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 9. 7. 화요일.
종일토록 비가 내린다.
일전(9월 2일).
오전에 자동차를 끌고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화망마을로 내려갔다. 9월 5일에 있을 산소 벌초를 하려고.
오후에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을 입고는 바깥마당에 난 풀을 임시로 마주잡이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초에 서울로 올라온 뒤에 3개월만에 시골로 내려갔더니만 그새 잡초는 엄청나게 많이도 싹이 터서 웃자랐다.
잔디 속에서도 싹이 튼 잡초들이라니 .... 어둑컴컴할 때까지 3시간 넘도록 풀을 뽑았다.
다음날인 9월 3일(금요일).
오전에는 바깥창고 안에 있는 예초기(풀 깎는 기계)를 등에 짊어지고는 내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과 내 텃밭 사이에 있는 마을안길의 가생이에 난 잡초를 조금만 베어냈다. 무거운 예초기의 무게로 등허리가 더욱 굽어져서 가벼운 통증이 왔다. 예초기 칼날이 무뎌서 억센 풀이 잘 베어지지 않았다. 새 칼날을 바꿔서 끼워야 하는데도 꽉 조인 나사를 전혀 풀지를 못했다. 무뎌진 칼날로 잡초를 베어내자니 그게 잘 안 되었다. 더욱이 장시간 사용하지 않았더니만 예초기의 엔진이 자꾸만 꺼졌다. 아주 쎄게 회전시키면 그때서야 칼날이 다시 작동했다. 칼날의 회전속도가 빠르면 베인 풀마디와 잔돌이 화살처럼 튕겨나갔다. 특히나 억새 줄기-마디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잘라져서 순식간에 튕겨나기에 혹시라도 살갗에 찍힐까 겁이 났다. 얼굴에는 철망을 써서 안면을 보호해야 했다.
오전에만 일했다. 점심을 겨우 먹고는 지쳐서 오후 내내 낮잠을 잤다.
서울에서 장기간 산 탓일까, 그간 더 늙어서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근육살이 빠진 탓으로 작업하는 게 유난스럽게 어렵고 지치고 피곤했다.
9월 4일(토요일).
오전에는 서낭댕이 앞산(죽청리 소재)에 있는 선산에 들러서 산소를 둘러보았다.
십여 대 선조들의 무덤이 차례로 줄지어 있다.
묘터에는 키가 큰 망초가 자주 있었고, 자잘하면서도 하얀 솜털같은 꽃을 잔뜩 피웠다. 망초는 씨앗도 무척이나 많다. 망초대가 흔들리면 씨앗이 멀리 날릴 터. 날리지 않도록 손으로 줄기를 잡고는 위로 잡아당겨서 조심스럽게 뽑아냈다.
아내는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합장 무덤 터에서 호미로 풀을 뽑았다.
다음날인 일요일(9월 5일)에 벌초꾼들이 작업을 하겠지만서도 나는 외국에서 들어온 망초와 미국자리공의 열매(씨앗)가 번지지 않도록 미리 조심스럽게 이들을 낫으로 조금이라도 더 베어냈다.
* 미국자리공은 줄기를 잘라내도 무척이 굵은 덩이뿌리가 살아 있기에 금새 또 새 싹이 나온다. 다년생 식물이기에 삽으로 캐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할 시간이 없었다.
귀가한 뒤 오후에는 내 집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목인 담부리 도로변에 난 잡초를 베어냈다. 이웃집 조씨네 대나무 울타리에서 벗지는 신누대( 2 ~3m)를 조금이라도 잘라냈다. 예초기로 베어낸 잡초를 대빗자루를 들고는 쓸어냈다. 마을안길이기에 깨끗이 청소했다.
도로변 일부 구간만이라도 일을 얼추 끝내야 했다. 정말로 힘이 들고 지쳤다.
