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벌써 재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군장매니아(편의상, A군이라 하자)를 처음 본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 사람 입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필자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정말 이 사람이 매니아 맞나 싶었다.
A군: 강변터미널에 있는 **마크사 있지요? 거기는 군인 아닌 사람한테는 절대 물건 안 팝니다. 그런 가게는 정말 국가에서 상 줘야 해요.
필자: ??(다소 어이가 없어서 한참 그 사람 눈을 들여다보다가)그거 진심이십니까?
A군: 그럼요. 정말로 상 줘야지요.
필자: ......
A군. 그대가 이 글을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로 그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할수 없다. 이 자리를 빌어 내가 그대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야겠다.
그대는 분명 군인 신분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군장을 모으는 사람이다. 그대도 군대에 다녀왔으니 한국군장의 쀍!스러움은 익히 경험했을 것이며 고등교육을 받았을 테니 민간인들이 군장의 제작과 유통, 소비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드는 한국의 군 장비 관련법규(대표적인 것이 군수품 단속법)가 그 이유라고는 한번쯤은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국 군장이 민간인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고 그 품질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하는,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시대에 뒤떨어진 마인드의 관련 법규를 열렬히 옹호한단 말인가. 그대만 원하는 물건 구했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 법 때문에 그 물건 못 구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그대의 군 후배들이 뒤떨어진 법규로 인해 만들어진 수준낮은 군장 때문에 오늘도 발뒤꿈치가 까지고 무릎창이 나가는 데도 상관없단 말인가? 이런 말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대의 그런 행동이야 말로 권인숙 여사가 말한 <파시즘적 질서의 내재화>란 말인가?
긍정적인 애호가를 지칭하는 '매니아'와 부정적인 애호가를 지칭하는 '오타쿠'의 어감 차이를 일으키는 기준은 다름아닌 사회성이다.
매니아나 오타쿠나 한 대상에 깊숙히 광적으로 몰입해 있다는 것은 같지만, 매니아는 그 광기를 다른 사람들, 즉 사회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표출할 수 있고 그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반면, 오타쿠는 언제나 혼자서만 즐기는 걸로 '끝'이고 배타적이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결코 되지 않기에 오타쿠라 불린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그 광기로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자신이 군사애호가라 생각한다면, 자신이 매니아와 오타쿠 중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라.
그동안 우리나라의 군사애호문화는 군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매니아가 아닌, 혼자서만 모으고 혼자서만 즐기면 '끝'인 오타쿠를 대량으로 양산해 왔으며, 이들은 군사애호취미에 대해 적대적인 관련 법규나 일반인들의 인식 등에 대해 마냥 침묵만 하고, 골방에 처박혀 자신의 수집품을 보며 혼자서 낄낄대기만 해왔다. 그 결과 우리 애호가들에게 적대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애호가들은 어떤 힘있는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사분오열 되어 각자의 방에 처박혀 '얼른 상황이 끝나고 이 한 목숨 무사하기만 바라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일반인들에게 애호가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다 심화시켰다.
A군. 진정으로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이 옳은 것이고 좋은 것이라 믿는다면, 두 다리로 일어서서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그 사실을 외쳐라. 그리고 그대를 괴롭히는 세상에 맞서 싸워라. 그렇지 못하고 혼자서 짱박혀서 즐기면 끝이라는 오타쿠적 사고방식을 그대가 고수하는 한,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파시즘적 악법의 질서를 내재화하고 있는 한, 그대가 그대의 취미로 인해 곤경에 처했을 때 아무도 그대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뭐, 이 사회는 멀쩡한 매니아도 오타쿠로 만들죠. 뭔가 "기여"를 해도 인정은 커녕 인식조차 못 하니.......
멋진 수필이군요 글을 조금 다듬어서 수필집 하나 만드십시요. a군이라고 하니 고풍스러운 느낌도 들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