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 빗방울
강수가 예보된 유월 첫째 일요일 새벽에 잠 깨어 노트북을 열자마자 날씨 검색부터 했다. 나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 앱으로 날씨를 보지 않고 인터넷 검색 일기예보에 익숙하다. 잠들기 전 간밤에 봐둔 상황보다 비 올 확률이 높아졌고 시간도 늘어져 강우에 대한 기대감이 들었다. 지난해 가을 이후 올해 들어 여태껏 우리 지역에는 비다운 비가 오질 않아 가뭄이 오래도록 지속한다.
비가 오면 야외 활동에 제약이 따르지만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바깥으로 나가볼 생각이다. 우산을 받쳐 쓰고라도 올봄부터 가꾸는 사파동 텃밭으로 올라가 작물을 살펴보고 할 일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 옮기지 못한 호박 모종을 몇 포기 심어둘 일이 기다렸다. 시장에서 구한 모종을 몇 포기 심어두었지만 추가로 만들어 둔 두 구덩이에 친구가 가꾸는 호박 모종을 심을 생각이다.
모종을 심은 뒤 날씨 상황을 봐 가면서 비가 적게 내린다면 준비해둔 비료를 살짝 뿌려줄 계획이다. 텃밭의 위치가 창원축구센터 곁 체육관과 인접한 언덕이라 퇴비를 운반하기는 거리가 멀어 작물에 뿌려주지 못하고 있다. 대신 화학비료에 해당하는 식물 영양제를 준비해두었더랬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라 우산을 손에 들고 텃밭을 향해 길을 나섰다.
체육관 뒤 언덕으로 오르니 평소 같으면 작물을 돌보는 이들이 다수 있을 법도 한데 한두 사람만 보였다. 강수가 예보된 아침이라 부지런을 뜨는 텃밭 사람들이 비옷까지 입고 나올 형편은 아닌 듯했다. 어쩌면 내가 극성스럽게 우중에도 텃밭에 나가지 않았는가 싶었다. 밭둑을 따라 내가 가꾸는 텃밭으로 올라 작물들을 살펴봤더니 아직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아 흙은 마른 채였다.
농기구 상자에서 꽃삽을 꺼내 호박 모종을 떠서 준비해둔 구덩이로 옮겨 심었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아 땅속의 흙은 먼지가 푸석푸석 일었다. 그래도 비가 와 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호박 모종을 세 포기 옮겨 심었다. 이후에 쥐눈이콩을 심어둔 밭으로 가서 엊그제 진딧물 약을 뿌려둔 상황을 살폈더니 개미가 보이질 않았는데 공생 관계인 개미가 없으면 진딧물은 방제되었다.
내가 늦은 봄에 텃밭 경작을 허여받아 씨앗을 뿌려 제대로 싹이 튼 게 쥐눈이콩이다. 산비둘기인지 까치인지 몇 알을 꺼내 먹어 빈자리가 예닐곱 군데 있긴 해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새들이 꺼내 먹을 것을 대비해 모판에 해당하는 모종 씨앗을 묻어두었더니 소복하게 싹이 돋아 자랐다. 쥐눈이콩 이랑에서 싹이 빈자리를 찾아 모종을 심었더니 역시 땅속은 메말라 푸석거렸다.
올해 늦은 봄부터 텃밭을 경작하게 되어 남들보다 뒤늦게 심어둔 채소 모종들은 가뭄 속에 생육이 부진했다. 이런 와중에 가지 모종은 여섯 포기 가운데 세 포기를 생장점에 해당하는 여린 멱을 땅속에 숨어 사는 거세미가 갉아 먹어 다시 심었는데 그마저 멱을 따 먹어 이제 보식할 시기조차 놓치고 말았다. 나머지 오이와 토마토와 고추만이라도 가꾸어 볼 생각이라 기대치가 높다.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가뭄에 얼마큼 도움 되려는지 궁금했다. 준비해 간 비료를 작물에 웃거름으로 뿌려주었다, 이후 전 경작자 할아버지가 밭둑에 잘라둔 음나무 마른 가지를 농막으로 옮겨와 잘게 토막 내었다. 내가 약차로 달여 먹는 영지버섯과 헛개나무에 같이 섞어 달일 요량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빗방울이 점차 굵어져 해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음나무 가지를 잘라 자루에 담아 놓고 성근 빗방울 맞으면서 옥수수 이랑에서 싹이 빠진 자리는 모종을 옮겨 심어 채워 놓았다. 이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즈음이었는데 여태 가뭄이 심해 비가 흠뻑 내려주었으면 싶었다. 오이 이랑의 덕장은 쇠막대라 돌멩이로 박아 줄을 쳐 놓았는데 고추와 토마토 그루에 신우대로 세워둘 지주는 아직 땅이 굳어 비가 온 뒤로 미루어야 했다. 22.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