내 위밭과 아랫밭의 사이로 낸 길이기에 자동차들이 숱하게 들락거리고, 마을사람은 늘 지나다녀도 청소를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땅주인인 내가 시골에 올 때마다 도로 양편에 난 잡목과 잡초를 걷어내면서 길 청소를 했다. 저녁 7시 20분이 넘도록 작업을 했다.
9월 5일. 일요일.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고... 혹시라도 비가 내릴까 걱정을 하면서도 아침 일찍부터 마을 앞 남쪽에 있는 서낭댕이 산소(죽청리 소재)로 향했다.
벌초 행사가 있는 날. 오전 7시 30분쯤에 서낭댕이 느티나무 아래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도착했더니만 벌써 많은 트럭과 일반승용차가 주차되었다.
나는 무거운 예초기를 짊어진 채, 갈퀴 두 개 등을 손에 든 채 선산 꼭대기로 힘겨겹게 올랐다. 예초기를 등에 짊어진 작업부 4명이 보였다.
예순여덟 살의 사촌동생도 예초기로 작업을 하고... 갈쿠질을 하는 사촌동생들, 6촌형제들도 여러 명이다. 종주인 내가 가장 늦게 도착했으니....
집단 산소 아래의 공터. 차도 근방에 있는 잡초(자리공)을 더 베어내라고 내가 지시를 했다.
인부들은 아침일찍부터 일찍 왔는지 ... 선산 작업은 금새 끝내고는 2반 마을의 뒤산인 종조부네 산소와 사촌동생네 산소로 이동했다. 종조부 내외와 당숙들의 묘소, 숙부 내외의 묘소는 신안재 아래에 있다.
올해에는 잡초가 별로 자라지 못한 탓일까?
오전 10시 남짓하면서 벌초작업은 일찍 다 끝냈다. 세상에나... 얼마나 일찍부터 서둘렀으면?
하기사 몇해 전 화망마을 앞뜰과 앞산이 깡그리 토지수용되어서 일반산업단지로 조성되어서 많은 무덤을 파묘하여 새로 이장해야 했다. 또한 대전에서는 조부의 묘소 등 여기-저기에 흩어진 소규모 단위의 무덤들도 파묘하여 죽청리산 한 곳으로 이장했다.
흩어졌던 무덤들도 한 곳으로 집중한 탓으로 벌초를 해야 하는 면적은 무척이나 축소되었다. 새로 이장하면서 봉분의 크기를 작고 좁게 잡은 탓으로 벌초작업의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벌초 인부들이 최소한 7 ~ 8명이었는데도 지금은 2 ~ 4명으로 줄어들었고, 또 작업시간도 짧아졌다.
무창포해수욕장 가는 길목(지방도로606)에 있는 <진등식당>에서 점심밤을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더니만 오전 11시.
진등식당 건물은 최씨네 종중 소유이다. 식당 여주인은 예전에는 최씨네 산지기의 한 분이어서 벌초와 시향 차례 음식을 올렸다. 집터, 논까지도 산지기네한테 내주었다. 아쉽게도 여사장의 남편이 일찍 돌아가신 뒤로는 벌초는 최씨네가 인부를 사서 작업한다. 대신에 진등식당 여주인은 시향(음시월 상달) 음식물만을 장만했다.
벌초행사가 일찍 끝났기에 오후에는 나는 다시 마을안길 가운데 담부리밭 하단 도로변에 있는 잡초를 또다시 베어내야 했다.
무거운 예초기를 3일째 짊어지고 작업을 하자니 무척이나 지친다.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 중심에 텃밭 세 자리가 있다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을 아니다. 세 갈래의 도로에 내 땅이 길게 끼었으니 그 작업은 오로지 나 혼자뿐.
3일간 예초기를 짊어지고 작업하자니 무척이나 지치고 힘이 들었다.
아무래도 8월 30일(월요일)에 코로나-19 제2차 접종을 한 후유증일까 싶다. 은근히 맥이 떨어지기에. 별별 핑계를 다 댄다. 온몸이 붓고... 그래도 시골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내 시골집 주변의 풀은 깎아야 하기에..
