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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 기황후 貢女 奇皇后
“모진 비바람에 쓸리고 할퀴어 마모된 돌멩이가 더욱 야물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41
황후가 되는 일이 이리 손쉬울 줄이야, 은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황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은과 소홍, 이렇게 세 사람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목을 빳빳이 곧추 세우고 있으면 얼굴도 모르는 황실의 인척들이 순서대로 들어와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인사말을 건네고 뻔해 보이는 선물을 내려두고 갔다. 100명 아니, 200명 쯤 다녀 갔으려나. 소홍의 눈이 연신 초승달처럼 휘어져 옥 같은 목소리로 웃음을 짓고 있는 반면, 은의 내리깐 시선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리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황후가 되는 것, 참 쉽구나.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긴 행사가 끝나가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 하례 인사가 끝나자 드디어 고 환관이 들어와 오늘의 의식이 끝났음을 고했다.
“드디어 끝이 났군.”
“아직 남아있습니다, 폐하.”
줄곧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우겸이 황제의 앞으로 나아가 정중히 예를 차렸다. 그에게 몇 마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는 은을 향해 서더니,
“하례 드립니다, 황후마마.”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의 미소가 얼어버린 은의 마음을 녹였다.
“고맙습니다. 지원.”
오늘 하루 처음으로, 은은 겨우 웃을 수 있었다. 그의 미소는 이제부터 은에게 짐이 될테지만, 그에게 웃어주는 것이라면야 살아가는 동안 제가 해야 할 몫처럼 여길 수도 있다. 은의 인사를 받은 그가 목례와 함께 다시 제자리로 돌아선다.
“피곤하군.”
모두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황제의 목소리였다. 실상, 하례를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 역시 ‘오늘밤 황제가 누구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될 것인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황제는 하나, 황후는 둘. 당연한 이야기였다.
“돌아가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폐하. 그럼 신첩은 처소로.”
이쯤이면 저는 알아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미 두 명의 황후가 정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꿈같은 첫날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이름뿐인 ‘황후’라는 명목으로 사실은 후궁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오늘 하루로써 모두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신첩’이라는 말에 잠시 도취된 황제는 은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모습마저 놓치고 있었다.
“잠깐-”
곧 황제가 은을 붙잡았지만, 돌아서며 먼저 마주친 것은 저를 향해 웃고 있는 소홍의 눈이었다. 볼 때마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저 말간 눈이야말로,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새로 단장하였다는 처소가 어떻게 꾸며졌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먼저 돌아가옵니다. 폐하.”
그래도 은은 돌아서기까지 태연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황제에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새 처소까지 은을 안내할 상궁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를 수행했다. 은은 여러 궁인들에 둘러싸인 채 말없이 걷는다. 황제의 한 마디 말 그대로 몸도 마음도 온통 ‘피곤함’ 뿐이다. 그토록 바라고 꿈꾸던 날인데, 대체 무엇을 위하여 그리 악착같이 버텨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저 어서 돌아가 이 귀찮은 감정들을 다 벗어두고 눕고 싶은 마음뿐이다.
...
주 황후가 사용하던 황후궁은 철거를 시작했고, 새 황후가 사용하게 될 처소는 선대 태후들이 사용하던 전각들 가운데 깨끗한 곳을 두 곳 정하여 가구나 집기들을 모두 새 것으로 들여 단장했다고 하였다. 두 황후의 처소는, 개인의 생활이나 황제와 보내게 될 시간 등을 고려하여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고도 했다. 그 위치를 지칭하여 ‘동궁’과 ‘서궁’으로 구별하여 불렀다.
“이곳입니다. 황후마마.”
은은 새로운 처소를 보기에 앞서, 자신을 지칭하는 ‘황후’라는 말의 생경함에 미리 놀랐다.
“선대에 사용하시던 궁이긴 하지만 무척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황제 폐하의 모친이신 선황태후마마께서 머무시던 곳이기도 하지요.”
상궁의 푸근한 어투가 한결 마음을 누그러지게 했다. 과연 궁은 아름다웠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혼자만의 공간이, 그것도 이렇게나 큰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천천히 새 황후궁을 둘러보는 은의 뒤로 상궁이 따랐다.
“폐하께서 특별히 이 동궁을 지명하신 데에도 이유가 있으실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황제궁도 아주 잘 보이지요. 모르긴 해도 서궁 쪽보다 거리도 더 가까울 것입니다.”
자랑이라도 하듯 은근히 말을 흘리는 상궁 덕분에 은은 조금 웃었다.
“고맙네.”
“‘장 상궁’이라 부르십시오.”
“이제부턴 조금 쉬고 싶네만. 찾을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게.”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황후마마.”
...
방이 이만큼 아름답지 않았다면 조금 더 속상한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꽉 막히고 답답할까 걱정했던 방 안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가구들도 채워져 있었다. 손으로 가만히 가구들을 쓸어보고 방 안을 한 바퀴 휘 둘러본 은은 만족감에 도취된 듯이 침상 위로 몸을 뉘였다. 거추장스런 옷도, 화려한 머리 장식들도 떼지 않은 채 바삭한 이불 위로 온 몸을 맡기자 푹신한 감촉이 피로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기은(奇恩)’. 우선 너의 그 이름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
“네가, 이 궁의 주인이 되어다오.”
..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도 그 맘이 변하지 않았을 때, 그 때 다시 말해다오. 기다리마.”
이 커다란 원의 땅에 도착해서부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한 고비 넘기면 또 다른 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이 화려한 방을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이제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는 황제궁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원 최고 가문의 여식이라는 배경까지 완벽한 그녀와 함께 있을까.
-부스럭.
