으로 꾸미기도 하였다. 원형, 4각, 8각 등으로 빚어 향주머니에 담거나 향갑에 담아 장신구로 몸에 지녔기 때문에 은은한 방향이 몸을 감싸는 듯 했다. 향집 노리개는 은파란 난초, 십장생 등 길상을 의미하는 내용을 은판에 민각 하거나 투각한 사각, 팔각, 혹은 원형 향갑이나 이러한 은제품에 파란을 올려 치장한 것, 백옥에 무늬를 투각한 것이나 비취에 당초 등이나 '아'자 문양을 새겨서 달고 다녔는데, 겉치레보다는 가족을 향한 여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은 투각된 향갑에는 안쪽에 홍 갑사를 곱게 바르고 향을 넣어두거나 홍 갑사로 향을 싸서 넣었다. 정교하게 투각 된 향갑의 문양 사이로 비치는 다홍빛과 파란의 색상이나 백옥, 비취빛의 조화는 섬세한 도안의 균형미와 더불어 기품 있는 멋을 돋보이게 한다.
줌치(주머니, 주머니는 좋은 일을 가져오거나 복을 담는 그릇으로 여겼기 때문에 기념물이나 선물용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 나비, 사각, 팔각, 원형들의 형상위에 당초무늬나 기하학적 무늬 등을 치밀하게 선각한 은 세공품이나 금을 올린 향갑의 공통된 특징은 투각으로 된 향갑의 아래 부분이 개폐식으로 되었거나 앞쪽과 뒤쪽을 따로 떼어 만들어 그 속에 향을 넣고 빼기 쉽게 되어 있는 점이다. 꼬은 은선을 오륜기(五輪旗)처럼 원과 원을 더불어 이어 땜하면서 면이 되도록 하여 연속윤보문(連續輪寶文)을 빈틈없이 배열, 갑(匣, 작은 상자)을 만들었다. 그 위에 붙이는 장식의 표현을 위하여 은판을 가위질하여 만든 난초, 불로초 등의 문양에 가장자리에 꼬은 은선을 붙인 문양을 땜하고 완성되면 그 문양위에 파란을 올려 구워낸 것이다. 투조 향갑 속에 넣어 둔 향은 뒤뜰이나 동산을 거닐 때 그 속의 사향(麝香)내로 인하여 뱀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갈아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시면 급한 체증이나 곽란(癨亂)에도 효험이 있었다 하니 휴대용 구급약품 구실도 한 듯하다. 그리고 호박, 금패로 된 패물을 갈아 응급용 지혈제로 대용했다는 구전을 미루어 보면 이러한 패물을 몸에 지니는 것은 생활에 임하는 한 마음의 마련이며 부덕의 자세였으므로 패물을 지니는 아름다움은 그대로 여인네들 마음의 아름다움과 통하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 은파란 니사 도금삼작노리개 : 주체(主體)가 되는 세 개의 원형장식은 도금된 가는 은사(銀絲)로 지름 4mm의 여의문(如意紋)이 반복적으로 겹쳐진 형태이다. 도금된 은사(銀絲)로 각각 박쥐문, 나비문, 화문(花紋), 죽절문(竹節紋)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사이로 내부에 향(香)을 싸 넣었던 붉은색 천이 비친다. 이 3개의 원형장식은 꽃잎 모양의 띠돈에 묶여있다. 매듭술로는 노랑, 빨강, 청색의 국화매듭에 황금색과 오색의 딸기술을 달려 있는 아름다움을 잘 살리기 위하여 형태의 멋이 더욱 드러나도록 파란유약 올리기 작업을 하였다.
