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문 정 희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때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탱고의 시
유랑의 악보 속에 다리 하나 숨기고 붉은 죄 휘감고 치솟다가 풀고 풀어 주고 다시 뜨거이 휘감는다 가벼이 눕다 하르르! 피어나라! 불새 당신 입술 과일도 아닌데 파먹고 싶어 가쁜 숨결 맨발로 소나기 비통하게 땅을 두드리는 밤 당신은 탱고 슬픈 새의 춤 집시의 피가 속삭인다 당신은 카스카벨* 은방울 심장을 통통 두드린다 * cascabel: 스페인어로 방울, 맑고 쾌활한 사람
-〈열린시학 여름호〉특집 -
봄 회의
이유도 없이 가슴 미어지는 이 슬픔을 들어다가 오는 봄 곁에나 가벼이 앉히고 싶다 암소가 보리밭 너머 먼 산을 향해 일어서고 추위를 견딘 소나무가 청년의 어깨처럼 듬직해지는 봄날, 나의 슬픔은 초록의 블라우스를 입고 새로 핀 꽃들 속에 앉아 민주적으로 봄 회의나 했으면 좋겠다 오늘 회의 주제는 뜬구름 같은 사랑! 그런 주제 말고 푸른 눈썹을 달고 흔들리는 저 나무들처럼 말보다 몸으로 실천하자는 주제로 정하리 봄과 슬픔을 투시하고 구체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온몸으로 발언하리
- 시집〈작가의 사랑〉민음사 -
작가의 사랑 - 예스24
다시 여성의 목소리로, 탕진되고 불온하여 절정에 이른 문정희의 사랑 문정희 시인의 신작 시집 『작가의 사랑』이 민음의 시 245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지구 위를 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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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집 〈작가의 사랑〉 민음사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