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라 늙은호박이 매달려 가는 산에 출근하지 않았다.
카눈태풍이 휩쓸고 간 농장은 惡山(악산)으로 어지간한 끈기와 인내력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농작물 가꾸는 그 자체가 어림없고
설령, 작물이 성장한다 하더라도 위험한 복병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서 매일 관리하지
아니하면 큰 낭패을 당하기 쉬운 고약한 까끔 이다.
요즘 계속되는 폭염으로 풋호박 落果(낙과)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着果(착과)가 늘어나
여기저기 매달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호박넝쿨은 10m 까지 뻗어가면서 새끼가지도 여러개 생겨나 호박순이 마치 코브라가
똬리 틀고 쳐다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칡넝쿨도 호박넝쿨 앞에는 어린아이에 불과해 아전이 사또에게 아첨하는 ㅡ
즉 세상에 적수가 없는 넝쿨성 黃帝(황제)라 할 수 있겠다.
참외는 카눈태풍과 함께 160미리 이상의 집중적인 폭우로 인해서 350주 중 100주 정도가
재기불능의 직격탄을 맞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수박은 50주로 한 그루의 손상없이 열매 맺어가면서 잘도 넝클어 가는 바람에 가지치기
하는 날이 늘어만 간다
.
나는 이번 장마기간 중 참외가 가장 연약한 식물성 과채임을 알았다.
이럴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악산에다 심을 일은 애당초 꿈꾸지도 않았을 테고 근심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이제는 애물단지로 그냥 내버려 둘 수도 그런다고 포기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 풀을 매고
분무기로 하루에 한 번씩 영양제를 뿌려주고 있다.
나날이 달라지는 참외의 수는 피해가 전혀없는 250주이고 밑둥까지 가지가 부러져
나간 30주와 한 가지만 겨우 붙어 살아가는 70주는 연일 나흘동안 뿌려도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지 아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재기불능에다 쑥대밭이 되어버렸던 젊은 날,
30대 중반의 나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그렇다.
참외는 식물성이지 결코 사람이 아니다.재기불능으로 몰아간 것도 자연이 몰고온 천재지변
으로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의 강력한 힘이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도와달라 사정한 적이 별로 없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여려 퍼주는 것도 끝이 없었다. 결국은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에 처참하게
참패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냉정함에 무릎을 꿇었다는 말이다.
참외의 경우는 다르다.내가 산에다 심었기 때문에 의사가 되어야 하고 간호사가 되어야만
잘 넝클어 가고 열매을 맺은 다음, 스스로 삶을 자연속에서 멀어져 가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참으로 한 인간의 손으로 짧은 생을 행복하게 살다가노라는 소리 ㅡ 보다는 더불어 함께
생활한 것에 만족했습니다는 말을 듣는게 농부로서 의사로서 간호사로서 갈망하는 어울림의
소리 이다.
나는 참외 70주가 다시 일어나 건강한 모습을 찿아갈 거라고 내다보고 있다.
나머지 30주는 열매 한 번 맺지 못하고 흙으로 다시 태어나 호박 수박 참외에게 훌륭한
영양을 공급할 거라고 믿는다.
나는 한 번 약속한 것에 대해서 지킬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은 중요한 약속을 어겨서 그런지 마음이 착잡하고 심란스러워 글을 쓰지만 정당화 시킬
수도, 슬쩍 빠져나가 쥐구멍 찿는 잔꾀 따위로 합리화 시킬수도, 참외에게 영양제 주사
놓은 간호사로 그런다고 칡넝쿨을 폭염속에 에초기로 제거하느라 더위 먹어서 몇 시간 동안
선풍기 틀어놓고 잠자다보니 목감기에 머리가 아파 정모임에 불참하노라고 ㅡ 여기서 나는
대단히 信義(신의)가 타락되어 가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번 순천책사모 정모임에 참석하여 토론하자는 성산친구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고,또한
루 거스너가 쓴 ` 코끼를 춤추게 하라 `하는 책 한 권 선물한 고마운 마음을 팽겨쳤다.
산에 늙은호박 2200주 참외 350주 수박 50주가 친구와의 약속을 깰만큼 信義가 있는가 ?
평생을 義롭게 살겠다던 마음이 이토록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더란 말인가 ?
결국 나는 호박이 늙어갈수록 사람들에게 가치있고 사랑받는다는 의미조차 모른채로
그저 돈될만 하니까 가꾸는 꼴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이 늙어갈수록 젊음을 유지하고 대우받을 수 있는 것은 완숙된 늙은호박의
몸뚱아리가 아니라 지식과 학문을 겸비하고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고 여유있게 문화생활
하면서 텃밭도 가꾸면서 살아가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혜와 지성이 마르지 않는 샘,대해의 거센 파도에도 침몰하지 않는
거대한 순천책사모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식지아니하고 끝없이 항해할 것이다.
信義을 저버린 행동은 늙은호박에게서 다시 배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련다.
인 초 당
|
|
첫댓글 성산님은 다 이해하실겁니다. 친구 잖아요
쓰러져 가는 참외에게 화이팅을 외쳐 보지만 힘을 좀 될라나
그니까요!
오셨으면 좋았을텐데...
정모에 안올수도 있는 이유치곤 너무 절박?ㅎ하게 쓰여졌구만....ㅎ
항상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우선순위는 생활이 아닌가 싶네.
스스로 생각하는 생활이 안정돼야 책이 눈에 들어 올것이고...
책이 눈에 들어와야 진정한 토론이 될것이고...
진정한 토론이 돼야 술 맛도 날것이고!!!
친구, 여러가지 신경쓰지말고 참외.수박.호박에 애정을 쏟게나.
더 이상 애정을 쏟지 않아도 되는 날에 책사모에서 얼굴보면 될 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