* 은파란 각향노리개 ; 단작으로 주로 여름철에 반가의 여인들이 많이 패용했던 각향노리개이다. 향(香)을 넣어 패용하기 때문에 향갑노리개로도 불리며 노리개에 향(香)대신 약을 넣어두어 응급 시에는 구급약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사각 향갑은 전체적으로 투각되도록 만들되 균형미를 갖추었으며 앞면이나 측면이 은사(銀絲)를 꼬아 만들었으므로 향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게 되어 있고 도금된 안쪽으로 붉은색 천이 보여 색채의 대비가 아름답다. 향갑의 표면은 지름이 4mm 인 여의문(如意紋)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겹쳐진 기하학적인 패턴을 이루고 있으며, 가장자리는 나선형의 패턴을 둘렀다. 향갑에는 구멍으로 매듭실이 통과할 수 있도록 장치된 것과 아래 위로 작은 고리를 달아주어 매듭을 위아래로 따로 맺고 향갑 속으로는 다회(多繪) 끝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있으며 아래에 여닫을 수 있는 장치를 하였다, 도래, 생쪽, 장고매듭을 맺고 낙지발술을 달아 장식했다.
* 은파란 도금 향집 박쥐 노리개삼작의 재현 노용숙 ;
은파란 도금 향집 줌치 노리개삼작의 재현, 노용숙
* 도금은파란 니사 향갑(香匣) 단작노리개 , 은파란 니사(泥絲)편복(蝙蝠) 노리개 ; ‘ 도금 한 니사를 정교하게 꼬아 원형의 망(網) 모양을 엮어 향갑을 만들고 , 향갑의 중심 표면을 만초화문(蔓草花紋)에 파란을 입혀 장식 했다. 왕비가 사용했던 노리개로 구복(求福), 장수(長壽)의 염원을 상징한다. 뚜껑은 보상화문에 파란을 올리고, 양쪽으로는 진주를 감입하였으며, 뚜껑 윗부분에는 큰 고리를 달아 매듭으로 연결하였다. 편복(蝙蝠)의 형태와 비슷한 두 개의 향갑이 나란히 이어져 달려 있어서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나타내 주고 있다’ 고 써 놓으신 향갑노리개에 관한 ( 전체길이 425 향갑길이 53 너비 62 뚜껑길이 20 너비 35 조선조 후기 궁중복식, 영왕조 중심 ) 저자 김영숙 선생님의 설명서를 접하였으나 작업 순서상 금속선 ( 은선 작업 ) 을 꼬아 형태를 만들고 파란을 올려 구워 낸 후 도금한 것으로 생각 된다. 장인들이 이렇게 장신구를 만들 때 ‘ 철사 ’ 작업한다고
하는데 한문이 잘못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진흙 ‘니(泥)’ 보다는 실패 ‘니(鑈)’ 라고 하던 단어가 와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향갑 노리개의 속에는 향을 넣어 은은한 향 내음을 느끼게 했지만 위급할 때에는 약재로 사용할 수도 있는 재료들로 자연목향, 사향(麝香), 부용향(芙蓉香), 옥추단(玉樞丹) 등이 있었다. 이 노리개는 영 왕 ( 英 王 )의 방자 비 ( 方 子 妃 )가 고배 ( 告 拜 ) 의 의식(儀式)에서 착용하였던 유물들 가운데 하나로 물총새 깃털을 붙여 연출한 것으로 이 새의 깃털 색이 후에 파란으로 불리는 칠보 색감과 거의 같다. 이 색을 비취 모( 翡翠 毛 ) 라고도 불렀으며 이전에는 비취발향 노리개라고 하여 향을 원통형으로 빚은 위에 비취빛깔의 물총새 깃털을 붙이던 것도 있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새의 깃털을 잘라 붙이던 기법은 사라지고 유약을 올려 구워내는 기법만 존재한다. 본인이 향갑을 재현할 때에는 물총새 깃털의 색감과 유사한 칠보유약을 올려 구워 내고 아래 부분에 따로 막을 수 있는 조각을 만들어 놓은 후 , 향 조각을 붉은 색 헝겊으로 싸서 넣고 준비 해 놓았던 금속 마개를 대고 금속선으로 묶어 마무리 하는 것으로 재현해 보았다. 니사 선의 구성이 연결 되도록 마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마감이 잘 되었다.
