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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태수(一錢太守)
전별금으로 준 돈 중 일전만 받았다는 태수의 이야기로 청백리를 뜻하는 말이다.
一 : 한 일(一/0)
錢 : 돈 전(金/8)
太 : 클 태(大/1)
守 : 지킬 수(宀/3)
출전 : 삼국지(三國志) 卷49 오서(吳書) 四 유요태사자사섭전(劉繇太史慈士燮傳)
이 성어는 한(漢)나라 말엽 청백리인 유총(劉寵)의 일화에서 연유하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유총의 자(字)는 조영(祖榮)으로 부업(父業)을 이어받아, 경전에 밝고 행실을 닦아 효렴으로 천거되었다.
寵字祖榮, 受父業, 以經明行修, 舉孝廉.
光祿(大夫)察四行, 除東平陵令. 視事數年, 以母病棄官, 百姓士民攀輿拒輪, 充塞道路, 車不得前, 乃止亭, 輕服潛遁, 歸脩供養. 後辟大將軍府, 稍遷會稽太守, 正身率下, 郡中大治.
벼슬길에 나가 점차 승진해 회계(會稽)태수가 되었는데, 자신을 바르게 하고, 법령 절차를 간소하여 백성들을 위해 일을 했다.
稍遷會稽太守, 正身率下, 郡中大治.
그러다가 그가 다른 곳으로 전근해 가던 날 산음현(山陰縣)의 백발노인 대 여섯 명이 유총을 전송하면서 1백전을 가져왔다.
徵入為將作大匠. 山陰縣民去治數十里有若邪中在山谷間, 五六老翁年皆七八十, 聞寵遷, 相率共送寵, 人齎百錢.
유총이 이를 보고 노인들에게 '부로(父老)들께서 어찌 힘들게도 먼 곳에서 오십니까!'라 하니,
寵見, 勞來曰 : 父老何乃自苦遠來!
모두가 대답하길, '산곡에 사는 비루한 늙은이들이라, 생전에 아직 군현에 와 본적이 없습니다. 예전에 관리들이 징발하고 착취함이 없어지지 않아, 민간에서는 혹 밤에도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마침내는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명부(名府; 유총)께서 수레에 내리신(부임) 이후로는 개도 밤에 짖지 않고, 관리들이 민가에 오는 일이 드무니, 나이가 늙어서야 바로 성화(聖化)를 만나게 되었는데, 지금 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우리들이 와서 전송하는 것입니다'라 했다.
皆對曰 : 山谷鄙老, 生未嘗至郡縣. 他時吏發求不去, 民間或夜不絕狗吠, 竟夕民不得安. 自明府下車以來, 狗不夜吠, 吏稀至民間, 年老遭值聖化, 今聞當見棄去, 故戮力來送.
유총이 사례하고, 그들 중에서 큰 동전 하나만 골라 받으니, 그래서 회계에서는 유총을 일전태수(一錢太守)라 불렀다. 그 청렴함이 이와 같았다.
寵謝之, 為選受一大錢, 故會稽號寵為取一錢太守. 其清如是.
三國志/卷49 吳書四
劉繇太史慈士燮傳
유요전(劉繇傳)
劉繇字正禮, 東萊牟平人也.
유요(劉繇)의 자는 정체(正體)이며, 동래(東萊)군 모평(牟平)현 사람이다.
齊孝王少子封牟平侯, 子孫家焉.
제효왕(齊孝王)의 막내 아들이 모평후에 봉해졌는데, 그 자손들이 일가를 이루었다.
繇伯父寵, ?漢太尉.
유요의 백부는 유총(劉寵)이니, 한의 태위(太衛)가 되었다.
(註)
속한서(續漢書)에 이르길, 유요의 조부는 유본(劉本)으로 스승에게 경전을 수업받고 여러 책을 널리 배워 통유(通儒)라 불렸다. 현량 방정으로 천거되어, 선현(船縣)의 현장(縣長)이 되었는데, 관직에 있다 죽었다.
續漢書曰 : 繇祖父本, 師受經傳, 博學群書, 號?通儒. ?賢良方正, ?般長, 卒官.
유총의 자는 조영(祖榮)으로 부업(父業)을 이어받아, 경전에 밝고 행실을 닦아 효렴으로 천거되어, 광록대부(光祿大夫)로써 사방을 다니며 두루 감찰하였으며, 동평릉(東平陵)의 현령에 제수되었다.
寵字祖榮, 受父業, 以經明行修, ?孝廉, 光祿(大夫)察四行, 除東平陵令.
(현령으로) 일을 수년 동안 보았는데, 모친의 병 때문에 관직을 버리자, 백성들과 사민(士民)들이 수레를 잡고 바퀴를 막으며 도로에 가득 모이니, 수레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이에 멈추고, 가벼운 복장으로 몰래 숨어 돌아가서 모친을 공양했다.
