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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촉잔년(風燭殘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라는 뜻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風 : 바람 풍(風/0)
燭 : 촛불 촉(火/13)
殘 : 남을 잔(歹/8)
年 : 해 년(干/3)
출전 : 악부시집(樂府詩集), 열자(列子) 탕문(湯問)
이 성어는 바람 앞의 촛불이라는 뜻의 '풍촉(風燭)'과 남은 세월이라는 뜻의 '잔년(殘年)'이 합해져 이루어진 성어이다.
먼저 풍촉(風燭)은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려 있는 작자 미상의 시 원시행(怨詩行) 등에서 유래되었다.
天德悠且長, 人命一何促.
하늘의 덕은 아득하고도 길건만, 사람의 목숨은 어찌 이리 짧은가.
百年未幾時, 奄若風吹燭.
백 년도 기대하지 못하는 시간이, 바람 앞의 촛불과 같구나.
이 시는 "하늘의 덕은 아득하고도 길건만, 사람의 목숨은 어찌 이리 짧으냐. 백 년도 못 채우는 목숨이건만,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구나"라고 읊어, 바람이 불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미약하고 짧은 인생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다.
다음 잔년(殘年)은 열자(列子) 탕문(湯問) 편에 실려 있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90세나 된 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려 하는 모습을 보고 하곡(河曲)에 사는 지혜로운 노인이 웃으면서 "매우 어리석도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여력으로는 그 산의 터럭 하나조차 헐지 못할 것이니, 흙과 돌은 어찌 하려누(甚矣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라며 그만두라고 말렸다. 그러나 우공은 멈추지 않았고, 이에 감동한 천제(天帝)가 산을 옮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상의 두 가지 성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풍촉잔년(風燭殘年)은 나이가 많이 들고 체력도 쇠하여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 풍촉잔년(風燭殘年)
(배득렬 교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
8일은 어버이날이다. 16년 전, 아버님은 귀천하셨고, 지금은 어머님만 홀로 남아 계시다. 작년에 다리를 다쳐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님. 그나마 주말에 집으로 모셔와 이틀을 같이 생활한 게 내가 하는 어머님 공양의 전부다.
92세. 참 긴 세월을 풍파를 이겨내며 살아오신 어머님. 지금은 이도 성하지 않아 제대로 작근할 수 없어 주로 죽이나 무른 것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어머님은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어머님의 치아 가운데 2개를 어제 다시 발치해야 했다. 친구인 치과의사는 내게 이제 더 씹기가 어려울 것이고, 결국 틀니를 다시 맞춰 사용해야 한다고 이른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님은 "아냐! 이제 무슨 틀니야!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지!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염두에 두신 말이라 생각하니 괜히 눈자위에 짠한 자극이 몰려온다.
인간이 왜 꽃보다 아름다울까?를 생각해본다. 단순한 내 생각으로 '인간은 자신 스스로 태어나지 못하는 존재이고, 또한 태어나면서 성령(性靈)을 지녔기에 느끼고, 생각하고, 인식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이러한 능력을 부여받았기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허니 부모가 어떤 존재이든, 우리는 부모에게 인간의 가장 중요한 것을 전수받았다. 부모는 내 존재의 근원이다. 어버이날 부모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송사(宋史) 유인전(劉因傳)에 나오는 고사가 슬며시 마음을 울려 소개하고자 한다.
송말(宋末), 원초(元初) 때, 유인(劉因)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나서 홀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셨다. 후에 그가 조정(朝廷)에서 관직을 지내다가 어머님이 병환에 걸리자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극진히 돌보았다.
이후로 조정에서 여러차례 그를 불러 관직을 내리려했으나 그는 번번이 사양하였다.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에게 "왜 관직을 내려도 받지 않으려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유인(劉因)이 "저의 어머님은 이미 90 고령이시기에 마치 '바람 속의 희미한 초(風中殘燭)'와 같아 언제 돌아가실지 모릅니다. 내가 어떻게 어머니를 버려두고 일시의 부귀를 탐하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풍촉잔년(風燭殘年)! 어머님의 지금 상황과 어찌 그리 딱 들어맞는지. 자식 다섯 키우고, 이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존재.
