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 싶은 닉네임들
김 난 석
오늘도 집안에 들어앉아 우리 카페 회원들의 닉네임을 불러보는 게 재미인 것 같다. 두어 해 전 연말 전체정모 때는 개회사를 하라기에 언뜻 생각나는 닉네임들을 불러봤다. 카페가 남녀노소 다 모이는 고로 제일 연장자이신 소림님(30년생), 제일 연소자일 듯한 젊은청년님, 제일 먼 곳에서 오셨을 쿨아이언님(미국), 다른 행성에서 오셨을 금별님, 화성에서 오셨을 나그네님, 주부의 대명사일 듯한 안동댁님, 장항댁님, 목포댁님. 이렇게 불러봤지만 들리지 않았던지 관심이 없었던지 소림님과 쿨아이언님으로부터만 응답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도 화답만 해주신다면 골고루 닉네임을 불러보고 싶다.
몇 해 전 여행동호회의 두 번째 나들이에 나서봤었다. 동호회로서는 두 번째지만 나로선 처음으로 동참한 나들이였다. 잠실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타니 책임자인 <샤방샤방>님으로 부터 하루의 일정이 소개됐고, 이어서 참으로 아름다운 미소의 소유자라는 <참아미>님의 사회로 회원 소개가 시작됐다.
처음 만나면 으레 이름을 묻기 마련이다. 더 나아간다면 나이는 얼마며 사는 곳은 어디냐고 묻기 도 하니 그도 만남의 자연스런 시작이라 하겠다. 각자 자기의 닉네임을 밝히고 그 의미를 간략히 설명하라는 것이었는데 난 송파의 석촌동(石村洞)에 사는 사람이지만 그 석촌(石村)이 아니라 아호로 쓰는 석촌(夕村)이라 소개하고 듣자니 범소(凡笑), 스마일, 금빛, 착한햇살, 환한햇살, 참아미, 샤방샤방.....등등, 지금도 생각나는 건 모두 잔잔한 미소와 밝은 표정을 떠올리는 이름들이었다.
이름이 운과 관련 있다 하여 이름을 짓고 풀이하는 점술을 철학에 빗대어 성명철학이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文世光)은 주운(主運)인 형격(亨格)의 수리가 9로 되어있어 소년시절부터 파란 많은 흉운이 겹쳐 23세의 젊은 나이에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부르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점술이라는 영역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왕이면 이름을 곱게 지어 가질 일이다. 샤방샤방하게 말이다.
성명철학까지 갈 것도 없이 사람은 이름 불리는 대로 살아가게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귀염둥이라 부름을 받으면 귀여워지게 마련이고 재간둥이라 불리어지면 재주가 많아지게 마련이요 개똥이라 불리어지면 천하나 억세고 질긴 품성이 길러지기도 하니 말이다. 함께 동승한 가람, 해무, 바다, 명산, 산마루, 목화송이, 구절초, 월전(月田) 등등은 우리 산하와 화목류, 또는 고향을 떠올리는 것들이어서 포근한 감을 주는 분들이었다.
생김생김과 몸짓도 이름과 마찬가지로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늘 웃는 표정을 지으면 웃으면서 살게 마련이요 찌푸린 얼굴은 짜증내면서 살게 마련이다. 행동이 습관으로 이어지고 습관이 성격을 형성한다는 것이어서 그럴 테지만 이름을 잘 지었으면 이름대로 표정을 지으며 살아갈 일이다. 샤방샤방하게 말이다.
한때 영국의 대처수상,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수상, 미국의 부시대통령, 그리고 우리 노태우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모두 조크를 한마디씩 하게 됐다 한다. 대처수상이 커다란 젖가슴을 치켜 올리며 “이 풍만한 자원!” 이라 외치자 고르바초프가 시원한 이마를 쓸어 올리며 “아, 이 너른 시베리아 벌판이여!” 라고 화답했다 한다. 부시가 바지의 지퍼를 주욱 내리며 “막강한 이 무기를 보라!” 라고 외치자 노태우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두 동강 난 한반도여!” 라고 화답했다 한다. 물론 지난날 걸출했던 개그맨 김형곤의 우스갯소리일 뿐이지만 저마다의 생김생김과 몸동작이 자기 조국의 형세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것 같아 환한 웃음과 함께 분단된 우리에겐 자조(自嘲)의 쓴 웃음도 자아내게 한다. 형세나 생김생김이야 어떻든 즐거운 몸짓을 하며 살아갈 일이다. 샤방샤방하게 말이다.
미국의 대통령 중 정통 서부사나이의 면모를 풍긴 건 레이건이었다 한다. 이분의 원래 이름은 리건이었는데 그 이름이 “권총이여 다시 한번(Re Gun)" 이란 이미지를 풍겼던지 두 번의 총격을 받았다한다. 그 뒤에 이름을 레이건으로 고쳐서 그랬던지 다시는 총격을 받지 않고 여생을 마치게 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는 이름이 그래서였던지 세계의 여기저기에서 조지고 부시고 하다가 임기를 마쳤다. 그 뒤의 클린턴도 이름이 그래서였던지 백악관 비서와의 성 스캔들로 바지의 정액검사까지 받는 수모를 당한 뒤에 사실을 고백하고 재야로 돌아갔으니 그분 이름 그대로 씻고 돌아서는 클린 턴(Clean Turn)이 된 셈이다. 이름을 지으려거든 이왕이면 부르기 좋고 밝은 이미지가 풍기도록 지을 일이다. 샤방샤방하게 말이다.
함께 한 종소리, 산울림, 다올, 다산 등등은 모두 추상성의 맑음, 밝음이나 선각자를 떠올리는 것들이어서 친근감이 갔고 은숙, 민희, 소리 등등은 여성스러움이나 애교가 느껴진 분들이었다.
