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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훌리건 천국 원문보기 글쓴이: [???]류마
먼저 5.18이 무슨 사건이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훌리건 천국인들의 평균적인 지식소양을 고려해보면 딱히 따로 설명할 이유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
1)몇몇 극보수 언론이나 커뮤니티들을 통해 5.18 북한군 개입설 떡밥이 퍼지더니 이네 이 떡밥이 온 대한민국의 인터넷 공간에 퍼지게 되었다.
2)나의 삼촌은 5.18 당시 군인으로 광주에 파견되었고 그때의 부상으로 아직까지 등에 큰 흉터가 남아있고 한동안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셨다고 한다.(물론 그뒤로 페인트 사업이 번창하여 인생역전 성공했으니 전화위복 으응?..)
어린 시절 내가 5.18문제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삼촌이 그 사건에 참가하여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뒤로 5.18 문제는 한국 근현대사 문제에 관해 내가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테마중 하나가 되었다.
3)5.18 문제는 전에도 내가 언급하였듯 지나치게 과장된 문제가 있다. 가령 영화 화려한 휴가내에서 나오는 계엄군의 묘사등은 문제가 많다. 우리 삼촌왈 "진짜 그 영화처럼 진압했다면 죄다 사형당했겠지"
그러나 그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지금 북한군 개입설을 보면 어떤 상실감을 느낄지..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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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존나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있는데 5.18 관련된 글을 한번 썼다가 무려 내가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나 내가 빨갱이면 대한민국의 적화통일이 멀지 않았겠네. 북쪽의 김정일 추장이 들으면 무척 흡족할 소식이겠어ㅋㅋ)
참 재밌는 패턴을 하나 이야기 해보자.
그간 나는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사람들을 부딛칠 경우 크게 3가지 논거를 들어 반박증거를 제시했다.
근데 논쟁의 양상은 언제나 이렇게 되었다.
내가 3가지 논거를 들어 반박증거를 제시한다.
->10에 9은 이 3가지 논거에 제대로된 반박도 못하고 무너진다.
->그리고 1의 경우는 자유북한군인 연합 임천용씨의 주장을 들면서 반박했다.
->논거에 관한 정밀한 반박은 없으며 여러가지 지엽적인 팩트(장발족 공수부대원이라든지 아군사망자 숫자 참고로 설명해두지만 5.18 국군 사망자의 적지않은 수는 시민군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아군간의 오인교전에 따른 것이었다. 어쨋거나 억울한 희생이니 그저 고인들의 넋을 기릴뿐..
->그도 안되면 결국 날 "빨갱이"로 몰았다.
->나는 그간 좌익사이트들을 국정원에 신고한 나의 경력 및 나의 반김정일 반북한정권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인증한다.
->말이 막히면서 상대는 정신분열에 빠지고 이내 정신승리를 한다.
이글도 비슷한 패턴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글을 써보기로한다.
간혹 요즘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 배후에 간첩이 있었네, 폭동 이었네 라는 말도 안되는 덧글이나 글들을 볼 수 있다.
이게 왜 말이 안되는 뻘소리인지에 대해 포스팅 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필자가 인터넷 공간을 떠돌면서, 혹은 세상사람들을 접하면서 보았던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실은 배후에 간첩들이 사주한 폭동이었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필자가 내세우는 이 3가지 근거에 제대로 반론조차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3가지 근거에 제대로 반박에 성공할 자신이 있다면 계속 그렇게 광주 민주화 운동이 좌익의 사주를 받은 사건 인양 떠들고 다녀도 좋다.
그러나 과연 반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일 주변에 그런 정신나간 소리를 계속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사용해 반박해보시라.
1.고위급 탈북자 강명도씨의 증언
강명도씨는 90년대에 북한을 탈북한 인물들중 나름 꽤나 덩치가 큰(?)편에 속한다. 그도 그럴듯이 그는 칠골 강씨(북한 김씨일가의 외가쪽 가계)로서 김부자
일당의 인척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남한에도 잘알려졌던 강성산 총리(북한 정무원 수반)였고 그는 어린시절 부터 김정일과 술을 마셨다든지 김부자 집안과
밥을 먹었다든지 등 가깝게 지낼 기회가 많았다.
