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44: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
고대의 전쟁
시편 144편 현대 독자는 본 시편의 시작 문구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전쟁은 시편의 두드러진 주제이다. 최초의 전쟁들은 나무와 돌과 같은 천연 무기로 진행되었다. 등자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데다 기수가 낙마하기도 쉬웠기 때문에 큰 전투에서는 말이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병거(전차)는 후기 청동기 시대 전까지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이집트의 병거는 두 명, 즉 기수와 사수(레반트[시리아]의 병거 역시 방패지기가 탑승하였음)가 타게 돼있었다. 밀집한 전차부대는 충격을 주는 효과가 좋았고 빠른 속도로 적의 사기를 꺾고 흩어버리는 데 사용되었다. 전차는 이집트 신 왕국 시대에 유명해졌다.
철기시대 초기에 군사 기술의 혁명이 일어났다. 항오를 유지하도록 훈련된 밀집대형의 중장보병대가 전쟁터에 등장했다. 그들은 버티고 서서 전차에 탄 자들을 패주시켰기 때문에 사령관 전용의 일류급 차를 제외하고는 전차가 낡아서 못쓰게 되었다.
전투는 보통 짧았는데, 어느 한 쪽의 체력이 일대일 전투를 버텨낼 수 있는 한 계속되었다. 종종 한 편이 대오를 깨고 도망을 쳤다. 사령관의 지휘력이 미흡한데다 고함치는 목소리나 신호만 믿고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허둥대기 일쑤였다.
거주하던 구릉지대를 수호할 때 이스라엘 민족은 주로 보병에 의존하였다. 가볍게 무장한 보병(경보병)들은 빈약한 갑옷을 입거나 아예 입지 않았고 보통 돌이나 화살 같은 발사용 무기를 사용하였다(참조, 삿 20:15-16; 대하 14:8). 그들은 속도에 맞춰 느슨한 대형으로 이동했다.
중장보병은 갑옷을 갖춰 입고 무거운 칼이나 긴 창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창살 벽을 이루도록 창을 낮게 들고 거대한 밀집 대형으로 움직였으며, 이는 사실상 고대식 탱크라 볼 수 있었다. 방진(phalanx)을 이뤄 행진하는 그리스의 중보병(Greekhoplite)은 전투하는 중무장 보병의 고전적 일례이다. 일반적으로 중보병대가 경보병대를 패퇴시켰지만 전쟁터에서 중보병 한 명이 경보병 한명과 맞붙었을 때에는 경보병이 기동력과 원거리 공격력에서 우월했기 때문에 중보병이 불리한 입장이었다.
기병대와 함께 중보병과 경보병을 통합한 거대한 군대가 결성되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한니발은 중보병을 군대의 중심으로 하고 적의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기병대를 이용할 줄 알았던 대가들이었다. 로마군대는 긴 창보다는 단검을 선호했다. 이 군대는 중보병의 중압감과 돌파력을 갖춘데다 기동력까지 뛰어났다.
벌판에서 대격전을 벌이는 것 외에, 때때로 군대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도성들은 흔히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한 도성이 얼마나 버텨내는가는 그 성에 저장식량이 얼마나 있으며 지하수를 직접 이용할 수 있었는가 여부에 달려 있었다. BC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의 아테네와 같이 포위된 도성에 전염병이 퍼지는 경우도 있었다. 포위부대는 경사로를 축조하고 포위 공격 탑(siege tower)을 사용하여 성벽을 공격함으로써 도성을 함락시키는 수가 많았다.
고대의 군대는 위기시에 소집된 시민군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시민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지만 훈련과 무장이 부족했고 논밭을 돌보기 위해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도 있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에서는 일반 백성으로 이뤄진 군대가 복역했다.
고대 사회에서는 장기 복무 직업군인들을 군대의 핵심에 두려 했다. 왕들 역시 용병들을 고용하였다. 스파르타인들은 징병 문제에서 기발한 해결책을 고안해 냈다. 모든 남자들은 군대에서 전일제 근무를 해야 했고 성인으로서의 생애 대부분을 병영에서 보냈다(농사는 헬롯이라 불리는 노예들이 지었다).
고대 도시국가들은 종종 1일 '전쟁'을 일으켜 서로 싸웠다. 사상자도 적었으며 자기 재산권을 주장하는 것 이상의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여타의 전쟁들은 참혹스러웠다. 27년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 제국을 파괴시켰으며 그리스 사회를 초토화시켰다. 승리한 군대들은 보통 도성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생존자들은 노예로 삼았으며, 주도면밀한 집단학살로 민족과 문화를 철저히 파멸시켰다.
무장 충돌은 고대 시대의 민족들에게는 실로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이러한 현실적 배경 때문에 다윗은 전쟁을 위해 자기의 손을 훈련시키신 하나님께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국진 편, 『스페셜 성경: 구약』, p.907.
첫댓글 전쟁
Ⅰ. 구약구약 전체를 통하여, 전쟁은 이스라엘역사에 있어 불가피한 사실이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자연 자원에 있어서 풍부하지 못했지만,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은 서쪽으로 지중해, 동쪽으로 사막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제국 사이에 전쟁이 잦았다. 그 결과 애굽, 앗수르, 바빌로니아 사이의 전쟁에 있어서, 팔레스타인의 작은 땅은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다. 또한 신학적인 이유가 있다. 즉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자주 인간을 도구로 한 전쟁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고대 근동 전체를 통해 모든 전쟁은 영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구약 성경에서 전쟁은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인정한 사람들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셨다.
