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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검면 오태저수지 둑방에서 湖畔四友 ... 12:07:24
효령대군(孝寧大君) 영당(影堂) 09:29:11
이곳은 조선왕조 태종대왕의 제2왕자인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신 영당입니다. 대군께서는 태조5년(1396)에 탄생하시고 성종17년(1486)에 졸하였으며 휘(이름)는 보(補)요, 자(字)는 선숙(善淑), 아호는 연강(蓮江)이시고, 시호(諡號)는 정효(靖孝)이시며 종묘(宗廟) 공신당(功臣堂)에 배향(配享)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9대 종손 성민(聖民)공이 난을 피하여 이곳 영남 함창(咸昌)땅에 들어와 정착, 가묘(家廟)에서 대군의 제향을 드리자 숙종 12년(16863) 외예(外裔)10대손 경상감사 이규령(李奎齡)이 이 공검면 율곡리에 사당을 건립, 위패를 모시었고 영조13년(1737) 나라에서 대군 묘하에 사당 청권사(淸權祠)를 세워 동 19년(1743)가 청권사로 이안(移安)되었습니다.
순조6년(1806) 영남 유림들이 공검면 구 사당자리에 기양서원(岐陽書院)을 건립 讓寧, 孝寧 兩 大君을 儒林에서 倂享하시었고 그 후, 서원이 철폐(撤廢)되었으며 고종19년(1882) 대군의 위패가 청권사에서 다시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를 거쳐 이곳 오태(五台)로 이안된 후 서기 1972년 8월 30일 대군의 묘소와 사당이 서울지방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서기 1973년 3월25일 위패를 묘하 청권사로 다시 봉안(奉安)하였습니다.
오랜 歲月 大君의 位牌를 모시던 사우(祠宇)를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대군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매년 제향을 받들고 있으며, 서기 1988년 재실 청은제(淸隱齊)를 신축하고, 서기 1995년 영당과 삼문을 중건하였습니다. 이에 그 來歷을 돌에 새겨 영단 앞에 세웁니다.
2001년 9월 일
社團法人 淸權祠(全州李氏 孝寧大君派宗會) 謹 敬 竪 立
※ 家廟 : 한 집안의 사당 ※ 外裔 : 후손 ※祠宇 : 사당 ※ 影幀 : 얼굴을 그린 족자
※ 來歷 : 겪어 온 자취 ※ 謹 敬 竪 立(근경수립) : 삼가 경건하게 세움
담 넘어 제실인 청은제(淸隱齊) 좌편 뒤에 효령대군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1995년 影堂과 삼문을 중건하였다.
엄대장의 수고로 오태1리 청은제(淸隱齊) 광장에 주차 후 출발.. 09:31:46
篤志 李學元 頌德碑(독지 이학원 송덕비) ......청은제(淸隱齊) 앞 길 건너편에 있는 송덕비..
篤志家 李學元氏는 恭儉面 五峰山의 높은 精氣를 받고 全州人으로서 孝寧大君의 二十二代孫이며 先親 李麟揆(이인규)氏의
七男妹中 넷째 아들로 五台里 七九五番地에서 태어나시어 영특함과 총명하심이 뛰어나 높은 向學熱을 가지고 尙州農蠶學校를 우수한 成績으로 卒業하고 故鄕에서의 찌든 가난과 日本나라의 植民地로 약소민족의 설움을 克復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잘 살기 위한 방법은 배움의 길 밖에 없음을 깨닫고 日本 明治大學을 卒業하시고 사업에 뜻을 가져 피눈물 나는 努力으로 東洋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성공하여 조국 경제 건설에 많은 業績을 남기셨다. 고향에 돌아와서 보니 1975年度 農漁村電氣架設 때라 架設費 巨金을 負擔(부담)하였으며 食水는 1953년 수리조합 龍泉洞굴로 因하여 26년간의 食水難을 겪다가 食水源을 기증하여 完全 食水難을 해결해 주셨다. 이 두 가지 큰 事業을 해주심으로써 洞民이 希望을 갖고 살 수 있게 해 주신 功德을 길이 後孫에 전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全 洞民의 뜻을 모아 이 碑를 세우다.
西紀 一九九二年 春四月 日 五台里 洞民 一同 謹竪(근수)
재실 청은제(淸隱齊) 앞에 있는 오태1리 버스승강장...
승강장에서 우측으로 오태저수지를 일주하기 위해 도로를 따라서...
도로에서 좌측으로 저수지 가까이로 지나는 농로를 따라서...
저수지 용머리 부분의 높은 언덕 위에 산소를 평장으로 조성하였다.