視事數年, 以母病棄官, 百姓士民攀輿拒輪, 充塞道路, 車不得前, 乃止亭, 輕服潛遁, 歸脩供養.
후에 대장군부(大將軍府)에 불러졌고, 점차 승진해 회계(會稽)태수가 되었는데, 자신을 바르게 하여 아랫사람들을 거느리니, 군중(郡中)이 크게 다스려졌다. 불려 들여가 장작대장(將作大匠)이 되었다.
後?大將軍府, 稍遷會稽太守, 正身率下, 郡中大治. 徵入?將作大匠.
산음(山陰; 원래 회계군의 治所입니다)의 현민들 중 치소에서 수십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약사(若邪) 속의 산과 계곡 사이에 있는 자들이 있었는데, 대여섯명 늙은이 나이가 모두 칠팔십이었으나, 유총이 옮겨간다는 소식을 듣고, 서로 와서는 유총을 같이 전송하는데, 사람들이 1백전을 가져왔다.
山陰縣民去治數十里有若邪中在山谷間, 五六老翁年皆七八十, 聞寵遷, 相率共送寵, 人齎百錢.
유총이 이를 보고는 힘들여 와서는 '부로(父老)들께서 어찌 힘들게도 먼 곳에서 오십닙까!'라 하니,
寵見, 勞來曰 : 父老何乃自苦遠來!
모두가 대답하길 '산곡에 사는 비루한 늙은이들이라, 생전에 아직 군현에 와 본적이 없습니다. 예전에 관리들이 징발하고 착취함이 없어지지 않아, 민간에서는 혹 밤에도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마침내는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명부(名府)께서 (와서) 수레에 내리신 이후로는 개도 밤에 짖지 않고, 관리들이 민가에 오는 일이 드무니, 나이가 늙어서야 바로 성화(聖化)를 만나게 되었는데, 지금 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우리들이 와서 전송하는 것입니다'라 했다.
皆對曰 : 山谷鄙老, 生未嘗至郡縣. 他時吏發求不去, 民閒或夜不?狗吠, 竟夕民不得安. 自明府下車以來, 狗不夜吠, 吏稀至民閒, 年老遭?聖化, 今聞當見棄去, 故戮力來送.
유총이 사례하고, 그들 중에서 큰 동전 하나만 골라 받으니, 그래서 회계에서는 유총을 일전태수(一錢太守)라 불렀다. 그 청렴함이 이와 같았다.
寵謝之, 為選受一大錢, 故會稽號寵為取一錢太守. 其清如是.
유총은 전후로 두 번의 군수를 역임하고, 8번 구경(九卿)의 지위에 있었고, 4번 삼사(三事; 三公)에 올랐다. 집에는 재물을 가지지 않았고, 중요한 보물이 없었으며, 항상 보잘것 없는 음식을 없고, 의복은 박하였으며, 수레는 해지고 말은 여위었으니, 호칭을 구루(窶陋)라 불렸다. 세 번이나 재상의 지위를 버리고, 번번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寵前後歷二郡, 八居九列, 四登三事. 家不藏賄, 無重寶器, ?菲?食, 薄衣服, 弊車羸馬, 號??陋. 三去相位, 輒歸本土。
경사를 왕래할 때면 항상 길에서 내려와 참승(驂乘)을 풀고 지나갔지만, 사람들은 그가 누군인지 몰라봤다.
往來京師, 常下道脫?過, 人莫知焉.
유총이 일찍이 정(亭)에서 쉬려고 했는데, 그 정의 관리가 그를 제지하며 말하길 '역참을 정돈한 것은 유공을 기다리느라 그랬으니, 여기서 쉴 수 없소'라 했다.
寵嘗欲止亭, 亭吏止之曰 : 整頓傳舍, 以待劉公, 不可得止.
유총이 이 때문에 그냥 지나갔다. 그의 청렴함과 검소함이 모두 이같은 것이었다. 노환으로 집에서 죽었다고 한다.
寵因過去. 其廉儉皆此類也. 以老病卒于家.
유요의 형은 유대(劉岱)인데, 자는 공산(公山)이며, 시중(侍中)과 연주(兗州)자사를 역임했다.
(註)
속한서에 이르길, 유요의 부친은 유여(劉輿)인데, 유방(劉方)이라고도 하며, 산양(山陽)태수이다. 유대와 유요는 모두 영특한 재주가 있었다. '영웅기'에는 유대는 효제(孝悌)하고 인서(仁恕)하여, 자신을 비워 남을 받아 준다고 칭송했다고 한다.
續漢書曰 : 繇父輿, 一名方, 山陽太守. 岱繇皆有雋才. 英雄記稱岱孝悌仁恕, 以虛己受人.
유요의 나이 19세 때, 숙부 유위(劉韙)가 적(賊)에게 협박당해 인질이 된 적이 있었는데, 유요가 빼앗아 데려오니, 이 때문에 이름을 날렸다.