지금도 "운전 조심해라! 어른에게 인사 잘해라! 밥 제때 먹고 다녀라!" 라며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 몸에 밴 우리 엄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세만 살다 가셨으면!
(배득렬 교수)
⏹ 안개 같은 인생 / 송수천목사
약 4:13-17
사람들은 저마다 착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어머니들, 아들이 결혼해도 아내보다 엄마인 자기를 먼저 챙길 줄 안다.
장모들, 사위들은 처갓집 재산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안다.
아줌마들, 화장하면 다른 사람 눈에 예뻐 보이는 줄 안다.
아가씨들, 자기들은 절대로 아줌마가 되지 않을 줄 안다.
여자들, 남자들이 자기와 같은 방향으로 길을 가면, 관심이 있어서 따라오는 줄 안다.
남자들, 못생긴 여자는 접근하기 쉬운 줄 안다.
엄마들, 자기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공부 못하는 줄 안다.
꼬마들, 떼쓰면 다 되는 줄 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착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떤 착각을 하시며 사십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인간은 중대한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존재인데, 그렇지 않은 줄 착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선 본문을 보면, 인간을 안개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안개란 지표부근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나타나는 기상현상을 말합니다. 주로 야간에 해가 지고 땅이 차가워지면서, 안개가 생깁니다. 이 안개는 바람이 없고 습도가 높은 맑은 날 야간에 잘 생기고, 비가 온 후 맑은 밤에도 잘 생깁니다. 그리고 이 안개는 특히 일출 후 1 시간 사이에 많이 생기고, 보통 생긴 뒤 1-2시간 이내에 사라집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인생을 안개와 같다고 비유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안개가 생긴 지 한 두 시간 내에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인생이 짧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인생은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집니다. 짧아도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들이 이 점을 모르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척이나 긴 줄 알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풍촉잔년(風燭殘年)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풍촉'과 '잔년'이 합쳐진 말입니다.
풍촉이란 '악부시집'에 실려 있는 작자 미상의 시 가운데 나오는 표현입니다. 바람이 불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미약하고 짧은 인생에 대해 탄식하는 표현입니다.
잔년이란 '열자'의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에서 유래된 표현입니다. 90세나 된 우공이란 사람이 산을 옮기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하곡에 사는 지혜로운 노인이 그만두라고 말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남은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모르는 어리석음을 책망하면서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우공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인생이 언제 꺼질 줄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미약하고 위태롭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정말 얼만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우공처럼 허망한 꿈을 꿉니다. 무모한 일을 도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혜로운 노인이 우공을 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인생이 안개와 같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삽니다.
본문 1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장사하기 위해 돈 벌이가 되는 곳에 가서 1년이나 머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사업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포기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먼저 가정에 대한 의무를 포기합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돈 벌이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욕망, 크게 출세해 보겠다는 욕망, 명예를 떨쳐보겠다는 욕망, 큰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욕망. 이런 욕망들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왜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살까요? 한 마디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안개 같은 존재인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개처럼 잠시 있다 사라질 때, 욕망으로 붙잡고 있던 것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때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를 읽어보면 우리의 이런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10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 세상 욕망은 채우고자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헛된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6:2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이 세상의 것들은 가지려고 몸부림치고 애써도, 정작 그것들을 누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헛된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런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서 그렇지 않아도 짧은 인생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둘째, 허탄한 자랑을 하며 살아갑니다.
1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쓸데없는 자랑, 사실과 다른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업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 사람은 유능한 사람입니다. 자기 사업에 대해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해야 할 지역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업 기간까지 정해 놓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사업을 통해 얻게 될 이윤까지 이미 다 계산해 놓았습니다.
