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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앙인에게 과학은 왜 필요한가?
자연과학적인 내용을 잘 모르게 되면 우리는 빅뱅이라든가 진화론처럼 우리의 신앙과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런 자연과학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때에 우리가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게 되고 그러면 일방적으로 과학적 배경 지식을 갖춘 무신론자들에게 끌려다닐 가능성이 대단히 많게 될 것입니다.
(2)스핀 유리와 우리의 신앙
스핀 유리
고체가 자석 되는 방향을 못 정해 쩔쩔매는 상태가 된 특이한 자석
철을 끌어당기는 능력 잃어버린 이도
(3)과학과 신앙의 동일한 출발점
과학과 신앙은 원래 자연에 관한 경외심이라는 동일한 출발점에서 나왔지만,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는 중에 과학과 신앙이 갈라지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4)과학과 신앙의 근본적 차이점1
과학은 자연현상 또는 사회현상에서 발견되는 경험적인 사실들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고차원적인 법칙, 원리로 나아가는 방식이지만, 신앙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우리 각자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나중에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서 내면화되는 과정을 거쳐서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되는 식입니다.
5)과학과 신앙의 근본적 차이점2
(과학)수많은 데이터를 통한 보편적 법칙 vs (신앙)유일회적 계시, 고유성
6)과학과 신앙 간의 관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1
바로 이 시점에서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다양한 이론들을 다음의 5가지로 분류하고자 합니다: (과학적) 무신론, 범신론/만유신론, 이신론/자연신론, 창조론적 유신론, 진화론적 유신론.
이제 과학적 무신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과학적 무신론은 간단히 말하면 ‘이 세상은 신의 존재 없이 어떤 계기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 특정 조건을 갖춘 지구라는 행성에서 어떤 계기에 의해 ‘우연히’ 생명이 생겨났고 그 생명은 진화 원리에 의해 고등 생물들로 분화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이 이 과학적 무신론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중심적인 과학 이론은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를 무신론적으로 자연스럽게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우주론인 ‘다중 우주론’(multiverse theory) 및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까지의 생물학적 진화 전 과정을 설명하려는 이론인 ‘대진화 이론’(macroevolutionary theory)이며, 이 이론 외의 다른 부수적인 개념, 즉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은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이 모델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을 비롯한 수많은 무신론적 과학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죠.
여기서 잠깐 리처드 도킨스에 관해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그는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과학만능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1976년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화생물학자로서, 현재까지 진화론에 입각한 과학만능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인물입니다. 그는 특히 2006년에 출판된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 망상’이라는 뜻)을 통해 세상의 여러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에 관해 엄청난 공격과 조롱을 가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지지와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전임자들이 수세기 동안 봉헌한 성인의 수를 더한 것보다 더 많은 성인들을 봉헌했고, 성녀 마리아를 유독 애호했다. 그의 다신론적 갈망은 1981년 로마에서 자신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일어났을 때 극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은 파티마 성모가 개입한 덕분이라고 했다. ‘성모의 손이 총알을 인도했다.’ 왜 아예 몸에 안 맞도록 인도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를 여섯 시간 동안 수술한 의사들의 손도 성모의 인도를 받았을 것이다. 요컨대 교황의 견해를 따르면 총알을 인도한 것은 우리의 성모가 아니라, 파티마 성모였다는 것이다. 아마 루르드 성모, 과달루페 성모, 메주고레 성모, 아키타 성모, 자이툰 성모, 가라반달 성모, 녹 성모는 당시 다른 일로 바빴나 보다.”(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57-58)
바로 이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의 출판으로 인해 과학적 무신론의 대표주자가 된 이후 행한 유명한 사건이 바로 ‘무신론자 버스 캠페인’이론입니다.
무신론자 버스 캠페인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의 시내버스에 무신론에 관한 메시지를 게시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된 광고 캠페인입니다. 2008년 10월 21일 영국 인문주의자 협회와 리처드 도킨스의 공식 후원으로 코미디 작가 아리안 셰린이 시작한 이 캠페인은 런던의 시내버스에 “아마도 신은 없으니 이제 그만 걱정하시고 당신의 인생을 즐기세요”라는 광고 문구를 붙여서 운행하도록 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무신론자 버스 캠페인은 그 후 미국, 캐나다를 비롯하여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서유럽 국가들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과학적 무신론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킨스를 포함하여 진화론에 입각한 과학만능주의자들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순간 ‘확률적으로 우연히’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하였다. 그 후 그 생명체의 후손들이 오랜 기간의 진화 과정을 거침으로 인해 현재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형성되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또 한 명의 영향력 있는 과학만능주의자로는 스티븐 호킹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는 건강이 위독하던 1970년대에 블랙홀의 열역학 및 소위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블랙홀의 표면에서 양자 효과에 의해 분출되는 흑체 복사)를 통해 과학계에서 널리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1988년에 출판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라는 대중 과학 서적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2010년에 출판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를 통해 빅뱅은 물리학 법칙만이 작용한 결과로서 이 과정을 통해 우주가 자연스럽게 탄생 되었으며 유일신과 연관된 우주의 창조 개념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유명합니다.
호킹을 포함하여 우주론에 입각한 과학만능주의자들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순간 ‘확률적으로 우연히’ 우주가 빅뱅에 의해 탄생 되었다. 그 후 우주가 팽창하면서 별과 행성, 은하계 등이 생겨나는 우주의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후 ‘확률적으로 우연히’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온도, 압력, 물과 공기 등)이 마침 지구에 형성되어 결국 생명체가 생겨나고 점차적으로 진화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화론자든 우주론자든) 과학만능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공통적으로 우주 및 지구상 생명체의 첫 출발점이 ‘확률적 우연성’에 기반해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확률적 우연성’이라는 말은 과학적인 개념으로서 ‘필연적인 어떠한 원인이나 이유 없이 0에 가까운 지극히 낮은 확률을 갖고 어떤 현상이 발생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탄생 및 지구상 생명체의 탄생은 ‘대단히 낮은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죠. 과학적 무신론은 한마디로 말해서 하느님이라는 필연성 대신 대단히 낮은 확률을 가진 우연성에 기반한 이론인 것입니다.
7)과학과 신앙 간의 관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2
범신론·만유신론(pantheism)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인격신이 세상 밖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우주, 자연 안의 모든 것과 자연법칙을 신으로 여기는 사상입니다. ‘신과 세상이 하나’ 혹은 ‘세상이 곧 신’이라는 이 이론은 세상 만물 자체를 신으로 본다는 면에서 표면적으로는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무신론과는 달라 보입니다.
이 이론은 근대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인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1632~1675)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 등이 지지하였던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 범신론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실상 무신론과 구별되지 않는 이론입니다. 단적으로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스피노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범신론자라고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밝혔었지만, 기존 종교에 관한 견해에 있어서 사실상 무신론자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는 면에서, 결국 범신론은 (과학적) 무신론과 사실상 동일한 이론으로서 간주될 수 있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역시 그의 책 「만들어진 신」을 통해 범신론을 “매력적으로 다듬은 무신론”이라고 평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에 대해 좀 더 살펴볼까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론물리학자 중의 한 명으로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통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다 보니 많은 대중들은 아인슈타인을 유신론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나 아인슈타인의 혈통이 유다인이고, 바로 그 유다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아인슈타인을 유다교 신자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구트킨트에게 보낸 편지.
김도현 신부 제공
아인슈타인이 미국으로 망명한 후 1954년에 유다인 철학자인 에릭 구트킨트(Eric Gutkind·1877~1965)라는 인물과 유다교 신앙에 대해 서신을 통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인슈타인이 구트킨트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내게 신이라고 하는 단어는 단지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에 불과하다. 성경은 공경은 할 만하지만, 원시적인 전설들을 모은 것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하더라도 이 점에 대해서는 변할 수 없다. … 나에게 있어서 유다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유치한 미신의 화신이다. … 나는 유다인들에 대해서 ‘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아인슈타인 본인이 쓴 글을 모아서 출판된 책인 「생각과 의견」(Ideas and Opinion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상도 주고 심판도 하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고, 우리가 우리 안에서 경험하는 종류의 의지를 가진 신도 상상할 수가 없다. 아울러 나는 물리적인 죽음을 겪고도 살아남는 사람을 상상할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두려움이나 터무니없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유약한 영혼들이나 그런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라. 나는 삶의 영원성의 신비와 존재하는 세상의 놀라운 구조를 엿볼 수 있음에 만족하며, 또한 비록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자연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이성의 일부를 이해하는 데 전력투구해온 것에 만족한다.”
이 인용문만 보시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이 어떠한지 이제 명확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이신론·자연신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죠. 이신론·자연신론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하였습니다. 즉 이신론·자연신론은 창조주이신 신을 긍정합니다. 신은 우주의 창조 및 질서의 원리로서 우주와 물질, 생명의 운행원리를 부여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신은 인격신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과는 다릅니다. 이신론·자연신론은 표면적으로는 신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은 여타 종교에서 고려하는 ‘인간사에 개입하는 전지전능한 인격신’이 아니라 자연신, 즉 자연과 우주 질서의 창조주이자 설계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만들어진 신」을 통해 이 이론을 “물을 타서 약하게 만든 유신론”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이 이론은 계몽주의 시대의 디드로, 볼테르 등 소위 백과전서파 철학자들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이 지지하였습니다만 현재는 이 이론의 유력한 지지자는 그다지 찾아보기 힘듭니다.
(8)과학과 신앙 간의 관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3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유신론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론적 유신론 및 진화론적 유신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조론적 유신론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하였습니다. 바로 이 신은 우주의 창조 및 질서의 원리로서 우주와 물질, 생명의 운행원리를 부여한 존재입니다. 그 신의 창조 방식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그대로이며, 절대로 진화라는 방식으로 생명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신이 태초에 완전한 방식으로 짧은 시간 내에 창조한 것입니다. 이 신은 인간사에 친히 개입하는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인간의 희로애락과 함께하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며, 마지막에는 그들을 심판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창조주이며 전능하신 인격신’입니다. 그런데 이 신에 관한 모든 사항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이며 성경은 절대로 오류가 없는 완벽한 책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글자 그대로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할 것 없이 20세기 이전의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어서 소위 ‘창조과학’(creative science) 내지는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을 받아들이는 미국과 한국의 근본주의적 개신교 교파만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창조과학 내지 지적 설계론이 과연 과학적으로 올바른 이론인가에 대해서는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상당히 심각한 논쟁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만, 가톨릭교회는 이 논쟁에서 비껴나 있는 관계로 저는 이 내용은 다루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제 진화론적 유신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하였습니다. 신은 우주의 창조 및 질서의 원리로서 우주와 물질, 생명의 운행원리를 부여한 존재입니다. (여기까지는 창조론적 유신론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생명체는 이 신이 도입한 진화 원리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고등 생물로 진화하며 인간은 그 진화의 최종 산물로서 여겨집니다. (바로 이 부분이 창조론적 유신론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신은 진화의 최종 산물인 인간의 역사에 친히 개입하는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인간의 희로애락과 함께하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며 마지막에는 그들을 심판하는 존재입니다.
이 진화론적 유신론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역시 ‘창조주이며 전능하신 인격신’입니다. 그런데 이 신은 우주 창조의 원리로서 빅뱅(Big Bang, 대폭발)을, 그리고 생명 창조의 원리로서 진화 메커니즘을 도입한 장본인입니다. 따라서 이 이론은 태초의 창조와 진화 개념을 모두 받아들이는 관점입니다. 이 이론은 20세기 이후의 현재의 가톨릭교회 및 진보적인 개신교 교파가 사실상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가톨릭은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을 모두 긍정하고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교회와 과학 간의 대화에 있어서 대단히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취한 분으로서, 특히 진화론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재위 중인 1996년 10월 22일에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열린 교황청립 과학원 총회에 보낸 그분의 담화문에서 그러한 태도가 잘 드러납니다.