繇年十九, 從父??賊所劫質, 繇?取以歸, 由是顯名.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중(郎中)이 되고, 하읍(下邑)의 현장으로 제수되었다. 이때 군수가 자신의 귀척(貴戚)들을 정사를 내맡기니,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孝廉, ??中, 除下邑長. 時郡守以貴戚託之, 遂棄官去.
주에 불려가 제남(濟南)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제남상(濟南相)이던 중상시(中常侍)의 아들이 탐욕스럽고 복종하지 않으니, 유요가 주청하여 그를 파면시켰다.
州?部濟南, 濟南相中常侍子, 貪穢不循, 繇奏免之.
평원(平原)의 도구홍(陶丘洪)이 유요를 천거하니, 원래 영(令)에서는 무재(茂才)로 천거하려 했다.
平原陶丘洪薦繇, 欲令?茂才.
자사가 말하길 '전년에 공산(公山; 유요의 형인 유대)를 천거했는데, 어찌 다시 정체(유요의 자)를 천거하겠습니까?'라 했다.
刺史曰 : 前年?公山, 奈何復?正禮乎?
도구홍이 '만약 명사군(名使君)께서 이전에 공산을 등용하시고, 나중에 정체를 발탁하시면, 이것은 소위 두 용이 장도(長途)에 날아오르고, 천리에 기린을 내달리는 것이니, 또한 가하지 않습니까?'라 했다.
洪曰 : 若明使君用公山於前, 擢正禮於後, 所謂御二龍於長塗, 騁騏驥於千里, 不亦可乎?
사공(司空) 연(掾)으로 부름을 만나 시어사(侍御史)에 제수 되었으나, 가지 않았다.
會?司空?, 除侍御史, 不就.
회포(淮浦)로 난을 피해 갔는데, 조서로써 그를 양주(揚州)자사로 삼았다. 이 때, 월술이 회남에 있었는데, 유요가 그를 두려워하고 꺼려해, 감히 그 주로 가지 못했다.
避亂淮浦, 詔書以?揚州刺史。時袁術在淮南, 繇畏憚, 不敢之州.
장강을 건너고자 하니, 오경(吳景)과 손분(孫賁)이 그를 영접해 곡아(曲阿)에 두었다.
欲南渡江, 吳景孫賁迎置曲阿.
원술이 참역(僭逆)할 것을 도모하여, 여러 군현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術圖?僭逆, 攻沒諸郡縣.
유요가 번능(樊能)과 장영(張英)을 파견해 강변에 주둔하며 그를 막도록 하였다.
繇遣樊能張英屯江邊以拒之.
오경과 손분이 원래 원술이 제수하고 등용했던 자들이라, 이에 (유요를) 축출하여 내쫓았다.
以景賁術所授用, 乃迫逐使去.
이에 원술은 곧 스스로 양주자사가 되었고, 오경과 손분은 힘을 합쳐 장영과 번능 등을 공격하였으나, 여러 해가 지나고 항복시키지 못했다.
於是術乃自置揚州刺史, 與景賁?力攻英能等, 歲餘不下.
한 조정에서는 유요에게 양주목, 진무(振武)장군의 관직과 군사 수 만명을 더해주었다.
漢命加繇?牧, 振武將軍, ?數萬人.
손책이 동으로 강을 건너 장영과 번능 등을 공격하자, 유요는 단도(丹徒)로 달아났다가, 마침내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남으로 예장(豫章)을 본전하고 팽택(彭澤)에 주둔했다.
孫策東渡, 破英能等, 繇奔丹徒, 遂?江南保豫章, 駐彭澤.
착융(窄融)이 먼저 도착했다. 태수 주호(朱皓)를 죽이고, 군 중에 들어가 거처했다.
窄融先至. 音壯力反, 殺太守朱皓, 入居郡中.
유요가 진격해 착융을 토벌하였으나, 착융에게 격파되었고, 다시 속현들을 불러 수습해 착융을 공격해 격파했다.
繇進討融, ?融所破, 更復招合屬縣, 攻破融.
착융은 패주하여 산을 들어갔으나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 유요는 얼마 뒤 병들어 죽으니, 이때 나이 42세였다.
融敗走入山, ?民所殺. 繇尋病卒, 時年四十二.
착융이란 자는 단양(丹楊)사람으로 처음엔 무리 수백명을 모아, 서주목 도겸(陶謙)에게로 가 의지했다.
?融者, 丹楊人, 初聚?數百, 往依徐州牧陶謙.
도겸이 광릉(廣陵)과 팽성(彭城)의 조운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마침내는 방종하여 살인을 맘대로 하며, 앉아서 3군의 창고 수입(輸入)을 자신에게 들이도록 결정하였다.
謙使督廣陵彭城運漕, 遂放縱擅殺, 坐斷三郡委輸以自入.