사실 이 사람은 세상적으로 볼 때 대단한 사업가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식으로 사업을 성공해 본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저함이 없이 과감하게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 설명회를 하듯이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태도를 허탄한 자랑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유능한 사업가를 비판하고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교만 때문입니다. 자기가 계획하면 다 될 줄 압니다. 자기가 추진하면 그렇게 될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사업이 자기 뜻대로 됐을 때 그 모든 영광은 자기가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시 127:1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그리고 잠 16:9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계획대로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완벽하게 추진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그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대로 되었다고 해도, 자기가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수고를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 자랑을 허탄한 자랑이라 비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자랑은 다만 일시적일 뿐이라는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은 자랑거리일지 모르지만 조금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닐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자랑거리일지 모르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것이 수치거리일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경일의 '마흔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에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내용이 나옵니다.
어릴 때 모든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인간은 불공평하다고 확신했으니 얼마나 귀엽고 우스운 생각인가. 어떤 면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진실이다.
아귀다툼하고 아옹다옹하고, 뭔가 남과 다른 걸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삶의 종착역을 향한 인생 여정에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40대: 욕망의 평준화/ 누구나 사회적 성공을 위해 발버둥치며 달려간다.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다가오는 노년을 준비하기위해 가장 왕성하게 뛰는 이 나이는 욕망과 책임의 평준화 연령이다.
50대: 지식의 평준화/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이나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사람이나 아는 게 다 그게 그거다. 살면서 얻는 지식이란 게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닌가.
60대: 외모의 평준화/ 미스코리아 출신이나 식당 아줌마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나이 들면 화장하고 분 발라도 윤기가 흐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70대: 성의 평준화/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 아내가 있으나 없으나 성 관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80대: 부의 평준화/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먹고 사는게 별 차이 없다. 하루 세끼면 족하다.
90대: 생사의 평준화/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모호해 진다. 살았다고 죽은 자보다 별로 나은 게 없으며 살아 있어도 죽은 것만 못하다.
100세 이상: 자연속의 평준화/ 모두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변하며, 누구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자랑거리가 있다고 자랑해 보지만, 조금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목청 돋우어 자랑해 본들 그 자랑이 허탄한 자랑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자랑 역시 인생이 안개임을 깨닫지 못해서 늘어놓는 자랑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안개 같음을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인생이 안개 같음을 깨닫고 사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지혜로 인생이 안개 같음을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남다른 세상의 지혜로 남들이 다 잊고 사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바로 인생이 안개 같이 잠시 후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안개가 갇힌 뒤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지 못합니다. 마치 인생 자체가 안개가 떠오르는 태양 빛에 사라지듯 소멸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깊은 허무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사람들이 허무주의에 빠져들게 되면, 인생 자체를 허송하게 됩니다. 인생을 사는 태도가 냉소적이 됩니다. 어떤 목적을 세우거나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심할 경우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지혜로 인생이 안개 같음을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인생이 안개 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안개가 사라지듯 인생이 그렇게 끝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안개 같은 인생이 끝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지를 미리 알게 됩니다. 저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달라질 삶의 태도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주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하리라 할 것이거늘"
주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이 안개 같음을 깨닫고 나면 내 뜻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주의 뜻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주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합니다.
얼마 전 나이 60이 다 돼서 신학교에 입학한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야망을 품고 동분서주했답니다. 그러다 나이 들어 하나님의 뜻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 뜻을 따르지 않으면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아 신학교에 입학했답니다. 그러면서 깊은 후회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그 기간 주의 뜻을 찾아 그 뜻을 따르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의 뜻이 아닌 것을 따르며 산다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안개 같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주의 뜻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철저하게 따릅니다.
