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은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하다
나는 냉소와 편견이야말로 우리가 대인 관계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가벼운 태도라고 생각한다.
냉소와 편견은 타인을 구체적으로 알아가려는 노력이 부족할 때 마음속에 슬그머니 똬리를 튼다.
그렇게 두둑하게 쌓인 편견은 세상에서 사장 높고 견고한 담장이 되어, 편견의 주인이 외부를 내다볼 수 없게 만든다.
이 문제에서는 나도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직장인으로 살던 시절의 기억이다. 평소 입을 함부로 놀리고 다른 동료들과 자주 언성을 높이며 충돌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와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그는 다른 후배들 사이에선 꽤 인기 있는 선배로 통했다. 구수한 입담의 소유자인 데다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살다 보면 내겐 최악인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겐 최선의 사람인 경우가 왕왕 있다. 대인 관계의 상대성이라고 해야 하나. 하긴 사람만큼 다면성을 지닌 존재도 드물다. 바라보는 시선과 기분과 입장에 따라 같은 사람도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편견에 물들지 않기 위해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은 ‘판단 중지’를 뜻하는 ‘에포케epoche’에 입각해 사유했다.
이는 본래 ‘멈추다’ ‘있는 그대로 두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인데, 당시 철학자들 사이에선 판단 대상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면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사람과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수시로 “에포케!”를 외쳐야 하는 건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 중에 완벽하게 나쁜 사람 혹은 완벽하게 착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모른긴 몰라도, 착함과 나쁨의 비율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그런대로 우린 “척 보면 알지!”라고 단언하면서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한다. 인간이 지닌 복잡성을 무시한 채,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만 상대를 바라보고 함부로 됨됨이를 평가하는 우를 범한다.
때론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이기주, 『마음의 주인』, 말글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