후면 좌측부터
全州李公諱齊澤 配密陽朴氏 之墓 / 全州李公諱澄(징)玉 配長水黃氏 之墓 / 全州李公諱命儀 配順興安氏 之墓 /
全州李公諱起德 配昌寧成氏 之墓 / 全州李公諱康旭 配忠州崔氏 蔚山吳氏之墓
용머리 산소에서 바라 본 저수지 모습.. 멀리 노음산(노악산)이 우뚝하다.
표석 글의 내용 :
공검지 축조로 1958년 수몰된 용머리(오태리 633)와 용주서당(고청 최학주) 옛터
최가림 세우다
버드나무의 줄기에 물이 올라 ... 회장님이 추억의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朝鮮國 宗室 孝寧大君 十七大孫 諱 起林裔下五峯山 東麓 奉安壇
( 조선국 종실 효령대군 십칠대손 휘 기림예하 오봉산 동록 봉안단)
白頭大幹에 中樞緣脈千里行龍을 五大山脈으로 힘차게 달리어 起峰 俗離山 雄峰을 이루어 五峰山 東麓(동록)에 一点靜席하니 蟠龍(반용)樓神吉地라 謹按本鄕에 璿源(선원)孝寧大君長房 九代孫 諱覺民 字希尹 號는 南崖(남애)이니 文章孝友가 爲世欽仰하시어 與長伯泉田公幷享箕山祠하시어라. 公顯宗元年庚子 天壽82세하시여 葬于咸昌葛山하시내 点遺之祖요世阡之地라 先代祖上偉勳功德을 奉承하며 崇慕顯揚至間에 今次宗論을 時流에 副應決議하고 明堂擇地하여 仙綠之殿으로 追慕設壇하고 姻辭之宜(인사지의)로 陰刻之文할새 以余蕪文으로 蕪辭不劃하고 不肖選錄 略叙합니다.
檀紀 4341년(2008) 戊子 3월 節淸明日
孝寧大君九代孫 南崖公派 五峰山宗會 一同 謹竪
孝寧大君十七代孫 淸權祠典禮硏究委員 起月 謹撰
※ 蟠龍(반용 : 용의 기운이 서린) ※ 孝友: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
※ 欽仰(흠앙: 공경하여 우러러 사모함.) ※ 葬于(장우: 장례하다) ※偉勳: 위대한 공훈
※ 奉承: 웃어른의 뜻을 이어받음 ※ 崇慕: 우러러 사모함.
※ 顯揚(현양: 이름을 세상에 들날림) ※ 今次: 이번 ※ 蕪文: 거치 글
※ 謹竪(근수: 삼가 세우다) ※ 典禮: 왕실의 의식 ※ 謹撰(근찬: 삼가 짓다)
17대손 起林
18代孫 康鵬 康鶴 康鴻(三子)
19代孫 學宰 萬宰 德宰 孝宰 用宰 善宰
20代孫 廷大 廷直 廷律 廷郁 廷睦 秀睦 廷萬 廷燮 廷國
21代孫 奭揆 範揆 福揆 二揆 海揆 洪揆 享揆 大揆 達揆 炳揆 倫揆
22代孫 學煥 學京 學宗 學虎 學俊 學雲 學善 學宇 學俊 學明
※ 12基 安置함.
따뜻한 날씨에 풀밭에서 봄나물을 채취하는 주민과 담소하는 松崗
포장 농로의 지름길로 가려고 논둑길을 건넌다.
포장 농로는 저수지에 접하여 걸을 수 있어 좋다.
포장 농로를 논둑 지름길로 건너는데, 낚시대를 물 안에 설치하고 장관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낚시한다..
경치 좋은 곳에 팬션을 짓고 夫人이 조경을 예쁘게하여 누구나 머물고 싶은 장소이고.
우측에는 夫君이 운영하는 대한연합방송 사무실이 있다.
대한연합방송 (주)주간상주신문 대한환경방송 10:47:59
고마운 사장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며 커피 대접을 받고 추억의 담소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
도각사 입구의 이층건물은 수양시설이고 사찰은 안쪽에 있다.
도로 변에 道 覺 寺 입구 안내 입석 아래 글귀
寂卍明夢等現覺 今宝慧佛万華喜 覺樹假度宮我善海 理香越已日聖修覺
(적만명몽등현각 금보혜불만화희 각수가도궁아선해 이향월이일성수각)...
표지석의 내용 : 내 마음보다 더 고귀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듯, 남들의 마음도 고귀하니,
내 마음이 소중하다면 남의 마음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道 覺 寺
큰 도로로 나와서 푸른잔디 농원(좌측)의 수목을 관찰하며 걷는다.