“저는 여러분이 선정한 첫째 주제, 곧 생명의 기원과 진화라는 주제가 마음에 듭니다. 이것은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계시 또한 인간의 본성과 기원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저의 선임자 비오 12세 교황은 회칙 「Humani Generis」(1950)에서, 몇 가지 분명한 점만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신앙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다고 이미 언명하였습니다. … 교회의 교도권은 진화의 문제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황청립 과학원 총회에 보낸 담화문, 1996년 10월 22일)
더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4년 10월 27일에 열린 교황청립 과학원 총회에 직접 참석하셔서 다음과 같이 연설함으로써 교회가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창조와 관련한 부분을 읽으면 우리는 하느님이 마술사로서 강력한 마술 지팡이를 갖고서 모든 걸 끝내셨다고 상상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존재들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각각에게 부여하신 내적인 법칙들에 따라서 그것들이 발전해 나가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발전하고 그들의 충만함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오늘날 우주의 기원으로서 제안되고 있는 빅뱅 이론은 창조주 하느님의 개입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개입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자연 안에서의 진화는 창조에 대한 관념과 갈등하지 않습니다. 진화는 진화하는 존재들의 창조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립 과학원 총회 연설문, 2014년 10월 27일)
우리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중요한 무기인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이 결코 우리의 신앙을 배척하는 데에 쓰이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더 잘 이해하고 우리의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긍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과학의 주요 내용들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과학의 내용이 독자 여러분들의 신앙을 위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과학의 주요 내용들을 소개해 드리기에 앞서 ‘과학과 신앙 간의 부적절한(?) 접목 시도의 예들’을 먼저 소개해 드리는 것이 일선 사목자 여러분들과 신자 여러분들께 경각심을 드리기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 못한 방식으로 과학과 신앙 간의 접목을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본격적으로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 내용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9)과학과 신앙 간의 부적절한(?) 접목 시도의 예들
과학과 신앙은 둘 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라는 엄마로부터 함께 탄생한 쌍둥이’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신앙은 창조주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섬기기 위한 두 도구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각자의 영역만을 고집스럽게 강조하고 다른 영역을 무시하는 것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섬긴다는 차원에서 교회에서 강론이나 서적을 통해 과학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은 대략 200년 전부터 각자 고유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존해 오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오감을 통한 관찰이 가능한 물질적 세계를, 신앙은 관찰 불가능한 비물질적 세계를 맡는 식이었죠. 다시 말하면 과학은 물질과 육신을 다루는 반면, 신앙은 영혼과 정신을 다루는 것으로 현재까지 공존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위 1세계 국가들과는 달리 과학자 집단과 교회 사이에 서로의 영역을 거의 건드리지 않으면서 큰 긴장이 없이 나름 평화로운 공존을 해온 편에 속합니다. 덕분에 신앙을 가진 과학자분들이 우리 주변에 생각 외로 많이 계십니다. 그리고 일선 신부님들 중에 과학의 예를 들면서 강론을 해도 거의 문제 삼는 경우가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을 예로 드는 이러한 강론들이나 신앙 저서들 중에서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해석이 들어간 경우들이 간혹 보입니다. 과학과 특히 영성 간의 접목을 시도할 때에는 ‘유비(類比)적 차원’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할 경우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과 영성 간의 부적절한(?) 접목으로 인해 많은 폐해가 발생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저의 견해를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릴까 합니다. 일선 사목을 하시는 분들과 신자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강론들이나 신앙 저서들 중에는 과학에서 발견된 특정 현상을 통해 초자연적 실체나 초자연적 능력을 강조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이러한 경우 소위 ‘뉴에이지 운동’의 주장이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회의 강론이나 저서에서 예상외로 자주 인용되고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던 책인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 2002년)입니다. 이 책은 소위 세기말의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개념인 우주적 기운, 우주 에너지, 정신 에너지 등을 아름다운 물 결정 사진과 ‘사랑과 감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다양한 반복 실험을 통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저자만의 실험 사진과 주장만을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과학적 내용이 아니라 유사과학적 내용을 담은 책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을 써놓은 통과 나쁜 말을 써놓은 통에서 언 얼음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좋은 말을 써놓은 통은 얼음 결정이 예뻤고, 나쁜 말을 써놓은 통에서 언 얼음은 결정이 못생겼다. 왜냐하면 물은 46억 년간 지구상에 있었기에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를 안다. 좋은 말을 하고, 나쁜 말을 줄이면서 물을 통해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자. 우리의 몸도 70%가 물이기에 물과 마찬가지로 좋은 말을 할수록 몸에 좋다.”
물질의 상태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 특히 저를 포함한 물리학자들이 에너지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개념에는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사랑과 미움 등 감정이나 윤리와 관련된 가치까지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는 물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물 결정이 추하게 변한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책은 과학적(?)으로 보이는 언어와 개념이 제법 쓰이고는 있지만, 사실은 ‘건강 이슈와 영육일원론’이 적절히 결합된 뉴에이지 계열의 서적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만큼 과학 개념 사용에 있어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성공과 자기계발을 위해 우주적 기운과 인간의 간절함의 중요성을 강조할 목적으로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이라는 과학적인(?) 개념을 사용한 「더 시크릿」(론다 번, 2007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출판 직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교회의 강론이나 저서에 직간접적으로 활용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은 긍정도 부정도 실체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강한 생각은 비슷한 기운을 끌어당긴다. 그러니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을 생각해라. 계속 생각해라. 그럼 우주의 에너지가 그것을 이루어줄 것이다.”
이 책 출판 이후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 비교해서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바로 물리학의 용어와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 책의 출판과 함께 공개된 「더 시크릿」 비디오의 경우 양자물리학자 한 명이 등장해서 물리학적인(?) 용어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이 책의 내용이 전 우주적인 원리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 할 수 있는 뉴턴의 중력 법칙(우리나라에서 흔히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불리고 있죠)은 인력 법칙(law of attraction)의 한 예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 중력 법칙은 어디까지나 질량을 가진 두 물체들 간의 끌어당김을 설명하는 법칙일 뿐, 비물질적 실체인 인간의 마음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책은 물질적 실체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인력 법칙을 교묘하게 비물질적 실체에까지 ‘구체적인 근거 없이 확대 적용’ 시키는 방식을 활용해서, 우주 에너지와 인간의 마음을 물리학의 인력 법칙을 통해 연결짓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물리학의 인력 법칙, 자기계발서의 공통 주제인 긍정의 힘 강조, 기복 신앙적 태도 등이 적절히 결합된 뉴에이지 서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0)과학과 신앙 간의 적절한 접목 시도를 향하여
지난 글을 통해 저는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던 책인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 2002년)와 「더 시크릿」(론다 번, 2007년)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서적들에는 공통적으로 우주적 기운, 우주 에너지, 정신 에너지 등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점을 강조해 드리고 싶습니다.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라는 개념은 철저히 물질적인 개념이라는 것 말입니다. 에너지는 과학적인 도구를 통해서 측정이 가능한 양으로서 정의되고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의 칼로리가 얼마다’라고 할 때 그 칼로리가 바로 에너지인 것입니다. 에너지는 측정이 가능한 물질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사이비 과학 내지 사이비 영성에서는 이 에너지 개념을 영적이고 정신적인 능력으로 ‘구체적인 근거 없이 교묘하게 확대 적용’시켜 해석해 자연스럽고도 모호하게 영육일원론으로 이끌어갑니다. 이런 식의 영육일원론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육체적 건강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물질적 풍요를 과도하게 추구하게 되면서 동시에 육신의 죽음 이후의 내세, 즉 영혼의 구원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태도 안에 이러한 영육일원론이 예상외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한국교회에는 점점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그들이 단지 학업, 취업 문제로 인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을 놓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미 우리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과학적 언어를 신봉하는 과학만능주의와 절묘하게 결합된 영육일원론’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육일원론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더 시크릿」에 따르면,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 개개인의 위치를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신적 위치로 자연스럽게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에이지 운동에 속한 여러 사상, 영성들은 공통적으로 인간 개개인을 신적 위치로 끌어올리는 식의 주장을 펼칩니다. 개개인의 수련을 통해서, 의지와 생각의 조절과 통제를 통해서 ‘너도 신이 될 수 있어!’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4-5)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의 유혹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과학만능주의와 절묘하게 결합된 영육일원론’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 영육일원론는 결국 무신론의 한 방식인 것입니다.
저는 다양한 종류의 뉴에이지 운동이 파급된 결과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 ‘과학만능주의와 절묘하게 결합된 영육일원론’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무신론이 가져온 폐해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 폐해는 결국 교회의 구성원들이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는” 신앙으로부터 벗어나서 비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건강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물질적 풍요를 과도하게 추구하는 식으로 만들고 맙니다. 현재 우리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사실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신앙인 모두는 이러한 폐해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신앙,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는 신앙을 제대로 회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일 예전처럼 성경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의 신앙, 과거의 창조론적 유신론으로 가게 되면 우선은 교회 전체 차원에서 신앙적 열성을 회복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우리는 하느님의 6일간의 창조로 인해 이 우주와 지구가 6000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개신교의 극보수주의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도 가톨릭교회는 이미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황청립 과학원, 바티칸 천체관측국 등의 기관들을 통해서 일선 과학자들과의 적극적인 대화에 참여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 과학의 내용을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과학만능주의의 영향에 빠지지 않고 우리 고유의 신앙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는 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주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하고, 섬기기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각자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창조된’ 이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창조된 이 목적을 위해서라도 21세기 현대 과학 시대에 걸맞은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쓰는 이 글은 바로 이 신앙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부터 저의 글은 구체적인 과학 내용을 언급하면서 우리의 신앙에 이 과학 내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드릴 것입니다. 다음부터 우리는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1)빅뱅 우주론
138억 살 우주… 끊임없이 팽창하며 언젠가 종말 맞는다
NASA 위성이 관측한 결과
우주의 가속 팽창 밝혀져
밀도 혹은 온도 0이 되면
우주는 수명 다하게 될 것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에 하느님께서 빛과 물질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빅뱅! 빛과 물질이 생겨라!!’ 하시자 빛과 물질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과 물질이 좋았다.”
2022년 현재의 물리학적 관점에 따라 창세기 1장 1-4절을 살짝 수정하면 위의 문장처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부터 빅뱅 우주론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빅뱅 우주론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무신론적 과학주의자들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과학 이론이면서 동시에 교회에서도 창조주의 우주 창조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빅뱅 우주론은 우리 우주의 기원과 현재까지의 팽창을 설명하는 물리 우주론으로서, 간단하게 말하면 초기에 매우 높은 에너지로 응축된 작은 점이 대폭발(Big Bang)을 통해서 팽창하여 현재의 우주가 되었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벨기에 출신 사제이자 루뱅 가톨릭대학교에서 활동하던 이론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 1894~1966)는 1927년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의 수학적 해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우주는 반드시 팽창해야 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밝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르메트르 신부님은 빅뱅 이론의 창시자로서 현재 모든 물리학 교과서에 이름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중력장 방정식을 만든 장본인이면서 ‘우주는 영원불멸한 존재로서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개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 신부님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학회에서 팽창하는 우주를 이론적으로 주장한 르메트르 신부님의 발표를 들은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계산은 정확하지만, 당신의 물리는 터무니없군요!”