둘째, 선을 행하며 삽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 또 실제로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안개와 같음을 깨달음 사람들은 선을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려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안개처럼 머지않아 걷히게 될 인생길에 선을 행하며 살기에도 인생이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인생을 마감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되고, 장차 저 천국에서 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짧은 인생 동안 선을 행하지 않고 죄짓고 악을 행한다면, 인생을 마감할 때 깊은 후회와 탄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이 안개처럼 짧고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살거나 허탄한 자랑에 빠져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 뜻을 따르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 風(바람 풍)은 ❶회의문자로 风(풍)은 간자(簡字), 凨(풍), 凬(풍), 凮(풍)은 고자(古字)이다. 무릇(凡)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 병충(蟲)이 많이 번식한다는 뜻을 합(合)하여 바람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바람'을 뜻하는 風자는 본래 봉황새를 그린 것이었다. 갑골문에 나온 風자를 보면 큰 날개와 꼬리를 가진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로 갑골문에 나온 風자는 바로 그 상상의 새를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風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라는 뜻으로 혼용되기 시작했다. 바람의 생성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고대인들은 봉황의 날갯짓으로 바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風자가 '봉황'과 '바람'으로 혼용되기도 했지만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凡(무릇 범)자에 鳥(새 조)자가 결합한 鳳자가 '봉황새'를 뜻하게 되었고 봉황이 몰고 왔던 바람은 凡자에 虫(벌레 충)자가 더해진 風자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風(풍)은 (1)허황하여 믿음성이 없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 허풍 (2)바람을 막으려고 둘러 치는 천 (3)정신 작용, 근육 신축, 감각 등에 고장이 생긴 병. 전풍(顚風), 중풍(中風), 비풍(痺風) 따위 (4)원인을 알기 어려운 살갗의 질환(疾患). 두풍(頭風). 피풍(皮風). 아장풍(鵝掌風) 따위 등의 뜻으로 ①바람 ②가르침 ③풍속(風俗), 습속(習俗) ④경치(景致), 경관(景觀) ⑤모습 ⑥기질(氣質) ⑦병(病)의 이름, 감기(感氣), 중풍(中風: 뇌혈관의 장애로 인한 병) ⑧기세(氣勢: 기운차게 뻗치는 형세) ⑨절조(節操: 절개와 지조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⑩노래, 악곡(樂曲), 여러 나라 민요(民謠) ⑪뜻, 낌새 ⑫풍도(風度: 풍채와 태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⑬소식(消息), 풍문(風聞) ⑭멋대로, 꺼리낌 없이 ⑮바람을 쐬다 ⑯바람이 불다 ⑰풍간(諷諫)하다(완곡한 표현으로 잘못을 고치도록 말하다) ⑱감화시키다, 교육하다 ⑲외우다, 암송하다 ⑳유전(流轉)하다(이리저리 떠돌다), 떠돌다 ㉑암수가 서로 꾀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옛적부터 행하여 온 모든 생활에 관한 습관을 풍속(風俗), 바람의 세력을 풍력(風力), 음식의 고상한 맛을 풍미(風味), 기후와 토지의 상태를 풍토(風土), 바람이 부는 방향을 풍향(風向), 어떤 상황이나 형편이나 분위기 가운데에 있는 어느 곳의 모습을 풍경(風景),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을 풍파(風波), 속사를 떠나 풍치가 있고 멋들어지게 노는 일을 풍류(風流),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을 풍문(風聞), 뜨거운 바람을 열풍(熱風), 몹시 세게 부는 바람을 폭풍(暴風), 자기가 가는 방향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역풍(逆風), 첫여름에 부는 훈훈한 바람을 훈풍(薰風), 갑자기 거세게 일어나는 바람을 돌풍(突風), 미친 듯이 사납게 부는 바람을 광풍(狂風),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 또는 사물이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화(風前燈火),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바람에 불리면서 먹고 이슬을 맞으면서 잔다는 뜻으로 떠돌아다니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찬노숙(風餐露宿),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이미 돌아가셔서 효양할 길이 없어 한탄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목지비(風木之悲), 바람이 불어 우박이 이리 저리 흩어진다는 