여호와께서는 '전사'(戰士, 출 15:3;참조. 시24: 8;사42:13)로 불리우며, 자주'만군의 여호와'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만군'은 자연적 힘과 군대로 묘사되는 초자연적인 존재 뿐만 아니라(참조. 삿 5 : 20 ;왕상 22 : 19 ;계 12 : 7), 인간적인 군대를 가리킨다. 특히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으로(삼상 17:45;참조. 47절), 그는 그의 병사들의 수와 무관하게 전쟁에서 승리하셨다(14: 6).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다른 국가들의 세력을 이용하여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도 하셨다(사 10:5-6;렘 25:9).
여호와의 도구로서 이스라엘은 그를 모독하거나 그의 뜻을 좌절시키고자 하는 자들에 대해 그의 심판이 일어나게 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즉, 이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어 진 가나안 땅을(창13: 15) 정복했고 범죄한 가나안 토속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 하셨다( 15:16 ;신 25:17-19 ;참조. 삼상 15장).
더구나 어떤 패배한 가나안 족속과 그들의 재산을 철저하게 파멸시키는 것을 '여호와께 바치는' 것으로 보는 것은(수 6:17-21) 이방 사람들의 우상적 영향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주권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신 20 : 16-18).
모세의 율법은 이 '성전'(holy war)에 대하여 특별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성전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모든 대적들에 대해서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이다(1-4절).
따라서 전쟁에 있어서 병사들은 마음의 혼란 없이 확신을 갖고 전심을 다해 싸울 수 있었다(5-9절 ;24:5).
성전에 있어서 '여호와께 묻는 것'은 중요한 전략 방법이었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이 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삼하 5 : 19-23).
이방국의 침공에 대한 이스라엘의 방어 전쟁은 곧 성전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에 무력으로 침략하는 적군은 곧 하나님의 적으로 그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였다.
하지만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하여 침략자들을 이끌어 들였을 경우는 예외로 취급되는데, 사사기에는 이러한 양면성이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군대 지휘자들은 직무 수행에 있어서 자신의 이름이나 재능으로 써가 아니라, '여호와의 신'의 은총으로써 해야만 했다(삿 6 : 34;11: 29 등).
따라서 여호와의 신이 떠나면 그의 지휘권한도 떠나버렸다(삿 16 : 20 ;삼상 16:14).
병사들은 홀로 싸운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싸웠다(신 20 : 4).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성전은 '여호와의 싸움'(삼상 18 : 17 ; 25 : 28)이었다.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대적들에게 임하여 혼란에 빠뜨렸으며, 이스라엘의 할 일은 그들을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전쟁의 승리는 여호와의 주권에 달렸다(수 10: 10 ;삿4 : 15).
선지자들은 전세상의 평화를 뒤에 오는 세상의 한 목표로 보았지만(사 11:6-9 ;렘 32: 36-41 ;겔 39 : 25-29 ;미 4: 3-4), 전쟁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성전이라고 인식할 경우 전쟁에서 왕을 돕기도 했다(왕상 20: 22-25;사37 : 5).
그들은, 성전에 있어서의 필수 조건은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절대 신앙이라고 보았으며, 이스라엘이 이 신앙을 버리고 다른 것을 신뢰할 경우에 그들을 비난하였다(사 30 : 1-5;31:1;렘 17:5;호7: 11 ;암2: 13-16).
Ⅱ. 신약전쟁에 대한 신약의 태도는 우선 구약에서 강조되어 있는 '성전'과 정반대 되는 듯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지 말고 (마5:39-41) 원수를 사랑할 것(43-48절)을 가르쳤고, 그를 정치적인 지도자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거절하셨다. 또한 그는 베드로에게 결코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셨다(26 : 52).
예수께서는, 그 당시에 전쟁이 로마 제국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였으며 실제로 전쟁이 부분적으로 발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정책으로서 전쟁의 필요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교훈은 평화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을 받게 됨을 알 수 있다(마 5 : 9).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는 무력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이다.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정치 조직체로서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에 전쟁을 필요로 했지만, 교회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영적 공동체이므로 전쟁과는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성전을 영적으로 재해석하여 영적인 전쟁을 강조했다(고전 14:8;고후 10:3,딤전 1: 18-19).
신자들의 싸움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엡6:10-12), 이 싸움에 사용되는 무기 역시 영적인 것이다(고후10:4 ; 엡6: 13-17).
신자들의 영적 싸움에서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때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구약 시대의 성전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 마귀 세력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결정적인 승리를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시작된 승리는 그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이 최후의 완전한 승리가 올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임무는 군사적인 행동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롬 5: 1-5 ;고후 5: 16-21;엡 2:11-22).
※ 참고 문헌C. Brown, J. Watts.and Langley, "War, Soldier, Weapon," DNTT3:958-982 ; C.H.C Macgregor, The NT Basis of Pacifism (1953).
출처: Godpia 성경 사전
@노베 전쟁에 대한 좋은 설명을 첨부해주셨습니다, 가드피아 성경은 저도 편리하게 자주 참고하고 있습니다.
@노베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구약에서는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전쟁을 하였고, 신약에서는 영적 전쟁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네요.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악한 존재들과의 싸움이라고 한 것이 이런 맥락이군요.
죄를 심판하는 기능으로써 전쟁이 사용되는 것은 구약이나 신약이 동일하고요.
인생이 전쟁이고 신앙도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승리한다는 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네, 매우 공감합니다.
사무엘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시편 18:39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시편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55: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시편 140:7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22
고대의 전쟁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유익한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겠다고 느끼게 해줍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