(따라서 강명도씨의 탈북은 북한으로서도 당시에 꽤나 큰 충격이 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변경무역에 종사하던중 우연한 기회(?)에 오해를 사게되었고 강명도씨를 크리어 시키라고 하는 김정일의 지시로 인해 그는 부득불 남한으로 망명하게 된다.(여기서 우린 인척이건 혈육이건 간에 자신의 눈밖에나면 비정하게 크리어 지시를 내리는 김정일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알 수있다.)
강명도씨가 탈북이후 자신의 북한에서의 경험담과 에피소드,북한의 실태를 담아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라는 서적을 출간한적이 있는데
이 서적에서 이른바 "광주 민주화 운동 좌익개입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적이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좌익들의 음모였다고 주장하며 개거품을 물며 날뛰는 주장들의 기본 주장의 베이스 패턴은 대략 광주 민주화 운동때 북한의 특수전부대,간첩부대가 개입하였으며 이들이 사태를 격화시키고 민간인들을 살해하여 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패턴이지만
강명도씨는 이 문제에 관해서 한마디로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근거는 김씨부자와의 인척관계를 통해 들었던 당시의 사건에 대한 정보와, 그가 청년시절 열람했던 북한의 군사관련 서적에서 광주에 대한 북한의 개입실패 보고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남한에 광주 민주화 운동같은 큰 사건이 터진걸보고 앗싸 나쁜짓을 할 기회(?)다! 라고 좋아하지 않았을리 없다.
실제로 김일성은 1212사태와 5-18을 놓고 훗날 이 기회를 놓쳤다고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일각의 주장대로 광주에 특수전부대의 개입은 없었다. 그에관해 강명도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대남공작총책이었던 김중린 비서(훗날 아웅산테러 실패와 전두환에 대한 여러가지 공작 실패로 김일성-김정일 부자로 부터 "똥물에 튀겨죽일놈"이란 낙인이 찍히고 숙청당함)가 1200명 정도의 특수부대를 차출해서 남한의 광주에 침투시켜서 사태를 격화시키고자 시도했었다."
"실제로 일선급 특수부대에서 인원선발도 끝났고 세부계획도 마련되어있는 상태였지만 북한측이 예상했던 것 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찍 남측에 의해 진압되어버린 바람에 투입하지 못했고, 김중린은 시기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에 엄청난 문책을 받았다."
다름 아닌 김씨부자의 인척으로서 온갖 고급정보들을 귀에 듣고 다녔고, 북한정권의 동향에 대해 알고 지낼 수 있는 고위급 인사 였던 강명도씨가 이렇게 증언했을 정도다.
더군다나 김중린은 당시의 실패+훗날 아웅산 실패+기타 대남공작 실패로 탄광노동에 종사(-_-;;)하게 되었고, 김중린이 여러가지 실패로 숙청된 사실은 남한측에서도 확인한 정보이고 왠만한 북한역사 교재에 수록될 정도이니 더더욱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름 아닌 북한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도 그냥 온 사람이 아닌 당시 귀중한 정보들을 알고있던 사람이 말이다.
이래도 끽해야 남한에서 밖에 살지 않았던 당신네들이 자꾸 광주민주화운동=좌익선동폭동이라고 우길텐가?
2.사망자 숫자통계에 관한떡밥= 왜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가 더많았는가?
흔히들 광주문제를 좌익폭동이었다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은 국군의 m-16 탄환보단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가 더 많았고 따라서 여기서 의혹이 짙다고 한다.
실제로 오발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분명히존재 하긴 한다.
하지만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가 더 많았다고 이것이 좌익폭동이 되는 근거가 될순 없다 다음에 관해
allthekind.egloos.com자료를 통해 반박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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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용은 다 싣기에 너무 길어서 생략..)
총상 사망자의 90%가 카빈, M1 총에 맞아 사망했다든가, 19일날 이미 공수부대원이 시위대에게 맞아 사망했다든가..또는 북한과의 관계를 자꾸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복면을 쓴 사람들은 북에서 파견된 사람들 운운 하는 주장들이 사진과 함께 도열되면서 그럴싸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진압부대 역시 장발로 위장하고 작전에 참여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장발족 공수부대원을 북한군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북한의 개입을 신뢰할 수 없는 주장으로 확신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있기 때문이죠.