이에 부도(浮圖)의 사당(절)을 크게 일으키고, 동으로 사람으로 만들어 황금으로 몸에 칠하고 비단으로 옷을 해 입혔으며, 동반(銅盤)은 9겹이나 드리웠고, 아래에는 중충의 누각과 길을 내어, 가히 3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모두 다 불경을 읽었고, 경내 및 인군 군의 사람들 중 부처를 좋아하는 자는 도를 들어 받들게 하였으며, 그들의 다른 역(役)은 면제하여 그들을 불러들이니, 이 때문에 원근에서 전후로 오는 자가 5천 여호(戶)나 되었다.
乃大起浮圖祠, 以銅?人, 黃金塗身, 衣以錦采, 垂銅槃九重, 下?重樓閣道, 可容三千餘人, 悉課讀佛經, 令界內及旁郡人有好佛者聽受道, 復其他役以招致之, 由此遠近前後至者五千餘人戶.
매번 부처를 목욕시키고, 술과 음식을 많이 베풀어 놓으며 길에다 자리를 펴니 수십리에 걸쳐 있고, 백성들이 와서 구경하고 음식을 먹는 자가 또한 1만명이고 그 비용은 거억(巨億)으로 헤아렸다.
每浴佛, 多設酒飯, 布席於路, 經數十里, 民人來觀及就食且萬人, 費以巨億計.
조공이 도겸을 공격하자, 서주 지역에 소동이 일어나니, 착융이 남녀 1만 명과 말 3천 필을 거느리고 광릉으로 달아났는데, 광릉태수 조욱(趙昱)은 빈객의 예로써 대우했다.
曹公攻陶謙, 徐土騷動, 融將男女萬口, 馬三千匹, 走廣陵, 廣陵太守趙昱待以賓禮.
이에 앞서, 팽성(彭城) 상(相)인 설례(薛禮)가 도겸에게 핍박을 당하여 말릉(秣陵)에 주둔하고 있었다.
先是, 彭城相薛禮?陶謙所?, 屯?陵.
착융이 광릉의 무리들을 탐하여, 술자리에서 조욱을 살해하고, 병사를 풀어 크게 약탈하고는 이에 싣고 떠나갔다. 지나가며 설례를 죽이고 그런 연후에 주호를 죽였다.
融利廣陵之?, 因酒?殺昱, 放兵大略, 因載而去. 過殺禮, 然後殺皓.
후에 손책이 서쪽으로 강하(江夏)를 정벌하고 돌아와 예장을 지나면서, 유요의 상을 거두어 수레에 싣고 그 집안을 잘 대우해 주었다.
後策西伐江夏, 還過豫章, 收載繇喪, 善遇其家.
왕랑(王郞)이 손책에게 글을 보내 이르길 '유정례(劉正禮)가 예전 처음으로 주(州)에 임하였을 때, 능히 스스로 통달하지는 못했고, 실로 존문(尊門)에 힘입어 선후(先後)로 이를 다스렸기에, 이를 이용해 장강 지역을 구제하고 치세를 이룰 수 있었으니, 헛되게나마 안정된 바가 있습니다. 경내에 부임할 때의 예에는, 분수를 알고 결의했지만, 그 정상(情狀)에는 끝과 시작이 있었습니다. 후에 원씨의 미움을 받아서, 점차 다시 어그러졌습니다. 다시 동맹을 맺었지만, 돌아와서는 주호의 적이 되니, 그 본심을 용서하는 것은 실로 즐거운 바가 아닙니다. 편안해진 이후에는, 항상 평안하고 성취된 바를 변경하길 원하다가, 다시 오랜 호의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가 분리되어, 정성스런 뜻은 밝히지 못하고, 갑자기 죽었으니, 가히 애상하고 한스럽습니다! 돈독함으로 박함을 괴롭히고, 덕으로 원한을 갚음을 아니, 유골을 거두고 고아를 기르며, 망자를 애도하고 살아남은 자를 어루만져, 이미 지나간 원망은 버리고, 육척 몸의 의탁함을 보전하면, 실로 은혜는 깊고 분수를 무겁게 하며, 명실(名實)은 아름다고 후하게 됩니다. 옛날 노나라 사람들은 비록 제나라에 원한이 있어도 상사(喪事)에 관한 일을 폐하지 않았으니, '춘추(春秋)'에서는 이를 옳다고 했고, 이를 일러 예를 얻었다(得禮)고 하니, 진실로 훌륭한 사관(良史)이라면 마땅히 싣는 바이고, 향교(鄕校)에서는 감탄하여 알리는 바입니다. 정례의 원자(元子)는 지조(志操)를 가지고 있으니, 반드시 남다른 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엄이 성하고 형벌이 행해지되, 은혜로써 이를 베풀면 또한 넉넉하지 않겠습니까?'라 했다.
