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한영숙
기척도 없이 성스러운 의식이 한창이네
그리움을 앞질러 가려는지
한꺼번에 꽃이 피고 있네
닿지 못할 골목 어귀까지
꽃 소식 알리려고 나뭇잎이 나폴거리네
미끈한 속살 아래로
물감이 똑똑 떨어질 것 같은 나무
선혈이 낭자하도록 안간힘을 다하네
불티를 간직한 꽃들이
허공 위로 여름을 끌어올리면
나로부터 닫혀 있던 마음이 활짝 열리네
꽃 그림자조차 붉은 눈물이 따끔거리네
나도 뜨겁고, 너도 뜨거운 백일간!
시집 <허공 층층> 2022년 상상인
꽃구름 공터
한영숙
1. 공터
오래된 풍경이 자리를 비켜줍니다
오후의 한때가
텅 비워지고
잠시 봄이 들어왔다 나갑니다
2. 헛꿈
알 수 없는 공허는
밀담을 채색합니다
빛나간 계절이 덜컹거리고
어젯밤 굴절된 꿈이
혀끝에 매달립니다
3. 수선화
꽃빛이 고이는 곳은
깊고 고요합니다
햇살에 찔린 기억조차
차츰 유순해집니다
누군가와 말을 하는 지금
4. 안개
도시의 뾰족한 소음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흩어지는 다른 방향들이
한곳으로 합쳐지는
오늘의 기류 또는 군집
시집 <허공 층층> 2022년 상상인
한영숙 시인
문예마을 신인문학상
제4회 포랜컬쳐 전체 대상. 이어도문학상 금상 수상
광주 문인협회, 문예마을, 열린시학 회원
동천문학 임원. 시꽃피다 특별회원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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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외 1편) / 한영숙
박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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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
22.10.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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