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544장 (구 343장) / 로마서 3 : 9 - 2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54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로마서 3장 9절 – 20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m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아멘!
우리 사람들은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 변명을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에도 그랬고, 아간이 범죄 했을 때에도 그랬고, 유대인들이 선민의 자리를 빼앗겼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에서도 복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변명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은 변명과 공격을 신학적으로 하나하나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그 어떤 종교적인 의식이나 율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잘못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믿음이 - 우리가 믿는 구원의 주님과 연결시켜 주므로 주님이 우리들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만 믿는 것은 아닙니다. 이슬람 신자들도 믿고, 불교 신자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마호메트를 믿고, 부처를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도 믿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믿음의 대상이 다릅니다. 그래서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보다 돈을 더 믿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권력을 더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구원받지 못 합니다.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우리들을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주님을 붙드는 영적인 손일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곧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율법의 유익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은 유익한 것이지만 그러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율법으로는 첫째,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주는 안내역할을 하고, 둘째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서 회개를 하게 해주고, 셋째 하나님의 뜻을 알려 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율법의 한계를 말했지만, 그러나 율법을 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역시 율법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말씀대로 착하게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궤변이나 변명을 늘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잘못을 변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명은 인간의 가장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은 변명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에 책임이 따름을 기억하고,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 무엇 아래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 아래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육적으로는 한국의 법과 영토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첫째는 율법 아래, 둘째는 죄 아래, 셋째는 죽음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구원이란? 율법과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율법 아래 있는 인간들은, 율법의 제약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보면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은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의만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의란? 마치 더러운 옷과 같아서 땀 냄새, 음식 냄새, 등 온갖 여러 가지의 냄새가 나듯이, 죄의 냄새가 절여 있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합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에 보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라고 시작해서, 끝에 가서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심판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들의 의나 선을 가지고,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비판할 수도 없고, 또 피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행한 행위대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지어 율법을 지킨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노력과 의가 하나님의 표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룩한 그리스도의 의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우리들을 2천 년 전의 주님의 의가 우리들에게 전가가 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 - 곧 율법 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서 율법주의 적으로 살거나 아니면 율법과 관계없이 무율법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주의적으로 살면, 율법대로 살 수 없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고, 무율법주의적으로 살면 우리는 비윤리적 삶을 살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도 문제가 있고, 무율법주의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 3의 길을 열어주셔서 믿음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것은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으로 인해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면서 주님께 나오게 하고, 또 주님께 온 후에는 우리의 죄를 세밀하게 보면서 회개를 깊게 하여 줍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영생과 축복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함으로 아름다운 많은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