뜻으로 엉망으로 깨어져 흩어져 버림이나 사방으로 흩어짐을 이르는 말을 풍비박산(風飛雹散), 뚫어진 창과 헐린 담벼락이라는 뜻으로 무너져 가는 가난한 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창파벽(風窓破壁), 태평한 시대에는 나뭇가지가 흔들려 울릴 정도의 큰 바람도 불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상이 태평함을 이르는 말을 풍불명지(風不鳴枝),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라는 뜻으로 일정한 주의나 주장이 없이 그저 대세에 따라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풍타낭타(風打浪打), 구름과 용이 만나고 바람과 범이 만나듯이 밝은 임금과 어진 재상이 서로 만남을 이르는 말을 풍운지회(風雲之會),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친다는 뜻으로 매우 빠름을 이르는 말을 풍치전체(風馳電掣), 맑은 바람과 밝은 달 등의 자연을 즐기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풍월주인(風月主人),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진다는 뜻으로 들떠서 어수선한 것이 가라앉음을 이르는 말을 풍정낭식(風定浪息),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짐을 이르는 말을 풍류운산(風流雲散), 바람과 비가 순조롭다는 뜻으로 기후가 순조로워 곡식이 잘 됨 또는 천하가 태평함을 이르는 말을 풍조우순(風調雨順), 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풍사재하(風斯在下), 바람과 구름 고기와 물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의 아주 가까운 사이를 비유하는 말을 풍운어수(風雲魚水), 바람 앞의 티끌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풍전지진(風前之塵),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목욕한다는 뜻으로 외지에서 겪는 고생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즐우목(風櫛雨沐) 등에 쓰인다.
▶️ 燭(촛불 촉)은 ❶형성문자로 烛(촉)은 통자(通字), 烛(촉)은 간자(簡字), 爥(촉)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불화(火=灬; 불꽃)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손에 닿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蜀(촉)으로 이루어졌다. 손으로 드는 '등불'의 뜻이다. ❷형성문자로 燭(촉)자는 '촛불'이나 '등불', '비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燭(촉)자는 火(불 화)자와 蜀(나라이름 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蜀자는 누에고치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 역할만을 하고 있다. 燭(촉)자는 어두운 방 안을 밝히던 '초'나 '촛불'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燭(촉)은 (1)촉광(燭光)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촛불 ②등불 ③비추다 ④비치다 ⑤간파(看破)하다(속내를 꿰뚫어 알아차리다) ⑥꿰뚫어 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등불이나 촛불의 빛을 촉광(燭光), 초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을 촉장(燭匠), 초를 꽂아 놓는 기구를 촉대(燭臺), 초의 심지를 이르는 말을 촉심(燭心), 글 짓는 시간을 한정하기 위하여 불을 켠 초에 금을 긋는 일을 촉각(燭刻), 총명하여 사리에 밝음을 촉리(燭理),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를 화촉(樺燭), 촛불을 듦 또는 초에 불을 켬을 거촉(擧燭), 제사나 불공 따위의 의식 때에 피우는 향과 초를 향촉(香燭), 등불과 촛불을 이르는 말을 등촉(燈燭), 밝은 촛불이라는 말을 명촉(明燭), 꿀벌의 밀로 만든 불을 켜는 초를 황촉(黃燭), 밀랍으로 만든 초를 납촉(蠟燭), 연꽃 모양으로 만든 촛대를 연촉(蓮燭), 거의 다 타 꺼지려는 촛불을 잔촉(殘燭), 화살이 과녁에 닿았다가 튀어서 뒤로 물러남을 퇴촉(退燭),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깊이 헤아려 살핌을 통촉(洞燭),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촉(風前燈燭), 부인의 방에 촛불이 아름답게 비친다는 뜻으로 신랑이 신부의 방에서 첫날밤을 지내는 일로 결혼식날 밤 또는 혼례를 이르는 말을 동방화촉(洞房華燭), 화촉을 밝히는 의식이란 뜻으로 혼인식을 달리 일컫는 말을 화촉지전(華燭之典),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본 것만 가지고 태양에 대해 말한다는 뜻으로 남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으로 이렇다 저렇다 논하지 말라는 말을 구반문촉(毆槃捫燭), 어두운 거리에 밝은 등불이라는 뜻으로 삶의 가르침을 주는 책을 이르는 말을 암구명촉(暗衢明燭), 촛불을 들고 밤에 논다는 뜻으로 경치가 좋을즈음 낮에 놀던 흥이 미진해서 밤중까지 놂을 이르는 말을 병촉야유(秉燭夜遊),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간다는 뜻으로 시기에 늦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병촉야행(秉燭夜行) 등에 쓰인다.
