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6막51장 (4부)
설악산의 "백담사"
초입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사찰까지 가는 방법이 있고, 유유히 흐르는 백담계곡의 정겨운 물소리를 새소리를 들으며 걸어서 가는 방법이 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님은 갔읍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읍니다.
푸른 산빛을 깨지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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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이 퍼런 일제 강점기 조국의 애닮은 처지를 님으로 비유하며 쓴 시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승려였던 그는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시를 저서하고 발표하니 , 설악산의 백담계곡은 모든이들의 입에 오르 내리게 된다.
그리고 1988년11월.
전두환씨 부부는 5.18과 5공 비리를 불식 시키기위해 백담사로 향하였다.
부부는 768일.어연2년간 백담사 칩거생활을 하며 부처님을 섬기고 세속의 죄를 탈회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시각각 방송과 신문에 보도되여 그들의 행동에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였다.
그래서 백담사는 전국의 사찰중 유명세를 타게 되였다.
사실 총각시절 찾은 백담사는 초췌하였다.
허름한 기와에 명목만 유지하는 고요한 사찰이였다.
그런데 전두환씨 부부의 칩거후 찾은 백담사는 대대적인 보수로 명실상부한 사찰의 형태를 갖추게 되였다.
무슨 일이 생겼길래 깊고도 깊은 곳에 위치한 백담사가 불국사 못지 않은 명성과 규모를 갖추게 되였는지 알수 없으나.
설악산의 암자규모 였던 백담사는 "한용운"과 "전두환"씨의 기거로 전국의 사찰중 순환버스를 타고가야하는 호사한 사찰로 변신한 것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사찰은 부처님의 불상을 모셔놓고 불도를 닦고 교법을 펴는 신성한 곳이다.
가끔 서울 종로의 조계사가 반인사들이나 도피하는 범벅자들의 은신처로 악용된적이 있다.
제5공화국 반독재 타도를 외치던 대학생들이 명동성당에 숨어 공권력에 대항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의 통치자였던 전두환부부가 백담사로 도피하다 시피한 칩거는 사상 유래가 없는 것이다.
슆게 이야기하여 대학생들이 명동성당에 은신하듯그들은 자진하여 백담사로 은둔생활을 한것이다.
설악산의 알수없는 힘이 느껴진다.
설악산의 포옹력이 그들을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 부부는 부처님을 섬기기위해 간 불교 신앙자 였을까?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를 일이다.
절대 미문의 인물을 두분이나 포옹한 백담사.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