착색으로 마무리한 작업
향을 넣기 위해 열어 놓은
향갑 ( 왼편은 금도금이 오래되어 가라앉은 분위기, 오른편은 칠보를 올려 완성한 향갑)
* 은파란 범발톱노리개 : 실제로 호랑이 발톱 두 개를 은으로 감싸고 양쪽으로 마주대어 만든 노리개이다. 호랑이는 토속 신앙적 측면에서 산군(山君) 으로 설정되어 사람에게 다가오는 잡신들을 물리쳐 주고 나쁜 짐승으로부터 보호해 주며 때로는 못된 짓을 하는 인간을 호되게 벌주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 발톱은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어서 그 일부인 발톱도 큰 위력 , 벽사(辟邪)와 제승(制勝)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애용 되던 것이다. 이것으로 범을 부린다는 속신도 있었다. 호톱을 구하기 어려워진 이후로는 은으로 호톱형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던 것을 재현하였다. 귀면(鬼面)범발톱 노리개의 양식은 쇠뿔로 범 발톱 형을 만들고 은으로 도깨비얼굴을 조각하여 물렸는데 조형미(造型美)도 우수하지만 악귀를 물리쳐 주는 범과 도깨비를 함께 두어서 벽사를 더욱 강화시킨 의장(意匠)이 뛰어나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품고 있던 이상(理想)을 구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나쁜 귀신에 의하여 저질러진다고 믿었던 것이므로 나쁜 귀신을 물리쳐 줄 벽사신(辟邪神)이 꼭 필요하였던 것이며 그것은 귀면으로 표현 되었다.
디아모레뮤지엄 소장 1,2 )
은칠보호톱목걸이
귀면문범발톱노리개,숙대박물관소장 숙대, 보나장신구박관 소장
노리개에 나타나는 귀면문은 범발톱노리개 한 종류의 가운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은으로 양각기법과 육각(肉刻)기법으로 만들고 부분적으로 파란을 올렸다. 주머니 끝에 차거나 노리개로 쓰이던 이 장식품의 윗부분에는 앞뒤로 한 쌍의 나비를 장식하였다. 아래로는 도래, 생쪽, 장고매듭을 맺고 낙지발술로 연결한 유물이 전해져 온다
* 은 파란 도끼, 방울, 호톱 노리개 삼작의 재현, 노용숙
* 은파란 도끼 ,호랑이발톱, 방울 노리개삼작 : BC 3~4세기경 한반도에 전해진 금속문화 , 철기문화와 청동기문화가 새로운 금속문화로 발전하면서 생활상이 크게 변화되어 농기구는 물론 철검(鐵劍), 철모(鐵鉾), 세형동검(細形銅劍), 동모(銅鉾) 같은 무기와 동탁(銅鐸)등의 마구(馬具), 의례용기, 장신구등이 현저하게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말의 재갈 끝에는 방울을 달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방울을 사람의 몸이나 허리에 장식용으로 찰 수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어진다. 은파란 호랑이발톱 방울 도끼 노리개삼작에 부착된 방울은 소리가 잘 나서 아주 뛰어난 기능성을 자랑하고 있다. 순은을 반구형으로 두 개 준비하여 땜하기 전에 지름1mm 내외의 쇠구슬을 두 세 개씩 넣고 마무리 한 것으로 파란유약을 올려 굽는 과정을 거쳐도 구슬은 방울소리를 제대로 내는 아주 흥미로운 방울이다. 모든 방울은 반원을 부풀려 속을 둥글게 만들어 비우고 그 속에 단단한 물건을 넣어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이다. 이 방울소리는 액을 쫓는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기구인 방울은 신고의 연결 또는 영험한 힘과 같은 주술적의미를 갖는다. 장신구에 있어서는 벽사(辟邪)와 다남(多男)을 상징한다.