1927년 브뤼셀의 학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인슈타인(왼쪽)과 르메트르 신부.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인 1929년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 1889~1953)이 수십 개의 외부 은하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멀리 떨어진 각 은하들의 거리와 그들이 멀어지는 속도가 비례한다는 소위 허블 법칙(Hubble’s law)을 발표함으로써 빅뱅이라는 개념은 천문학적인 첫 번째 근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각 은하들이 멀어지는 속도는 은하로부터 나오는 별빛의 파장이 속도에 따라서 원래의 별빛 파장보다 길어지는 현상인 소위 적색편이(red shift)를 관측함으로써 측정이 가능합니다. 허블 법칙은 2018년 10월 29일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의 공식 결정에 따라 현재는 허블-르메트르 법칙(Hubble-Lemaître law)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후 1964년에는 우주의 극초단파를 연구하던 미국 벨 연구소의 관측천문학자 아르노 펜지아스(Arno A. Penzias; 1933~)와 로버트 윌슨(Robert W. Wilson; 1936~)이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거의 균일하게 마이크로파 잡음(microwave noise)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마이크로파 잡음은 예전에 우리가 TV를 켜면 항상 보이는 지지직거리는 그 잡음을 말합니다. 이 마이크로파 잡음을 우리는 현재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라고 부르는데, 이는 빅뱅 이후 초기 우주의 온도가 대략 3000℃에 달할 정도로 뜨거웠고 당시 물질의 분포 또한 은하나 별이 형성되지 않은 상당히 균일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에, 빅뱅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서 현재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증거 덕분에 우주가 실제로 팽창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빅뱅 우주론은 우리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올바른 이론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우주 배경 복사의 균일도를 엄밀하게 관측하기 위해 COBE(Cosmic Background Explorer),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Planck 등의 관측 위성이 차례로 우주로 보내졌는데, 특히 미국 NASA의 과학자들이 2001년에 우주에 쏘아올린 관측 위성인 WMAP이 지구로 전송해 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임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최근에 들어서는 우리 우주의 팽창 속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는 뜻이죠.
현재 물리학자들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의 우주는 팽창을 계속하다가 우주 전체의 밀도가 ‘0’이 되는 순간 혹은 우주의 절대 온도가 ‘0’이 되는 순간 우주는 종말을 맞게 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언젠가 머나먼 미래에 우리 우주는 죽게 된다는 말입니다. 138억 년 전에 태어난 우리의 우주는 언젠가 수명을 다하고 죽음을 겪게 됩니다.
우리 우주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유한한 수명을 갖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우주는 항상 영원불멸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빅뱅 우주론은 우리 우주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한정된 수명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체는 몰라도 우주만큼은 영원불멸할 줄 알았던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심각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세상에 영원불멸한 존재는 대체 무엇이 있는가?
이 질문은 인류가 지금껏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유한한 수명을 가진 우주’라는 개념 앞에서 반드시 대면해야만 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이 질문에 대해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싶으신지요?
12)빅뱅 직후 물질의 생성
세상 모든 존재는 우주 첫 순간부터 함께하고 있다
138억 년 입자로 구성된 존재
죽어서 분해되면 다른 존재의
육체 구성하는 입자로 재사용
물리학자들이 관측 데이터와 이론에 입각하여 현재까지 정리한 빅뱅 우주론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물리학자들은 특별히 플랑크 시간(Planck time)이라고 부르며 우주에 대해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간으로 여기는 시점인 우주 탄생후 10초 뒤의 시점에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현재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고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이 적용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봅니다. 바로 이 순간에 우주 전체의 크기는 양성자보다 훨씬 작고 그 온도는 약 1032 K으로 추정됩니다.
2. 그 직후인 빅뱅 후 10초 뒤의 순간 즈음에는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기본 힘들, 즉 중력(gravity),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 및 약한 핵력(weak nuclear force)이 차례로 분리되고 공간이 급팽창하여 우주의 크기는 약 1030배 정도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 무렵 시공간 구조 내 에서의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에 의해 물질의 형성이 시작됩니다. 이때의 우주는 약 107K의 온도로 너무 뜨거워서 광자,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 등을 구성하는 입자인 쿼크(quark), 전자와 뉴트리노(neutrino) 등이 섞인 뜨거운 수프만 존재하며 양성자와 중성자는 아직까지는 형성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3. 이어서 빅뱅 후 10초 뒤의 순간 즈음에는 쿼크들끼리 서로 결합할 수 있게 되어 이제 물질(matter)인 양성자, 중성자와 그들 각각의 반물질(antimatter)인 반양성 자(antiproton), 반중성자 (antineutron)를 형성하게됩니다. 우주는 이제 냉각되고, 물질과 반물질 입자쌍, 즉 양성자와 반양성자 쌍 및 중성자와 반중성자 쌍, 이 서로충돌하여 에너지를 방출하며 사라진다. 이때 어떤 이유인지 분명치 않지만, 그 당시 물질이 반물질보다 약간 더 많이 있어서 이 여분의 물질은 반물질 상대를 찾지 못한 채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 세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빅뱅 후 약 1분의 시간이 지난 뒤 우주는 이제 충분히 냉각되어 양자와 중성자가 충돌하여 질량이 작은 핵, 즉 수소, 헬륨, 리튬 등의 핵을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우주 전체에 방사선이 생겨나지만 핵들과 상호작용을 하느라 멀리 퍼져나가지는 못합니다.
5. 빅뱅 후 약 37~38만 년 후가 되면 이제 온도는 3000K(2726.85℃)까지 떨어지고, 따로 자유롭게 존재하던 전자는 드디어 원자핵에 달라붙어 원자를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방사선은 원자와는 크게 상호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먼 거리를 자유롭게 퍼져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 방사선이 바로 ‘우주 배경 복사’를 형성합니다. 이 무렵 수소와 헬륨 원자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서로 뭉치기 시작하여 결국 은하와 별의 형성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아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 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은 빅뱅 직후 채 1초가 되지 않은 시점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우주 안에 존재하는 이 모든 기본 입자들은 ‘빅뱅 직후에만’ 생겨났으며, 빅뱅 이후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새롭게 생겨나거나 사라진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전자나 양성자, 중성자는 절대로 인위적으로 새로 생성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각자의 육체를 구성하는 모든 전자, 양성자, 중성자들은 138억 년 전 빅뱅 직후 채 1초가 안 된 시점에 만들어진 ‘바로 그것들’이라는 점을 물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 각자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 안의 원자들 안의 전자, 양성자, 중성자들은 138억 년 전 빅뱅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물, 하늘의 구름, 우주 저 바깥의 목성 주변을 도는 위성 역시도 138억 년 전 빅뱅에 의해 만들어진 기본 입자들로 구성되어있는 것입니다.
결국 물질적인 관점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사실상 우주의 첫 순간부터 함께해온 존재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빅뱅과 함께 출현한 존재, 세상 만물의 창조와 함께 이 우주 안에서 생겨나게 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138억 년 된 입자들로 구성된 육체를 가진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육체를 구성하는 그 입자들은 우리의 죽음 이후 우리 육체로부터 분해되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무언가의 육체를 구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제 먹은 삼겹살 한 덩어리 안에는 수억 년 전 한반도에서 살던 공룡의 몸을 구성하던 원자가 있을 수 있고, 내가 작년 5월에 호흡을 통해 받아들인 산소 원자가 실은 2000년 전 예수님이 내뱉은 이산화탄소 분자 안의 산소 원자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놀랍지 않으신지요? 우리는 공룡이나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서기 2022년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인데, 알고 보니 수억 년 전의 생명체 내지는 성경에서나 뵙던 예수님과도 물질적으로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따르면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창조 능력을 가진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끊임없는 입자 창조 대신에 138억 년 전의 빅뱅을 통한 단 한번의 창조를 통해 이 모든 기본 입자들을 한꺼번에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입자들의 ‘재사용’(recycling)을 통해 우주 만물이 물질적으로 구성되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제 버린 비닐봉지와 스티로폼을 구성하던 원자가 불과 100년 뒤 우리 후손의 몸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는 우리가 환경 문제,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물질도 함부로 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들 모두가 138억 년 전에 빅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육체나 다른 하찮은 물건이나 모두 동일한 시점에 만들어진 ‘고귀한 재료들’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13)미세 조율된 우주
지구가 생명체 위한 최적의 환경 갖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세 조율된 생명체 생존 조건
과학자들은 ‘인류 원리’라고 불러
인류가 우리 은하계에 생존하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 가능성 높아
밤하늘의 은하계를 6분할 추적 파노라마로 촬영한 사진.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한 기본 물리 상수들의 값이 만약 현재와 달랐다면, 우주에 원자 및 별들과 은하계 구조가 만들어지거나 생명체가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물리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주가 탄생하고 바로 이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중력 상수 등 물리학의 30여 가지 기본 물리 상수들의 값이 ‘대단히 좁은/놀라울 정도로 한정된’ 범위 내에 존재해야만 합니다. 만일 이러한 기본 상수들이 아주 약간이라도 현재의 값과 달랐다면, 우주가 빅뱅 이후 현재와 같이 팽창을 하거나, 우주 안에서 원자 및 별들, 은하계 구조가 만들어지거나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생명체가 우주 안에서 생겨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으로 많은 물리학자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물리학자들은 빅뱅을 통해 탄생하고 팽창하고 있는 우리의 우주가 “미세 조율되어 있다”(fine-tuned)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30여 가지의 기본 물리 상수들이 마치 (누군가/무언가에 의해) “미세하게/정밀하게 조율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천문학자인 마틴 리스(Martin Rees, 1942~)는 우주의 미세 조율을 (단위가 없는) 단 6가지 물리 상수들로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 설명은 미세 조율에 관한 대표적인 물리학적 설명으로 현재까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마틴 리스에 따르면 이 6가지 물리 상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N : 양성자 쌍 사이의 전자기력을 둘 사이의 중력으로 나눈 값으로서 대략 10의 값을 가진다. 이 값이 현재의 값보다 작아지게 되면, 우리의 우주는 크기가 아주 작아지게 되고 우주의 수명도 짧아지게 된다. 그리고 생명체가 진화를 할 시간적 여유도 없게 된다.
2. ε : 핵융합을 통해 수소가 헬륨으로 바뀔 때 총 질량 중에서 에너지로 변환되는 핵융합 효율을 의미하며 0.007의 값을 가진다. 이 값이 0.006이 되면, 우주에는 오직 수소만이 존재하게 되고 화학적 반응은 불가능해지게 된다. 반면, 이 값이 0.008이 되면, 빅뱅 직후에 모든 수소 원자들이 핵융합에 관여하게 되어서 수소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
3. Ω : 밀도 변수(density parameter)라고 불리며, 우주의 팽창 속도를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로서 중력과 우주 팽창 에너지가 가지는 상대적 중요성을 수치화한 값이다. 이는 우주의 실제 평균 밀도를 우주 임계 밀도로 나눈 값으로 계산하며 대략 1.0의 값을 가진다. 이 값이 줄어들면, 우주 내의 중력이 작아지게 되어서 우주 내에는 별들이 생성될 수 없게 된다. 반면, 이 값이 커지게 되면 우주 내의 중력이 너무 커지게 되어서 생명체가 우주에 출현하기 이전에 우주는 붕괴되어 버리고 만다.
4.1 : 우주 내의 척력으로 인한 가속 팽창을 유발하는 진공에너지의 밀도 값으로서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라고 불린다. 최근의 Planck 관측 위성의 측정에 따르면 우주 상수의 값은 10-122 정도로 거의 0에 가깝다. 이 값이 조금이라도 더 커지게 되면, 별들과 은하계 등의 천체 구조가 생성되지 못하게 되며, 우주는 미처 진화를 시작하지도 못하는 채 흩어지게 된다.
5.Q: 큰 은하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중력 에너지를 그 은하계의 질량에 해당하는 에너지 (정지 질량 에너지: E=mc에 의해 계산되는 값이다)로 나눈 값으로서 우주의 짜임새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대략 10% 정도의 값을 가진다. 이 값이 줄어들게 되면, 별들이 생성될 수 없게 된다. 반면 이 값이 커지게 되면, 우주가 불안정해지게 되어서 별들은 일단은 생성은 되지만 오래 생존할 수 없게 되며 결국은 거대한 블랙홀들만이 지배하는 곳이 된다.
