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fmkorea.com/5064197602
솔직히... 별로 기억에 없습니다.
실력으로도, 인상으로도...
대학에 가서 140km를 던진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동명이인을 착각한거 아닐까 했었거든요. 그 정도로 기억에 없어요.
-어느 선수의 고교 시절 야구부장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오사카의 야구 명문 고교 중 하나인 우에노미야 고교.
전 프로 선수였던 아버지께 직접 야구를 배우며
프로의 꿈을 키운 이 투수는 고교 3년 내내 후보였다.
고시엔은 커녕, 공식전에서도 패전처리 투수로 몇 경기 나온게 전부이며
당시의 야구부장 선생님을 찾아가 과거를 물어도, 솔직히 기억이 잘 안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본인도 고교를 끝으로 야구는 포기할 생각이었다고.
그러나 아버지가 끝까지 설득해 도쿄 센슈 대학 야구부로 진학한다.
약체화 되고있던 센슈 대학이라면 기회를 잡기도 비교적 쉬운 동시에
메이지 진구 구장을 사용하니 프로 스카우터들에 눈에 띄지 않을까 싶었단다.
1-2학년엔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다.
3학년이 되면서 구속이 붙기 시작해 팀이 도쿄 대학 1부 리그로 승격하는데 공헌한다.
4학년 봄,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150km를 찍으며 프로팀 리스트에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대학 통산 성적은
1부리그 15경기 6승 4패 ERA 3.33
2부리그 19경기 8승 5패 ERA 3.24
그렇게 시작된 1996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드래프트에는 조금 특이한 제도가 있었는데, 선수가 구단을 선택하는 [역지명 제도] 였다.
구단이 선택하는 대로 따라만 가야하는 기존의 드래프트.
이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가버리거나 하는 일들이 많아
이런 제도를 시도 했었지만, 이후 이런저런 문제들로 폐지 된다.
여하튼 이 선수도 몇몇 프로팀의 러브콜을 받았고, 역지명으로 원하는 구단을 선택하게 되는데
우승권 팀도, 돈 많은 팀도, 고향 지역의 팀도 아닌
히로시마 카프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1학년부터 자신을 보러 와준 유일한 스카우터
소노다 토시히코 씨가 히로시마 카프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은 물론 대학 1-2학년, 자신을 지켜봐주고 재능을 봐준 프로팀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단 한 팀. 히로시마 카프만은 달랐다.
메이지 진구 구장 뿐만 아니라, 도쿄 밖에 멀리 떨어진 연습 구장까지 찾아와
무명의 이 선수를 지켜보고 가곤 했었다.
히로시마 카프와 소노다 스카우터가 있었기에 1-2학년 시절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그런 카프를 배신할 수는 없다며 실력도 돈도, 자신과 연고도 없는 히로시마를 택했다.
이쯤되면 눈치 챈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렇다. 쿠로다 히로키와 히로시마 카프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 해 데뷔전에 요미우리를 상대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하며 이름을 날렸다.
6승 9패 ERA 4.40, 1년차 치고는 나쁘지는 않은 성적이었지만, 이후로 약간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4년차, 2000년에서야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9승 6패 ERA 4.31, 선발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2001년 12승 8패, ERA 3.03, 13완투 3완봉 190이닝을 던지며 만개했다.
쿠로다의 주무기는 무엇보다 직구, 그리고 싱커와 슬라이더, 포크.
싱커와 결정구 슬라이더의 무브먼트도 좋았지만, 뛰어난 제구를 바탕으로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찌르며 땅볼을 유도하는 영리한 투수였다.
제구는 물론 구속과 구위까지 갖추며 꾸준히 승리와 이닝을 책임지는 카프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개인 성적과는 별개로 팀은 항상 하위권이었다는 점.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5-06, 2년간 18완투를 하고 28승을 올리며, 402이닝을 책임졌다. 06년은 방어율이 1.85였다.
그러나 히로시마 카프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쿠로다는 2006년 FA권리를 취득했고, 몇몇 팀이 영입 의사를 보였다.
언론사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최고의 인기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4년 16억엔
고향 지역 한신 타이거즈가 5년 20억엔
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돈이 없는 시민구단 히로시마의 제안은...
[4년 10억엔 + 향후 히로시마 감독 보장] 이었다.
* 이 금액도 구색 맞추려고 이 악물고 긁어 모았다는게 정설이다.
