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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意를 緣한 見(意行) manasikārena mānasaṃ gaṇhāti
作意에 의해서 意를 捕捉(잡는다).
<6根團束 - 身口意(3行) - 4念處 - 7覺支 - 明脫>
idha, kuṇḍaliya,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manāpaṃ nābhijjhati nābhihaṃsati, na rāgaṃ janeti.
꾼달리야여, 여기 비구가 눈으로 마음에 드는 형상을 본 뒤
그것을 탐하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다.
tassa ṭhito ca kāyo hoti, ṭhitaṃ cittaṃ ajjhattaṃ susaṇṭhitaṃ suvimuttaṃ.
그러면 그의 몸도 안정되고 마음도 안정되고 안으로 아주 차분하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된다.
cakkhunā kho paneva rūpaṃ disvā
amanāpaṃ na maṅku hoti appatiṭṭhitacitto adīnamānaso abyāpannacetaso.
그는 눈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형상을 본 뒤
의기소침하지 않고 마음이 주춤하지 않고 기가 죽지 않고 악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tassa ṭhito ca kāyo hoti, ṭhitaṃ cittaṃ ajjhattaṃ susaṇṭhitaṃ suvimuttaṃ.
그러면 그의 몸도 안정되고 마음도 안정되고 안으로 아주 차분하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된다.
<* suvimuttaṃ → suadhimuttaṃ
adhimuccati:[adhi + muc + ya] attaches or inclines towards; possesses by a spirit.>
“puna caparaṃ, kuṇḍaliya, bhikkhu sotena saddaṃ sutvā ... pe ...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 pe ...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manāpaṃ nābhijjhati nābhihaṃsati, na rāgaṃ janeti.
tassa ṭhito ca kāyo hoti, ṭhitaṃ cittaṃ ajjhattaṃ susaṇṭhitaṃ suvimuttaṃ.
manasā kho paneva dhammaṃ viññāya
amanāpaṃ na maṅku hoti appatiṭṭhitacitto adīnamānaso abyāpannacetaso.
tassa ṭhito ca kāyo hoti, ṭhitaṃ cittaṃ ajjhattaṃ susaṇṭhitaṃ suvimuttaṃ.
꾼달리야여, 다시 비구가 귀로 마음에 드는 소리를 들은 뒤 … 코로 마음에 드는 냄새를 맡은 뒤 …
혀로 마음에 드는 맛을 본 뒤 … 몸으로 마음에 드는 감촉을 느낀 뒤 …
마노로 마음에 드는 [마노의 대상인] 법을 안 뒤
그것을 탐하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면 그의 몸도 안정되고 마음도 안정되고 안으로 아주 차분하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된다.
그는 마노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마노의 대상인] 법을 본 뒤
의기소침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기가 죽지 않고 악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면 그의 몸도 안정되고 마음도 안정되고 안으로 아주 차분하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된다.
“yato kho, kuṇḍaliya, bhikkhuno cakkhunā rūpaṃ disvā
manāpāmanāpesu rūpesu ṭhito ca kāyo hoti, ṭhitaṃ cittaṃ ajjhattaṃ susaṇṭhitaṃ suvimuttaṃ.
sotena saddaṃ sutvā ... pe ...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 pe ...
jivhāya rasaṃ sāyitvā ... pe ...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 pe ...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manāpāmanāpesu dhammesu ṭhito ca kāyo hoti,
ṭhitaṃ cittaṃ ajjhattaṃ susaṇṭhitaṃ suvimuttaṃ .
꾼달리야여, 이처럼 비구가 눈으로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형상을 보기 때문에 …
귀로 … 코로 … 혀로 … 몸으로 …
마노로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마노의 대상인] 법을 알기 때문에
그의 몸도 안정되고 마음도 안정되고 안으로 아주 차분하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된다.
evaṃ bhāvito kho, kuṇḍaliya, indriyasaṃvaro evaṃ bahulīkato tīṇi sucaritāni paripūreti.
이와 같이 그는 감각기능의 단속을 닦고 많이 [공부] 짓는다.
이와 같이 그는 세 가지 좋은 행위를 완성한다.
“kathaṃ bhāvitāni ca, kuṇḍaliya, tīṇi sucaritāni kathaṃ bahulīkatāni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nti?
“꾼달리야여, 그러면 어떻게 세 가지 좋은 행위를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 지으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완성하는가?
<思하고서 意(業)
Cetanāhaṃ, bhikkhave, kammaṃ vadāmi.
Cetayitvā kammaṃ karoti – kāyena vācāya manasā.
비구들이여, 의도가 업이라고 나는 말하노니
의도한 뒤 몸과 말과 마노로 업(…見)을 짓는다.
見
sammādiṭṭhiko hoti aviparītadassano —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kammassakatādiṭṭhi: 業自性正見)
— manasā soceyyaṃ hoti.