6. D : 시공간 상에서 공간의 차원을 의미하며 이 값은 정확히 3이다. 만일 우리의 공간이 3차원이 아니게 되면 생명체는 생존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러한 우주의 ‘미세 조율’ 현상에 관해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우연히 운 좋게 우리의 우주가 이러한 조건을 만족했다고 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주의 이러한 현상에 관한 궁극적인 원인/이유를 추구해온 여러 과학자들은 (이들의 대부분이 종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공통된 주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구가 인간을 비롯한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체가 생존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생명체는 물리학적으로 현재와 같은 기본 상수들과 법칙들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하게 대폭발을 통해 만들어진 우주가 우연히 현재와 같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30여 가지의 물리 상수들을 포함한 모든 조건들이 ‘너무나 완벽해 보인다!’
생명체, 특히 인류가 우주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미세 조율된 필연적 생명체 생존 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과학자들은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인류 원리는 학자들에 따라 여러 다른 버전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어느 누구도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원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존 배로(John D. Barrow, 1952~)와 프랭크 티플러(Frank J. Tipler, 1947~)는 ‘천문학, 양자역학, 화학, 지구과학 등의 여러 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우리 은하계 내에 생존하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함으로써 인류 원리에 관한 논의가 학문적으로 널리 활성화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14)다중 우주론의 출현
무한개 우주에서 인류 원리 만족하는 우주가 ‘우연히’ 탄생했다?
거대 우주 속 각기 특성 다른 여러 작은 우주들이 있고
생명체 허용하는 특성 지닌 하나 이상 우주 존재한다는 것
과연 과학적 설득력 있을까
다중 우주론을 묘사한 제이미 살시도의 그림.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이 나름의 이론적 근거로 마련한 것이 ‘다중 우주론’이다. 다중 우주론 지지자들은 무한개의 우주들 가운데 아주 예외적으로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우리 우주가 우연히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지난번에 인류 원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인류 원리란 생명체, 특히 인류가 우주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미세 조율된 필연적 생명체 생존 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말합니다. 인류 원리는 1974년 호주의 물리학자 브랜든 카터(Brandon Carter; 1942~)에 의해 처음 명명된 이래로 과학자들에 따라 여러 다른 버전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어느 누구도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원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리처드 도킨스조차도 현대 우주론에서 인류 원리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평범 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특별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불행히도 평범 원리는 ‘인본’ 원리에 밀려나 무력해진 상태다. 인본 원리는 우리 태양계가 사실상 우주에서 유일한 행성계이며, 이곳이 바로 그런 문제들에 골몰하는 우리가 살아가게 되어 있는 곳이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으로 우리가 평범하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114~115쪽) 여기서 말하는 인본 원리가 인류 원리입니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작업들은 인류 원리에 관한 유신론적 해석, 즉 ‘인간 및 생명체가 지구에만 생존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창조주의 의도적인 계획 혹은 설계자의 치밀한 설계에 의한 것이다’라는 식의 해석이 널리 퍼져나가도록 이끌었습니다. 결국 여러 유신론적 과학자들과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옹호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신론자들 측이 인류 원리를 열렬히 환영한 대표적인 증거로는, 미국의 존 템플턴 재단(John Templeton Foundation)이 매년 종교 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크게 이바지한 인물들에게 주는 소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템플턴 상(Templeton prize)을 미세 조율과 인류 원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주요 인물들인 폴 데이비스(1995년)와 존 배로(2006년), 마틴 리스(2011년)에게 수여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폴 데이비스가 템플턴 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조롱한 적이 있습니다.
“이따금 종교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물리학자들도 대부분 그렇다. 폴 데이비스의 책 「신의 마음」은 아인슈타인식의 범신론과 모호한 이신론 사이를 떠도는 듯하다. 그 책은 그에게 템플턴 상(템플턴 재단이 매년 수여하는 상금이 꽤 많은 상으로서 대개 종교에 관해 멋진 말을 한 과학자에게 수여된다)을 안겨주었다.”(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34쪽)
상황이 이러다 보니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은 현재까지는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이 인류 원리를 적절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그들이 주장하는 무신론이 옳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으로부터 탄생한 ‘무신론적 우주론’이 바로 요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다중 우주론’(multiverse theory)입니다.
다중 우주론은 여러 다양한 버전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합니다: 사실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많으며, 그 수많은 우주들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이다. 각각의 우주는 마치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비눗물로 만들어내는 비누 거품들처럼 빅뱅이라는 과정을 통해 급팽창하여 생겨나다가 나중에 수명을 다해 사라지고, 또 다른 새로운 우주가 생겨나서 급팽창하여 생겨나다가 사라진다.
이 다중 우주 아이디어는 빅뱅 직후 우주의 급팽창이라는 기존의 개념에 당시 널리 통용되던 인류 원리를 결합시킴으로써 생겨났습니다. 만일 우주가 우리의 우주 하나만 존재한다면 우주의 필연적 창조주 혹은 설계자라는 개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던 당시의 몇몇 이론물리학자들은 우주들이 무한히 많다고 상정함으로써 ‘무한히 많은 우주들 중에서 우연히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여 우주 탄생의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만든 아이디어인 것이죠.
“설계 논증(argument from design; 설계자이신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논증)은 우리의 우주가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기반한 신의 실재에 관한 논증이다. 다중 세계 논증(argument for multiple worlds)도 같은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다중 세계 논증은 실재의 전체인 거대 우주 안에 여러 작은 우주들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고 있다. 이 ‘우주들’, ‘미니 우주들’, ‘세계들’은 크기가 어마어마할 수 있다. 이런 우주가 엄청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우주들의 특성은 각기 아주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 중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우주는 생명을 허용하는 특성을 가질 것이며, 우리가 발견하게 될 생명체들은 바로 이 생명을 허용하는 우주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마치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 우주는 단지 조만간에 (그 우주의 특성이) 예상될 종류의 것이다. 타자기를 주고서 충분히 오랜 시간을 주면 원숭이조차도 소네트(sonnet)를 작곡할 것이다.”(캐나다의 철학자 존 레슬리)
다중 우주론 지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들의
총 개수는 우주 상수(cosmological constant) △의
역수인 10122개(즉, 1 뒤에 0이 무려 122개나 붙은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으
로 계산됩니다.
이렇듯이 사실상 무한개의 우주들 가운데 아주 예외적으로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우리 우주가 우연히 탄생했다고 말하면 우연성에 기반하고도 우리 우주의 인류 원리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중 우주론은 과학적 설득력을 갖춘 이론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15)다중 우주론은 과연 과학적인 이론인가?
개념과 풀이로만 설명 가능한 이론… 관찰과 검증 사실상 불가능
다중 우주론 옹호하는 이유는
극단적 우연과 ‘신’ 도입 없이도
인류 원리 설명 가능해서일 듯
물리학적·실재적 근거 없는 이론
과연 설득력 얻을 수 있을까
다중 우주론을 상상해 표현한 그림. ‘무한히 많은 우주들 중에서 우연히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다’는 주장으로 우주 탄생의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지만, 과학적 설득력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글에서 저는 요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우주론인 ‘다중 우주론’(Multiverse Theory)에 관해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말고도 상당히 많은 다양한 우주가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만일 우주가 우리의 우주 하나만 존재한다면 우주의 필연적 창조주 혹은 설계자라는 개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던 당시의 몇몇 이론물리학자들은 우주들이 무한히 많다고 상정함으로써 ‘무한히 많은 우주들 중에서 우연히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여 우주 탄생의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죠.
그런데 다중 우주론은 사실상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중 우주의 존재는 실험/관측을 통한 물리적 검증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다중 우주론이 주장하는 개별 우주들은 사실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우주에서 다른 우주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연과학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과학은 반드시 관찰/관측/측정을 통한 확인 작업이 가능한 대상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확인 작업이 불가능한 다른 우주의 존재에 관해 말하는 것은 수학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 이론을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우주 이외 다른 우주들은 우리 상상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주가 최소 10의 122승 개 이상이나 있다고 이 이론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활동 중인 여러 물리학자들이 다중 우주론에 대해 비판을 하는 분위기입니다. 단적으로, 양자색소동력학(Quantum Chromodynamics)에 관한 업적으로 2004년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데이빗 그로스(David Gross·1941~)는 다중 우주 개념을 맹비난하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프린스턴대학교의 세계적인 우주론자인 폴 스타인하르트(Paul Steinhardt·1952~)는 다중 우주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증 불가능하며, 따라서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사실 다중 우주론을 옹호하는 학자들도 다중 우주론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다른 우주의 실재성과 검증 가능성’ 문제에 대해 이미 잘 인식하고 있으며, 바로 이 문제로 인해 최근까지 학문적으로 다양한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다중 우주론의 강력한 옹호론자인 미국 MIT의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1967~)는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해 우리가 그 예측을 모두 관찰하고 검증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적어도 하나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중 우주론이 그 관찰과 검증 중에 “적어도 하나”라도 과연 만족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중 우주의 존재는 물리적 관찰도, 물리적 검증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오직 머릿속의 개념과 종이 위의 수학적 해를 통해서만 설명 가능한 가상적 우주를 과연 우리가 존재하는 실재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현재 다수의 ‘과학만능주의적 과학자들’은 다중 우주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그 주장의 기저에는 신/창조주라는 개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 거부감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책을 통해서 다중 우주론에 투영된 자신의 무신론적인 관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력은 공간과 시간의 모양을 결정하므로 시공이 국소적으로는 안정적이 되고 광역적으로는 불안정적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 우주 전체의 규모에서 양의 물질 에너지는 음의 중력 에너지와 균형을 이룰 수 있고, 따라서 우주 전체의 창조에 제약이 없다. 중력과 같은 법칙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제6장에서 기술한 방식으로 무로부터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고 창조할 것이다. 자발적 창조야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신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도 몰로디노프 「위대한 설계」 227-228)
또한 철학자이면서 다중 우주론의 강력한 옹호자인 존 레슬리(John Leslie)는 ‘창조주 개념의 도입보다는 다중 우주론의 도입이 논리적으로 더 낫다’는 주장을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이 부재하는 경우 우리의 탄생은 어마어마한 운 덕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예를 들어, 우리 우주의 대칭성이 아주 약간 다르게 깨어졌다면 생명체는 우리 우주에서 결코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뭐? 다중 세계 가설은 몇몇 존재가 탄생하기 위한 엄청난 운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지를 보여준다. 그것들이 극단적으로 운이 좋을 수는 있지만, 그 운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은 아니다.”
마틴 리스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우주론 연구 중 인류 원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설득력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뿐입니다:
1. ‘우연히’ 인류 원리를 충족시키는 우주가 탄생했음을 받아들이는 것.