그렇게 2006년 10월 16일, 홈에서의 쿠로다 등판일이 사실상 작별의 경기가 되는 듯 싶었다.
히로시마 팬들은 쿠로다가 떠나도 이해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런 팬들이 쿠로다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메시지가 있었으니
우리는 함께 싸워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날 그 날 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우리가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카프의 에이스, 쿠로다 히로키
그리고 쿠로다는 FA를 철회한다. 히로시마에 남겠다고.
다른 유니폼을 입고 히로시마를 상대로 진심으로 공을 던질 수 없을것 같다고.
계약 내용은 [4년 12억엔 + MLB 공식 오퍼가 온다면 언제든 떠나도 OK]
(* 커쇼는 커브를, 쿠로다는 슬라이더를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그리고 1년 후 2007년 겨울, LA 다저스에서 공식 오퍼가 왔고
3년 3530만 달러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 계약은 MLB-NPB 팬들 양쪽 다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만 33세에 MLB 데뷔를 하는 선수에게 너무 큰 금액을 줬다는게 MLB의 의견.
어차피 얼마 못가 돌아올텐데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는게 NPB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쿠로다는 LA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에서의 7년간.
매년 3점대를 유지하며 200이닝 가까이 책임졌다.
기존 3년 계약이 끝나고는 1년짜리 단기 계약만을 고집했다.
연봉과 선발이 보장되면 긴장이 풀릴까봐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였다.
2014년 겨울, LA다저스가 재영입을 추진했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몇몇 팀이 영입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쿠로다의 선택은, [2000만 달러의 연봉+MLB 풀타임 선발 보장]이 아닌
바로 히로시마 카프 복귀였다.
대다수 사람들은 MLB 현역 선수가 꿈을 이루기 위해 NPB로 돌아간다는 말을 이해 하지 못했지만
쿠로다에게 있어 카프 복귀의 이유는 간단했다.
떠날 때, 돌아와서 카프의 우승에 힘을 보태겠다고 팬들과 약속 했기에.
연 2000만 달러 대신 연 4억엔을 받게 되었지만 그런건 상관 없었다.
2014년의 카프는, 에이스 마에다 켄타를 필두로
노무라-오오세라 신인왕 듀오가 선발진을 구축했고
돌격 대장, 타나카 코스케
국대 2루수, 키쿠치 료스케
배신자, 마루 요시히로
홈런왕, 브래드 엘드레드
공격형 포수, 아이자와 츠바사
위 타선에 스즈키 세이야라는 20살의 신성에게 가능성을 보았던 해다.
여기에 쿠로다 히로키, 그리고 아라이 타카히로가 히로시마로 돌아오게 되었다.
2015년 3월 29일, 쿠로다는 복귀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로 장식했고
이 경기는 히로시마 현내 최고 시청률 39.7%를 기록했다.
만 40세 쿠로다의 시즌 성적은 11승 8패 ERA 2.55, 169.2이닝이었다.
그러나 카프는 시즌 막판에 가을 야구 경쟁에서 삐끗하며,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쿠로다의 마지막이 될 2016년.
카프는 돈을 끌어모아 6억엔으로 현역 최고 연봉 대우를 해준다.
2016년, 카프는 시즌 초반부터 타선의 활약으로 리그 선두를 달려나갔다.
6월에는 10연승을 하며 승패 마진 +15까지 쾌속 질주했고
2위와는 9게임 차이를 벌리며, 올해는 진짜 다르다를 시전했다.
그런 와중 7월 23일 한신전, 쿠로다는 미일 통산 200승 달성을했고
9월 10일 요미우리전, 6이닝 3실점으로 승리하며
히로시마 카프의 25년 만의 정규 시즌 우승을 본인의 손으로 확정 지었다.
동시에 카프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쿠로다 본인의 첫 가을 야구 확정이었다.
그리고 쿠로다는, 일본 시리즈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일본 시리즈의 상대는, 미쳐 날뛰는 오타니 쇼헤이를 앞세운 닛폰햄 파이터즈였다.
이 해 오타니는 투수로 10승 ERA 1.86, 최속 165km를 찍었고
타자로는 타율 .322 OPS 1.004, 22홈런 67타점 7도루를 기록했다.
* 히로시마 - 홋카이도에서 펼쳐지는 시리즈로,
일본 시리즈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오가는 시리즈가 되었다.
