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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 춤은 잘 못추지?”
“그래. 내 발 밟을 뻔 한 적이 열 번은 넘을 꺼다.”
에스페로린은 알까? 자신과 내가 춤을 출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한 치밀한 젊은이가 바로
눈 앞의 이 친구라는 것을.
“네가 이해해. 류스. 로린은 많이 변했어. 오랜 혼수 상태로 인한 휴유증만이 원인은 아닌 것 같아 보일 만큼 너무 많이 달라졌어.”
“그래서. 넌 에스페로린의 달라진 모습이 어떤데?”
“좋아. 그 애는 좋은 쪽으로 변했어.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단점은?”
짜증이 났었다. 오랫동안 파트너 없이 소멸의 길을 걸어와서 외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그런데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힌이 파트너를 구했다며 이계인을 끌고 와 버린 것이었다. 레이든 공녀의 몸에 들어가버린 그 이계인은… 애송이였다. 마법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정신력도 별로 강해보이진 않았다. 시종일관 장난 치는 듯한 사힌의 태도에 정말 짜증이 났었다. 이런 파트너 따위, 짐 이상의 가치는 눈 씻고 찾아 볼래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었던 몇가지 성격적인 특성이 나를 꽤나 흥미롭게 했다. 그래서 그냥 아무말 없이 팀을 이루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녀도 처음엔 거센 저항을 하다가 친구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흘리며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그 순간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거세게 들었다. 원래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대륙 제일의 미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절제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애송이가 내가 싫다는 기색을 보여서였겠지. 그녀가 간단한 목례를 하고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녀를 ‘짐’ 이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그녀의 새로운 면을 보기 전까지는 나는 그녀를 애송이라고 생각했다.
“아..... 이건 나중에 말해줄게.”
‘이제 바뀐 로린은 널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말야.... 로린과 네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물론 넌 예전의 로린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파앗
“젠장!!”
욕설을 내뱉었다. 이 근처 어디에선가 카오스의 구슬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해 위치를 더듬으니 대략의 위치가 파악되었다. 여기서 꽤 많이 떨어진 작은 호숫가였다. 눈치 빠른 시안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 금방 알아채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엇을 하고 있던 중이건 간에 나는 항상 이런식으로 일어나서 구슬을 인도해야 하니까 항상 긴장해야 했다.. 그런 나를 시안은 안타까워 했다. 항상 목숨 걸며 싸워서 인도해야 하는 초월자의 임무의 중압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일반인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자기 여동생이 초월자가 되어버렸을 때도 그는 분명히 괴로워 했다.
“다치지 말고 온전히 돌아와라. 왠만하면 로린......... 알지?”
“접수 완료. 그럼 간다.”
내게 에스페로린을 끼어들게 하지 말아달라는 그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초월자의 가공할 만한 스피드는 나를 단 3분만에 그 곳에 도착하게 해주었다. 그 때 에스페로린은 그 커다란 구슬 조각을 향해 꽤나 강력한 주문을 시전하고는 곧장 정신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탐스러운 적발에 잔뜩 묻어 있는 그녀의 피와 손으로 막고 있긴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이 피가 콸콸 쏟아나오는 옆구리를 보자 나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쓰러지는 그녀를 받아서 옆에 조심스럽게 눕혀놓은 뒤, 구슬을 처리했다. 그녀가 주문을 강력하게 걸어놓았는지 처리하는 것이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단칼에 소멸의 길로 인도한 후 그녀를 안아들고 서둘러 에르헤스로 향했다. 시안에게는 아무래도 나중에 알려야 겠다.
나에게 묻은 그녀의 피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놀라던 내 궁인 에르헤스의 시녀들에게 그녀의 치료를 위해 최고위 신관을 데려오라고 명한 뒤 나는 잠시 그녀를 들여다 보았다. 늘 빛나던 탐스러운 적발엔 피가 잔뜩 굳어있었고, 항상 하얗고 투명했지만 생기가 돌고 있었던 두 뺨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총기가 가득했던 영롱한 두 눈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녀의 찢어진 드레스엔 피가 아직도 나오고 있었다.
초월자가 생긴 이래로, 늘 초월자의 첫 임무에서 그들의 반이 죽어나갔다. 경험 부족으로 인한 상황 대처 능력 부족. 그들의 사망 원인이었다. 눈앞의 이 당돌한 아가씨도 조금만 늦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분명 마법 능력은 매우 매우 우수하지만 너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의지력을 소모시켰다. 마치 생명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 처럼. 나를 불렀다면, 혹시나 위험할 순간이 있을까 해서 가르쳐 준 전음을 사용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 멀쩡히 하하호호 웃으며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왜지…? ‘자기 과신’ 때문이었나, 아니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엔 자존심이 너무 강했던 건가? 알 수 없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까지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상대는 답해주기는 커녕 힌트도 주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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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아주 많이 화가 난다.