王朗遺策書曰 : 劉正禮昔初臨州, 未能自達, 實賴尊門?之先後, 用能濟江成治, 有所處定. 踐境之禮, 感分結意, 情在終始. 後以袁氏之嫌, 稍更乖剌. 更以同盟, 還??敵, 原其本心, 實非所樂. 康寧之後, 常願?平更成, 復踐宿好. 一爾分離, 款意不昭, 奄然?隕, 可?傷恨!知敦以?薄, 德以報怨, 收骨育孤, 哀亡愍存, 捐?往之猜, 保六尺之託, 誠深恩重分, 美名厚實也. 昔魯人雖有齊怨, 不廢喪紀, 春秋善之, 謂之得禮, 誠良史之所宜藉, ?校之所歎聞. 正禮元子, 致有志操, 想必有以殊異. 威盛刑行, 施之以恩, 不亦優哉?
유요의 장자는 유기(劉基)이며, 자는 경여(敬輿)인데, 나이 14살 때 부친의 상을 치룸에 예를 다하고, 옛 관리들을 대접하였지만, 모두 받은 바 없었다.
繇長子基, 字敬輿, 年十四, 居繇喪盡禮, 故吏?餉, 皆無所受.
(註)
오서(吳書)에 이르길, 유기가 다난(多難)함을 만나, 어린 몸으로 곤경과 고초를 겪었고, 숨어 살고 도리를 몸소 살피지만, 이를 슬픔으로 여기지 않았다. 여러 동생들과 함께 살며, 항상 밤에 자고 일찍 일어나니, 처첩들도 그의 얼굴을 보는게 드물었다. 여러 동생들이 존경하여, 그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망령되게 교류하지 않으니, 문중에 잡다한 빈객이 없었다고 한다.
吳書曰 : 基遭多難, ?丁困苦, 潛處味道, 不以?戚. 與群弟居, 常夜臥早起, 妻妾希見其面. 諸弟敬憚, 事之猶父. 不妄交游, 門無雜賓.
자용(姿容)이 아름다워, 손권이 그를 아끼고 공경했다. 손권이 표기장군(票騎將軍)이 되자, 동조연(東曹掾)으로 불려가, 보의교위(輔義校尉), 건충(建忠)중랑장에 배수되었다.
姿容美好, 孫權愛敬之. 權?驃騎將軍, ?東曹?, 拜輔義校尉建忠中?將.
손권이 오왕(吳王)이 되자, 유기를 대농(大農)으로 승진시켰다. 손권이 일직이 연회를 베풀었는데, 기도위(騎都尉) 우번(虞翻)이 술에 취해 범하여 거스르니, 손권이 그를 죽이고자 하여서 노여움이 매우 컸지만, 유기가 간언한 덕택에, 우번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權?吳王, 遷基大農. 權嘗宴?, 騎都尉虞?醉酒犯?, 權欲殺之, 威怒甚盛, 由基諫爭, ?以得免.
손권이 크게 더운 날, 일찍이 배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배의 누각위로 우레가 치고 비가 내리니, 손권이 덮개로 자신을 덮고 또 유기를 덮어주라고 명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 대우함이 이와 같았다. 낭중령(郎中令)으로 옮겼다.
權大暑時, 嘗於船中宴?, 於船樓上?雷雨, 權以蓋自覆, 又命覆基, 餘人不得也. 其見待如此. 徙?中令.
손권이 칭제하게 되자, 고쳐서 광록훈(光祿勳)으로 삼고, 상서(尙書)의 업무를 나눠 맡게 하였다. 나이 49세에 죽었다.
權稱尊號, 改?光祿勳, 分平?書事. 年四十九卒.
후에 손권이 그의 아들 손패(孫覇)를 유기의 딸에게 장가보내고, 좋은 집 한 채를 하사하였으며, 사시 사철로 은혜를 내리니, 전(全)과 장(張)에 비견되었다. 유기의 두 동생은 유삭(劉鑠)과 유상(劉尙)인데, 모두 기도위가 되었다.
後權?子?納基女, 賜第一區, 四時寵賜, 與全張比. 基二弟, ?、?, 皆騎都尉.
⏹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느냐!
중국 후한(後漢)시기에 회계군의 태수를 역임했던 유총(劉寵)이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근면 성실하게 정무를 처리했습니다.
그가 태수로 있던 지역은 유난히 강이 많아 백성들이 수해의 고통을 항상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치수에 각별히 힘을 써서 백성들을 수해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녹봉 이외에 어떤 재물도 취하지 않았고, 헤어진 옷을 입고 공사현장에서 백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청백리였습니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 마을의 노인들이 일 백 전의 돈을 모아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의 태수가 다음 임지로 가는 여정에 든든하게 식사라도 하라는 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유총은 걷는 것도 불편한 노인들이 자기를 생각하여 먼 길을 찾아온 것도 고마운 데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온 것을 보며 그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는 관직생활의 원칙이 있었기에 그 돈은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하는 노인들의 정숩성을 외면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져온 돈 중에 일 전만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정성을 감사히 받고, 동시에 자신의 청렴한 관리의 삶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유총은 ‘일전태수(一錢太守)’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명나라 때 공부시랑, 병부상서, 내각대학사 등 고위직을 역임한 범경문(范景文)이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가 고위직에 임명되자 많은 친구들이 각종 진귀한 선물을 들고와서 청탁을 하곤 했습니다.
