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교사의 겨울나기
원 성 호
작은딸이 선생님이 된지도 어연 15년인가 보다.
처음 부임지는 삼척의 시골중학교였는데 작은 월세방을 얻어 출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부임 첫날밤 괴질에 걸려 하마터면 생명조차 위태로웠던 일이 있었고 그로인해 일 년이나 휴직을 해야 했다.
평소 매우 건강하던 아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처음 입원 시켰던 삼척의료원에서는 간질병이 의심된다 했으나 우리집안은 선대부터 그런 환자는 전혀 없는 집안이다. 삼일 후 춘천 성심병원으로 왔더니 연탄가스중독이 의심된다고도 했다. 두 의사의 말이 모두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2년 후 인제 원통중학교로 전근되어 아홉 평 작은 관사에서 좁긴 했지만 그런대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가진 것 없는 초임 교사로서 돈 안들이고 그런 관사라도 들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연탄가스중독이라는 확증은 없으나 삼척에서도 관사에 들 수 있었다면 이런 화는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원주 시내학교로 전근된 후에는 내외가 맞벌이한 덕에 32평 널찍한 아파트를 사서 기반이 잡혀가나했는데 교사라는 직업은 한곳에 오래 근무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작년 이른 봄 횡계 도암중학교로 다시 전근하게 된 것이다.
도암 중학교에는 다행히 관사가 비어 있었다. 딸은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 셋을 전학시키고 관사에 짐을 풀었다.
비록 좁고 낡은 단독주택 이었지만 외지근무 교사로서는 이런 관사라도 들 수 있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내외가 딸의 새 안식처를 보러 간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토요일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 수도, 난방 등을 살펴봤다. 문제는 난방이었다.
방바닥은 전기 판넬이 깔려있다는데 비교적 포근한 날인데도 온기가 미미해서 쓸쓸한 밤을 보내야 했다.
이 방에서 살아가려면 몸에 해롭다는 전자파는 뒤집어쓰고 살아야 할 테고 전기요금은 또 얼마나 될까? 가장 비싼 것이 가정용 전기이고 많이 쓸수록 누진세가 붙어 쓸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게 가정용 전기 요금체계가 아니던가. 더구나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춥다는 대관령 정상이다.
어느덧 한해가 훌쩍 지나 설날이 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열시경은 되어서야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상대로라면 시댁 제사 지내고 성묘하고 우리한테 오는 게 정해진 순서였다.
‘무슨 일이 있구나. 또 둘이 다툰 건 아닐까?’
예감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딸이 들어설 때 당연히 같이 와야 할 사위가 보이지 않았다.
“한서방은 어째 안 보이냐?”
“원주에 그냥 있어요.”
“그럼 차례는?”
“서방님이 지냈겠지요.”
“그럼 너희들은 제사도 안 지냈단 말이냐? 큰 것이 돼 가지고.”
그 물음에 딸은 묵묵부답이다.
시간이 지나자 딸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불화의 시작은 학교관사 때문이었다.
겨울이 시작되자 부실한 난방 시설이 큰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기를 아무리 올려도 방바닥은 미지근도 안하고 위풍까지 있어 방안에서 물이 얼 정도였다. 금년 겨울은 90년만의 한파라고 한다. 삼한사온의 순환주기조차 거스른 혹독한 추위가 한 달 내내 계속됐다. 전기를 최대한으로 써도 방안 온도는 좀해서 오를 줄 모른다.
강추위가 오기도 전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수도는 물론 변기까지 모두 얼어버린 것이었다. 한번 얼어버린 수도는 녹힐 방법이 없었다. 별도로 전열기를 사용하려 하니 여기저기 스파크가 일어나 바로 코드를 뽑아 버려야 했다. 이제는 전기조차 쓸 수 없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기공을 불러들여 봤으나 배선에는 별 문제가 없다며 그냥 가 버렸다.
네 식구는 이불을 있는 대로 덥고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긴긴밤을 보냈다.
수도가 얼어버려 밥도 지을 수 없고 마실 물조차도 멀리 있는 학교에서 길어왔다. 소변은 집밖으로 나가 적당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대변의 경우에는 멀리 있는 학교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세면조차 제대로 못했을 테니 그 참상이 어떠했을까?
만약 유아라도 있었다면 남의 집으로 피신이라도 하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었으리라. 전국에서 가장 춥다는 대관령 정상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긴긴 겨울을 이렇게 보냈다.