2. ‘신/창조자/설계자에 의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미세 조율을 통해 조성된 인류 원리를 만족하는 하나의 우주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
3. 엄청난 수의 다중 우주들 중에서 인류 원리를 만족하는 ‘하나의 우주가 우연히’ 발생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설명이 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이 있을까요? 다중 우주론 지지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이론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우연과 ‘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 없이 우리 우주의 인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다중 우주론 옹호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다중 우주론이 머릿속의 개념과 수학적인 접근에만 기반을 둔 나머지 물리학적인/실재적인 근거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오히려 ‘신/창조자/설계자에 의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미세 조율을 통해 조성된 인류 원리를 만족하는 하나의 우주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중 우주론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16)진화론의 등장 배경
생명체가 긴 시간 동안 진보적 발전 거듭한 것으로 해석
지구가 긴 시간 큰 변화 했다고
지층 연구 통해 본격적으로 증명
각 지층에 있는 화석 연구하며
생명체의 진화도 추측하게 돼
이제 우리는 진화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무신론의 아주 중요한 배경이 되는 이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창조주의 생명 창조를 현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론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진화론만큼이나 오해와 무지, 무조건적인 지지와 무조건적인 비난이 복잡하게 뒤엉킨 과학 이론은 역사상 없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됩니다. 그 정도로 진화론은 내용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론입니다. 하지만 정작 진화론의 내용과 현재의 연구 방향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여전히 논란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이 진화론은 원래 여러 종류가 있었으나, 현재는 다윈주의(Darwinism), 좀 더 정확하게는 20세기 초중반에 집단 유전학(Population Genetics)과 결합되어 정립된 신다윈주의(Neo-Darwinism)가 정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윈주의 내지 신다윈주의가 생겨나기 전까지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윈주의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에 진화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먼저 등장한 중요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바로 지질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19세기에 이르러서 지구가 인류의 출현 이전에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큰 변화를 거듭해왔다는 점을 지질학자들이 지층 연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증명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6일간의 창조에 관한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더 이상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6일간의 창조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지구의 나이는 대략 6000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지질학자들은 수억 내지 수십억 년을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학자들이 각 지층에 있는 화석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명체가 아주 오래전에는 원시적인 형태로 출현했다가 길고 긴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체의 조직이 더욱 커지고 복잡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18~19세기 동안 유럽의 많은 학자들은 생명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점 진화라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 그는 저서를 통해 진화론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던 와중에 본격적으로 진화론을 주장하는 인물이 영국에서 등장했는데 그는 바로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1731~1802)이라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1794년에 「주노미아」(Zoonomia)라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장합니다:
에라스무스 다윈의 저서 「주노미아」
지구의 머나먼 과거에 단순한 유기체로부터 자연발생적인 과정에 의해 생명의 근원이 생겨났으며 그 이후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여러 세대를 거쳐 점진적이고도 필연적인 더 높은 수준의 조직화, 복잡화를 통해 생명체가 진화를 하게 되었다. 에라스무스 다윈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영국의 지식인들 층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장-바티스트 라마르크의 ‘라마르크주의’를 표현한 그림. 라마르크는 기린이 높은 가지에 있는 잎을 먹기 위해서 목을 늘이는 과정을 되풀이한 결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 후 프랑스에서는 ‘용불용설’(用不用說·Theory of Use and Disuse)로도 잘 알려져 있는 라마르크주의(Lamarckism)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라마르크주의는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1744~1829)가 1809년 그의 저서 「동물 철학」(Philosphie Zoologique)을 통해 제안한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생물이 살아있는 동안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획득된 형질(Acquired characteristics)은 다음 세대에 유전되어 진화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주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라마르크 본인이 언급한 예는 바로 기린의 목이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기린은 일생 동안 높은 가지에 있는 잎을 먹기 위해서 목을 늘이는 것을 되풀이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오랜 기간 지속한 결과, 기린의 목은 점점 늘어나게 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죠. 결국 동물이 어떤 기관을 다른 기관보다 더 자주 쓰거나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은 사용되는 시간에 비례하여 점점 발달하게 되어 크기가 커지거나 길이가 길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관은 점점 퇴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라마르크의 주장과 달리 획득된 형질은 유전되지 않음이 후에 밝혀져 현대의 진화 이론에서는 그다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후 1840년경이 되면 이미 오늘날 받아들여지는 것과 흡사한 내용의 지구 역사의 개요가 지질학자들에 의해 소개됩니다. 이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원시적 무척추동물에서 어류의 시대, 파충류의 시대, 포유류의 시대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인류가 나타난 오늘날까지 생명이 진보적 발전을 거듭해 온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1839년부터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를 하던 영국은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대단히 넓은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의 귀족들과 중산층에서는 개와 비둘기 등을 키우는 문화가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것은 그때 개와 비둘기를 키우는 열풍이 새로운 품종 개발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전까지는 사냥이나 양치기, 쥐잡기 등 목적에 맞게 개를 교배해 만드는 정도였었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는 영국의 귀족들과 중산층이 개와 비둘기의 ‘미적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육종사(Breeder·브리더)들도 전문화되기 시작합니다. 덩치는 작게, 눈은 크게, 얼굴은 평평하게…. 이런 식으로 영국인들의 미적 욕망에 맞게 새로운 개와 비둘기의 품종 개량이 대유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개 품종은 400종이 넘는데 이들 중에서 적어도 3분의 2 이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앞서 소개한 에라스무스 다윈의 손자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1882)에 의해 새로운 진화론인 다윈주의가 드디어 등장하게 됩니다.
(17)다윈주의의 등장
모든 종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자연 선택’으로 진화한다 주장
각 종들이 독립적이고 평행하게
진화한다는 라마르크와 달리
‘자연 선택’ 통한 새 진화론 제시
다윈이 갈라파고스 탐사를 통해 밝혀낸 진화 이론을 표현한 그림.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는 하나의 섬에 살던 같은 종의 핀치새들이 여러 섬으로 흩어진 뒤 각 섬마다 생존에 적합한 부리를 가진 핀치새들만 살아남게 됐다는 설명이다.
다윈주의는 영국 내에서 진화론자로 널리 알려진 에라스무스 다윈의 손자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1882)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립되었고 대중적으로도 크게 알려진 진화 이론입니다.
그는 1831년 ‘비글’(Beagle)이라는 이름의 탐험선에 박물학자로서 탑승한 후 1836년까지 약 5년 동안 갈라파고스 제도를 포함한 여러 지역을 탐사 여행하는 과정에서 진화에 관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찰스 로버트 다윈.
고향에 돌아온 후 그는 1858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1823~1913)와의 공동 논문을 통해, 생물의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졌으며 인위 선택인 선택적인 교배와 비슷한 현상이 생존경쟁을 거쳐 이루어지는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 해인 1859년에 기념비적인 저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을 발표하며 자연 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진화론을 제시합니다.
기존의 라마르크주의에 따르면, 종들(species)은 서로 독립적이고 평행한 방식으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새로이 정립한 진화 이론인 다윈주의에 따르면, 종들은 그들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진화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다윈이 사망하기 전에 이 책은 6판까지 나오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다윈주의적 진화론에 관한 그의 확신은 책의 문체를 통해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부분은 ‘다윈주의적 진화론의 윤곽’을 개략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우선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개와 비둘기 등 여러 가축들의 사례를 들면서 그 가축들의 야생종은 어떠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그 후 육종사의 ‘품종 개량’을 통해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원래의 야생종과 길들여진 가축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기게 된 까닭은 바로 인위적인 품종 개량, 즉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공 선택’(artificial selection)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후 당시 영국에서 널리 읽혔던 서적인 토머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1766~1834)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얻은 ‘인구와 식량의 불균형’이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종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메커니즘으로서 ‘(인간이 아닌) 자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많은 개체 수와 경쟁, 생존과 멸종이라는 자연적 과정에 의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게 됩니다.
그는 가축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불과 몇 세대 동안에 이루어진 인공 선택에 의해서도 엄청난 차이가 발생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된 자연 선택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냐고 주장합니다. 결국 이 첫 번째 부분은 품종 개량을 담당하는 ‘육종사’를 ‘자연’으로, ‘인공 선택’을 ‘자연 선택’으로 자연스럽게 치환하는 방식으로 ‘자연 선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새로운 개념인 ‘자연 선택’이 다윈주의의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찰스 로버트 다윈의 책 「종의 기원」.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다윈 본인이 인식하고 있는 ‘진화론의 여러 난점들’을 설명합니다. (다윈의 책 출판 이후 수많은 진화론 반대자들의 주된 공격 내용들을 다윈은 이미 자신의 책 안에서 스스로 솔직하게 밝혔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눈(eye)처럼 ‘극도로 완벽한 기관’이 자연 선택을 통해 어떻게 우연적으로 생겨났는지, 뻐꾸기가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그 둥지의 어미에게 새끼를 대신 키우게 하는 ‘탁란’ 방식과 생식력이 없는 일개미 집단에서 ‘협동’(cooperation)이 일어나는 방식 등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등에 관해 스스로 설명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자신의 자연 선택 이론을 입증하기에는 한 종으로부터 다른 종으로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소위 ‘중간 화석들’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의 세 번째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다윈은 화석 자료가 비록 미비하지만 그럼에도 종의 시간적 변화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그는 식물과 동물의 지리적 분포와 흔적 기관 등을 볼 때 자연 선택에 기반한 그의 새로운 진화론이 생명 종이 고정되어 있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통념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윈은 이 책의 출판 직후부터 영국 성공회로부터 거센 공격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한 공격이 있을 줄을 이미 예상했으면서도 다윈이 자신의 이론의 약점을 자신의 저서 안에서 자세히 밝힌 것을 보면 그는 상당히 솔직하고 투명하면서 대범한 과학자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의 진화론이 구체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학문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다윈 당시 영국 성공회 측이 다윈을 공격한 내용들은 1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다윈주의를 공격할 때 주로 활용하는 근거들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18)신다윈주의의 등장과 대성공
‘많은 개체 수’ ‘변이’ ‘선택’을 진화 위한 필수요소로 설명
굉장히 많은 개체로 구성된 種
다양한 형질 변화가 유전되고
차등적 생식으로 번식 가능하며
경쟁서 살아남아야 ‘진화’ 가능
회색늑대(Canis lupus·왼쪽)와 그 아종 가운데 하나인 히말라야 늑대(Canis lupus chanco·오른쪽). 하나의 종 내에서 다양한 변이가 생겨나는 단기간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찰스 다윈의 이론은 20세기에 들어서 멘델의 유전 법칙으로 대표되는 집단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의 관점과 결합되어 현재와 같은 진화 이론 체계를 구축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이 이론을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부릅니다. 신다윈주의를 완성시킨 학자들로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1. 로널드 피셔(Ronald Aylmer Fisher; 1890~1962): 1930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자연선택 유전학 이론」(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은 집단 유전학의 관점에서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을 함께 묶어 설명하려 시도한 최초의 책으로, 환경에 의한 선택이 어떻게 집단 내에서 유전자의 비율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적응 진화(adaptive evolution)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통계학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2.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00~1975): 1937년 출판된 도브잔스키의 책 「유전학과 종의 기원」(Genetics and the Origin of Species)은 피셔가 그러했듯이 단지 이론적 주장만을 펼친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실험적인 증거와 함께 유전학의 용어로 진화 과정에 대한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 책은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을 효과적으로 결합한 성공적인 시도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3.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1904~2005): 유전학적 배경지식이 없었던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종 분화의 원인보다는 종 분화의 결과를 주로 논했던 반면, 마이어는 피셔, 도브잔스키와 마찬가지로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을 통합해 ‘종 분화의 원인’을 규명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는 특히 ‘생물학적 종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했는데, 그에 따르면 종은 실제적으로나 잠재적으로 ‘상호 교배하는 자연 집단 전체’를 일컫는 개념이며 다른 집단과는 생식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Canis lupus familiaris)는 늑대(=회색늑대; Canis lupus)와 교배가 가능하며 자손 번식도 가능하기 때문에 독립된 종이 아니라 회색늑대종에 속하는 동물로 분류됩니다.(참고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은 마이어가 정의한 이러한 종의 개념에 따라 정의될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종을 정의합니다.) 그는 한 생물체 집단이 주요 집단에서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격리되면 그 집단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형질을 갖도록 진화되며 다른 집단과는 더 이상 교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의 신다윈주의의 해석에 따르면, 한 종에서 다른 새로운 종으로의 진화를 위한 자연 선택은 우선 엄청나게 많은 개체들(population)로 구성된 하나의 종이 다음의 네 가지 조건들을 완전히 충족시킬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1. 다양성(variability/variation): 외부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개체들의 형질(character)이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
2. 유전성(heritability/heredity): 외부 환경에의 적응(fitness)으로 인해 발생된 다양성이 후세에 유전될 수 있어야 한다.
3. 차등 생식(differential reproduction): (유전 가능한) 변이(mutation)를 통해 나타나는 차등적인 생식을 통해 다양한 형질의 후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4.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특정 형질을 가진 후손들이 환경에 적합하게 적응하여 다른 개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후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자연 선택의 네 가지 조건들은 형질에 관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발견 이후에는 다음과 같이 보다 간단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1. 유전성은 세포핵 내의 DNA를 통해 후손에게 유전 정보가 전달 되는 것이 가능할 때 이루어진다.