1998년 광주일보가 5.18 당시의 정확한 사망자수와 관련하여 당시 사망자의 지문을 보안사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여 파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5.18이 발발할 무렵 광주지구 505보안부대의 핵심요원으로 '전남북 계엄분소 합동수사단 광주사태 처리국 국보위 특명단장'으로서 '특별업무지시(SRI)'를 취급하였던 허장환씨는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18 당시 보안사 수사팀이 간첩침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가매장됐다가 발굴된 시신을 포함, 사망자들의 지문을 빠짐없이 채취해 505 보안부대에 보관"하였고, 당시 피조사자들에 대한 부상여부도 조서작성때 일일이 기록하였으며, 당시 사망자들은 내란종사자로 규정돼 보안사 존안관리 관행상 이를 파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 보안사(기무사)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1998년 5월 4일자 보도
만일 저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군 침투설에 대한 사실 확인은 더이상 논란거리가 안됩니다. 실제 북한군이 침투되었다면, 지문검색이 안되었을 것이고, 이를 근거로 전두환 정권에서 그 사실을 공개 안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전두환에게 손해나는 짓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위 증언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북한군 침투사실이 아니거나 가능성은 둘 중 하나입니다만 저는 후자에 더 신뢰가 갑니다. 아래 포스팅에 다량의 트랙백을 남기신 분께서도 이점을 잘 헤아리셔야 할 듯합니다.
5월 27일 도청 진압작전이 종료된 후 보안사가 사태 수습을 지휘했다. 인적, 물적 피해상황 조사를 비롯하여 잔당 검거, 무기 회수 등 치안 질서 확립 등이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진압 도중 희생당한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사체검안위원회를 열어 희생자를 선별한 후 보상여부를 심사했다.
당시 참가자는 직접 검안에 참가한 의사, 시민(목사와 기자), 법무관, 경찰관, 보안부대 장교 등이 참석한 것으로 보아 군 관계자들에 의한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진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검안 대상인 167명에 대해 개인별 신상자료를 보고 폭도와 비폭도로 분류한 후 심사원칙에 의거 보상을 다음과 같이 실시했다.
구분 | 보상여부 | 심사기준 |
비폭도 (민간인) | 보상 (1인당 400만원) | ① 14세 미만인 자 |
② 50세 이상 고령인 자 | ||
③ 공직 수행자 (공무원) | ||
④ 부녀자 | ||
⑤ 교전이 없었던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자 | ||
⑥ 사망원인 중 타박사 사상자 | ||
폭도 (난동자) | 비보상 | ① 1980. 5. 27일 도청 진입시 대항타 사살된 자 |
② 교도소 경계병력에 대항타 사살된 자 | ||
③ 7, 11 공수 경계지역인 광주시 지원동에서 대항타 사살된 자 | ||
④ 11공수부대가 주답에서 부대로 복귀시 대항타 사살된 자 | ||
⑤ 외지(서울, 목포)에 거주자로 광주시 난동에 가담한 자 |
검안 당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검안의 2명과 목사는 난동자(폭도)로 분류될 경우 보상을 받지 못하므로 최대한 민간인(비폭도)로 분류하려고 노력했다.
즉, 군에서는 M16 총상에 의해 사망한 자는 폭도로 보았으므로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급적이면 M1이나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분류하려 했던 것이다.
3.조갑제 선생님의 말씀- 5-18은 민주화 운동이 맞다.
요즘 20대 또래들을 보면 월간조선의 칼럼니스트 조갑제 선생님을 무작정 수꼴또라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갑제 선생님께선 젊은시절 정부의 보도통제지침을 어기고 광주에 직접내려간 용감한 분 이셨다.
그는 현장에 직접과서 촬영을하고 상황을 둘러보고 5-18은 민주화 운동이 맞다고 하셨다.
사실 조갑제 선생님과 광주 민주화 운동의 관계는 그다지 좋은것만은 아니다.
조갑제 선생의 경우 5-18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음은 인정하지만 영화 "화려한 휴가"의 경우 처럼 이러한 참상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필자도 이점에는 동의)고 보는 입장이다.
사실 이점엔 필자도 동의한다 당시 5-18 진압을 맡았던 지휘관들이나 혹은 군부내에서는 우리가 기존에 알던 상식대로 이들 모두가 살인마적 모드로 사람들을 쓸고 다녔던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간곡히 요구했던 양심있던 사람들도 많고
최대한 무력진압은 자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도 많다.