범경문은 관리로서의 지켜야 할 윤리와 친구들과의 우정 사이에서 곤란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관청 문 앞에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써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떠한 청탁도 받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선물도 받지 않을 것이다(不受屬, 不受饋).' 이후 범문경의 별명은 '이불공(二不公)'이 되었습니다.
청나라 때 북부 변경지대의 도대(道臺)의 직을 맡고 있던 탕빈(湯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대란 포정사나 안찰사의 보좌관 역할을 했던 관직으로 주로 양곡과 둔전 등 지방재정과 관련된 업무를 했던 관리들을 말합니다.
탕빈은 사사로이 재물을 취할 수 있는 직위에 있었지만 삼년이 지나도록 가난한 관리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 세 끼를 두부탕만 먹었습니다.
백성들을 그를 '삼탕도대(三湯道臺)'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관리의 생활은 두부탕만 먹을 정도로 청렴하고, 일상생활은 깽깽이 풀로 탕을 먹을 정도로 검소하였으며, 백성들에 대해서는 인삼탕과 같이 보양의 도움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동한(東漢) 시기에 양진(楊震)이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가 동래군 태수에 임명되어 임지로 가던 도중 창읍이라는 지역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지역에는 자신의 문하에 있던 왕밀이라는 제자가 현령으로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왕밀이 스승에게 다가와 비단으로 싼 물건을 전합니다. '스승님 넣어 두시고, 임지에서 유용하게 사용하십시오. 제 정성입니다.'
그는 스승을 위해 십금(十金)을 마련했습니다. 스승이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가 말합니다. '이미 해는 떨어져 어둡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드디어 스승은 참지 못하고 제자를 향해 호통을 칩니다. '내가 자네를 이렇게 가르쳤는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알거늘(天知,地知, 你知, 我知),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가!'
훗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진은 '사지선생(四知先生)'이라고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에 등장했던 청백리들을 숫자를 사용하여 재미있게 표현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청렴하게 산다는 것은 때로는 모질게 느껴지고, 융통성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적당히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명절이나 기념할 만한 때 간단한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인간다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함께 고생하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간단한 정성으로 마음을 표하는 것도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물이 지나치면 뇌물이 되고, 뇌물이 오고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웠던 옛 선비들이 매정하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선물에 대해 때때로 가혹했던 것은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없으면 서로 주고받는 것을 생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우리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관리들의 소매를 붙잡고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 날들이 하루속히 오기를 희망합니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錢(돈 전)은 ❶형성문자로 銭(전)의 본자(本字), 戔(전)은 통자(通字), 钱(전)은 간자(簡字), 戋(전)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戔(잔)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戔(전)은 '적다', '잘다'는 뜻을 나타낸다. 錢(전)은 금속(金屬)으로 만든 농구(農具)인 쟁기나 괭이, 아주 옛날 중국에서는 자패(紫貝)를 돈으로 삼았으나 周(주)나라 때에 이르러 금속으로 만든 것을 써서 泉(천) 또는 布(포)라고 불렀다. 그 중에 쟁기 모양의 것이 있어 錢(전)이라 불려졌다. 나중에 秦(진)나라 때에 엽전 모양의 돈으로 되어 錢(전)이라고 불렀다. ❷회의문자로 錢자는 '돈'이나 '화폐', '동전'을 뜻하는 글자이다. 錢자는 金(쇠 금)자와 戔(쌓일 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錢자에 쓰인 戔(쌓일 전)자는 여러 개의 창을 쌓아놓은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쌓이다' 라는 뜻이 있다. 錢자는 본래 동전으로 만들어진 엽전(葉錢)을 뜻하던 글자였다. 동전의 역사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통일 이후 진시황은 반량전(半兩錢)을 주조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둥근 모양의 동전(銅錢)이었다. 엽전은 구멍에 줄을 꿰어서 묶음으로 가지고 다녔던 것이니 '쌓이다' 라는 뜻을 가진 戔자는 의미 겸 발음을 함께 전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錢(전)은 (1)돈의 단위(單位). 