“으윽… 허리야”
그 때 그 괴상한 빛에 마법을 걸다가 의지력을 너무 많이 썼나? 휘청이던 몸이 기어코 쓰러져 버려서 정신을 잃고 이제야 깨어났다. 참, 그 때 받쳐 준 사람은 1황자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익숙한 내 방에 돌아와 있었던 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의지력이 충만해 있었고 치유 마법을 통해 허리의 통증을 모두 없앳다.
“치유”
내 강력한 마법에 옆구리에 나있던 상처까지 말끔하게 없어졌다. 나는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며 드레스룸에서 아무거나 옷을 집어 갈아입고는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었다.
“아가씨. 깨어나셨어요? 옆구리는 어떠세요? 치료하셨어요?”
“에구............ 하나씩 물어봐- 금방 치유 마법을 써서 이젠 하나도 안아퍼. 오히려 기운이 펄펄 나는걸-”
“잘됬네요. 아가씨가 3일동안이나 그러고 계셔서 많이 걱정했어요. 배고프시죠? 내려가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주방장에게 말해놓겠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시녀장 히세가 상태를 물어보길래 나는 사실대로 말했고, 히세도 대단히 기뻐했다. 배고픈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금방 음식을 준비하겠다는 히세의 신속한 행동에 나는 활짝 웃으며 감사의 표현을 했다. 조금 뒤 식사가 나왔고 열심히 먹는 도중 엄마가 돌아오셨다.
“아, 엄마. 오셨어요?”
“로린-. 너 계속 이 엄마 걱정 시킬 꺼니?”
“켁... 조심할께요. 엄마.”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아주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안아주셨다. 옆에 서 계시던 아빠도 엄마의 말씀에 동의한 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셨다. 부모님은 쇼핑을 다녀 오시던 길이었는지 산 것을 시녀장 히세를 불러 맡기고는 방에 들어가셨다. 나도 먹는 것을 계속 하여 먹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배가 부를 때 까지 먹은 후 나는 다시 방에 가려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 때 오빠가 날 발견하고 위에서 뛰어내려 왔다. 그러고는 나를 데리고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오빠는 나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도 앉았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는 오빠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너, 왜 류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지?”
오빠는 약간 화가 나 있는 듯 해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했다. 나는 조금 주저하다가 오빠에게 말했다.
“그저......... 그 상황에 당황했을 뿐이야. 오빠. 그래서 내가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어.”
“네가 류스를 동료로 인정하기 싫은 것은 아니고?”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찌르는 시안 오빠의 말에 뜨끔한 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느꼈다. 오히려 제발 누군가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오빠. 난 류스티안 전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었어. 하지만 이젠 그냥 그저 그래. 솔직히 말해서 오빠 말대로 아직은 서먹서먹해서 동료라는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다구. 하지만 그 상황에선 오빠가 내 동료였다고 해도 나는 오빠를 부르지 않았을 꺼야. 그럴 생각을 못했으니까. 오히려 누군가가 와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걸.”
“................................................................로린은 바보구나.”
“헤에........ 오빠 화 풀린 거야?”
정말로 나는 그를 부를 생각을 못했다. 머릿속에선 내가 버티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랐는데 실제로 그와 같이 싸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무모한 자기 과신이었나...... 변명같지만 그 순간 만큼은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눈 앞의 빛무리, 그리고 내가 죽인 그 사람 밖에 기억나지 않았었다.
“오빠. 나 아무래도 황궁엘 좀 다녀올게. 마차말고 그냥 이동해서 갔다올게. 에르헤스 궁이라면 가본 적 있으니까.”
“그렇게 해.”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 드레스 룸 문을 거칠게 열고 괜찮은 활동복들 중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하나 뽑아들어 갈아입고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었다. 골라든 활동복은 검은색의 꽤 짧은 원피스였다. 간편하면서도 기품있어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좋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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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주일 만입니다-
역시 제 글은 아주 뒤로 밀려나 있군요.......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오늘은 날씨가 괜찮네요♡ 다음편 올리겠습니다아-
첫댓글 언제 봐도 잼있어요~! 근대... 점점 내용이 줄어드는 듯(아닌가?)
그런가요.......!? 몰랐습니다... 내용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됬나보네요 ㅜㅜ
…. 잘 읽고 가요‥, ^-^,
ㅋㅋ재밌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