▶️ 殘(잔인할 잔/남을 잔)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죽을사변(歹=歺; 뼈, 죽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戔(잔)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창 과(戈; 창, 무기)部는 날붙이, 戔(잔)은 날붙이로 물건을 해치는 일, 죽을사변(歹=歺; 뼈, 죽음)部는 맞아서 상한 뼈의 뜻으로, 殘(잔)은 심하게 해치는 일을 말한다. 또 대부분이 해쳐진 그 나머지 부분, 남다의 뜻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殘자는 '잔인하다'나 '해치다', '멸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殘자는 歹(뼈 알)자와 戔(해칠 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戔자는 '창'을 뜻하는 戈(창 과)자를 겹쳐 그린 것으로 '해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창을 겹쳐 그린 戔자와 부서진 뼈를 뜻하는 歹자가 결합한 殘자는 창으로 뼛조각을 들쑤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의 뼈를 창으로 다시 들쑤시고 있으니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殘자는 '잔인하다'라는 뜻 외에도 '흉악하다'나 '해치다', '멸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殘(잔)은 ①잔인(殘忍)하다, 흉악(凶惡)하다 ②해(害)치다 ③멸(滅)하다, 없애다 ④죽이다, 살해(殺害)하다 ⑤사납다 ⑥모자라다, 완전(完全)하지 못하다 ⑦남다 ⑧나머지 ⑨재앙(災殃) ⑩상처(傷處), 흠 ⑪삶은 고기 ⑫턱찌끼(먹고 남은 음식)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잔인하고 혹독함을 잔혹(殘酷),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짊을 잔인(殘忍), 나머지 금액을 잔액(殘額), 남아서 처져 있음을 잔류(殘留), 버려진 사해나 물건의 뼈대를 잔해(殘骸), 남아 있음을 잔존(殘存), 남아 있음을 잔재(殘在), 남아 있는 것을 잔여(殘餘), 금액이나 물품에서 일정한 액수나 양을 제한 나머지를 잔고(殘高), 쓰고 남은 돈이나 갚다가 못다 갚은 돈을 잔금(殘金), 남은 분량이나 남은 것을 잔량(殘量), 잔인하고 악독함을 잔악(殘惡), 쳐서 없애고 남은 도둑이나 악당의 무리를 잔당(殘黨), 소정 노동 시간 이외의 노동을 잔업(殘業), 아직 처리되지 않고 남은 사무를 잔무(殘務), 몹시 쇠하여 잔약함을 쇠잔(衰殘), 서로 다투고 싸움을 상잔(相殘), 허물어져서 못 쓰게 됨을 이잔(夷殘), 늙어서 기력이 없고 약함을 왕잔(尩殘), 몹시 지쳐 쇠약함을 비잔(憊殘), 살림살이가 곤궁하고 보잘것 없음을 궁잔(窮殘), 패하여 세력이 꺾인 나머지를 패잔(敗殘), 못 쓰게 되어 남아 있음을 폐잔(廢殘), 빼빼 말라 시들어 떨어짐을 조잔(凋殘), 마시다 남은 술과 다 식은 구운 고기라는 뜻으로 약소하고 보잘것없는 주안상으로 푸대접 받는 것을 이르는 말을 잔배냉적(殘杯冷炙), 몸에 치르고 난 병이 남아 있어 쇠약해진 사람을 이르는 말을 잔질지인(殘疾之人), 마시다 남은 술과 다 식은 구운 고기라는 뜻으로 약소하고 보잘것없는 주안상으로 푸대접 받는 것을 이르는 말을 잔배냉효(殘杯冷肴), 마시다 남은 술과 식은 국이라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잔배냉갱(殘杯冷羹), 떨어지고 빠지고 하여서 완전하지 못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단편잔간(短篇殘簡), 눌리어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짐을 일컫는 말을 압축소잔(壓縮銷殘), 부자나 형제 또는 같은 민족 간에 서로 싸움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잔(骨肉相殘), 동족끼리 서로 싸우고 죽임을 일컫는 말을 동족상잔(同族相殘), 같은 겨레끼리 서로 다투고 싸움을 일컫는 말을 민족상잔(民族相殘), 마른 버드나무와 시든 꽃이라는 뜻으로 용모와 안색이 쇠한 미인의 모습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패류잔화(敗柳殘花) 등에 쓰인다.