어느 날 바싹 마른 오동나무 씨앗줄기를 주웠는데 마치 이 방울 같이 생기고 끝은 상큼하게 뾰족하지만 크기도 비슷하여 흔들어 보니 마른 씨앗 끼리 흔들리며 내는 소리도 기분이 좋게 들렸지만 무당이 굿을 하면서 흔들어대던 방울타래와 아주 분위기가 흡사하였다. 자연에서 자연으로 이어지는 만남이 우리 선조들의 창의력을 북돋우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왕실의 행사 때 주로 패용했던 삼작노리개 중 단작노리개로 큰머리에 용잠이나 칠보단장을 하고 이러한 삼작노리개를 달았다. 이 노리개는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두 개의 방울이 주체로 달려있다. 방울의 윗면은 대나무 잎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위로는 칠보가 입혀져 있다. 매듭에는 부분적으로 금색 실이 감겨있어 화려함을 더해주고. 국화매듭과 세벌감개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시 대 : 조선 문 양 : 식물 문, 물상 문 재 질 : 은, 파란, 금사, 견사
크 기 : 길이 34 cm ,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
* 은파란 도끼노리개 ; 왕의 예복이나 수렵복, 병풍, 휘장 등에 도끼무늬를 수놓아 왕을 상징하는 한편 통치자의 위엄을 나타내는 의장으로 쓰였었다. 민간에서는 부녀자들이 작은 도끼 여러 개를 끈으로 꿰거나 주머니에 넣어 허리에 차기도 하였고 첫날밤에는 이불 밑에 깔고 자면 수태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 노리개는 본능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려는 미적욕구에서 출발하지만 외형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가 부가될 때 조선시대 여인의 정서를 표현해온 존재가치를 갖는다. 이 노리개는 도끼형태의 패물이 달려있는 단작노리개로 도끼는 수명장수(壽命長壽)와 결단력 있는 사고를 뜻해서 남아(男兒)를 원하는 임산부들이 주로 착용하였던 것이다. 은으로 만든 도끼형태에는 식물문이 음각되어 있고 그 위에 적, 황, 청색의 파란으로 치레되어져 있으며 위아래로 매듭실이 관통하여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황금색의 매듭술이 전체적으로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 노리개의 주체와 매듭, 술 등의 재질은 금사, 견사 등이 사용되었으며 전체 길이 34 cm이다 . 장식물과 착용한 여인의 인품이 은근히 느껴지는 노리개이다.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도끼노리개,
덕성여대박물관 소장품은 연봉에 은으로 된 선을 연결시켜 매듭에 연결될 수 있게 제작된
유물이다
* 은파란 물고기형 노리개장식 : 패물로 추정되는 은으로 된 물고기 형상의 노리개이다. 물고기는 다산(多産)과 번식, 부귀의 상징으로 풍요로움과 생명의 원천을 뜻하여 자손을 번창 하게 한다고 믿었다. 이 노리개 장식은 두 마리의 물고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으로 기운찬 잉어처럼 도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등용(登用)과 입신출세(立身出世)의 소망이 담겨있다.
* 은파란 나비, 편복(蝙蝠)문 노리개삼작 의 재현, 노용숙 ;
마치 나비문 처럼 둥그런 양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도안적인 형태이고 어떠한 것들은 나비와 박쥐가 합쳐진 문양으로 보여 지는 것도 많아서 박쥐문 이라거나 나비문 이라고만 단적으로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굳이 이름을 불러주어야 할 상황 일 때는 나비 박쥐문이라고 해야 걸맞을 정도로 두 문양의 좋은 점이 합쳐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은파란 나비 노리개삼작 ; 방아다리, 장도, 투호, 박쥐, 나비, 호리병, 주머니 등의 형상을 세공 하거나 부귀다남, 불로장생 등의 글자를 소박한 솜씨로 투각하거나 민각 한 은 세공품이 달린 노리개는 순박하여 친근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세련된 그 아름다움을 필설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많고 그 멋이 고귀하게 느껴지기 까지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궁중과 상류사회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에게 애용되던 노리개는 친가와 시부모에게서 예물로 받고 혼례 때 사용하고는 백지에 싸고 또 비단보에 싸서 보물 상자 속에 간직하였다가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으므로 자연 대를 잇게 되었고 가보로 여겨졌다.
