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운명애(Amor Fati·아모르 파티)이다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사랑해야 아름답다
삶을 같이 즐겨야 아름답다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
오늘은 하나님이 준 선물(Gift, Present)이다
그래서 기적 같이 살아라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 하루" 24시간
기왕이면
불평 대신에 감사!
부정 대신에 긍정!
절망 대신에 희망!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 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늘 겸손하게
얼굴에 웃음 꽃을 피워라
예쁘지 않는 삶은 없다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
삶은 절대로 낡지 않는다
삶은 기적이다
"Tomorrow is another day“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산다.
사람은 잘 살고 싶어 한다
현재에 충실하라(enjoy the present)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에 충실하라!’
메멘토 비타(Memento vita 삶을 기억하라).
영원히 사는 것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아모르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영원을 살기 위해 성찰하라, 영혼을 위해 살라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처신하라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자
니체의 ‘영원회귀’와 ‘운명애’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會者定離) 세상사라면 처음에는 사랑으로 끌리고
끝에는 미움으로 멀어진다.
인간의 삶은 유한성과 변화의 본질이다
만남과 헤어짐은 필연이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만남과 헤어짐은 필연이다
태어나면 결국 죽음을 맞는다
사람의 관계는 會者定離이다
광해군과 인조
정약용과 정약전
이승만과 조국의 관계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뒷 모습이 아름답도록
겸손으로, 사랑으로,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친밀했던 두 사람이 이별로 갈라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니체는 사랑으로 이어지고 미움으로 끊어지는 인연을
‘영원회귀’와 ‘운명애(amor fati·아모르 파티)’를 통해 해석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무한한 시간에 같은 것이 되돌아 반복되는 우주의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해가 뜨고 지며 달이 차고 기우는 일과 같다.
4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듯 우주의 생성소멸은 영원히 회귀한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시들어 가며,
모든 것은 다시 피어난다. 존재의 해(年)는 영원히 흐른다.
모든 것은 부러지며, 모든 것은 다시 이어진다.
똑같은 존재의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며, 모든 것은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이렇게 우주의 존재는 매 순간 영원으로 이어진다.
니체는 당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적용해 유한한 에너지가 무한한 시간을 통해 생성,
소멸하면 같은 것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마치 주사위를 던지면 같은 수의 배열이 나오는 것처럼,
우주의 영겁의 시간에 똑같은 것이 생겨난다는 논리다.
따라서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은 과거에 반복됐고 앞으로도 똑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무차별적으로 반복된다면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사는 것이 지겹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불행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지겨워하는 왜소한 사람’도 영원히 되돌아오게 돼 있다며,
그 비애를 ‘짜증스러움’과 ‘메스꺼움’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싫은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우주론적 해석’에는 문제점이 있다.
‘영원회귀’는 실제로 일어나는 우주의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좋음과 나쁨에 대한 인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사고실험이자 가설이다.
칸트에 따르면, 좋음(善)은 보편성을 갖는다.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를 통해 인간은 어떤 것이 좋음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가령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법은
누구에게나 타당한 도덕준칙이 된다.
그러나 니체에게 좋음은 영원회귀를 통해 선택되는‘반복 가능성’에 있다.
좋음이란 내가 무한 반복하더라도 싫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커피 마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여행을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단 한 번도 반복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나쁨(惡)이 된다.
이처럼 영원회귀를 통해 좋음과 나쁨을 가르는 선별의 원칙은
칸트의 보편적 도덕법칙이 아닌 개별적인 원칙이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가령 전공이나 취미, 직업을 선택할 때 영원회귀 사상을 활용하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선명해진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과 절대로 하기 싫은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동일한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가장 좋은 것(善)을 골라내는 기준은 가장 나쁜 것(惡)을 제거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늘 보고 그리운 사람은 인연이 되지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악연이 된다.
우리 인생에서 영원회귀는 타자와의 무한한 만남을 뜻한다.
그러나 버킷리스트처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만을 골라서 적는다 해도
현실에서는 싫은 사람을 완전히 피할 방법이 없다.
현실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적과 동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참고 견뎌낼 것인가?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타자와 다시 만나게 되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니체의 영원회귀는 좋은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포함한 모든 것을 긍정한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돼야 한다.
니체의‘운명애’는 더하는 것과 빼는 것 없이 자신 인생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똑같은 삶을 다시 살아도 후회하지 않는 긍정. 그것이 운명애다.
‘그것이 인생이었던가, 다시 한 번 더’를 외칠 때,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것에는 역설적으로 고통이 포함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뿐만 아니라 이제 헤어져 증오하게 된 사람마저도
운명적인 만남으로 긍정된다.
악연마저 인연의 고리로 잇는 필연적인 사랑이 운명애다.
미워하는 사람도 되돌아오면 다시 만나 포용할 수 있는‘바다’처럼 넓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