마노로 업(…見)을 짓는다.
— ayaṃ, bhikkhave, sammādiṭṭhi sāsavā puññabhāgiyā upadhivepakkā.
번뇌에 물들 수 있고 공덕의 편에 있으며 재생의 근거를 가져오는 바른 견해이다.
作意를 緣한 見
다른 이로부터 듣는 것과 지혜롭게 잡도리함입니다.
도반이여, 이 두 가지 조건이 바른 견해를 생기게 합니다.
parato ca ghoso, yoniso ca manasikāro.
Ime kho, āvuso, dve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ā’’ti.
(다른 사람의 소리와) 여리作意를 緣하여 정見이 생겨난다.>
idha, kuṇḍaliya, bhikkhu
kāyaduccaritaṃ pahāya kāyasucaritaṃ bhāveti,
vacīduccaritaṃ pahāya vacīsucaritaṃ bhāveti,
manoduccaritaṃ pahāya manosucaritaṃ bhāveti.
꾼달리야여, 여기 비구는 몸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말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evaṃ bhāvitāni kho, kuṇḍaliya, tīṇi sucaritāni evaṃ bahulīkatāni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nti.
꾼달리야여, 이와 같이 세 가지 좋은 행위를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 지으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완성한다.
<이러한 기억(念)이 그의 기억력(念根) yā hissa sati tadassa satindriyaṃ.
“saddhassa hi, bhante, ariyasāvakassa āraddhavīriyassa
etaṃ pāṭikaṅkhaṃ yaṃ satimā bhavissati,
paramena satinepakkena samannāgato,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yā hissa, bhante, sati tadassa satindriyaṃ.
세존이시여, 참으로 믿음을 가졌고 열심히 정진하는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그는 마음챙기는 자이다.
그는 최상의 마음챙김과 슬기로움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낸다.'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세존이시여, 그의 이러한 마음챙김이 바로 그가 가진 마음챙김의 기능입니다.>
“kathaṃ bhāvitā ca, kuṇḍaliya, cattāro satipaṭṭhānā kathaṃ bahulīkat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꾼달리야여, 그러면 어떻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 지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완성하는가?
idha, kuṇḍaliya,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 pe ...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evaṃ bhāvitā kho, kuṇḍaliya, cattāro satipaṭṭhānā evaṃ bahulīkat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꾼달리야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꾼달리야여, 이와 같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 지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완성한다.
“kathaṃ bhāvitā ca, kuṇḍaliya, satta bojjhaṅgā kathaṃ bahulīkatā vijjāvimuttiṃ paripūrenti?
idha, kuṇḍaliya, bhikkhu sati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 pe ...
upekkhā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evaṃ bhāvitā kho, kuṇḍaliya, satta bojjhaṅgā evaṃ bahulīkatā vijjāvimuttiṃ paripūrentī”ti.
꾼달리야여, 그러면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 지으면 명지와 해탈을 완성하는가?
꾼달리야여, 여기 비구는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고요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꾼달리야여, 이와 같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 지으면 명지와 해탈을 완성한다.
<作意를 緣한 見
다른 이로부터 듣는 것과 지혜롭게 잡도리함입니다.
도반이여, 이 두 가지 조건이 바른 견해를 생기게 합니다.
parato ca ghoso, yoniso ca manasikāro.
Ime kho, āvuso, dve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ā’’ti.
(다른 사람의 소리와) 여리作意를 緣하여 정見이 생겨난다.
다른 이로부터 듣는 것 → 作意 → 정념/정지 → 6근단속 → 意行(見) → >
“iti kho, bhikkhave,
asappurisasaṃsevo paripūro asaddhammassavanaṃ paripūreti,
비구들이여, 이처럼 참된 사람을 섬기지 않음을 갖추면 정법을 배우지 않음을 갖추게 된다.
asaddhammassavanaṃ paripūraṃ assaddhiyaṃ paripūreti,
정법을 배우지 않음을 갖추면 믿음 없음을 갖추게 된다.
assaddhiyaṃ paripūraṃ ayonisomanasikāraṃ paripūreti,
믿음 없음을 갖추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을 갖추게 된다.
ayonisomanasikāro paripūro asatāsampajaññaṃ paripūreti,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을 갖추면 마음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을 갖추게 된다.
asatāsampajaññaṃ paripūraṃ indriyāsaṃvaraṃ paripūreti,
마음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을 갖추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갖추게 된다.
indriyāsaṃvaro paripūro tīṇi duccaritāni paripūreti,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갖추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를 갖추게 된다.
tīṇi duccaritāni paripūrāni pañca nīvaraṇe paripūrenti,
세 가지 나쁜 행위를 갖추면 다섯 가지 장애를 갖추게 된다.
pañca nīvaraṇā paripūrā avijjaṃ paripūrenti.
