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박후남 권사님 ! 어머니가 요새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말하시면서 옛날을 그리신다. 이북에서 어머니의 친정 과수원에 골방에 구들장을 뜯어서 그속에서 숨어살면서 이념이 다르기에 이남으로 넘어오셨다. 20살의 나이로 남편과함께 아기를 업고 깊은 밤에 경찰가족으로 혼자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지혜로 어머니와 등에 업은 아기와 여우목도리 하나를 걸치고 조그만배를 타고 15명이 깊은 밤에 이남으로 넘어 오셨다고 하셨다. 밤에 둘이 손잡고 불빛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한강을 건너는데 엄마는 키가 작으니 자꾸 깊은곳으로 가는것 같아서 아버지께 물이깊다고 하여 다시 돌아 섰다고 하셨다. 그때 그대로 갔다면 두 부부가 한강 속으로 들어가셨다면 나는 태어나지도 안았을 것이다. 낯선 탸향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당시 어려움때문에 아들을 잃어버리고 낙심하시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두 분다 어린 나이에 타향살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버지는 다시 직업을 복귀하여 서울종로구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난 종로구 관훈동 종로 경찰서 옆이 나의 출생지이다. 아들을 잃고 상심하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 딸이라고 쳐다보지도 않던 아버지는 주위에서 맏딸은 재산밑천 이라 하여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하며 나를 낙으로 삼고 방황하던 아버지가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미군부대에서 양털잠바를 3살용으로 만들어서 추울까봐 난로옆에서 안고 있다가 엉덩이도 몇번씩 데이고 가난했지만 귀하게 키우셨다고 한다. 동생들이 태어나면서도 어머니는 박봉에도 잘키우시려하였는데 난 너무나 철이 늦게 들어서 부모님 속을 많이 태웠다. 어려서는 약해서 동지섣달에도 병원문을 두드렸다고 하셨다. 동생들이 태어나면서도 난 너무나 철이 없어서 동생들도 돌보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무서웠지만 내말을 무조건 들어주시고 또 타이르셔서 이해를 시켰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무엇이든지 들어주신 아버지와 엄마를 돕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철없이 자라면서 무조건 내가 하는 것이 안되면 난 밥을 안먹고 투쟁하면 들어주셨다. 엄마에게도 나는 맏딸이 아니라 속을 썩이는 자식이었다. 어려움속에서도 5남매를 키우시는라 엄마는 힘들어 하셨지만 혼자서 얼마나 힘들으셨을까! 당신들은 힘들어도 헌옷을 입히지 않으시고 명절마다 친척이 없기에 더 잘해주신 부모님 입고 먹는것은 걱정하지 않게 하신 부모님을 고맙게 여기지 못했다. 6학년까지 소풍을 쫓아다니며 반찬투정 하던 나를 다 맞춰주시며 숙제도 다해주고 맏딸로서가 아니라 힘든 딸이었고 사춘기의 방황도 엄마때문에 지나갔다. 나의 힘든 시간들을 엄마는 쪽지와 타이름으로 나의 방황을 잠재우기도 했다. 아버지의 특이한 직업과 또 본인의 힘듬으로 엄마는 남편 비위와 지식들의 헌신으로 사셨다. 그당시 엄마들은 다그랬겠지만 우리가정은 좋을때는 좋지만 아버지가 힘들어서 술을 잡수시면 무서워했다. 그당시 아버지도 아무도 없기에 또 엄마에게 화풀이 하신 것 같다. 조금이라도 대답하면 큰일이 났다.난 아버지의비위를 맞추며 아버지옆에 있었다. 다들 무서워 했지만 그일을 내가 해결해야 하기에... 뒷수습도 내몫이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헤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그당시 엄마도 착하고 어리기에 참고 사신 것 같았다. 그심정도 이해하지만 그방법을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도 사회생활이 얼마나 힘이 들면 술을 마시고 집에서 화풀이를 하시는지 늦게 깨달았다. 나는 너무나 철이 없었다. 사춘기때는 아버지가 밉기도 해서 그때부터 엄마편이었다.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버지의 말한마디면 무조건 해야하는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고 친척도 없고 아무도 없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병으로9년을 수발을 하면서도 참으시며 그렇게 사셨다. 지시만 하시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면 큰일이 났다. 조그만 집이라도 그 집을 헐어서 2층으로 지으신 어머니.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난리가 나니 마음을 졸이면서 사신 어머니 .. 어느 어머니가 자식과남편에게 헌신하지 않았겠는가..그러나 우리어머니는 혼자 울면서 혼자하시면서도 굳건히 사셨다. 남편이 쓰러졌을때 어머니는 집을 팔아 집장사를 했다.어떻게 해서든지 살기위해 어머니는 힘을 썼다. 그당시 나는 무능했다. 고민만 했다. 맏딸로 잘되어야 하는데 왠일로 내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을 떨어지고 재수를 했지만 집안사정 때문에 그만두었다. 취직도 안되었다. 그렇게 청년시절을 방황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뒤늦게 교회를 다니기시작했다. 미친듯이 교회를 다녔다. 