원의 100분의 1 (2)옛날 엽전 10푼의 단위 (3)무게 10푼을 뜻하는 단위 (4)옛날 중국에서 쓰이던 농구(農具)의 한 가지 (5)종이로 인형(人形)처럼 만든 것 죽은 사람의 넋이 의지(依支)할 곳으로 삼는다하여, 시식단(施食壇)에 걸어 놓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돈, 화폐(貨幣) ②동전(銅錢), 엽전(葉錢) ③값, 대금(代金) ④비용(費用) ⑤자금(資金) ⑥기금(基金) ⑦돈, 전(무게 단위) ⑧주효(酒肴: 술과 안주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⑨구실(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 세금(稅金) ⑩가래(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기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화폐 폐(幣)이다. 용례로는 돈과 곡식을 전곡(錢穀), 쉽사리 헤아릴 만큼 그다지 많지 아니한 돈을 전냥(錢兩), 돈을 만드는 곳을 전방(錢坊), 빚을 놓고 받은 돈의 변리를 전변(錢邊), 돈으로 품삯을 받고 남의 모내기를 하여 주는 일을 전앙(錢秧), 쇠붙이를 녹여서 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을 전장(錢匠), 가래로 흙을 떠서 던지는 기구를 전조(錢銚), 엽전 같이 둥글게 만든 방패를 전패(錢牌), 돈이 잘 돌지 않음을 전갈(錢渴), 돈을 뇌물로 주는 인사를 전례(錢禮), 돈이 융통되는 길을 전로(錢路), 만으로 헤아릴 만한 많은 돈을 전만(錢萬), 돈과 필목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전목(錢木), 돈의 표면에 새긴 글자를 전문(錢文), 백으로 헤아릴 정도의 적지 아니한 돈을 전백(錢百), 구리로 만든 돈을 동전(銅錢), 돈으로 쇠붙이로 만든 돈을 금전(金錢), 물건 대신으로 주는 돈을 대전(代錢), 서로 종류가 다른 화폐와 화폐 또는 화폐와 지금을 교환하는 일을 환전(換錢), 흥정을 붙여 주고 그 보수로 받는 돈을 아전(牙錢), 종이로 만든 돈을 지전(楮錢), 이익이 남는 돈을 이전(利錢), 꾸어 주거나 맡긴 돈에 길미를 붙이지 아니한 돈이나 밑천으로 들인 돈을 본전(本錢),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수직을 대신시키고 주는 삯을 번전(番錢), 위조한 돈을 사전(私錢), 죄를 벗기 위하여 바치는 돈을 속전(贖錢), 웃돈으로 본래의 값에 덧붙이는 돈을 가전(加錢), 급한 데 쓰이는 돈을 급전(急錢), 돈이 없음을 무전(無錢), 밑천으로 삼은 돈을 원전(原錢), 돈으로는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뜻으로 돈의 위력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전가사귀(錢可使鬼), 돈은 귀신과도 통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돈의 위력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전가통신(錢可通神), 밑천이 많은 사람이 장사도 잘함을 일컫는 말을 다전선고(多錢善賈), 얼마 안 되는 돈과 곡식을 일컫는 말을 분전승량(分錢升量), 건몰한 물건을 팔아 돈을 만드는 일을 일컫는 말을 건몰작전(乾沒作錢), 돈이 없이 남의 파는 음식을 먹음을 일컫는 말을 무전취식(無錢取食), 돈을 아끼지 않고 물 쓰듯 함을 이르는 말을 사전여수(使錢如水),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할 때에 먼저 돈을 물 속에 던져서 물 값을 갚는다는 뜻으로 결백한 행실을 이르는 말을 음마투전(飮馬投錢), 한 끼 식사에 많은 돈을 들인다는 뜻으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식만전(一食萬錢) 등에 쓰인다.
▶️ 太(클 태)는 ❶지사문자로 大(태), 泰(태)와 통자(通字)이다. 크다는 의미의 大에 점을 찍어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낸 글자로 크다를 뜻한다. ❷지사문자로 太자는 '크다'나 '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太자는 大(큰 대)자에 점을 찍은 것으로 '심하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太자는 大자보다 더 크거나 심한 것을 뜻하기 위해 파생된 글자이지만 쓰임에 있어 두 글자의 차이를 구별하기란 어렵다. 고대에는 大자나 太자를 구별 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大자와 太자는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간혹 太자가 '매우 심하다'와 같은 부정의 의미를 전달하는 때도 있지만 긍정적인 단어도 많기에 이 두 글자의 쓰임을 딱히 구별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太(태)는 성(姓)의 하나로 ①크다 ②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 ③통하다 ④처음, 최초 ⑤첫째 ⑥콩(콩과의 한해살이풀) ⑦심히, 매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비(丕), 클 개(价), 클 우(俁), 클 엄(俺), 클 위(偉)이다. 용례로는 세상이 무사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며 환란이나 질병 등이 없이 평안함을 태평(太平), 천지가 비롯된 무렵을 태시(太始),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하던 때를 태소(太素), 한 왕조의 첫 대의 임금을 태조(太祖), 절반이 지남을 태반(太半), 아주 오랜 옛날을 태고(太古), 매우 좋음이나 썩 아름다움을 태가(太佳), 험하고 높은 재를 태령(太嶺), 매우 재촉함 또는 매우 촉박함을 태촉(太促), 높고 먼 하늘을 태공(太空), 너무 지나침이나 아주 심함을 태과(太過), 굵은 털실을 태사(太絲), 가장 뛰어난 것을 태상(太上), 너무 심함을 태심(太甚), 너무 한도에 지나침을 태람(太濫), 콩기름으로 콩에서 짜낸 기름을 태유(太油), 껍질 빛깔이 검은 콩을 흑태(黑太), 어질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한 세상을 일컫는 말을 태평성대(太平聖代), 아주 오랜 옛적 시대를 일컫는 말을 태고시대(太古時代),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때를 일컫는 말을 태평연월(太平烟月), 너무 세거나 빳빳하면 꺾어지기가 쉬움을 일컫는 말을 태강즉절(太剛則折), 천하가 태평할 때는 이를 지적하여 말할 만한 형상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태평무상(太平無象), 가뭄에 콩 나듯 한다라는 뜻으로 일이나 물건이 드문드문 나타난다는 말을 한시태출(旱時太出), 어리석어서 모든 일에 아무 걱정이 없이 지냄을 비웃는 말을 만사태평(萬事太平) 등에 쓰인다.