▶️ 年(해 년/연, 아첨할 녕/영)은 ❶형성문자로 禾(화)는 벼, 음(音)을 나타내는 人(인) 또는 千(천)은 많음을 나타낸다. 年(연)은 가을에 많은 수확이 있음, 익다, 나중에 벼가 자라는 기간에서 연월(年月)의 해란 뜻으로 쓰고, 익다의 뜻은 稔(임)으로 쓴다. ❷형성문자로 年자는 '해'나 '나이', '새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年자는 干(방패 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年자는 禾(벼 화)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年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자 위로 禾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볏단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볏단을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은 수확을 마쳤다는 뜻이다. 농부들에게 한 해의 마무리는 당연히 추수가 끝나는 시점일 것이다. 그래서 年자는 한해가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에서 '해'나 '새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年(년, 녕)은 ①해 ②나이 ③때, 시대(時代) ④새해, 신년 ⑤연령(年齡) ⑥잘 익은 오곡(五穀) ⑦콧마루 ⑧사격의 하나 ⑨사람의 이름 ⑩익다 ⑪오곡(五穀)이 잘 익다 그리고 ⓐ아첨하다(녕)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동안을 연간(年間), 한해의 마지막 때를 연말(年末), 새해의 첫머리를 연초(年初), 일년 단위로 정하여 지급하는 봉급을 연봉(年俸), 해의 첫머리를 연두(年頭), 십 년 단위로 햇수를 셀 때 쓰는 말을 연대(年代),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횟수로 나이의 높임말을 연세(年歲),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1년에 일정 기간씩 주는 유급 휴가를 연가(年暇), 지나가는 날이나 달이나 해를 연화(年華), 해마다 하게 되어 있는 관례를 연례(年例), 그 해의 안 또는 한 해 동안을 연중(年中), 한 해의 마지막 때를 연모(年暮), 지난해를 작년(昨年),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열 살 안팎의 어린 나이를 충년(沖年), 매해나 하나하나의 모든 해를 매년(每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년(餘年), 곡식이 잘 되고도 잘 여무는 일 또는 그런 해를 풍년(豐年),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사내 아이를 소년(少年), 평상시의 해를 예년(例年),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연말연시(年末年始), 한 해 동안 하루도 쉬는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연중무휴(年中無休), 풍년이 들어 백성이 즐거워 함을 이르는 말을 연풍민락(年豐民樂), 세월이 매우 오래다는 말을 연구월심(年久月深), 나이가 젊고 한창 성함을 일컫는 말을 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많거니와 덕도 아울러 갖춤을 일컫는 말을 연덕구존(年德俱存),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하청(百年河淸),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뜻으로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함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권불십년(權不十年), 백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약(百年佳約),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를 두고 이르는 말을 백년지객(百年之客),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온 힘을 쏟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뜻으로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김을 일컫는 말을 유취만년(遺臭萬年)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