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파코미오 아빠스 기념일(부활 제6주간 금요일)
1독서: 사도 18,9-18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복음: 요한 16,20-23ㄱ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제목: 두려움을 넘어 말씀으로 맺어지는 백성
1. 보이지 않는 손길로 엮인 공동체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선교 초기, 거센 반대와 실패의 예감 속에서 깊은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환시 중에 나타나 "두려워하지 마라.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사도 18,9-10)라고 위로하십니다. 이 말씀은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의 탄생은 인간의 수고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당신의 백성을 예비하시고 구성해 놓으신 뒤 사도의 선포를 통해 그 현존을 세상에 드러내실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공동체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맺어주신 신비의 결실입니다.
2. 수도 생활과 세례 서약의 완성
이러한 공동체의 신비는 4세기 이집트 사막에서 성 파코미오를 통해 더욱 구체적인 형체를 갖추었습니다. 그는 고립된 독거 수도 생활의 한계를 넘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애를 본뜬 '코이노니아' 즉 친교의 공동체를 창시하였습니다.
파코미오 성인에게 수도 생활이란 특별한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례 때 약속했던 서약, 즉 하느님만을 섬기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일상의 공동 생활 속에서 온전히 실천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위해 자신의 고집과 이기심을 내어놓는 '내면적 포기'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뿌리였습니다.
3. 말씀의 숨결로 빚어내는 친교
파코미오 공동체가 진정한 친교의 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매일의 일과를 가득 채운 성경 암송에 있었습니다. 수도자들은 노동 중에도, 길을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입술에 담고 마음으로 되새기는 '거룩한 독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이 마음 안에 머물 때, 곁에 있는 형제는 더 이상 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인의 얼굴 속에 숨겨진 하느님의 백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우리 곁에 숨겨진 하느님의 백성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본당과 수도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공동체 식구들의 결점이 보이고 관계의 어려움으로 두려움이 앞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 백성이 여기 많다."
우리는 매일 만나는 이들이 하느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소중한 백성임을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독서를 통해 내면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그 말씀의 힘으로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정성껏 섬깁시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삶이 세례의 서약을 완성하는 살아있는 전례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St. Joseph`s Monastery
최 빠코미오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