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쭙잖은 입발림 그만” 김제동式 화술의 몰락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입력 2021.08.27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cafe_2040/2021/08/27/NBNGA4ER2NHVHCCNYGDRQPM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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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30]
공기업 준비생 취업 고민 상담에
청년들 “김제동이 뭘 아나” 반발
유독한 위로에 오랜 학습 효과
청년은 깨어났는데, 권력은 아직
방송인 김제동(47)씨는 억울할 것이다. 차갑게 돌아선 민심이 야속하고, 갑자기 자신의 혓바닥에 가혹해진 잣대가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의 세 치 혀가 공략하던 주요 부위는 청년층이었다. 전(前) 정권의 실정을 안마 시술 침대 삼아, 직장도 소득도 변변찮은 영혼들에게 “괜찮다, 네 탓 아니다”라고 토닥이던 구강(口腔) 마사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과 쇼에 제법 수익을 가져다 줬고, 가난한 지자체로 하여금 건당 1500만원 안팎의 고액 강연료를 책정케 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청춘의 멘토”로 그를 추앙하던 청년들은 간 데 없다.
말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이고 화술도 유행을 탄다. 듣기 좋은 말, 편 들어주는 말은 위로(慰勞)의 화장발로 불티나게 팔리다가도 흥이 깨지는 순간부터 비위 상하는 ‘쌩얼’을 드러낸다. 지난주 김씨는 공기업 취업 준비생 1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고민 상담 행사를 진행하려다 “김제동이 취업에 대해 뭘 아느냐”는 거센 비아냥에 직면했다. “취업 준비생보다 스펙에 관한 노력도 경험도 적은 방송인에게 왜 진로 조언을 받아야 하느냐” “어쭙잖은 입발림 소리를 위로라고 할 거면 그냥 하지 말라”는 성토에 가까운 인터넷 댓글이 빗발쳤다. 특히 “’목수의 망치와 판사의 망치가 동등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했던 김제동씨도 다른 알바생처럼 최저 시급 받고 강의하느냐”는 일침은 뼈아플 것이었다. 립 서비스로 반짝이던 입술에 주먹 세례가 쏟아졌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2016년 한 종합편성채널 방송에서 취업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 인터넷 밈(meme)으로 자리잡았다.
감동의 수준이 그 사회 수준을 말해준다. 여러 학습을 통해, 사람들은 이른바 토크쇼용(用) 언어에 쉬이 경련하는 대신 의심할 수 있게 됐다. 그 말발의 목적이 무엇인지, 언행일치와 내로남불의 척도를 들이댈 수 있게 됐다. 이는 수차례 속아 가짜 약을 복용해오던 환자가 호전되지 않는 자신의 야윈 몸을 바라보며 다짐하는 자가면역 치료에 가깝다. 유명 래퍼 스윙스(35)씨가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큰 화제였다. “어린 친구들에게 ‘세상이 잘못했고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대우받아야 해’라는 식으로 강연하던 사람 보면서 토할 뻔했다”며 “어떻게 자기만 살겠다고 애들 병○ 만드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까”라는 내용이었다. 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많은 이가 김제동씨를 향한 저격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우리가 다스려야 할 것은 증오다. 위로의 엔터테인먼트 역시 대개 증오에 기반한다. 강자(적군)와 약자(아군)를 나누고, 약자의 고통이 강자의 전횡 탓이라는 이분법 위에서 편파적 위로는 쉽게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명확한 적(敵)이 있고, 그에 대한 공격이 위로가 되는 순간 그 말의 정확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많이 번 사람들이 자기들 능력이 좋아서 많이 벌었습니까? 아니잖아요!”와 같은 화법, 누군가를 원망하게 하는 따뜻한 말. 증오는 사람을 아둔하게 한다. 그렇기에 김제동씨를 미워하기보다 가련히 여기는 편이 현명하다.
‘포스트 김제동’은 좌우를 막론하고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특정 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이용해 몇 마디 정의로운 말로 자신의 세(勢)를 불리는 자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듯 “외견상 지혜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지혜로 돈을 버는” 궤변론자들. 정확성보다 정파성에 몰두하는 화술이 세상을 위태롭게 한다. 유독한 위로를 검증하고, 맹렬히 짖어 혼곤해진 사람들을 깨우는 감시견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지금의 권력은 언론 악법까지 만들어가며 이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청년들은 깨어난 지 오래인데, 여전히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