5-18을 다룬 서적이나 매체들이 본 사건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관계의 파악보다는 감정적으로 사실을 부풀리려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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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여기서 끝날줄 알았지? 미안하지만 난 여기서 만큼은 평소 광주문제 글쓰는것과 같은 논쟁의 패턴을 반복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추가적인 내용을 더 덧붙이겠다.
보통의 패턴들은 이쯤 되면 이제 온갖 커뮤니티에서 긁어모은 자유북한군인 임천용씨의 자료들을 열거하며 "드가모프씨 좌익이었네요" "우익의 탈을 쓴 좌익" 등등 온갖 지랄들을 시작하는데
미안하지만 형은 요즘 형의 복리후생에 바빠서 니들과 함께 지랄을 떨 시간적 여유가 없단다.
더군다나 요즘 2차 금연을 진행 중인데 니들과 지랄떨다가 혈압올라서 담배피면 안되잖니.
(근데 작년에 KT&G 대외활동에서 상패 받았는데 담배는 끊었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았네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간 퍼부은 담뱃값이 많으니 용서해주실꺼야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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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군인연합은 5.18 당시 광주에 북한군 침투를 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한국 언론과 적극적으로 인터뷰하고 했다. 그 중 대표를 맡고 있는 임천용씨는 여러차례 언론과 접촉해서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의 인터뷰는 그때 그때 다를 정도로 일관성이 없다.
내가 이글에서 밝히는 임천용씨의 인터뷰는 크게 세가지이며 세 인터뷰에서 보이는 모순점을 짚어 보겠다.
1. 2006년 8월 한국논단 인터뷰
2. 2006년 12월 기자회견
3. 2008년 뉴스한국 인터뷰
A. 침투 인원
한국논단 : 우리 대대에서만 7명이 나왔다는 이야기이고 총체적으로 약 1개 대대가 내려 왔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추산하면 한 4백50명 정도로 볼 수 있지요.
기자회견 : 나중에야 상관들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대대가 광주에 투입됐고 희생도 많았고 공로도 있었다고 들었다.
뉴스한국 :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600명 정도 됐을 것이다. (중략) 이 부대에서 1개 대대가 차출되어 서해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각 특전사부대들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차출한 300명 정도는 별개로 함경남도 신포 동해안으로 마양도라는 잠수함기지에서 내려왔다.
B. 귀환 인원
한국논단 : 그때 광주에 내려왔다가 3분의 2는 못 돌아갔는데 그 인원이 북쪽에서 추산하기로 그게 다 죽었겠느냐 부상당했거나 합류 못했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기자회견 : 3분의 1이 희생되고 나머지 2는 귀대했다.
뉴스한국 :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C. 침투, 퇴각 경로 모순점
한국논단 : 그때는 계엄령이 내려져서 육지는 전부 봉쇄되어있었고 그들은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왔지요. 그런데 광주에 그 사람들이 내려와서 절반으로 나뉘어져서 한 무리는 진압군 쪽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그리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뉴스한국 : 60-70명 정도 강원도 중부전선을 타고 넘었다. (중략) 중부전선을 넘어간 특수부대원들은 1차로 배로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로 광주봉기가 끝난 뒤 육로로 빠져나간 것이 가능했다.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2006년 한국논단의 인터뷰에서는 계엄령 중이라 육지가 봉쇄되어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나, 2008년에는 자신이 2년 전에 한 말을 까먹었는지, 봉쇄되어 침투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육지로 60~70명이 귀환하였다고 주장했다.
D.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뉘어 침투했다는 황당한 주장
한국논단 : 당시 김정일 정권이 정예의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을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뉘어 침투시킨 정황과 증거가 명백하기에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했다”
-임천용씨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군 특수 부대가 시민군뿐만 아니라 계엄군, 시민군 양쪽으로 나뉘어 침투했다는 것. 공수부대는 2월 충정 훈련에서 얼굴을 익혔다고 한다.
이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분 확인을 하는 도중에 계엄군으로 위장한 수백명의 북한군이 우리 군과 경찰에 단 한 번도 안 걸려야하며 당시 광주를 물샐틈 없이 포위하고 있던 국군의 포위망을 완전히 뚫는 것이 가능해야 하는 일이다.
(당시 한국군 지휘부는 북한이 광주에 개입할 가능성이나 광주문제로 인한 남침문제를 크게 우려하였고, 이점에 대해선 당시 인사들도 그렇게 증언하고 있지.)