노리개는 외형상 섬세하고 호화로우며 다채롭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정신적인 배경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 불로장생(不老長生), 백사여의(百事如意) 등 그 시대의 행복관을 바탕으로 한 염원이 내포되어 있다.
이렇듯 깊은 정신세계가 조형미와 진귀성을 더욱 윤색하여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리는 고유한 특색을 갖춘 장신구로 대를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나비는 기쁨. 사랑. 영화. 부부 간의 화합 ( 금슬 좋은 부부 ) 등의 뜻을 지니며 또 부귀를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윤회의 상징으로 일반사람들은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으로 노리개에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장식문양으로도 애용되었으며 매듭 장식 중에서 나비매듭은 길리와 행운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호접(蝴蝶)문의 蝶자음(字音) 이 장(長)과 통하여 수명(壽命)장수(長壽)를 의미하여 고대로부터 문양으로 쓰였다. 이와 같은 사상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기도 하였을 터이며 아름다운 자태로 인하여서인지 나비문은 여러 가지 생활 공예품에서 종종 볼 수 있다.
* 은파란 바늘쌈 이단 노리개의 재현 , 노용숙 ; 노리개용 바늘쌈은 금속( 은 )으로 만든 것도 있었지만 비단에 수를 놓아 만들기도 하였다. 아랫부분 속에는 머리털을 가득히 넣고 윗부분을 닫을 수 있도록 아구리의 크기가 조절되어 만들어 졌다. 윗부분을 아래보다 약간 작게 만들어 끼우며 뚜껑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제작 하였다. 머리카락을 담은 바늘쌈에 바늘을 꽂고 뚜껑의 역할을 하는 위의 것을 닫아 두면 녹이 슬지 않기 때문이었다. 바늘쌈 두 개를 아래 위 두 개가 속을 관통하는 매듭 끈으로 연결되도록 조립하였다가 바늘이 필요할 때는 양 손에 잡고 잡아당기면 바늘을 꺼내게 되고 다 쓰고 나면 다시 바늘을 꽂고 닫는다. 노리개삼아 패용하게 된 것은 부녀자들이 항시 사용하는 바늘을 잘 보관하고, 또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하고 있는 노리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순은으로 만들고 영지, 대나무 잎, 나비, 매화 , 물고기 등의 형태를 은 유선으로 잡아주고 땜한 후 노랑, 빨강, 파랑의 파란을 올려 구워 낸 것으로 외곽형태도 복주머니 형상으로 친숙하며, 문양도 평범하고 간결한 조형이지만 외곽선과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맵씨를 갖춘 다양한 장식으로 유물 수량이 많은 편이다. 바늘집 밑으로는 오색 술이 달려있다.
* 은파란 가지 삼작 노리개 ; (가지는 한문으로 가자(柯子)라는 글자가 사용된 것이 의문이나 )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용식물로 여름 내내 계속해서 따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열리고 열매의 모양이나 꽃도 아름다워 신사임당의 초충도에서도 볼 수 있다 ( 중국산 가지의 형태는 한국산 가지에 비해 훨씬 짧고 통통한 모양으로 비단으로 만든 돈주머니, 가자대 (柯子袋)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 . 궁의 내인들이나 규방에서 많이 애용하였으며 좋은 일이 생기도록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지 전체에 파란을 올린 것이나 부분적으로 올린 것도 볼 수 있다. 왕실의 행사 때 주로 패용했던 삼작노리개 중 단작노리개로 큰머리에 용잠이나 칠보단장을 하고 이러한 삼작노리개를 달았다. 고추형태의 은 위에 적. 청. 황의 파란으로 치레되어 있다. 이것은 각각의 둥근 고리로 연결되어 매듭술과 연결되어 있으며 국화매듭과 세벌감개매듭을 엮은 다음 붉은 쌍봉술을 달아 연결하였다. 국화매듭은 양쪽 윗부분이 금사로 감겨있어서 화려함을 더해준다. 시 대 : 조선 문 양 : 식물문. 물상문 재 질 : 은, 파란, 금사, 견사
크 기 : 길이 34 cm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품
