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왼쪽), 서울 용산구의 쌍방울그룹 본사.
지난 8월 16일 수원지검은 자본시장법 위반 및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쌍방울그룹의 양선길 현 회장과 김성태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올해 초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쌍방울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 관련 자료를 건네받은 뒤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데 따른 절차다. 검찰이 FIU 자료 등에서 포착한 건 지나치게 잦아진 쌍방울그룹 계열사 간 자금 교환, 불투명하게 빠져나간 현금 흐름 정황이다. 검찰이 지난 6월부터 3차례에 걸쳐 쌍방울 본사 등을 압수수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의 이번 체포영장 발부는 쌍방울그룹 경영진의 횡령·배임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후속 수사로 비치지만, 여기엔 지난 대선 때부터 불거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맞물려 있다.
지난해 해당 의혹을 제기했던 ‘깨어있는시민연대당’, 국민의힘 측은 쌍방울그룹이 자사가 발행한 전환사채 등으로 이재명의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정황·증거를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이 현재 FIU 자료에서 주목하는 것 또한 쌍방울그룹 내부에서 전환사채를 활용한 약 180억원 규모의 자금 용처다.
검찰의 이런 수사 과정엔 쌍방울그룹과 이재명 간 석연치 않은 관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쌍방울그룹 계열사들의 사외이사만 해도 이재명과 관련한 인사들이 다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재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을 당시의 변호인이자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당사자인 이태형 변호사를 비롯해 이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M 소속 변호사들, 이 변호사와 함께 이재명 변호를 맡았던 나승철 변호사, 이재명과 가까운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 등이 그 일례다.
지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엔 앞서의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과 김세호 쌍방울 대표 등 임원들이 이재명에게 고액의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재계 안팎에선 쌍방울그룹이 내부적으로 신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재명이 이와 관련한 내용을 대선 공약에 포함해 향후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런 이유 등으로 수원지검은 각각 별개로 진행되던 ‘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공공수사부)과 ‘쌍방울그룹 횡령·배임 의혹’(형사6부)을 통합 수사하기로 한 상황이다.
두 사건의 통합 수사팀장은 김형록 2차장검사로 윤석열 사단으로 통하는 ‘특수통’ 출신이다. 이 수사팀은 최근 쌍방울그룹에서 이태형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 계좌로 현금 수십억원을 입금했다가,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반환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검찰은 통합 수사팀을 꾸리기 전부터 두 사건의 연관성에 주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처음 고발했던 ‘깨어있는시민연대당’의 이민구 대표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쌍방울이 누구의 것이냐에 대한 의구심까지도 제기된다”라고 평했다.
공소시효 직전 이뤄지는 검찰총장 인선
최근 검찰이 쌍방울그룹 전·현직 임원진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으며 수사에 속도를 내는 데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시간적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경우 지난 대선 당시 허위사실 유포 등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돼 오는 9월 9일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검찰 입장에선 그 이전에 쌍방울그룹 자금이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어떻게 활용됐는지 규명해야만 한다. 여기에 민주당이 입법 강행한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9월 10일부터 시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전에 수사를 끝내야 향후 기소 절차를 밟는 데 유리할 거란 분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진행 중인 이재명의 처 김혜경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관련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이다. 경찰은 8월 전후로 해당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송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에선 김혜경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쌍방울그룹 경영진의 배임·횡령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모두 이재명과 관계된 만큼 3개 사건의 수사·기소 속도를 발맞춰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부는 최근 100일 넘게 공백이었던 검찰총장에 이원석 대검 차장검사를 낙점했다. 검찰 안팎에선 이재명을 포함한 윗선에 대한 조사는 차기 검찰총장이 임명된 뒤에 이뤄질 거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온 바 있다.
검찰총장 최종 후보는 청문회를 거쳐 9월 초 임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변호사비 대납 의혹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시기와도 맞물린다. 총장 임명이나 검찰 수사 등 모든 일정이 결국 이재명의 소환조사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개 드는 ‘9월 기소설’
민주당도 검찰의 이런 구체적인 수사 상황을 어느 정도 인지하는 상황이다. 당내엔 법조 출입기자 등을 통해 이재명에 대한 검찰의 9월 기소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 80조’ 개정 논의가 실질화된 것도 결국 이런 배경에서였다. 당헌 80조의 1항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각급 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해당 당헌에서 ‘기소’를 ‘하급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로 바꾸기로 의결했지만, 비대위가 8월 17일 현 당헌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당헌 80조 3항에서 기소 시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는 구제 기구를 기존 ‘윤리심판원’에서 ‘당무위원회’로 변경했다. 당무위원회는 당 지도부와 시도당위원장 등 100명이 모인 당의 의사 집행기구다. 윤리심판원보다 신속한 정무적 판단이 가능한 기구로 어찌 됐건 이 의원의 기소에 대비할 장치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가 남긴 게 있다면 당헌 80조 개정 정도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로 대의와 명분은 물론이고 당과 당원을 위한 논의나 의제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