내 시골집은 온통 키 큰 나무로 가득 찼다. 감나무, 매실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왕보리수나무, 배롱나무, 사철나무, 앵두나무, 참나무 등. 식물을 좋아하는 내가 텃밭에 과수원을 경영하려다가 실패했어도. .. 함께 살던 어머니가 아흔일곱 살을 난 지 며칠 뒤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는 그참 서울로 올라왔다. 주인이 없는 과수원이라서 그럴까? 나무들이 웃자랐고...
9월 6일(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화초 다섯 종류를 삽으로 떠서 신문지에 둘둘 말았다. 야생 들국화, 무릇, 외국식물인 다육식물, 선일장 일종(둥근 형태), 벌개미취.
* 벌개미취는 바깥마당의 가생이에 잔뜩이다. 끝이 날카로운 삼발이 쇠연장으로 벌개미취 뿌리를 캐냈다. 자갈을 깨뜨려서 마당을 전부 덮었기에 삽으로는 자갈이 가득 밴 땅을 파내지 못했다.
삼발이 농기구를 발로 밟아서 캤더니만 국화뿌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흙은 거의 없었다. 신문지로 돌돌 감싼 뒤에 끈으로 졸라맸다. 차에 실을을 때 자갈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차 트렁크 안에 큰 함지박 그릇을 밀어넣고는 그 속에 넣었다,
오전 11시에 서울로 향했다.
시력이 나쁜 나 대신에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확인하니 벌개미취의 가느다란 꽃대와 꽃송이가 수분 부족으로 말라죽었다! 잎사귀와 뿌리는 살아 있을 터.
시골집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일을 더 했으면 좋으련만 아내는 시골생활 부적응자이라서 일찍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아내한테는 벌레들이 유난스럽게 쏘는지, 또 식물의 털가루가 달라붙는지.. 아내의 피부는 붉게 색깔이 변하고, 살갗이 부르튼다. 아내는 단 하루라도 먼저 시골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시골태생이라서 그럴까? 일을 더 하고 싶은데도... 당뇨병환자인 내가 혼자서 시골집에서 머물기는 무척이나 그렇다. 아내가 곁에서 직간접으로 돌봐주어야 하기에. 이번에도 그랬다. 고작 4박 5일간만 시골집에서 머물렀다. 그것도 산소 벌초행사에 참가하려고. 나는 집안의 장손이니...
지난해에는 벌초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 여든세 살이었던 늙은 큰당숙과 예순일곱 살의 사촌동생이 나힌테 '코로나가 무서우니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오지 말라. 현지에서 사는 자기네들이 벌초하겠다' 부탁하고 배려했기에 나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런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그래서 올해는 꼭 참가하고 싶었다. 코로나- 19 예방주사를 2회 받았기에 다소 안심하면서 시골로 내려갔다.
오늘은 9월 7일.
비가 종일토록 내린다.
오후에 서울 송파구 잠실4단지 상가건물 안에 있는 내과병원에 들러서 일전 당화혈색소 등 종합검진 결과를 확인했다.
당뇨병은 평상시처럼 그저 고만고만하단다. 다행이다. 3개월 뒤에 주기적으로 재검사해야 한다.
농협에 들러서 사촌동생한테 올 시향(음10월 상달 초순) 차례용 제수물 구입비를 전송했다. 십여대의 조상에 대한 차례비용도 만만찮게 크다. 현지에서 사는 사촌동생을 늘 수고를 하고...
미국자리공 뿌리...
한 번 잡셔보세요. 더덕, 도라지처럼 생겼으니...
천당, 극락세계로 선착순을 할 수도 있지요.
2021. 9. 7. 화요일.
나중에 보탠다.
단숨에 쓰고 있으니 오탈자도 많을 터.
나중에 보완 예정. 숨 좀 돌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