그것만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하나님이 나를 교회를 인도하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쩔수 없이 도피하듯 결혼했지만 안믿는 가정, 남편은 나를 좋아해서 교회를 쫓아다녔지만 주의길을 가는것을 상상도 못해보았다. 현실도피 문제해결을 하며 내가 의지할 곳이 없기에 하나님을 믿기로 했는데..어머니는 그당시 미신을 믿으셨지만 딸이 믿는 하나님을 믿기로 하셨다. 기도원에가면 모시고 가고 교회가면 모시고 갔지만 허울좋은 신앙을 가지고 계셨다. 노인대학을 15년 다니시며 교회안에서 노시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잘되지 못하고 가난하게 사는 딸을 보면 가슴 아파했던 어머님!! 너는 주의길을 가는 것이 아닌것 같다. 그길이 아니면 돌아설줄도 알아라 하셨지만 난끝까지 힘들어도 교회를 다니고 교회를 하게 되었다. 전기세를 못내서 십자가 탑에 불이 안들어오면 엄마에게달려가 전기가 끊어졌다고 하면 전기세를 내주시고 신학을 가야 한다고 하면 쌈지돈으로 학비를 내주시고 쌀이없다고 하면 쌀을 사주시고 돈이 없다면 자식들의용돈으로 주셨다. 교회를 하면서 어렵기만 하면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고 힘들면 엄마에게 하소연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을 해주신 어머니 그어머니를 조금만 형편이 나아지만 모시고 싶고 맏딸노릇을 하고 싶었다. 20여년을 모셨지만 어머니를 모신것이 아니라 내가 더 편하기위해서였던 것같다. 살림을 못하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헌신하셨다. 미국에 3년동안 가셨던 그때를 빼곤 ... 내가 지방으로 다닐때 기도원에 있을때 외에는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보지 않았다. 내가 훈련받을때도 같이 계셨고 사역을 하다가 힘들어 울 때도 지나가다보면 소도보고 말도 본다면서 위로해주시고 이곳에 와서 10여년을 사역하는 것을 보면 억울해서 울때도 위로해주시고 힘들때도 내등을 토탁 거리며 힘을 주셨던 어머니 나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시고 나를 위해 하나님을 섬기시던 어머니 내가 교회가면 조심해서 잘다녀오라고... 밤에 교회가면 올때까지 무사히 오게해달라고 기도하시며 식사후 아침11시에 한시간기도하시고 저녁때면 내가 교회가 면 올때까지 기도하셨던 어머니...나보다 불이 많으셨던 어머니 사역자들이 어머니의손을 잡으며 불이 많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세요. 하면 그말을 듣고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하시며 기도하셨던 어머니 사위가 죽었을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않는다고 했었다가 딸이 믿는 하나님 죽어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그말때문에 다시 믿으셨는데 작은 딸이 죽으면서 또 다시 실망하신 어머니 그 후에 기도도 못하시고 낙심하셨지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한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시며 찬송가를 10곡정도는 4절까지 지금도 하시는 어머니 점점 찬송가 가사가 안 떠오르신다고 하신다. 장기금식을 할때도 보호식을 해주시고 개척교회의 어려울땐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나에게 주시고 ...그런 어머니가 지금은 아퍼서 중환자실에 계시다 물론 하나님이 오시라고 하면 보내드려야 하지만 가시기전까지라도 내옆에 계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를 부르시고 계실 어머니!!! 아들들은 울타리로 멀리 타국에 사는 큰 아들을 보고 싶으셔서 눈물을 흘려도 오지 못하는 아들을 원망하며... 어머니의 간병이 이제는 힘들지 않다.입원하시기전날 까지 같이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5번씩 찬송가를 숨이 찰 때까지 같이 불렀는데...그 다음날 숨을 가쁘게 쉬는 것 같아서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산소호흡기를 하루종일 끼고서야 정신이 돌아오신 어머니 산소호흡기를 해서라도 연명했으면 좋겠다. 요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셔서 힘들어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가 나면 요양원에 보내겠다고 한 것도 후회가 된다.지금도 격리되어 나를 원망하시고 좌절하실 것이다. 조금이라도 옆에 있어야 하는데... 동생에게도 그렇게 사랑스러워서 대소변도 냄새가 안났다. 동생도 언니미안해 했지만 난 아무렇지가 않았다. 깍쟁이 이기주의 조금만 비위가 약해서 구역질을 하던 내가 왜그렇게 냄새도 안나고 그런것이 사랑스러운지.. 하나님이 나의 코를 나의 눈을 나의 비위를 다막으셨나보다. 조금만 비위가 약해도 안하던 내가 모든 것이 사랑스러우니까 ....남에게는 그렇게 못할 것이다. 대변도 소변도 잠을 못잘 때에도 옆에서 지켜드리는 것과 내가 먹는 것보다 어머니가 어떻게 하면 잘 잡숫고 건강할수 있을까... 기저귀를 갈아드릴때 미안하다고 하면 엄마가 어렸을때 나를 그렇게 해주셨다고 하면 웃으신다. 어머니도 내가 어렸을때 그렇게 하셨을것이다. 냄새도 안나고 밥을 안드시면 속상하고 잘드시면 좋고 내 입에 들어가는것보다 어머니가 잘잡수시면 좋았다. 빚진것을 갚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고맙다고 하셨다. 너를 너무 고생시키는 것같다고 하신다. 이제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조금 만 더사셔도 좋겠다.내 품에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여동생도 집에서 갔듯이 내가 교회이며 집이 교회이며 교회 품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으면 좋겠다. 