다섯 가지 장애를 갖추면 무명을 갖추게 된다.
evametissā avijjāya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i.
이렇게 무명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무명을 갖추게 된다.
“iti kho, bhikkhave, sappurisasaṃsevo paripūro saddhammassavanaṃ paripūreti,
saddhammassavanaṃ paripūraṃ saddhaṃ paripūreti,
saddhā paripūrā yonisomanasikāraṃ paripūreti,
yonisomanasikāro paripūro satisampajaññaṃ paripūreti,
satisampajaññaṃ paripūraṃ indriyasaṃvaraṃ paripūreti,
indriyasaṃvaro paripūro tīṇi sucaritāni paripūreti,
tīṇi sucaritāni paripūrāni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nt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paripūr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satta bojjhaṅgā paripūrā vijjāvimuttiṃ paripūrenti;
evametissā vijjāvimuttiyā āhāro hoti, evañca pāripūri.
비구들이여, 이처럼 참된 사람을 섬김을 갖추면 정법을 배움을 갖추게 된다.
정법을 배움을 갖추면 믿음을 갖추게 된다. 믿음을 갖추면 지혜로운 주의를 갖추게 된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갖추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갖추게 된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갖추면 감각기능의 단속을 갖추게 된다.
감각기능의 단속을 갖추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좋은 행위를 갖추게 된다.
세 가지 좋은 행위를 갖추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갖추게 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갖추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갖추게 된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갖추면 영지를 통한 해탈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영지를 통한 해탈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영지를 통한 해탈을 갖추게 된다.
*부기
“tasmātiha tvaṃ, bāhiya, ādimeva visodhehi kusalesu dhammesu. ko cādi kusalānaṃ dhammānaṃ?
sīlañca suvisuddhaṃ, diṭṭhi ca ujukā. yato ca kho te, bāhiya, sīlañca suvisuddhaṃ bhavissati,
diṭṭhi ca ujukā, tato tvaṃ, bāhiya, sīlaṃ nissāya sīle patiṭṭhāya cattāro satipaṭṭhāne bhāveyyāsi”.
“katame cattāro?
바히야여, 그렇다면 그대는 유익한 법들[善法]의 처음 시작점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유익한 법들의 처음 시작점인가? 아주 청정한 계와 올곧은 견해이다.
바히야여, 그런 다음 그대는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서서
세 가지 방법으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 作意 → diṭṭhi ca ujukā 올곧은 見해>
“satisambojjhaṅgaṭṭhāniy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manasikārabahulīkārā
anuppanno ceva satisambojjhaṅgo uppajjati,
uppanno ca satisambojjhaṅgo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ti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의 토대가 되는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기를 많이 [공부]지으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된다.>
idha, tvaṃ, bāhiya, kāye kāyānupassī viharāh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 pe ... citte ... pe ...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āh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바히야여, 여기 그대는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러야 한다.
안으로 느낌에서 … 혹은 밖으로 느낌에서 … 혹은 안팎으로 느낌에서 …
안으로 마음에서 … 혹은 밖으로 마음에서 …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
안으로 법에서 … 혹은 밖으로 법에서 …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러야 한다.
첫댓글
육근의 意(마노)는 舊業이라고 하고
(의도思와 作意에 의한) 意行은 新業이라고 한답니다.
과거의 意行(邪見-取)에 의한 결과가 현재의 육근의 意(마노)이고
이러한 意(마노) 등의 육근을 (의도思와 作意에 의해서) 제어하는 것은
실참수행 하기 전부터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 싶습니다.
ajjhattikaṅga내적인 구성요소 - yonisomanasikāro
bāhiraṅga 외적인 구성요소 - kalyāṇamittatā 善友
念 → 作意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amuṃ telapattaṃ amanasikaritvā
bahiddhā pamādaṃ āhareyyā”ti? “no hetaṃ, bhante”.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그 사람이 그 기름 단지를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밖으로 방일한 채 가져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upamā kho myāyaṃ, bhikkhave, katā atthassa viññāpanāya. ayaṃ cevettha attho —
samatittiko telapattoti kho, bhikkhave, kāyagatāya etaṃ satiyā adhivacanaṃ.
비구들이여, 이 비유는 뜻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것이다. 그 뜻은 이와 같다.
비구들이여, 기름으로 가득 찬 단지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두고 한 말이다.
念 → 作意
manasikārasamudayā dhammānaṃ samudayo; manasikāranirodhā dhammānaṃ atthaṅgamo”ti.
마음에 잡도리함의 일어남이 바로 법의 일어남이고
마음에 잡도리함의 소멸이 바로 법의 소멸이다.
manasikārasamudayā dhammānaṃ samudayo;
manasikāranirodhā dhammānaṃ atthaṅgamo
集經 : 雜阿含經24卷 609經
[憶念集 則 法集 憶念滅 則 法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