* 은파란 가지 삼작 노리개 의 재현, 노용숙
< 유리 가지노리개>, ㅍ17세기, 성산이씨 묘 출토(경기도박물관)
* 은칠보 길상(吉祥) 벽사(辟邪) 오작노리개의 재현, 노용숙 ; 노리개의 주체(主體)가 용의 머리 측면부분을 환조하여 뱀과 같이 비늘이 온몸에 돋은 용의 전체적인 형상은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 두 개의 고리가 달려있어 노리개의 띠돈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장치하였고, 아래로는 두 개의 꽃송이가 달려있어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귀면을 돋을새김 한 것을 호랑이 발톱 ( 호톱형 ) 위에 땜한 것, 또 하나의 호톱형 , 침통형 육각면재 위에 불로초문을 양각하고 칠보 한 것, 큰 나비형 등 많이 무겁기도 하고 형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오작노리개를 재현하였다
용월(龍鉞, 용과 도끼의 모양이 합쳐짐) , 귀면(鬼面)호조(虎爪, 호랑이 발톱과 도깨비 얼굴이 합쳐짐) , 불로초문 침통, 큰 나비 , 당초문이 가득 장식된 호톱 등이 산호물린 멋진 고리에
걸려 매듭에 달린 다섯 점 노리개다.
위의 노리개에 달린 오작 장식을 좀 더 품위를 달리 하는 디자인으로 후세에 남겨 두고자 한지 위에 돌려 가며 놓고 가운데는 둥근 고리형 은칠보 부품을 조화시켜 보았다 노 용 숙 재현
* 은칠보 방아다리 노리개의 재현 , 노용숙 ;
은으로 된 단작노리개로 술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귀다남(富貴多男)의 길상문자가 각각 원형에 투각되어 작은 고리로 연결되어있고, 그 옆에는 튼튼한 다리, 곧 ‘건강’을 뜻하는 칠보방아다리장식이 패물로 달려있다. 조선시대 농경사회에서는 방아를 잘 찧는 건강한 여성인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정서가 노리개에 반영되어 방아다리가 주체(主體)패물로 달려있는 노리개가 많다. 이 노리개의 칠보방아다리에는 매화문양이 상단에 하나 하단부에 세 개, 그 아래로 두 개가 더 있어서 산호가 물려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모두 유실된 것도 있다.
꽃 심에 원석을 끼우기 전 황화칼륨 착색 후 광쇠질 등 손질 한 상태
노 용 숙 재현
방아다리 노리개감 , 노 용 숙 재현
* 은 칠보 방아다리 장도 수복(壽福)문 노리개삼작의 재현, 노용숙 : 부녀자들은 장도를 주머니 속 아니면 노리개로 찼다. 노리개에 찬 것을 패도(佩刀)라 하였으며 주머니 속에 지니는 것을 낭도(囊刀)라고 하였으니 여기서는 은 칠보 방아다리 패도 수복(壽福)문 노리개삼작 이라 해야 옳겠다. 모든 명칭은 입에서 부르기에도 쉬운 것을 택하게 되니 ‘장도’라는 큰 의미의 단어로 쓰였음직하다. 이 본을 대했을 때 을자형패도를 열어 보니 은으로 만든 칼날이어서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여겨져 노리개용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수복이라는 글자 자체를 얇은 판으로 투조한 것과 벼이삭이 익을 때쯤 논밭으로 날아다니면서 앉았다가 튀어 일어나는 튼튼한 다리의 소유자 방아깨비의 다리처럼 만든 귀이개 다리는 노리개 걸이로 만든 매화 꽃잎과 봉우리 장식 틀 속에서 흔들릴 수 있게 조립하는 것이어서 장식 틀 없이 고리로만 연결되어 매듭에 장착한 패도와 함께 착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다소 큰 노리개 감이고 삼작이지만 자연스레 흔들릴 수 있어서 균형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 용 숙 재현
* 은파란 장도(粧刀)노리개 ; 장도를 남자들은 옷고름에도 찼지만 주머니 끈에 달아 차기도 하였는데 부녀자들은 주머니 속에 넣어 간직하거나 노리개에 달아 장식하였다. 노리개 중에는 실제 크기의 은장도를 달아 놓거나 작게 축소해 만든 은장도를 달아 놓은 것이 있다. 은장도의 한 쪽에 작은 젓가락이 달려 있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은이 가진 특성, 즉 독(毒이 든 음식을 집으면 )과 만나면 까맣게 변하는 특성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저 화려한 보석을 달아 만든 장신구만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실용적인 멋을 가미한 지혜가 돋보이는 것이다.