푸른잔디 농원의 盤松반송이 돋보인다.
오태2리 버스승강장을 지나며 도로 변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修人事수인사를 했다.
도로 우측의 작은 못에 놀던 오리떼가 함성에 놀라서 일제히 날아 올라 큰 못으로 날아 간다.
배밭 주인장의 운영 아니디어......
금화네 배밭 카페since이후 2018
규모 총 7천평 / 수종 3천주 / 나이 15년 / 생산량 연간매출기준 2억
우리나라의 농업은 세계화 정책 등에 의하여 개방화가 가속화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보편화한 생산유통판매방식으로는 선진 농업 환경에 경쟁성이 있다는 확신이 없다. 따라서 금화네 배밭 카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산 판매 환경을 구축하기로 하였다.
배밭 농장주
좌측의 양수시설(사벌 들판)과 우측의 산소(간식 및 휴식 장소)의 상석 내용...
學生礪山(여산)宋公諱石勉之墓 配孺人慶州李氏 雙墳 卯坐
2012년 閏3월 일 子 봉희 한희 孫 도현 익현(덕현) 기현
孺人平昌李氏之墓 卯坐 考位學生礪山宋公諱貞萬之墓外西面鳳岩村前 丁坐
1992년 壬申2월 일 玄孫 承儀 吉儀 台儀 承錄 慶儀
산소의 소나무 그늘에서 간식을 즐기며 휴식..... 11:38:28
무너미 다리를 건너 오태저수지의 둑방을 오른다.
저수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여 전기를 보내는 시설 앞에서....
저수지 둑길에 파석을 깔아 놓아 걷기가 불편하여 천천히 걷게 된다.
저수지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살피니 노음산이 돋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저수지 둑방이 엄청 길다....
내고향 오태1리 마을 표지석 에서...
청은제(淸隱齊) 앞 주차장에 도착.... 12:35:45
점심은 문경제일병원 옆 제주은희네 해장국....푸짐한 해장국(콩나물, 고기, 선지), 매운편임.
영업시간 : 월요일~일요일 06:30~21:30 / 4주일요일 06:30~16:00 / Breaktime(휴식시간) 15:30:16:30
주문 마감시간 : 월~일 21:00 / 4주일요일 15:00
첫댓글 오태저수지를 처음 대하니 문경, 예천, 상주 지역에서 경천댐 다음으로 큰 저수지였다. 효령대군의 제실이 있는 오태1리의 유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어 반가웠고, 독지가 이학원님의 송덕비가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효령대군 17대손~22대손까지 12기의 유해를 안치한 묘역도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장소였다. 봄나물 캐는 아주머니와 낚시하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목가적이고, 대한연합방송의 사장님의 친절함에 감사했다. 물오리 무리들의 비상이 멋진 광경이었고, 저수지의 둑방을 지나 전망대에서 경치가 대단합니다. 좋은 장소를 선정 해준 엄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0년만에 찾은 五台池는 여전한데 人跡은 끊겨 寂寞感이 감도는 五台에 駐車하고보니 齋室인 淸隱齊 뒤에 孝寧大君의 影幀을 奉安하고 影堂과 三門을 重建하여 尙州,聞慶地方 全州李氏 孝寧大君派의 中心地가 되고있다.規模와 丹粧의 精誠이 感動을 준다.五台못 名所로 알려진 龍머리로 돌아드니 못의 엄청난 規模를 보게되고 낚시 明堂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두릅과 화살나무로 造景을 한듯 둘레길이 잘 造成되어 느낌이 좋다.墓域 造成이나 水沒 標式 흔적을 보면 이 一帶가 孝寧大君家의 領域이다.베스낚시인만 보일뿐 姜太公은 없다.둘레길의 지루함과 春困을 느낄쯤 造景이 잘된 眺望좋은 單獨住宅 앞에서 主人과 修人事나누고 커피대접을 받는다.手下로 봤는데 地方誌 懸板이 걸린 2년 年上이다.五台2里는 散在部落이라 特徵은 없으나 끝간데 없는 湖畔과 崇德支脈이 恭儉 全域을 安穩하게 감싸 앉은 風景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무너미 堤防에 올라서니 莊嚴한 湖의 엄청난 規模를 實感하고 湖畔四賢은 즐거움을 만끽한다.공갈못 規模에 비하면 1/10도 안된다고 하지만 內陸의 바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貯水量으로 沙伐平野를 관개하여 穀倉地帶에 寄與하는 孝子못이다.利安川을 水路로 연결한 智慧가 놀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