2. 다양성과 차등 생식은 수많은 개체에 포함된 DNA의 일부분에 변이(mutation)가 발생될 때에 일어난다.
3. 적자생존은 자연(환경)에 잘 적응해서 더 빨리 성장하고 더 잘 살아남는 형질이 선택(selection)될 때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현대의 진화 생물학의 정의에 따르면, 진화는 많은 개체수(population), 변이(mutation) 및 선택(selection)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일종의 동력학(dynamics)으로 명확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없거나 불완전하면 진화된 양상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것이 결국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요소는 진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입니다.
찰스 다윈이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다윈주의적 진화 개념을 처음 소개한 이후, 현재까지 100여 년의 진화론 역사 안에서 다양한 진화론적 발전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특히, 분자생물학 및 집단 유전학이 크게 발전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 종 내에서 다양한 변이가 생겨나는 단기간의 진화 과정’을 많은 개체수, 변이 및 선택이라는 요소들을 통해 설명하는 경우는 분자생물학적 관점을 포함한 신다윈주의에 의해 대단히 잘 설명되고 있는 중입니다.
짧은 시간 알파부터 오미크론까지 다양한 변이가 등장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김도현 신부 제공
예를 들어, 바이러스나 다른 단세포 생물을 대단히 많은 개체를 준비한 후 특정한 환경에 두고 며칠간 지켜보면 그 대단히 많은 개체들 중의 극소수에서 DNA의 변이가 발생되면서 같은 종을 유지하면서도 형질이 다른 개체들이 발생하게 됨을 쉽게 실험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삶을 심각하게 괴롭히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알파(α)부터 오미크론(ο)까지 다양한 변이가 등장한 것이 바로 이러한 진화의 단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또한 회색늑대종의 아종인 개의 여러 품종들 역시 ‘한 종 내에서 다양한 변이가 생겨나는 단기간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 종 내의 진화’를 ‘소진화’(microevolution)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신다윈주의는 과연 완벽한 진화론인가?①
진화는 진보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 변이 과정 그 자체일 뿐
대진화 전체 과정을 설명하는
통합적 이론 아직 나오지 않아
자연 선택으로 새로 출현한 종
더 진보한 종으로 보기 어려워
저는 지난 글을 통해 분자생물학 및 집단 유전학이 크게 발전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 종 내에서 다양한 변이가 생겨나는 단기간의 진화 과정’을 많은 개체수, 변이 및 선택이라는 요소들을 통해 설명하는 경우는 분자생물학적 관점을 포함한 신다윈주의에 의해 대단히 잘 설명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에 덧붙여서 과거에 있었던 공통의 조상 종에서 새로운 후손 종들로의, 즉 ‘한 종으로부터 다른 종으로의’ 진화 과정 역시도 분자생물학적 작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상황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신교의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이 내용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침팬지와 인간은 2000년대 들어서 DNA 유전 염기 서열의 분석을 통해 살펴볼 때 서로 간에 아주 유사한 (95~99% 동일한!) DNA를 갖고 있음이 수차례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침팬지와 인간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다른 종들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차드에서 발견된 화석을 통한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와 인간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시점은 대략 600~700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듯이 과거에 있었던 공통의 조상 종에서 새로운 후손 종들로의 진화 과정을 흔히 ‘대진화’(macroevolution)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우리가 대진화에 대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은 ‘언젠가 머나먼 미래에 침팬지에서 사람으로 진화하지 않을까’하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화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직후부터 많은 이들이 오해했던 것인데요, 이러한 진화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이미 다윈은 설명했습니다. 침팬지는 수만 년이 지나도 좀 더 진화된 침팬지 내지는 침팬지로부터 갈라져 나간 다른 새로운 종이 될 뿐 우리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공통의 종에서 일단 개개의 종으로 분화된 이후에는 그 개개의 종이 서로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개구리가 수만 년 뒤에 악어나 새가 될 거라는 식의 일반인들의 상상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지 “개구리와 악어, 새는 공통의 조상 종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윈은 바로 이러한 종의 기원과 분화를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라는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했습니다. 나무의 가지들은 일단 갈라져서 자라면 그 가지들이 서로 다시 붙는/결합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다윈은 나뭇가지 그림을 활용해서 종의 기원과 분화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죠.
이렇듯이 다윈은 「종의 기원」을 집필할 때 대진화의 과정, 즉 한 공통 조상 종으로부터 다른 새로운 종들로의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반인들은 진화론이 다윈의 목표에 이미 완전히 도달한 것으로 현재 믿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그럴까요?
현재까지의 연구를 살펴보면, 대진화에 관한 학문적 완성은 일반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진화론에 있어서 대단히 심각한 점은, ‘대진화의 전체 과정’에 관해 권위 있게 설명하는 통합적 이론이 아직까지 제대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진화와 관련해서 진화론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1.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
2. 진화의 속도는 점진적인 것인가 아니면 급격한 것인가?
3. 진화 메커니즘과 생명 현상은 분자생물학의 대상인 유전자 수준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4. 생물의 형질은 자연선택과 얼마나 관련이 되어 있는가?
5. 개미나 벌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라는 현상은 진화의 결과인가?
6. 신다윈주의만이 성공한 진화 이론인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 발표 전인 1837년 연구 노트에 그린 ‘생명의 나무’ 스케치.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이제 첫 번째 질문인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진화론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도 고민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우리가 ‘진화’라는 말을 접할 때 가장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바로 ‘진보’(progres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진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보다 미래에 점점 더 좋아지는/발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죠. 몇몇 진화론자들은 진보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 더 구체적인 과학적 개념으로 ‘복잡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진화는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인 것이죠.
복잡성의 증가로서 진화를 해석한 단적인 예로는 베이징 원인(Homo erectus pekinensis)을 발견한 탐사대를 이끌었던 예수회 신부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S.J, 1881~1955)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인간 현상」(Le Phénomène Humain)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의식의 복잡화의 증가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물질, 생명, 인간, 초의식으로의 진화 과정을 당시의 물리학 및 진화 생물학의 개념들을 빌려 일관되게 통합적으로 설명하려는 전대미문의 시도를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떼이야르 신부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하지만 떼이야르 신부님을 비롯해서 ‘진화’를 ‘진보’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보는 소위 정향진화론(orthogenesis)의 관점을 주장한 학자들은 20세기 이후 신다윈주의 학자들로부터 크게 비판을 받게 됩니다. 단적인 예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는 정향진화론적 사고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며, 최종 목적도 방향성도 없는 변이 과정 그 자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하였습니다. 현재의 많은 진화론자들은 굴드의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20)신다윈주의는 과연 완벽한 진화론인가?②
진화의 속도를 가늠할 ‘중간 화석’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
아직은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
아무도 확실한 대답 못하는 상황
시조새 화석. 중간 화석은 대진화의 중간 과정을 설명하는 멸종 생명체 종의 화석을 말하며, 시조새의 화석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현재까지 총 12개의 시조새 화석이 발견됐다.
저는 지난 글을 통해 대진화와 관련해서 진화론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1.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
2. 진화의 속도는 점진적인 것인가 아니면 급격한 것인가?
3. 진화 메커니즘과 생명 현상은 분자생물학의 대상인 유전자 수준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4. 생물의 형질은 자연선택과 얼마나 관련이 되어 있는가?
5. 개미나 벌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라는 현상은 진화의 결과인가?
6. 신다윈주의만이 성공한 진화 이론인가?
이제 두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계통 점진주의’(phyletic gradualism)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정설로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계통 점진주의는 종의 진화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세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으로서 찰스 다윈 이래로 리처드 도킨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진화론자들이 지지해왔습니다.
다윈이 살아생전에 진화와 관련해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들 중 하나는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화석기록의 불충분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화석기록이 진화의 매 단계마다 충분히 남아 있다면 이를 연대별로 배열했을 때 급격한 변화보다 ‘점진적인’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죠. 하지만 현실은 다윈 본인이 이미 걱정한 바와 같이, 한 종으로부터 다른 종으로의 진화를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근거로서 받아들여지는 ‘중간 화석’(intermediate fossil; ‘missing link’라고도 불립니다)이 기대만큼 많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간 화석’은 대진화의 중간 과정을 설명하는 (현재는 멸종된) 생명체 종의 화석을 말하며, 시조새(Archaeopteryx)의 화석들이 그 대표적인 예로서 흔히 언급되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총 12개의 시조새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중간 화석은 대진화 과정을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진화를 옹호하는 학자들과 대진화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죠. 그래서 이 중간 화석의 발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소위 창조과학 추종자들이 대진화를 공격할 때 항상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창조과학 추종자들의 이러한 공격에 대해 대진화 지지자들은 한 종으로부터 새로운 종으로의 전이가 작은 집단 안에서, 좁은 장소에서, 그리고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나기 때문에 중간 화석을 발견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 중인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 호미니드 화석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그리고 더 나아가 계통 점진주의의 강력한 옹호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미국의 한 여성 창조론자와의 대화를 인용하면서, 미국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Smithsonian Natural History Museum)에 보관 중인 호미니드(hominid) 화석들에 이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고생 인류(archaic Homo sapiens) 및 현생 인류(modern Homo sapiens) 등의 중간 화석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간 화석들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또 다른 중간 화석들도 현재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그는 대진화 반대론자들이 “화석이 없군요, 증거를 보여주세요, 화석이 없군요…”를 무한 반복하면서 중간 화석을 제시하면 또다시 그 중간 화석과 다음 진화 상태 사이의 또 다른 중간 화석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비난합니다.
사실 고생물학, 천문학 등의 학문은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빠른 시일 내에 축적할 수 있는 물리학이나 화학과 달리 몇 개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관측/관찰을 해야 합니다. 특히 고생물학의 경우는 땅을 파서 특정한 모양의 화석들을 발굴해야만 과학적인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데, 동일하거나 적어도 유사한 화석을 여러 개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이러한 화석들이 오랜 기간 땅에 묻혀 있는 동안 변형이나 소실이 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중간 화석의 개수 부족 문제는 고생물학의 학문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한계로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계통 점진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스티븐 제이 굴드는 1972년 닐 엘드리지(Niles Eldridge·1943~)와 함께 ‘단속 평형 이론’(Theory of Punctuated equilibrium)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들은 화석상의 기록이 불연속적인 이유가 실제로 불연속적인 변화들이 진화를 이끌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화는 점진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대신 일정한 정체기를 지나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인 단속 평형 이론을 발표한 것입니다. 따라서 단속 평형 이론은 진화의 속도가 시기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럼 계통 점진주의와 단속 평형 이론 중에 어느 이론이 더 올바른 이론일까요? 아직 아무도 확실하게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지는 못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21)신다윈주의는 과연 완벽한 진화론인가?③
진화는 ‘유전자’나 ‘적응’에 의해 결정? 단정할 만한 결과는 없어
유전자 만능론에 빠질 위험 있고
열등 유전자 차별로 이어질 우려도
실제로 생명체의 많은 형질들은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란 반론도
저는 지난 글을 통해 대진화와 관련해서 진화론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속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1.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
2. 진화의 속도는 점진적인 것인가 아니면 급격한 것인가?
3. 진화 메커니즘과 생명 현상은 분자생물학의 대상인 유전자 수준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4. 생물의 형질은 자연선택과 얼마나 관련이 되어 있는가?
5. 개미나 벌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라는 현상은 진화의 결과인가?
6. 신다윈주의만이 성공한 진화 이론인가?
