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성의 실패(수 7:5)
일이 잘 되지 않거나 큰 손해를 보는 경우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라고 자신의 삶을 잠시 되돌아 볼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일을 되새기면서 혹시 악한 일을 하지 않았는가, 남에게 잘못한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의 길을 막아서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첫 번째 전쟁 여리고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창과 칼을 든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리고 성을 돌면서 하나님의 전쟁을 경험하였습니다. 여리고의 승리의 기운을 이어서 이스라엘은 바로 아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Ai) 성은 공교롭게 우리의 말로도 작은 ‘아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듯이 작은 성이었습니다. 아이 성에 보낸 정탐군들은 여호수아에게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3절)’라고 보고를 합니다. 그들은 적은 수의 작은 성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겨우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의 전적인 승리를 경험했으나 아이 성의 규모를 보고 겸손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약 삼천 명의 이스라엘 군사가 아이를 치러 올라갔으나 오히려 아이 사람 앞에서 오히려 삼십육 명쯤 죽고 도망을 했습니다(5절). 견고한 여리고 성의 대승과는 비교되는 작은 성 아이에서 이스라엘을 처음이자 마지막 패전을 맛보았습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전투에서 왜 실패했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전력상 비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이 오히려 도망을 쳐야 했던 이유를 찾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어찌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시냐(7절)고 항명(?)을 하는 듯 이스라엘의 실패를 읍소했습니다.
여리고에서 대승을 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 성안에 있는 것을 온전히 바치라(6:21)’고 명령하셨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승자에게 전리품은 당연한 몫입니다. 여리고에서의 승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여리고의 전리품은 하나님에게 바쳐야 하는 하나님의 것이었기에 이스라엘에게 바친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고 엄중한 경고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아이에서 실패를 맛본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의 아간을 뽑았습니다(18절). 그리고 아간의 장막을 살폈습니다. 아간의 장막에는 여리고에서 노략한 은과 외투와 금덩이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댄 아간의 탐욕이 이스라엘이 아이에서 패했던 하나님의 심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 성의 실패는 유일한 이스라엘의 패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교만과 불순종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아이 성에서 패전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는 자에게 기꺼이 용서(시 32:5)하시는 분입니다. 실패를 경험할 때 내가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으로 죄의 결과를 묻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기회는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 성의 실패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용서를 다시 한번 경험했습니다. 교만과 불순종을 고백하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전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한 삶을 살아가는 바다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