주말이면 원주에서 온 가족이 모인다. 사위는 서울에서 내려오고 네 명 가족은 횡계에서 원주로 합류했다. 이러니 말하지 않으면 사위는 처자식이 이런 혹독한 고생을 하는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뒤늦게 이런 현실을 목격한 사위는 어떤 대책 마련을 마련해 줄 생각은 않고 한다는 말이.
“그런대로 견딜만하겠는데 뭘그래.”
하고는 그대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딸 내외의 불화는 이렇게 시작된 것 같았다. 딸의 귀에는 그 말이 <처자식이 얼어 죽어도 관심없다.>는 말로 들렸을지 모른다.
이런 저런 일로 평시에도 불만이 많던 터에 이런 고난을 겪고 있는 처자식에게 ‘그런대로 견딜만하겠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설 다음날 저녁 사위는 사과 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고스돕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나 딸 내외는 여전히 서로의 눈길을 피하는듯했다. 그리고 사위는 아래층 비어있는 원룸에서 자고 딸은 거실에서 잤다.
늦잠을 깨어보니 사위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고 딸은 아침 식사 후 집을 구해야 한다면서 떠났다. 떠나는 딸을 보고 "집구할 돈은 있느냐?" 물으니 “아범이 어떻게든 해 오겠지 뭐, 걱정하지 말아요.” 한다.
그날 오후 늦게 전화를 해 보았다. 민박집 방을 월 25만원 주기로 하고 얻어 들었단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다음 다시 전화를 해 봤더니 작은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물론 돈은 사위가 조달해 왔다고 했다.
차라리 우리에게 진작 사정을 이야기 했더라면 무슨 수를 쓰던지 그런 혹독한 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미안하다. 정말 미안했다.’
요즘 학생들 무상급식 문제로 말들이 많은가 보다. 얼핏 듣기로는 그 예산이 수조원이라고 한다. 국가 채무도 수십조 원이라고 하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집안에서도 버는 놈 따로 쓰는 놈 따로 라더니 나라 살림도 틀리지 않는가 보다.
학교 교육이 잘되려면 우선 선생님부터 생활이 안정되어야 할텐데 이동은 잦고 관사는 모자라고 운 좋게 얻어들고 보니 사람 살집이 못된다.
딸은 1년 살려고 아파트를 사고 말았다. 돈이 남아돌아 그런 건 아니다. 전세는 구하기 어렵고 월세내고 살기에는 또 그렇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사고만 것이다.
사위도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 일로 겨우내 고심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필경 직장에서 대출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1년 후에는 또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데 관사를 믿을 수가 없으니 미리부터 걱정이다. 사놓은 집은 또 어떻게 팔까? 그것도 걱정이다.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 무었이겠는가?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선생님들이 밝은 얼굴로 맞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교육인들 제대로 되겠는가.
교사들은 보통 2년 후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큰돈 들여 관사 수리를 하려 하겠는가. 딸이 살던 그 집에서도 수많은 선생님들이 홍역을 치르고 쫓겨났을 것이다.
무상급식 예산의 작은 일부만 관사 관리비로 쓴다면 원지 선생님들의 고생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무상급식이 인기몰이에 영합한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그보다 먼저 원지 선생님들 고생부터 덜어 주는 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시점이다.
첫댓글 활자 크기가 왜이리 뒤둑박죽일까요? 무었을 잘못했는지 알려주세요.
자식은 눈 감는 날까지 걱정근심 거리라고 한다지요.
원선생님 겨울내 걱정하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
그래요 자녀 걱정으로 부모님들 마음은 늘 파도처럼 부서져 나가지요. 마음에 와 닿는 글, 찡~한 여운이 바다 건너까지 전해 옵니다. 버지니아에서
수만리 타국에서도 이글이 보였나요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내용, 문장, 구성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네요. 아이 러워.
따님이 아이들 데리고 고생이 참 많으셨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무상급식은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먹이는 것 만큼은 부모들이 해결을 해야한다 생각을 해요.
있는 사람들의 아이까지 국가예산으로 먹여야 한다는건 아닌거 같아요.
다른 필요한 예산을 깍아가며.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정 학생들을 위하는 길이 무었일까?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차라하드라도 방향이 잘못되면 목적지가 아닌곳으로 가듯이 뭐가뭔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같습니다. 자식...
참, 자녀 농사는 출가 후에도 계속 되는군요.
치워버리면 끝이라고 철없이 생각해온 부분이 괜히 실망스럽고요.
헌데, 예전에 한참 더 열악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신기한 것은 그 시절이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