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환경에 태어나도 사람의 인생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다른 일반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 환경을 선으로 바꾸느냐 악으로 바꾸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지요. 서자로 태어났다고 꼭 원한을 품고 더 악한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 보상으로 더 악랄하게 치부하여 떵떵거리고 살아보겠다는 야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기야 그 아비의 하는 짓을 보며 배운 것이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도(正道)로는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니 힘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함과 분노로 뒤엉겨있습니다.
탐관오리의 수탈로 더 이상 살 길을 얻지 못한 백성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서 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 자리를 떠난다? 떠날 수만 있다면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떠난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두려움만 덧붙인다면 그 자리에서 살 길을 찾을 것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하지요. 마지막으로 발버둥쳐 보는 것입니다. 대항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판사판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한번 발버둥 쳐보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무리가 이미 존재해 있다면 흔쾌히 합류할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에는 탐관오리와의 전쟁입니다. 부패한 관리 밑에 있는 병사들이 제대로 기강이 잡혀 있겠습니까? 더구나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고 있을까요? 혹시나 자기 부를 지키려 준비해둔 실력자는 몇 있을 수 있겠지요. 아니면 백성을 수탈하기 위해 폭력은 익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직적인 군대로 움직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할 것입니다. 군도(群盜), 미화된 표현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떼도둑’입니다. 그래도 매우 조직화된 도둑들입니다. 그래서 군도라 표현해도 무리는 아니라 봅니다. 이들이 맞서게 됩니다. 승패는 뻔합니다. 울분에 가득 찬 백성이 살겠다고 달려드는데 군대 같지도 않은 병사들이 감당하겠습니까? 그래서 군도의 힘이 무섭게 상승합니다.
그런데 무서운 대적자가 등장합니다. 양반의 피를 받았다고 인물도 빼어납니다. 게다가 칼 솜씨가 무섭습니다. 그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의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역시 서슬 퍼런 칼입니다.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벱니다. 서자로 당한 무시 굴욕 억울함과 그에 따른 분노가 합하여 칼에 그대로 새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이를 갈며 칼솜씨를 닦았을 것입니다. 내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 실력으로 상속자의 자리도 아비의 자리도 모두 빼앗습니다. 그리고 더 철저히 백성을 수탐합니다. 아비의 자리를 이용해서 관의 힘까지 이용하지요. 누가 당하겠습니까?
군도로서는 너무 어려운 상대를 만났습니다. 그 잔꾀에 그들만의 은신처까지 노출됩니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지요. 그리고 군도를 이끌어주던 지도자마저 살해됩니다. 이제 마지막 결단만이 남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 그 놈을 어떻게든 막아야 길이 있습니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지요. 한 번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두려운 상대라는 건 잘 압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원수일 뿐 아니라 모두의 원수입니다. 반드시 처단해야만 합니다. 함께 하던 많은 백성의 아픔을 이로써 조금이라도 보상할 것입니다. 사실 싸움이라는 것이 꼭 실력으로만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탐관오리 양반 앞에 허약하기만 한 백성, 이래저래 착취당하여 살 길을 잃은 백성들의 모습이 처참합니다. 불쌍한 마음도 없이 짓밟는 ‘갑’의 횡포에 당하기만 하는 ‘을’을 봅니다. 그냥 그렇게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 남는 것은 죽음뿐인데. 그래서 의기투합한 무리가 생겨나지요. 이름하여 군도(群盜), 어쩌면 의적(義賊)일 수도 있습니다. 무리하게 착취한 양식을 백성에게 도로 찾아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백성은 불안합니다. 이대로 가져가도 별 일이 없는 건지. 후환이 없는 건지. 혼란 속에 싸움이 이어집니다. 이러한 시대에 누가 옳은 것인가? 질문해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편에 속하여야 하는가? 국가와 정부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할 때 우리는 과연 도적이라도 되어야 하는가?
심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즐기면 됩니다. 신나지요. 무정하고 잔혹한 만큼 복수는 짜릿합니다. 배경음악도 그러한 관객의 감성을 부추겨줍니다. 마치 옛날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는 기분입니다. 한국판 ‘황야의 무법자’ 정도라고 생각해도 과하지 않겠다 싶습니다. 왜 지금 우리에게 이 영화가 신나게 다가오는가? 단순히 여름 피서용일까요? 무더위 속에 속 시원한 한마당입니다. 아마도 그 이상의 무엇이 곁들여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많은 때입니다. 그래서 가공의 세계에서라도 확 풀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즐기면 됩니다. 배우들도 신나고, 음악도 신나고, 이야기도 단순하고 신납니다. 아프고 섬뜩한 장면도 있기는 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면 됩니다.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