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4] 강경렬 (姜慶烈) - 몸 태워 어둠을 밝히고 6. 기자와의 대결 – 여장군 별명 얻고 - 2
10 그러나 나의 적극적인 활동과 역사로 말미암아 은사와 함께 핍박이 몰아닥쳐 왔다.
11 기성교회 한 곳이 통일교회로 넘어오게 될 형편에 이르자 그들이 나쁜 소문을 조작하여 퍼뜨리기 시작했고, 그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가족으로부터 머리를 깎이고 두들겨 맞는 등 온갖 고난을 당했으며, 강변에서 철야기도회를 갖는 것을 보고 음란집단이라고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12 또 거기다가 주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는 서울로부터 불어온 허무맹랑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전국에서 활개치고 있던 때라 진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문기자들이 매일같이 교회에 드나들면서 허위 보도를 남발, 소문은 매스컴을 타고 제멋대로 세상에 떠돌고 있었다. 13 “나쁜 녀석들, 제멋대로군. 좋은 일만 하고 간다 해도 짧은 세상인데 얼토당토않은 소문까지 퍼뜨리다니......” 14 나의 혈관에는 피가 끓어올랐다. 그냥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의 불같은 성격은 결국 결판을 내고 말았다.
15 더군다나 예배 볼 즈음에는 성전에 돌이 날아오는 등 온갖 핍박을 당하고 있던 터라 교회로 들이닥친 수 명의 신문기자들과 정면 대결하여 서로 치고받게 된 것이다.
16 발로 차이고 얻어맞는 수모를 당했지만 끝내는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고 말았다. 17 이렇게 고난이 있었지만 수고의 대가로 교회를 세워 후임자 김성일(金成一) 씨에게 넘겨주고 1년 만에 상경하게 됐다.
18 한 교회에서 15명이 넘어오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정선호, 박성훈, 이옥선, 박성희씨 등이 오늘도 건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