▶️ 守(지킬 수)는 ❶회의문자로 垨(수)는 동자(同字)이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의 관청에서 법도(寸; 손, 손으로 꽉 잡는 일, 또는 치수, 규칙)에 따라 일을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직무를 지킨다는 데서 지키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守자는 '지키다'나 '다스리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守자는 宀(집 면)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寸자는 又(또 우)자에 점을 찍은 것으로 ‘법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문에 나온 守자를 보면 집안에 寸자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손톱을 날카롭게 세운 듯한 모습이다. 이것은 집을 '지킨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守자는 본래 '보호하다'나 '지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寸자가 가지고 있는 '법도'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다스리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守(수)는 (1)조선시대 때 관계(官階)가 낮은 사람을 높은 직위에 앉혔을 경우에 관계와 관직 사이에 넣어서 부르던 말. 가령 종2품(從二品)인 가선 대부다 정2품(正二品)직인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된다고 하면 가선대부 수 이조판서(嘉善大夫守吏曹判書)라고 서칭(書稱) (2)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에 두었던 정4품(正四品) 벼슬. 왕자군(王子君)의 증손(曾孫)들에게 주었음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지키다, 다스리다 ②머무르다 ③기다리다 ④거두다, 손에 넣다 ⑤청하다, 요구하다 ⑥지키는 사람 ⑦직무, 직책(職責), 임무(任務) ⑧벼슬의 지위는 낮고 관직은 높음을 나타내는 말 ⑨지방 장관(지방에 파견되어 그 곳을 지키는 일이나 사람) ⑩정조(貞操), 지조, 절개(節槪) ⑪임시, 가짜 ⑫벼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보(保), 막을 방(防), 좇을 준(遵), 지킬 위(衛),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격(擊), 칠 공(攻)이다. 용례로는 지키고 보호함을 수호(守護), 절개를 지킴을 수절(守節), 일정한 지역이나 진지 등을 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어 방비함을 수비(守備), 적을 맞아 지키는 형세 또는 힘이 부쳐서 밀리는 형세를 수세(守勢), 진보적인 것을 따르지 않고 예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따름을 수구(守舊), 건물이나 물건 등을 맡아서 지킴을 수직(守直), 행동이나 절차에 관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칙을 수칙(守則), 법을 준수함을 수법(守法), 보기 위하여 지킴으로 관청이나 회사 등의 경비를 맡아 봄 또는 맡아보는 사람을 수위(守衛), 적의 공격 등을 막기 위하여 산성을 지킴을 수성(守城), 그대로 좇아 지킴을 준수(遵守), 보전하여 지킴을 보수(保守), 굳게 지킴을 고수(固守),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공격과 수비를 공수(攻守), 후퇴하여 수비함을 퇴수(退守), 망을 봄으로 또는 그런 사람으로 교도소에서 죄수의 감독과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간수(看守), 경계하여 지키는 것 또는 그 사람을 파수(把守), 완강하게 지킴을 완수(頑守), 튼튼하게 지킴을 견수(堅守), 감독하고 지킴 또는 그런 사람을 감수(監守), 규칙이나 명령 등을 그대로 좇아서 지킴을 순수(循守), 중요한 곳을 굳게 지킴을 액수(扼守), 혼자서 지킴으로 과부로 지냄을 독수(獨守), 엄하게 지킴으로 어기지 않고 꼭 지킴을 엄수(嚴守), 행실이나 말을 제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을 자수(自守),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라는 뜻으로 비밀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을 수구여병(守口如甁),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가득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함을 일컫는 말을 수진지만(守眞志滿), 묵적의 지킴이라는 뜻으로 성의 수비가 굳세고 튼튼함을 이르는 말 또는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굳이 지킴을 일컫는 말을 묵적지수(墨翟之守), 빈방에서 혼자 잠이란 뜻으로 부부가 서로 별거하여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냄을 뜻하는 말을 독수공방(獨守空房),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나라를 세우는 일과 나라를 지켜 나가는 일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창업수성(創業守成),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빼앗고 도리에 순종하여 지킴을 일컫는 말을 역취순수(逆取順守)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