이제 세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소위 ‘유전자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에 입각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유전자 결정론은 진화 메커니즘, 더 나아가서 인간 행동까지도 개체나 집단이 아니라 유전자의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에 대한 유전자 중심적 관점을 대중화하고 밈(Meme)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1976년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로 널리 알려진 진화론자로서 현재까지 과학적 무신론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죠.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전달하는 운반체에 불과하게 됩니다.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유전자 결정론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은 개미 연구를 통해 동물의 사회적 행동과 진화의 연관성을 모색함으로써 사회적 동물들의 사회 현상을 생물학적 방식을 통해 설명하려 시도하는 소위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을 주창하였습니다. 사회생물학은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을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여기에는 인간의 행동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윌슨의 생물학적 기초는 바로 유전자가 되겠습니다. 그는 사회적 동물들의 사회 현상을 유전자의 수준에서 고찰할 때 자연선택이 결정적으로 작동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어떻게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이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종교와 윤리 등)도 역시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 생물학과 진화론적 방법론을 통해 분석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적 생명관을 담은 영화 ‘가타카’(1997) 한 장면. 영화는 유전자가 모든 생명 현상에 우선한다는 주장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영상 갈무리
하지만 도킨스와 윌슨의 관점은 자칫 유전자만 이해하면 모든 생명 현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소위 유전자 만능론으로 빠질 가능성이 다분히 있으며, 특히 인간을 대상으로 고려하게 될 경우 이 관점은 인류 역사에서 큰 문제를 야기한 우생학(Eugenics)과 유사한 것으로 곡해될 우려가 다분히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당연히 유전자의 우월적 지위보다는 생물 개체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 등 다른 요인들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식으로 나아가게 되죠.
대표적으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동료인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 1929~)에 따르면, 유전자만 들여다보아서는 생명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유전자 차원, 유기체 차원, 환경과 이들의 상호작용이라는 차원을 깊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생명체의 본성이 제대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전자 결정론은 사라진 이론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유전자 결정론을 대체하는 관점이 주류를 이루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이제 네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번째 질문은 적응주의(adaptationism)와 관련된 것입니다. 진화론의 역사 안에는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의 적응(adaptation)이 형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해 오랫동안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여기서 적응이란 생물이 생존에 유리하도록 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몇몇 학자들은 극단적으로 생물의 ‘모든’ 형질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이를 적응주의라 부르고 있죠.
이 적응주의에 따르면 한 생명체의 모든 형질은 그 생명체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에 적합하도록 자연선택된 결과인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진화론자들이 적응주의를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티븐 제이 굴드의 경우는 생명체의 많은 형질이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적응주의를 공격하기 위해서 동료인 리처드 르원틴과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을 진화론에 끌어들여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 내부. 기둥 위에 아치를 세우고 그 위에 돔을 만들다 보면 아치와 돔 사이에 삼각형 모양의 휘어진 면(빨간 색 동그라미 표시 부분)이 나타나는데,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은 이처럼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스팬드럴 부분을 예로 들면서 생명체가 지닌 많은 형질들이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산 마르코 대성당처럼 돔형의 건축물을 지을 경우 기둥 위에 아치를 세우고 그 위에 돔을 만들다 보면 아치와 돔 사이에 홀쭉한 삼각형 모양의 휘어진 면이 생기게 되는데 이 부분은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라 아치 위에 돔을 올리는 건축물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부산물’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이 면은 사실 펜던티브(pendentive)인데 굴드와 르원틴이 그들의 논문에서 ‘스팬드럴’(spandrel)이라고 잘못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성당을 건축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부산물로 생겨난 스팬드럴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그 공간에도 그림이나 조각을 장식했죠. 굴드와 르원틴에 따르면, 스팬드럴은 성당을 최상으로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고안된 공간이 아니며 그저 건축 과정으로부터 발생된 부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많은 형질들은 스팬드럴이 그런 것처럼 그저 진화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 역시도 직접적인 자연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뇌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된 진화의 부산물인 것이죠.
그러면 적응주의는 굴드와 르원틴에 의해 완전히 정리된 이론일까요? 아직도 여전히 적응주의를 지지하는 진화론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두 견해 역시 긴 논쟁이 필요해 보입니다.
22)신다윈주의는 과연 완벽한 진화론인가?④
다윈이 꿈꿨던 ‘완성된 대진화 이론’ 아직도 요원한 상태
소진화가 긴 시간 축적된 결과
대진화 과정 발생될 수 있는지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 있어
벌이나 개미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 진화의 결과인지에 대해 마틴 노박 교수는 ‘진화 게임 이론’을 통해 규명에 성공했다. 노박 교수는 “진화는 지구상에서 생명이 펼쳐지는 것을 설명해 준다”면서 “하느님이 없으면 절대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지난 글을 통해 대진화와 관련해서 진화론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1.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
2. 진화의 속도는 점진적인 것인가 아니면 급격한 것인가?
3. 진화 메커니즘과 생명 현상은 분자생물학의 대상인 유전자 수준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4. 생물의 형질은 자연선택과 얼마나 관련이 되어 있는가?
5. 개미나 벌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라는 현상은 진화의 결과인가?
6. 신다윈주의만이 성공한 진화 이론인가?
이제 다섯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인 협동/협력 문제는 찰스 다윈 스스로가 제기한 것으로서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설명이 제시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진화 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인 마틴 노박(Martin Nowak·1965~) 하버드대학교 수리진화생물학 교수가 존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1920~2004)의 ‘진화 게임 이론’(evolutionary game theory)을 통해 다윈이 생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 ‘협동/협력의 진화 메커니즘’을 5가지 규칙으로 설명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노박은 특이하게도 스스로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면서 ‘진화론이 결코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해온 인물입니다. 노박은 “과학과 종교는 진리를 찾기 위한 두 본질적 요소이며, 이 둘 중 하나를 부인하는 것은 불임으로 가는 방식(barren approach)”이라고 강조합니다.
참고로 마틴 노박이 2011년 유명한 과학 잡지인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견해를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진화에 관한 순수한 과학적 해석은 무신론을 선호하는 주장을 만들지 않는다. 과학은 하느님을 부정하거나 종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중력이 그렇지 않듯이, 진화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주장이 아니다. 진화는 지구상에서 생명이 펼쳐지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그분이 없으면 절대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 분인 것이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입장 역시 노박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섯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진화론자들과 생명과학자들이 당연히 “Yes”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생명과학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로서 큰 관심을 불러오고 있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출현함으로 인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이론이었던 라마르크주의가 서서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후성유전학은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한 세대에 특정하게 후천적으로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최신 유전학입니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DNA 염기 서열이 변하지 않아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생기고, 더 나아가 대를 이어 유전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죠.
특히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여러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 연구 모두 어린 시절 유해한 환경에의 노출이 성인기 만성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중 혹은 어린 시절에 겪은 영양 부족 혹은 과잉, 출생 후 초기 성장의 변화 등은 주요 대사 기관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후손의 조직 기능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그 한 가지 중요한 예로서, 산모의 ‘식생활’이 자녀와 그 후손들의 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임신 중에 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한 산모가 낳은 자식(2대)들은 나중에 당뇨병에 걸리며, 그 자식들의 자식들(3대)까지도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쥐 실험 결과 나타났습니다. 이는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환경 노출의 영향을 여러 세대에 전달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 후성유전학의 핵심 내용인 ‘한 세대에 특정하게 후천적으로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주장은 바로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주의가 사실상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의 학문적 성과가 많이 쌓여갈수록 라마르크주의는 20세기의 절대적인 진화론이었던 신다윈주의의 아성을 무너뜨리거나 적어도 두 이론이 공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후성유전학은 기존의 진화론과 다른 새로운 진화론의 출현을 기대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앞서 언급된 모든 진화론자들은 ‘한 종으로부터 다른 새로운 종으로의 대진화가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류 대진화 이론이라고 부를 만큼 두드러지게 영향력이 있는 이론은 현재까지도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학자들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대진화를 이해하고 있다 보니 결국 다양한 이론들이 난립해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은 ‘소진화가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됨으로써 결국 발생되는 대진화’를 당연하게 염두에 두고 있고 진화론에 관한 거의 모든 교과서들도 이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소진화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긴 시간 동안 그대로 적용하면 정말로 한 종에서 다른 새로운 종으로의 대진화 과정이 자연스럽게 발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 속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 출판 이후 100여 년의 진화론 역사 안에서 다양한 진화론적 발전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찰스 다윈 본인이 완성하려 시도했고 미래에 완성될 것을 꿈꾸었던 ‘완성된 대진화 이론’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23)진화 과정에서 첫 생명체의 출현에 관한 설명의 부재
첫 생명체 출현은 우연의 결과인가, 외계의 개입인가
진화 과정 출발점인 첫 생명체
어떻게 출현했는지 알지 못해
원시 지구 대기 상태에서의
RNA 합성이 가능성 높지만
사실상 증거 발견에 거듭 실패
원시 지구의 모습을 간직한 듯한 미국 워싱턴주 올림픽 국립공원 내 ‘이끼의 정원’. 생명체의 모든 진화 과정의 출발점인 첫 번째 생명체의 출현이 어떤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저는 지난 글까지 몇 편에 걸쳐 현재 진화론에 있어서 확실한 대진화 이론이 없다는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진화론에 있어서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체의 모든 진화 과정의 출발점인 첫 번째 생명체의 출현/창발(the emergence of life)이 어떤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우리가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일반인들은 원시 지구의 대기를 구성하던 무기 물질로부터 유기물 및 생명이 발생하는 과정을 화학적 진화(chemical evolution)로 설명하려 시도한 소위 ‘오파린 가설’(Oparine hypothesis)과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원시 지구의 대기라고 생각되는 기체 혼합물(물(H2O), 메탄(CH4), 암모니아(NH3) 및 수소(H2))에 전기 스파크를 가해서 화학적 진화가 일어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려 시도한 1953년의 ‘밀러-유리 실험’(Miller-Urey experiment)을 생물학 교과서를 통해 배우면서 첫 생명 출현에 관해 이미 설명이 완결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진화론 지지자들은 밀러-유리 실험의 진실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으며, 이 실험 및 후속 실험의 결과들을 진화론의 중요한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론의 반대자들은 이 실험 및 후속 실험의 결과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반대자들은 첫 번째 생명체의 출현/창발을 설명하는 어떠한 진화론적인 시도도 실패했다고 단언하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진실은 과연 어떠할까요?
밀러-유리 실험 당시 헤럴드 유리(Harold C. Urey·1893~1981·193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대학원생이었던 스탠리 밀러(Stanley L. Miller·1930~2007)가 2007년 사망한 후 밀러의 제자이자 오랜 동료였던 제프리 바다(Jeffrey L. Bada·1942~)가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1950년대 실험에서 얻은 물질이 들어있는 유리병이 담긴 박스를 발견했습니다. 그 후 바다의 연구 그룹은 최신 분석 장비로 이 물질의 조성을 분석해 당시 밀러가 확인했던 것보다 더 많은 유기 분자들(22종의 아미노산과 5종의 아민)이 들어있음을 확인해 2008년에 공식 발표했습니다. 첫 생명의 출현/창발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가설인 ‘RNA 세계 가설’(RNA world hypothesis)에 따르면 ‘유전 정보를 저장/복제하면서 동시에 화학 반응의 촉매 역할도 할 수 있는 RNA 분자가 지구상 원시 생명체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2008년도의 이 우연한 발견으로 인해 밀러-유리 실험은 좀 더 학문적으로 정밀하게 검증되었으며 이를 통해 원시 지구의 대기 상태에서 RNA가 합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 것으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렇다면 1953년 밀러-유리 실험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의문은 완전히 해소된 것일까요?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밀러-유리 실험은 지구상 생명체의 단일카이랄성(homochirality)을 전혀 설명해 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밀러 본인 역시 생전에 이 점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단일카이랄성은 원칙적으로는 아미노산이 거울 대칭성(mirror symmetry)을 갖지만 실제로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생명체들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거울 대칭성이 깨진 한 종류(‘left-handed symmetry’를 만족하는 것들)만 발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 원시 지구의 대기는 밀러-유리 실험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기체인 이산화탄소(CO2) 및 질소(N2)로 가득 차 있었다는 증거가 지속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체들을 고려해서 2000년대에 밀러-유리 실험을 반복적으로 다시 시도했으나 아미노산이 합성되는 증거를 발견하는 데에 사실상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생명의 기원을 밝혀줄 물질은 어쩌면 원시 대기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외부로부터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외계로부터 소행성, 운석 등을 통해 지구에 도달한 외계 생명체에 관한 주장 내지는 외계로부터 지구로 온 방사능 물질 등의 영향에 의해 지구상에 생명체가 합성되었다는 주장이 최근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단적으로, 2015년 체코 과학자들의 고출력 레이저 실험을 통해 RNA를 구성하는 아데닌, 구아닌 등 4가지 아미노산이 외계로부터 오는 자극들에 의해 초기 대기 상태에서 합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이와 유사한 주장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외계로부터 생명의 기원이 왔다는 주장은 여전히 학문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상태에 있습니다. 특히 이 주장은 원시 지구에서 대단히 낮은 확률의 우연적/예외적 사건인 외계 자극이 주어짐으로써 생명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보편성과 재연성에 입각한 과학적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지구상의 생명의 출현/창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외계로 문제를 돌린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중입니다. ‘만일 지구상의 생명이 외계의 원인으로부터 왔다면 그 외계 생명의 씨앗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첫 번째 생명체의 출현/창발을 설명하려는 시도에 필요한 화학적 진화 개념을 포함한 대진화 전체 시나리오에 대해 학계의 반대 목소리도 높은 편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라이스 대학교의 저명한 합성 유기 화학자인 제임스 투어(James Tour·1959~)는 ‘합성 유기 화학자인 자신이 보기에 현재까지도 무생물로부터 첫 생명체로의 유기 합성 메커니즘에 관한 어떠한 학문적 근거나 검증이 없었으며, 소진화와 달리 종의 분화를 다루는 대진화는 현재까지도 적절한 설명이 주어진 적이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 다양한 주장들과 가설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기물/무생물로부터 어떠한 진화 방식으로 생명체가 등장하게 되었고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여전히 잘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첫 생명체의 출현/창발이 (지구상의 혹은 지구 바깥으로부터 온) 자연적인 과정 안에서 우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초자연적?) 개입으로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입니다.