출처
1. 한국논단 인터뷰
<U>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8300</U>
(아 진짜 왠만하면 오마이뉴스를 출처표기에 싣고싶진 않았습니다만, 당시 한국논단 인터뷰 자료 링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ㅋㅋㅋ 이런..)
2. 2006년 기자회견
<U>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19&aid=0000017557</U><U> </U>
<U>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0267072</U>
3. 뉴스한국 인터뷰
<U>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k2007021120301185542</U>
나는 임천용씨는 북한의 진실과 김정일 일당의 추악함에 대해 용기 있게 남한내에 알리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내가 반김정일 반북한정권 관련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만나본 탈북자 분들(저와 비슷한 활동을 하시는)은 신변의 위협을 많이 느끼기에(특히 북에서 복수할 가능성과 위험) 대한민국에서도 경찰을 통해서 이분들의 신변을 종종 경호하곤 한다.
그만큼 용기를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일이란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북한의 잘못된점과 추악한 속성에 대해 남한사회에 잘 전파하고 있는점에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5.18 관련 주장에 관한 임천용씨의 주장이나 말들은 믿기어려우며, 가져오겠다던 증거는 몇년 째 묵묵부답이니 답답할 따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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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광주반란설 떡밥 상품을 찾는 고객님들께
자 그러니 5.18 광주문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싶으신 고객님 들은
관련 문제에 관심끄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증거를 토대로 보건데 북의 괴수 김일성이 남측의 간첩이나 정보라인을 통해 광주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있었고 이에 북한 특수부대를 개입하려 시도 한 "시도"자체는 분명해 보입니다만
"결과"는 실패했구요, 고객님이 원하시는 광주반란설 떡밥 상품에 관해서 지난 기나긴 세월 동안 많은 다른 고객님들께서 애타게 찾으셨지만 상품의 구입에 실패하고 마셨답니다.
고객님이 원하는 상품이 진짜로 존재했다면 고객님들보다 더 똑똑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언제나 5공화국의 재평가를원하는 관련 전문 고객님들이 이미 벌써 상품을 구매하고 홍보했을 듯 싶네요.
그리고 주식회사 American Coperation의 무시무시한 마케팅 부서인 Central intelligence agency의 당시 마케팅 부장 부루스터님,
American Coperation의 한국 지부 홍보대사 글라이스틴 대사님
American Coperation의 경호담당 책임자 위컴사령관님께서도 본 떡밥 상품이 made in north korea임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셨답니다.
주식회사 American Coperation의 상품정보확인과 재고 확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이를 납득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음.. 대충 글을 마무리 지었군...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싶은 아해들아 그냥 저 긴글을 읽을 필요도 없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
계엄이 발동되고, 특정한 지역에 상대의 정규군(그것도 당시 대한민국 최강을 자랑하던 공수여단들과 기계화 부대 및 정규 육군 사단들)이 대규모로 운집해 있고 주변과 외곽의 도로와 통신을 전면차단 중인데
수백명의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가 단 1명도 걸리지 않고 침투해서 작전을 수행하고 빠져나왔다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한국군과 미군의 군사적 능력과 정보감시능력을 호구로 아는감?
그리고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 사망자를 추려보면 700명중 절반이나 혹은 3분의 1 혹은 3분의2(그때 그때 달라요 젠장)가 죽었다며?
단순한 계산법으로도 북한군 특수부대 사망자 숫자가 공식 발표된 5.18 사망자 숫자를 수백명이나 훌쩍 넘어버리네? 이렇게 수백명의 북한군 시체가 광주에 굴러다녔는데 당시 한국군이 이걸 정말 봤다면 방치했을 거라고 생각해? 이건 엄연한 북한의 범죄행위인데?
수치계산만 할줄알아도 뭔가 앞뒤가 안맞다는 생각은 안들어? 평소에 5.18 과장하는 사람들한텐 사망자가 200명 안쪽인데 2000명이라 부풀린다고 화내면서?
12.12에 관한 글은 근래에 내가 복리후생에 바쁜관계로 나의 복리후생 중 중요한 문제인 체중 감량 성공후에 올리겠다.
(....으응?.. 그렇게 되면 못 쓸지도?)
P.S:아 이런 글 쓰는걸 좋아하니 나한테 애인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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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호프
첫댓글 팩트는 디올팩트고 이게 바로 역사적 "사실" 이라는 것이다 병신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