교회를 못갈때 화가 나면 미안하다고 하시고 휠체어 끌때 너무나 힘들면 내가 걸어갈께 하시며 교회계단도 숨이차도 꼭 같이 가셨다. 혼자 보내지 않으셨다. 때론 화도 내고 힘든 것을 표현할때는 너무 미안해 하셨다. 그것도 마음에 걸리고 회개가 된다. 화가 난다고 힘부로 말했던 것이... 그래도 교회는 꼭 가셨다. 지금도 빨리 나아서 같이 교회를 가야 한다고 하신다. 아직은 놓아드리고 싶지 않다. 숨만 쉬더라도 내옆에 계시면 좋겠다. 좀 더 같이 있고 싶고 더 잘해드리고 싶다. 하나님이 오라하시면 가시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 어머니 이기전에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가는길을 인도해 보내드리고 싶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도 중요하고 하나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도 한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은 어머니를 그리며 이 시간들을 견디지 못해서 글이라도 쓰며 나를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서 ... 24시간이 모자랐던 내가 시간이 남으니 혼자 집에서 잠을 자기도 혼자 있기도 허전하다 지지고 볶고 힘든 것이 더 나은 것을... 어머니가 죽을 잡수시면 나도 죽을 먹고 밥을 잡수시면 나도 밥을 먹고 안잡수시면 나도 먹고 싶지가 않다. 지금도 나를 기다리시다 지치시면 어떻게 하나 .못 보고 돌아가시면 어떻하나 걱정이 된다. 한 영혼을 아버지 집까지 인도해드리는 것...아버지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좁아보였던 방이 왜 그렇게 넓어 보이는지... 잠을 자도 자는 것 갖지 않고 밥도 먹고 싶지 않다.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기회를 주세요. 어머니와 같이 있어서 내 옆에서 하나님께 가실 수 있도록..천사가 이끄시고 하늘 문이 열리서 아버지에게 갈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평안히 가실 때까지 모실 수 있게 해주세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담은 글을 읽으며 목사님의 마음속 아픔과 그리움이 전해졌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그분을 위해 헌신하며 기도하신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힘든 시간 속에서도 목사님과 어머니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시고, 어머니께서 주님의 품 안에서 편안히 안식하실 수 있도록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목사님께서 그동안 어머니께 받으신 사랑과 기도를 계속해서 기억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힘과 위로를 얻으시길 소망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며, 하나님께서 목사님과 어머니를 함께 지켜주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시간이 주님의 은혜로 가득하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시며 목사님과 어머니를 인도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첫댓글 사랑하는 손에스더 목사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담은 글을 읽으며 목사님의 마음속 아픔과 그리움이 전해졌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그분을 위해 헌신하며 기도하신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힘든 시간 속에서도 목사님과 어머니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시고, 어머니께서 주님의 품 안에서 편안히 안식하실 수 있도록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목사님께서 그동안 어머니께 받으신 사랑과 기도를 계속해서 기억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힘과 위로를 얻으시길 소망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며, 하나님께서 목사님과 어머니를 함께 지켜주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시간이 주님의 은혜로 가득하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시며 목사님과 어머니를 인도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아멘아멘 할렐루야
손목사님은 어머니 사랑이 대단한 효녀입니다
글을읽으면서
회개의 눈물이 계속 납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그 모든 시간들을 다 지켜보시고 목사님 을 더욱 사랑하시어 위로해 주실줄 믿습니다 🙏
목사님 힘내세요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목사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상달될 줄 믿습니다.중환자실에서 격리시켰을때 놀래서 선망이 와서 집중치료실에 옆에 있는데도 주사기를 빼고 어린아이처럼 꼼짝못하게하네요.하루속히 치료되어 집에 가고싶아하니 목사님의 중보기도로 그렇게 될줄 믿습니다.
@손에스더 아멘아멘 할렐루야 소망대로 이뤄주실줄 믿습니다
기도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