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으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MBC 드라마 『허준』에서는 아마도 조선 선조로 추정되는 임금을 돌보는 의사인 어의(御醫)로 양예수(조경환 분)라는 인물이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드라마는 「동의보감」 편찬으로 유명한 허준(전광열 분)의 스승으로 유의태(이순재 분)라는 인물을 설정하면서 이 양예수가 유의태에게는 시종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허준을 알게 모르게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런 구도는 극의 흥미를 위해 적절히 꾸민 가짜다. 하지만 허준이나 유의태, 양예수는 엄연히 조선시대 명의로 이름 높았던 실존인물이다.
이 드라마의 가장 교묘한 가짜는 허준과 양예수의 관계다. 왜냐하면 허준의 실제 스승이 바로 양예수이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이름을 날리던 유의태가 이들보다 늦게 태어난 인물임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들 둘과 다 절친했던 미암(眉巖) 유희춘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자신의 호를 딴 「미암일기」(眉巖日記)라는 방대한 일기를 남기고 있다.
허준은 바로 이 유희춘이 1569년 윤6월 이조판서 홍담에게 부탁함으로써 내의원이 됐음이 이 일기를 통해 밝혀졌다. 따라서 허준이 일종의 의사고시인 의과에 합격해 내의원이 됐다는 드라마 내용은 드라마답게 꾸민데 지나지 않는다.
이 유희춘이 어떤 인연으로 허준을 알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한두 다리 건너는 친인척 관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정되기도 한다.
어떻든 유희춘은 1568년 서울 집으로 찾아온 29세의 허준을 처음 만난다. 이 대목을 유희춘은 '허준이 찾아오다'라는 간단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인 김호 박사는 자신의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심사논문을 손질해 단행본으로 엮은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일지사)에서 '이 기록이야말로 허준의 젊은 시절이 역사에 등장하는 장면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미암일기에 따르면 당시 어의이던 양예수 또한 유희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문안인사를 하곤 했다. 이로 보아 허준은 아마도 이 즈음 유희춘을 통해 양예수를 알게 됐을 것이다.
굳이 현재의 MBC 드라마에서 유희춘과 가까운 인물을 찾자면 허준이 경남 창녕에서 유의태 밑에서 의술을 배우고 있을 때 그 부인의 중풍을 치료한 인연이 있는 창녕 우상대감(변희봉 분.현재는 좌의정으로 나오고 있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앙예수는 누구인가? 태어난 해는 밝혀지지 않고 허준보다 적어도 십수년은 연상이었을 양예수가 명종 4년, 즉 1549년 의과에 합격했음은 조선사 전공인 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이 조선시대 잡과합격자를 정리하면서 밝혀냈다.
어떻든 이 양예수는 이미 허준을 만날 즈음 당대 최고의 의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김호 박사는 '양예수를 만난 것은 허준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허준에게는 이미 내의원으로서 확고한 명성을 지닌 양예수와 함께 근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의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고 평가한다.
양예수가 허준에게 끼친 영향은 특히 「동의보감」에서 두드러진다. 양예수가 남긴 의학 서적 중에 「의림촬요」(醫林撮要)라는 게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동의보감」의 기초가 되었다고 김 박사는 설명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선조 29년(1596) 왕이 우리나라 의서를 만들 것을 명령하자 편찬국이 설치되는데 그 주요 멤버는 양예수와 허준,정작,김응탁 등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정유재란을 만나고 당대 최고 명의라는 양예수가 1600년 사망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가 광해군 2년(1610)에야 「동의보감」은 완성을 보게 된다. 이로 보아 양예수가 허준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하겠다. 2000/04/27 09:3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