홈에서 치러진 1,2차전은 노무라-존슨을 내세워 카프가 승리하며, 아주 기분좋은 출발을 했다.
설마설마 하면서도, 카프 팬들은 32년만의 우승 축하 행사를 준비 했을지도 모르겠다.
3차전 선발이 쿠로다 히로키 였으니까.
41살의 쿠로다의 첫 일본 시리즈 등판은 5.2이닝 1실점 11탈삼진으로 호투.
그리고 쿠로다의 부상 강판에 홈/원정 팬 할것없이 기립 박수가 나왔다.
그러나 8회 말, 필승조 제이 잭슨이 2실점 블론을 해버렸고
연장 10회 말, 오오세라가 오타니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시리즈 스코어는 히로시마 2 - 1 닛폰햄
4차전, 1-1 스코어로 투수전이 이어지던 8회 말.
정규 시즌은 물론 포스트 시즌에서도 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잭슨이 다시 한번 무너졌다.
6번타자 브랜든 레어드에게 투런을 맞으며 분위기가 넘어갔고
9회 초, 2사 만루 풀카운트까지 어떻게든 물고 늘어졌지만
일본 최고의 좌완 불펜, 미야니시의 슬라이더에 마루의 방망이가 돌아가며 시리즈 2-2로 동점이 된다.
5차전, 크리스 존슨이 6이닝 무실점으로 잘 틀어 막았지만
시리즈 5경기 내내 연투를 해온 필승조 이마무라가 실점하며 존슨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이후 마찬가지 5경기 내내 연투를 해온 잭슨이 이번에는 무실점.
그러나 9회 말, 마무리 나카자키가 터지고 말았다.
몸 맞는공-내야안타-몸 맞는공으로 2사 만루를 만들더니
니시카와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으며 시리즈 역전을 허용했다.
*이 홈런은 일본 시리즈 역사상 두번째 끝내기 만루 홈런이다.
벼랑 끝에 몰린채로 홈에 돌아온 히로시마 카프.
6차전, 7회까지 4-4로 물고 늘어지며 최종전의 가능성이 보이는가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최종전의 선발은 히로시마 홈에서의 쿠로다 히로키였다.
그러나 8회 초, 시리즈 6경기 중, 6연투로 올라온 제이 잭슨.
2아웃 이후 안타-안타-안타-밀어내기 볼넷-안타로 2실점을 허용하고
또 한번 브랜든 레어드에게, 이번에는 그랜드 슬램을 얻어 맞고 스코어는 순식간에 10-4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구단 3번째 우승의 순간이었다.
Q. 왜 투수를 교체하지 않았나요? 아니 애당초 왜 필승조를 전부 시리즈 6연투 시킨거죠?
A. 그건 필자도 모른다. 돌대가리 오가타 감독만이 알고 있을것.
그렇게 히로시마 카프의 1984년 이후 32년만의 우승 도전은 끝이 났으며
그렇게 쿠로다 히로키의 처음이자 마지막, 카프 가을야구가 막을 내렸고
그렇게 쿠로다 히로키의 20년간 프로 생활에, 우승은 없었다.
* 이후 2017년, 2018년도 정규 시즌은 우승을 했지만
히로시마 카프는 일본 시리즈를 제패하지는 못했다.
쿠로다 히로키의 통산 기록은
NPB 321경기 124승 105패 ERA 3.55, 2021.2이닝 76완투 15완봉
MLB 212경기 79승 79패 ERA 3.45, 1319이닝 6완투 5완봉
최다승 1회
방어율 1위 1회
베스트 나인 1회
골든 글러브 1회
그리고 히로시마 카프의 15번 영구 결번
쿠로다 히로키의 어록은 많지만, 그 중 쿠로다의 프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스포츠 선수는 어린 아이들의 정신과 사고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항상 정정당당해야 하고
항상 꾸준히 노력해야 하고
항상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기본을 전해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선수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쿠로다 히로키는, 그런 선수였다.
붉은 헬멧 군단의 영원한 에이스, 쿠로다 히로키 黒田 博樹
출처 - https://www.fmkorea.com/5064197602
첫댓글 우와... 진짜 멋있다
소름돋는다
내가 운동선수라면 어중간한 스타보다는 저런 선수로 살고싶을듯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1년 계약만 고집하는거 존나 멋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