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황태극) "皇太極" 乾, 1592年11月28日 申時 淸나라 제2대 황제, 시호 文皇帝
양력 1592년 11월 28일 16시
음력 1592년 10월 25일 16시
시 일 월 년
丙 辛 辛 壬
申 亥 亥 辰
63 53 43 33 23 13 3
戊 丁 丙 乙 甲 癸 壬
午 巳 辰 卯 寅 丑 子
1626년(35세) -- 9월 30일 청나라 태조 누루하치 사망 함. 15명의 아들 중 8번째인 홍타이지가 형제들과의 정권 투쟁에서 이기고 등극함. 많은 형제들을 사살함.
1627년(36세) -- 1월 27일 청나라 아민(이왕) 장군이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함. 조선 조정의 인조는 강화도로 이동함. (정묘호란)
1627년(36세) -- 3월 3일 강화도 이궁에서 조선의 인조는 청나라와 형제의 맹약을 맺음.
1636년(45세) -- 심양(선양)에서 황제의 즉위식을 올리고 국호를 청이라 하고 연호를 숭덕으로 고치고 공식적인 청나라를 출범시킴.
1636년(45세) -- 12월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홍타이지 친히 10만 병력을 이끌고 순식간에 한양에 입성함. 조선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했으나 역부족. 인조는 홍타이지 황제에게 항복함. (병자호란)
1637년(46세) -- 1월 30일 삼전도에서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물러감.
1643년(52세-계미년) -- 9월 12일 선양에서 급사함.
황타이지가 사망한 후 뒤를 이은 순치제 1년에 청나라 군사들은 함곡관을 넘어 명나라를 침공함. 1644년 이자성(李自成)을 지도자로 하는 농민군은 드디어 베이징[北京]에 진입, 명나라를 멸망시킴.
홍타이지[皇太極, Hong Taiji] Abahai라고도 함.
1592. 11. 28 만주 출생 ~ 1643. 9. 21 선양에서 사망.
중국 청나라의 제2대 황제.
연호는 천총(天聰)·숭덕(崇德)·1626년에 만주에서 만주족·몽골족·한족의 황제가 되었으며 국호를 후금(後金)에서 청(靑)으로 바꾸었다.
홍타이지는 만주족이 세운 후금의 카간이었던 누르하치(1559~1626)의 8번째 아들이었다. 누르하치는 내륙 아시아 스텝 지역의 여러 부족들을 통일하여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부족민을 중국식 관료제 국가로 조직했다.
누르하치가 죽은 뒤에 홍타이지는 형제들을 죽이고 자신의 지위를 강화했다. 권력다툼에서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주로 군사지도자로서의 남다른 재능을 지녔던 데 있었다. 그는 내몽골과 조선으로 진격해들어가 이 두 나라를 금의 속국으로 삼았다.
조선에서는 재정과 식량을 공급받고 내몽골에서는 인력과 말을 공급받아 팔기제(八旗制)로 알려진 군사체제를 완성했다. 4번의 군사 원정을 통해 전에 중국이 장악하고 있던 북만주의 헤이룽 강[黑龍江] 지역을 마침내 장악하고 3차례나 만리장성을 넘어 화북을 침공했다.
포로로 잡혀왔거나 자진해서 금나라를 위해 일하는 한족들의 수효가 많아지자 금도 중국에 더욱 가까운 국가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유능한 한족들이 금에 협조했다. 홍타이지는 한족 관료의 충고를 받아들여 나라 이름을 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중국 공략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목표가 실현되기 전에 죽었지만 만주족 지배의 기초를 다졌다. 그가 죽은 지 1년 뒤에 만주족은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北京]을 장악하고 얼마 후 나머지 지역 모두를 평정했다.
중국 청(淸)나라 제2대 황제(1626∼43).
태조(太祖)인 누루하치[奴兒哈赤(노아합적)]의 여덟 번째 아들이다. 다이샹[伏善(복선)] 등과 함께 사대왕(四大王)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여 베일레[貝勒(패륵);首長(수장)]라 불렸다.
1626년(천명 11) 태조의 뒤를 이어 제위(帝位)에 올라 연호(年號)를 천총으로 정하였다. 즉위 당시에는 명(明)나라와 교전상태에 있는 등 국내외적으로 어려웠으나 만주인과 한인(漢人) 관계 등 국내의 융화를 꾀한 후 외정에 나섰다.
1635년(천총 9) 내몽고를 평정하여 대원전국(大元傳國)의 옥새(玉璽)를 손에 넣은 것을 계기로 국호를 대청(大淸), 연호를 숭덕(崇德)으로 바꿨다.
조선을 침공하였으며 중국 본토에 침입하기도 하였다. 내삼원(內三院)과 6부(六部)의 설치 등 제도정비와 함께 군사력을 강화하여 명나라에 대항하고 청조(淸朝)의 기초를 이루었다. 묘호(廟號)는 태종(太宗), 시호는 문황제(文皇帝).
첫댓글 지지물판....물판사주들은.... 진대운에 많이들 사망하는 것을 볼 수 있음....천간에 관을 두고 신금 둘이서 쟁투를 벌이고 있는데... 형제싸움의 징조...
우리 조상님들을 못살게 굴던 황제임....
음....,, .. . . / 근데 청국은, 스스로를 신라의 후예" 라 하였다함. "금국" 이 자손이며,, "애신각라- 신라를 사람하고, 잊지 않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