또한 장도가 은방울과 함께 매듭에 걸려 있는 것도 있고 호톱과 함께 걸려 있는 것도 있어서 상징적인 호신의 의미로 차고 다녔을 것이다.
장도의 몸체 위에 부분적으로 물방울처럼 생긴 원형의 장식이 파란으로 올려 진 형태로 이채롭다. 장도에는 매듭술과 연결될 수 있도록 작은 고리가 달려 있으며 붉은 자주색의 광다회 매듭술로 도래매듭을 맺고 색실로 부분적으로 감아 장식하였다. 용도 : 패식 재 질 : 은 , 파란 크 기 : 13 cm ,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어린이 노리개 두점 (위, 표주박과 북장식 / 아래, 도끼 고두쇠 자물쇠 형 장식Norigae (Girl's Pendants)
1900년대 길이 : 15㎝
여자 어린이의 저고리나 치마허리에 차는 장신구이다. 은으로 열쇠, 고두쇠, 도끼 장식을 달고, 오색 봉술을 드렸다. 장식물들은 벽사와 부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국대석주선박물관소장
* 은칠보 표주박 노리개 삼작의 재현, 노용숙 / 오른쪽 매듭장 김은영 작 오방색주머니
* 은칠보 표주박 노리개삼작 : 표주박이나 표주박을 둘로 가른 바가지 잔에 청실, 홍실, 수실을 단 노리개는 오늘날에 되살리고 싶은 사랑의 존재 방식으로 괄목할 만하다. 시집갈 나이 또래의 딸이 있으면 어머니는 담장 아래 정갈한 땅을 골라 표주박을 심는다. 이 표주박으로 술잔을 만들어 시집가는 날 신랑 신부가 한 잔 술에 더불어 입을 대고 마시는 합근례를 치른다. 바로 혼례의 하이라이트요, 그로써 두 사람의 사랑이 맺어졌다는 사랑의 상진물이 그 표주박 잔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 표주박 잔에 신랑 신부를 상징하는 청 홍 실을 달아 신방 천장에 매어 둠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을 감시케 했던 것이다. 신방에서 사랑을 감시하던 표주박을 노리개로 축소하여 몸에 지니게 한 것이 표주박잔 노리개다. 자칫 마음속에 싹틀 수 있는 사랑의 변질도 사전에 막았던 한국의 노리개는 정신적 조형이 아닐 수 없다.
형태의 상징으로 표주박은 장수 외 에도 사후(死後) 저승길에서 목이 마를 때 물을 떠먹는 것으로써 찼으며 3개를 같이 차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는데 현세(現世)와 내세관(來世觀)을 함께 조화시킨 것이다.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을 향할 때 바랑에 매였던 것 중에 제일 소중한 것도 물을 떠먹는 표주박잔이었을 것으로 보면 지아비의 등과를 염원하는 아낙의 마음도 담아 노리개로 차고 기다렸을 성 싶기도 한다.