생각을 방해하는 소리. 그것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동시에 친근한 소리이기도 했다. 은은 침상 아래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흰 고양이의 꼬리를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도 와 있었구나!”
궁에 데려다 두고 싶다던 바람을 잊지 않았구나, 그 사람. 은은 고양이를 안아 올려 침상 위에 앉혔다. 늘 그랬듯이 고양이는 온몸을 부벼대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보슬보슬한 흰 털이 다가와 곁에 자리를 잡고는, 은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본다. 은은 고양이를 쓰다듬어주다가 그 푹신한 촉감에 위안 받듯이 조금씩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좋다, 그래도.”
분명 아직은, 저를 힘들게 하는 일이 더 많지만 지금의 안락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이만한 일로 응석을 부릴 수는 없다. 더 큰 것을 바라게 될수록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따르는 법. 두고 보라지. 역사가 찬탄하는 황후가 되어보일테니.
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덧옷을 벗어 침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그리고 방 가운데의 탁자로 다가가 머리에 꽂아놓은 장식들을 하나씩 빼 내려놓기 시작했다. 많이도 꽂아두었다고 생각하다 손목에 걸린 무언가가 툭, 하고 빠져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본다. 붉은 매화다.
찬찬히 몸을 숙여 그것을 집어 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막히고 목이 메는 그 머리장식을 한참 그렇게 서서 바라만 보았다. 누군가의 기척이 문을 열어 은의 생각을 방해하기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뒤돌아보고, 곧 멈춘다.
“폐하.”
몰래 찾아왔다는 듯이, 아무런 말도 않는다. 그가 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은의 손을 잡았다. 손에 쥐고 있던 머리장식을 그도 내려 보았다.
“내 생각을 하였던 모양이지?”
“아닙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응석을 부리고 만다. 손을 빼내고는 침상 가까이로 가, 심술 난 꼬마 숙녀처럼 풀썩 앉아버렸다. 그가 그런 은을 사랑스럽다는 듯 보고 있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정후’께 가보셔야지요.”
“단단히 심술이 났군.”
‘소홍’ 그녀도, 자신도 한 날 한 시에 황후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공식적인 ‘정후’로 여기고 싶어 하는 쪽이 그녀라는 것쯤은 안다. 은은 스스로를 할퀴는 단어를 선택하여 황제를 향해 응석부리고 있었다. 떼를 쓴다. 아픈 쪽이 누구인지 잘 살피고, 보듬어달라고.
“이보시오, 황후.”
그가 은에게로 가까이 다가온다. 모서리에 걸터앉은 은의 앞에 멈춰, 침상 위로 양손을 짚었다. 은은 양팔 안에 갇힌 채로 서서히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피하려 몸을 젖혔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그가 멈췄을 때, 닿을 듯 말 듯한 위치에 그의 입술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궁을 선물하였으니, 내게도 상을 주지 않으시겠소.”
그의 얼굴에, 이전에는 보지 못한 장난기가 가득 묻어 있었다. 농염한 목소리, 입을 벌릴 때마다 와 닿는 입김에 끌려가듯 첫 번째 입맞춤.
“이 나라의 황후는 그대이고,”
두 번째 입맞춤.
“나의 정후도 그대이고,”
세 번째 입맞춤 뒤에는.
“죽는 날까지 사랑할 이도, 너 뿐인 것을.”
꿈결 같은 고백과 맹세. 그 달콤함에 취해버린 은의 손에서 놓아버린 붉은 매화가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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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현- 님★ 은이 소홍을 쉽게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좋겠죠, 다음화도 확인해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전 소홍이 시러요ㅠ ㅠ
안녕나의우주 님★ 다음화도 지켜봐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죽는 날 까지 사랑할 이도, 너뿐인 것을.... 이래앨매제ㅐㄱ피스해ㅏ도 ㅛㅐㅏㅓ 깎! 아너무너무좋아요!!! 흐그ㅜ 부러벼
햇살따뜻한마루 님★ 다음화에서 뵙겠습니다, 꼬릿말 감사합니다^^
예헤이 완전 달달해요 ㅋㅋㅋ 황제가 여자를 달래는 기술이 장난 아닌데요?ㅋㅋㅋ 진짜 로맨틱하다~ 부러워라 ㅜㅜ 근데;; 마냥 기뻐할 수 없는게요.. 소홍땜시ㅜㅜ 이여자를 어이할꼬!!!
헤르티아 님★ '기술'이랄 것 까지야ㅎ 그만큼 은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거겠죠. 다음화도 확인해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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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님★ 쓰고보니 어쩐지 제 글이 아닌 것 같은 기분;; 어쩐지 어색하네요. 다음화에서 뵐게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후후후 달달하네요ㅎㅎ 전 이런 장면을 원했다구요!! 은이가 부럽네요ㅠㅠ 저한테도 황제같은 남자가 있었어면 좋겠군요..
유리별미곰 님★ 진즉에 이런 장면을 보여드렸어야 했군요. 다음화도 확인해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엄훠엄훠 완전 부럽다 ~!!! 이밤에 정말 부럽게 만드네요 ㅠㅠㅠㅠ소홍이 좀 불쌍하네요 아직은
까불지마ㅋ 님★ 앞으로 소홍에 대해서 계속 다뤄질 예정입니다. 지켜봐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꺆><♡ 완전 달달합니다~~!!
앞으로도 두 사람이 달달한 시간을 함께 만들었으면 해요^^
그렇지만 아직 떨어지는 '붉은 매화'가 가슴이 아픈건 어쩔 수가 없네요ㅠㅠ
Tiare★ 님★ 부디 초달달모드가 계속되길 지켜봐주세요. 다음화에서 뵐게요, 꼬릿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