이어서 <참아미>님으로부터 이디피에스 소개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 EDPS는 데이터 전산처리시스템(Electronic data processing system)을 말하는데 현대판 이디피에스는 음담패설(淫談悖說)의 한글판 이니셜이란다. 그것 참!
참아미님과 여러 회원들로부터 재미있는 낱말풀이와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듣다가 나도 사자성어 하나 급조해봤다. 그건 남성이 여성에게 프러포즈할 때 가장 섹시한 말은 <헐레벌떡>일 것 같다는 것이었는데 물론 웃자고 해본 소리였지만 한참 웃다보니 제1목적지인 다산유적지와 세미원에 닿았다.
인(因)은 씨앗이요 연(緣)은 물이라 한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도 물을 만나지 않으면 싹이 틔지 않느니 인연(因緣)의 이치다. 명주실이 아무리 길어도 씨줄과 날줄로 엮이지 않으면 비단이 되지 않는다. 역시 인연(因緣)의 이치인 것이다. 시방 가시방석처럼 앉은 그 자리가 꽃자리라 한다.(시인 具常) 오늘의 인연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시구다.
한 여우(旅友)가 씨줄을 놓고 다른 여우(旅友)가 날줄로 엮어주니 그날 하루는 즐거운 꽃방석이 되었던 셈인데 나머지 일정이며 이야기들은 접어두련다. 고운 사진을 갈무리해놓고 두고두고 열어보며 미소 지을 셈이요 앞으로도 샤방샤방 살아갈 일이다.
샤방샤방이란 이름의 회원이 있었다. 그분이 여행동호회를 이끌었는데, 이제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샤방샤방이란 눈부심이란 뜻의 의태어로, 정말 눈에 띄게 예쁘고 화려해서 반짝반짝 빛남을 말하는데 말이다.
그런 회원들이 지금도 여기저기 많이 계시지만 때론 어느 지층에 보석처럼 가만히 숨어 있다가 샛별처럼 짜안! 하고 글이나 몸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앞으로 다시 닉네임에 관한 글을 쓴다면 무어라 덧붙일지 상상해보게 되는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모두 지금처럼만 글로, 몸짓으로 반듯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떠올랐으면 좋겠다.(지난날의 단상 중에서)
위 글은 지난날의 단상 중 하나이다.
자유방에도 많은 인사들이 출몰하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곡즉전이란 닉네임이 좋다. 이 분은 어떤 생각으로 닉네임을 곡즉전이라 지었는진 모르지만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곡즉전, 아마도 그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굽으면 온전해지고 구부리면 곧아지며 움푹하게 되면 채워지고 낡아지면 다시 새로워진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스스로도 드러내지 않음으로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음으로 드러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음으로 오래가는 법이다. 불가에서도 자타불이(自他不二)라 했으니, 사실 분별한들 별무소용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 석촌은? 이건 저녁마을을 뜻하니 밤을 나면 아침이 오리라.
첫댓글 꿈보다 해몽이 너무 좋으시니까 유구무언입니다.
그 닉이 맘에 드신다 함은 사람 또한 친애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너무나 황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 카페에 첨 왔을 때 대명을 <굽은솔>로 했습니다.
선산을 지키는 굽고 못난 소나무처럼 한켠에 서서 오래토록 카페 생활을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칭이 너무 촌스럽고 이미지가 별로다싶어 좀더 고상한 느낌이 가도록 비슷한 의미인 곡즉전으로 바꿨습니다.
장삼이사인데 이런들 저런들 뭐 어떻습니까만 그래도 지금 것이 좀더 낫다고 여깁니다.
어느 분은 발음이 어렵다 하십니다만 또 개명하진 않으려고요.
곡즉전을 노자한테 빌려쓰는 만큼 월세가 조금씩 나갑니다.
지적재산권이 수천년 유효한 것은 너무 억울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감수합니다.
월세가 조금 나가더라도 그냥 품고 가세요..
그깟 월세는 조금 보태드릴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두분이
맞나셔야 겠습니다
두 사내가 만난다고요?
아이구 남새스러워라.
등애거사님은 여성과 술을 마셔야 제맛이라 하던데...
해석도 멋지시고..
닉네임도 굽은솔이라 하시나,
제가 보기론 낙낙장송 유아독존 이십니다.
잘 봤어요..
穀卽錢,,,곡식은 돈이다.인줄 알았어요.
농부들이 곡식을 귀하게 여겨라 라는 금언...
번쩍하는 아이디어네요..
밥이 곧 생명이라 하던데..
석촌님과 곡즉전님의 주고
받는 답댓글을 보면서
학습을 합니다ㆍ
곡즉전이 무슨 뜻일까
하다가
별주부전처럼 무슨 설화인 줄 알았어요
ㅎㅎ
아껴둔 닉이 하나 있습니다
고려산에 갔다가
진달래를 보고
ㅡ분홍마루ㅡ라는
분홍마루도 좋군요...
봄엔 분홍마루, 여름엔 대청마루, 가을엔 만홍마루, 겨울엔 아랫목.
@석촌
아침엔 조마루
저녁은 석마루
밤에는 야마루
아리따운 여인네와
술상을 마주하면 짱마루~
@채스
짱마루 ㅡ참
오래 된 기억입니다 ㅎㅎ
평소 곡즉전님 닉을 보면 독특하신 닉이다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다가 방금 검색을 급히
해보니 아주 깊은 뜻이 융숭합니다
곡즉전과 굽은 솔.. 일맥상통의 유장함이십
니다, 오늘도 배웁니다
부르는 대로 간다니 참 좋은 닉네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