* 은 칠보 안경집 치렛감의 재현 , 노용숙 ; 어린이 돌띠 장식 중에 자그마한 안경집이 달려 있다. 예전에는 안경을 사용할 수 있는 부류는 꽤 식자층이고 부유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안경집 모양에 장생 문을 붙인 노리개 감이 있었다. 삼각형이 이루어져 연속되는 니사 투조 작업은 꽤 좋은 분위기이나 장생문의 표현은 조금 조잡하여 망설이다가 투태칠보의 멋을 구현해 보고자 니사 투조 면에도 유약을 올리니 마음에 들었다. 은 선을 잘 닦고 시작한 것이라 나름대로 분위기를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가슴에 달기에는 조금 되남스런 분위기라서 치마에 드림으로 장식하면 좋을 듯하여 드리개라 명명해 보았다. 다시 하나 더 할 때는 아래에 해태 한 쌍을 더 달아 주었더니 균형이 맞고 좋아 보였다
해치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을 안다는 상상의 동물로서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조선시대 때 관리들의 부정과 비리를 감찰하여 탄핵하는 사헌부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그 이유를 보면 조선시대의 관복에 붙였던 흉배를 보면 문관은 학이, 무관은 호랑이가 수놓아졌는데 이와 달리 사헌부 관원들의 흉배에는 해치를 수놓았으며, 이들은 ‘치관’이라 하여 해치가 장식된 모자를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해치는 궁궐에 드나오는 관원들에게 강직함과 의로움을 요구하려는 상징물로서, 궁궐에 거처하는 왕이 성군임을 칭송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실제로 조정 신하들이 광화문을 드나들 때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가다듬는 관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해치와 관련해 전하는 풍수지리에 의하면 관악산을 화산이라고 하였는데, 목조건물들이 많았던 그 당시에는 특히 화재가 무서운 재앙일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화산인 관악산을 누르고 도성과 궁궐을 위협하는 화마를 제압하기 위해 해치를 세웠다는 것이다. 즉 화마가 불을 지르기 위해 달려들면 해치의 목에 달려 있는 방울이 저절로 울려서 알려 주었다고 하니 영특한 동물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출처] 해태, 해치의 여러 상징과 그 의미 / 작성자 한샘가온
* 은 칠보 매미 형 장신구의 재현 , 노용숙 ; 사내아이에게도 노리개를 채우는데, 문운을 비는 뜻에서 붓이나 벼루가 많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박쥐나 장수를 비는 의미의 거북이 모양이 흔했다. 과거에 급제하면 스승이나 집안 어른들은 노리개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때 선물하는 노리개는 매미나 소 모양의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는 청백리의 상징이요, 벼슬아치들이 쓰는 매미 날개의 익선관(翼蟬冠)도 그 때문이며, 매미 노리개를 채워 주는 저의도 그것이다. 소는 소걸음이란 말도 있듯이 매사를 서둘지 말고 신중하게 처리하며 벼슬길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이 깔린 염원의 노리개인 것이다. 장수를 의미하는 매미의 변태과정은 불사(不死)와 재생의 관념을 표상하여 유교에서는 오덕 (五德, 文, 淸, 廉, 儉, 信)을 뜻하는 의미로 불교에서는 해탈, 도교에서는 ‘재생’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은 칠보 매미 투명유약 올려 구워낸 것 ( 왼쪽아래 )을 숫돌로 갈아 유약과 유선이 함께 갈려 무광 작업된 ( 오른쪽 위 ) 매미
* 은 칠보 봉황문 치렛감의 재현, 노용숙 : 옛 물건을 소장하는 지인의 소장품 중에 처음 대하는 봉황문이 있어서 여러 번 관찰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 이 은판에 내가 칠보를 해 보고 싶다’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허락해 주어 가져다가 유산에 여러 번 끓이고 솔질을 하여 깨끗하게 준비하고 칠보작업을 해 보았다. 아래위로 구멍이 두 개씩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옛 의복에 꿰매다는 장식 이었을 것 같기도 하였다. 파란치레의 분위기를 연출하였지만 그 이상은 역 부족 ,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옛 것에 작업해 본 경험을 잘 살려 나가면 앞으로 금속조각 된 장식물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은 칠보 봉황문 치렛감의 재현, 노용숙 :
* 은 칠보 만사 ~ 여의문 치렛감의 재현, 노용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