(24)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에 관한 교회의 입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9월 10일 교황청립 과학원 회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교황은 2014년 교황청립 과학원 총회 연설문에서 “빅뱅의 첫 순간은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의 개입이라는 필연성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CNS 자료사진
이제 우리는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대체 교회는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2000년 대희년 때 발표하신 여러 연설문 중의 하나인 ‘과학자들의 대희년 연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복잡한 지상의 현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각 분야에 고유한 목적과 방법을 따라, 그들의 상관관계뿐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발견합니다. 과학자들은 창조 질서 앞에서 놀라워하고 겸손하여지며,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의 사랑에 이끌리게 됩니다. 신앙은 나름대로, 각각의 특성을 가진 모든 창조된 실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통하여, 모든 연구를 위하여, 모든 연구를 통합하고 융화시킬 수 있으며, 모든 만물의 원천이시며 목적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제공합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과학자들의 대희년 연설’, 2000년 5월 25일)
교황님의 이 연설문을 보면 신앙과 관련하여 “모든 만물의 원천”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모든 만물의 원천, 즉 우주의 원천이자 생명의 원천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이 말 뒤에 나오는 “창조주 하느님”이시죠. 결국 ‘우리의 신앙은 모든 만물의 원천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다’라고 교황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이 우주의 첫 시작 부분과 지구상의 첫 생명의 출현 부분에 대해 항상 ‘우연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지극히 낮은 확률적 우연성에 입각해서 설명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 교황님은 ‘모든 만물의 원천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 신앙이 제공하고 있다’고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앙은 모든 만물의 원천에 대해, 즉 우주의 원천이자 생명의 원천에 대해 (우연성이 아닌) 필연성에 입각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재위 중인 1996년 10월 22일에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열린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 보낸 그분의 담화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면 진화론에 관한 이분의 입장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저는 여러분이 선정한 첫째 주제, 곧 생명의 기원과 진화라는 주제가 마음에 듭니다. 이것은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계시 또한 인간의 본성과 기원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 교회의 교도권은 진화의 문제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 보낸 담화문, 1996년 10월 22일)
교황님의 이 담화문에 따르면 ‘교회는 진화라는 주제에 대해 아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라는 개념에는 인간에 대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가진 인간에 대한 개념이 지금 진화론 내에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이 어떤 식으로 인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지 관심있게 지켜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는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라는 문장이 이 담화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이 문장을 왜 포함시키셨을까요? ‘무신론적 과학자들이 아무리 진화론을 통해 다른 동물들과 인간을 동급으로 두려고 시도하더라도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여기에 못을 박아 놓으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점을 교황님은 분명히 강조하고 계십니다.
과학에 관한 교회의 태도는 이 담화문 안에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과학적으로 주장을 하든 우리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하느님의 모상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우리 고유의 가르침은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며,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우리가 보겠다는 것이 바로 교회의 입장입니다.
이제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에 관한 가장 최근의 교회의 입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4년 10월 27일 교황청립 과학원에 직접 참석하셔서 연설문을 낭독하셨습니다.
“오늘날 우주의 기원으로서 제안되고 있는 빅뱅 이론은 창조주 하느님의 개입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개입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자연 안에서의 진화는 창조에 대한 관념과 갈등하지 않습니다. 진화는 진화하는 존재들의 창조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립 과학원 총회’ 연설문, 2014년 10월 27일)
교황님께서는 ‘빅뱅 사건은 창조주 하느님의 개입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빅뱅의 첫 순간은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의 개입이라는 필연성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진화론에 대해서는 “진화는 진화하는 존재들의 창조를 전제한다”고 하심으로써 ‘진화하는 생명체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첫 생명체를 전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내용이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에 관한 공식적인 교회의 입장입니다.
무신론적 과학주의자들은 빅뱅의 첫 순간과 생명체가 첫 출현한 그 순간을 우연이라는 개념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그 다음의 변화 과정들을 자연과학의 법칙과 원리들에 따라 설명하면서 ‘우주와 생명체에 하느님이 설 자리가 없지 않나?’라고 말하고 있지만, 교황님께서는 2014년의 교황청립 과학원 총회 연설문을 통해서 ‘빅뱅은 창조주 하느님의 개입에 의존하는 것이고 진화는 진화하는 존재들의 창조를 전제하는 것이다’라고 간단하지만 권위있게 정리하신 것입니다. 현재의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은 교황님의 이 연설을 통해 완벽하게 입장이 정리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은 과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면 될까요? 창조주 하느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빅뱅 이론과 진화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공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우주의 첫 출발점과 생명의 첫 출발점에는 하느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과학과 신앙은 둘 다 하느님을 향해 있고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함께 존재해야 될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만물의 원천, 즉 우주와 생명의 원천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선포하는 데에 필요한 만큼 과학을 공부하고 활용하면 되겠습니다.
(25)양자물리학과 신앙
양자물리학의 시대… 신앙 행위가 가장 합리적이다
신앙인은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미래가 바뀔 수 있다고 믿어
비결정론적 세계관으로 볼 때
신앙은 이성적이고 적절한 행위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이 참석해 양자물리학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 기념사진. 양자물리학과 우리의 신앙 행위는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지난 일 년에 걸쳐 저는 이 지면을 통해 과학과 종교 간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흔히 내세우는 빅뱅 우주론과 진화론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빅뱅 우주론의 경우는 우리의 신앙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영감을 우리에게 제시함을 알 수 있었고, 진화론의 경우는 예상외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기대에 비해 탄탄하지 못한 이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올해의 마지막 글로서 저는 양자물리학의 세계관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 행위가 대단히 합리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드릴까 합니다.
제가 사제품을 받은 후 고해를 들으면서 크게 놀랐던 점 중의 하나는 ‘우리 신자분들 중에 점집에 다니는 분이 예상외로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철학관이나 타로점집뿐만 아니라 무당이 운영하는 점집도 다시시더군요. 특히 혼기가 찬 자식을 둔 부모님들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난달의 글을 통해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은 ‘시간의 화살’로부터 파생되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점을 보는 행위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주는 점쟁이에게 기대는 것이 어떤 면으로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점을 봐서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점을 봐도 잘 안 맞으면 굳이 점을 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주팔자-음양오행 분석법은 한 사람의 미래 운명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
동양에서 점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사주(四柱)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태어난 년, 월, 일, 시 이 네 가지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간지(干支)로 풀어쓰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둘을 합해서 흔히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행위 안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은 그 사람이 태어난 년, 월, 일, 시에 의해 결정된다’는 철학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개념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인데, 이것은 음(陰·달), 양(陽·해), 그리고 오행성(五行星)인 화성(火星), 수성(水星), 목성(木星), 금성(金星), 토성(土星)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사람은 특정 행성의 기운을 더 많이 갖고 태어나게 되고, 그 기운에 의해서 그 사람의 성격과 건강 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금의 기운이 강하고, 또 어떤 사람은 화의 기운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죠. 음양오행을 따지는 행위 안에도 역시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은 그 사람이 태어난 시점에 의해 결정된다’는 철학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주팔자-음양오행 분석법은 물리학의 용어를 빌리면 ‘한 사람이 태어난 시점인 초기 조건’과 ‘사주팔자-음양오행의 기본 법칙’을 통해 한 사람의 미래의 운명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습니다. (물론 한 사람의 운명에는 그 사람의 태어난 시점 외의 다른 요소들, 예를 들어 부모의 환경 등도 사주팔자-음양오행 분석법에서 고려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은 사실 17세기 이래로 고전물리학이 강조하던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질량을 가진 두 물체 간에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설명하는 중력 법칙(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도 불리죠)을 발견한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1643~1727)은 그의 위대한 저서 「프린키피아」와 「광학」을 통해 ‘한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한 특정 시점인 초기 조건’과 ‘역학의 기본 법칙’을 통해 한 물체의 미래 운동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뉴턴의 세계관은 사주팔자-음양오행 분석법과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뉴턴의 이 결정론적 세계관은 등장 이후 수백 년간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으로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양자물리학을 이론적 배경으로 탄생한 반도체.
하지만 뉴턴의 결정론적 세계관은 20세기에 등장한 양자물리학의 세계관인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의해 무너지게 됩니다. ‘자연의 본성상 한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양자물리학의 핵심 원리인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양자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내용인 ‘입자-파동 이중성’과 ‘중첩 원리’ 등으로 인해 우리가 아무리 역학 법칙을 정확히 알더라도 한 물체의 미래 운동 상태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결국 한 물체의 미래 운동 상태에 대해 확률론적인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난 시점인 초기 조건’과 ‘사주, 음양오행의 기본 법칙’을 통해 한 사람의 미래 운명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 역시도 혹시 잘 들어맞지 않는 세계관이 아닐까?
만일 결정론적 세계관이 정말 잘 맞는다면 우리는 왜 굳이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는 것일까요? 기도를 하든 안 하든 어차피 미래의 운명은 정해져 있을 텐데요. 만일 결정론적 세계관이 정말 잘 맞는다면 우리는 신앙을 가지든 안 가지든 상관없이 우리의 길흉화복은 결정되어 있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개입에 의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미래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미래의 삶이 바뀔 가능성이 없고 완전히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굳이 성당을 다닐 필요도 없고 묵주기도를 바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TV 드라마를 보는 것이 더 즐겁겠죠.
우리의 신앙 행위는 바로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행위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의 청원을 들으신 하느님의 개입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등장한 양자물리학이 바로 비결정론적 세계관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전자나 원자 등의 물질의 미래 예측도 원리적으로 불가능한데 하물며 인간의 미래 예측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 안에 깊이 파고든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점을 치는 행위를 포함한) 여러 미래 예측 프로그램들로부터 벗어나 우리에게 ‘시간의 화살’을 허락하시고 미래를 유일하게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그분께 우리의 미래를 내맡겨 드리는 것이 가장 이성적이고 적절한 행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신앙 행위는 결코 미신이 아닙니다. 현대 양자물리학의 시대에서 가장 합리적인 행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