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해결한 숙제

[주오돈]

퇴직 후 해결한 숙제

평생에 걸쳐 한 번으로 끝낼 일로 노후 살아갈 집을 짓는 일이라 들었다. 이때 집은 주로 근교나 전원에 짓는 그림 같은 단독주택일 테다. 풍광 좋은 곳에 주인 취향 따른 설계와 자재를 날라 손수 짓는다면 더 의미 있을 일이고 남의 손을 빌리더라도 진행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성취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건축재를 나무로 해서 짓는 집이라면 산중 자연인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올봄 들어 인생에 단 한 번으로 끝낼 임무 한 가지가 지나간다. 내 처지에 집을 새로 짓는 일은 언감생심이고 살던 아파트를 리모델링을 하는 일이다. 퇴직 후 주거 환경을 바꾸어보려 해도 여건이 녹록하지 않았다. 평수까지 넓힐 생각은 없어도 새로 지은 아파트로 옮겨볼 여건이 되질 않았다. 낡은 아파트를 개보수하려 해도 병약한 아내의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스무날 남짓 걸린 리모델링 시공 기간을 마쳐도 입주는 이틀 후부터였다. 첫날은 용역에서 내부를 청소하고, 그다음 날 정수기와 통신회사 기사가 다녀간 후 현관 바깥 비상계단에 옮겨둔 이삿짐을 제자리로 들여놓기 시작했다. 리모델링이 시작되면서 가전제품을 제외한 내구 연한을 한참 넘겨 쓰고 있던 서가를 비롯한 가구들은 과감하게 폐기 처분시키고 새로 마련해 들여놓았다.

이사 가지 않고 살던 집을 비우고 리모델링을 하려니 세간을 묶었다가 푸는 번거로움이 만만하지 않았다. 이삿짐센터 용역들은 단 몇 시간에 끝낼 일을 리모델링 시공 전후 몇 날 며칠 걸렸다. 그새 침대가 들여지고 원목 가구점에 주문 제작을 의뢰한 서가와 식탁이 납품되었다. 그와 함께 이참에 마음 크게 먹고 마련하는 전기 매트가 장착된 수제 소파는 기성품보다 멋져 보였다.

몸이 약한 아내는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삿짐과 진배없는 짐들을 풀고 정리하느라 얼굴이 수척해지고 체중이 줄어갔다. 나는 나대로 힘이 들어도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싱크대 수납장에 주방 기구를 채우고 새로 꾸민 붙박이 옷장에는 침구와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그새 나는 세탁소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탁 후 한동안 맡겨두었던 방한 외투를 비롯한 겨울옷 찾아왔다.

일전에 가구점 사장이 서가와 식탁과 소파를 납품했는데 내가 쓸 간이 책상도 맞춤 제작을 주문해 두었다. 메모지와 노트북만 올려둘 작은 책상으로 의자는 미처 구하지 못해 며칠 뒤 가져올 것이라 했다. 그날 아내가 쓰게 될 낡은 화장대를 예전 그대로 쓰려니 어쩐지 마음에 걸려 추가 제작을 의뢰해 의자와 같이 가져오십사고 했다. 그 뒤 거실에 두게 될 소반이 하나 더 늘게 되었다.

유월 첫째 금요일은 리모델링을 마무리 짓는 두 분이 다녀가는 날이다. 아침 출근 시간대에 창틀 문짝 시공업자가 사용 중 불편을 느끼는 베란다 빨래건조대 높이를 조절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분이 방문한 김에 거실 벽면 표구 액자와 시계를 걸 위치에 못을 박아주십사 했더니 수월했다. 욕실의 문짝 틈이 살짝 비틀어져 솜씨를 발휘해 균형을 잡아주어 하자 보수는 마친 셈이다.

하자를 보수하는 창틀 시공업자가 다녀간 간 오후에 가구점 사장이 미루어 놓은 책상 의자와 추가로 맡긴 가구를 완성해 납품이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쓰게 될 책상 의자는 서비스로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아내의 방에 놓일 화장대는 나와 무관했지만 아내는 은근히 기다려지는 눈치였다. 나는 속으로 화장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나에게 바가지 긁을 시간이 줄었으면 싶었다.

며칠 전 가구점 사장에게 추가 주문 의뢰한 작품은 작은 반상에 해당할 접대용 다과상이다. 내가 쓰기보다 아내가 쓸 기회가 많을 소품 가구였다. 자부심이 강한 원목 가구 장인은 원한 바대로 소박하고 아담한 크기로 만들어 놓고 칠이 마르지 않아 납품이 늦어진다고 해도 나는 마음에 걸림이 없었다. 이로써 퇴직 이후로 미뤄둔 당연히 해결해야 할 숙제를 끝내 마음이 홀가분하다. 22.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