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을형의 법과 정의 그리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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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어디까지 왜곡되고 있나(68) 반도사관자의 허구 역사, 이제 그만하라!
작성자참한역사신문 작성일 24-05-15 00:27 조회 154 댓글 0
우리 역사 어디까지 왜곡되고 있나!(68)
반도사관자의 허구 역사, 이제 그만하라!
이 을형
법학박사 / 숭실대 법대초대 학장 / (사)한민족학세계화본부 총재
김유신과 의자왕은 반도가 아닌 대륙사, 왜 숨기는가!
지나(支那)의 한서(漢書)에는 반도(半島)에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 등 삼국시대 나라의 기록(記錄)은 단 하나도 없다. 또한 진(晋) 때의 삼국지(三國志)나 송(宋) 때의 후한서(後漢書)에서는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동옥저(東沃沮), 읍루(挹婁), 예(濊), 한(韓), 왜(倭)의 위치가 기록(記錄)되어 있다.
즉, 제일(第一) 북(北)쪽에 부여(夫餘)가 있고, 고구려(高句麗) 남쪽에 예(濊)가 있고, 예(濊)의 남(南)쪽에 한(韓)이 있고, 한(韓)의 남쪽에 왜(倭)가 있으며, 부여(夫餘)의 서쪽에 선비(鮮卑)가 있고, 동쪽에는 읍루(挹婁)가 있고, 고구려(高句麗)의 동쪽에는 옥저(沃沮)가 있으며, 예(濊)의 서쪽에는 낙랑군(樂浪郡)이 있다고 했다.
동이 각국(東夷 各國)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명(地名)으로 제일 남쪽의 회계(會稽), 담이(儋耳, 南越), 이주(夷洲, 臺灣)의 왜(倭)가 있고, 한(韓)에서는 비단과 목화를 사용하였고, 예(濊)는 연(燕(山西省), 제(齊, 山東省) 사이의 창해(滄海)지역에 있다. 고구려는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가까이에 있으며, 옥저(沃沮)는 해주(海州)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동이 각국(東夷 各國)이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요하(遼河)의 서쪽까지 기록(記錄)하고 있지, 반도(半島)에 국가(國家)가 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자들은 모두 반도에 있는 것으로 했다. 이는 날조(捏造)로 절대(絶對)로 허구(虛構)로 조작된 것이다.
반도(半島)에 국가(國家)가 있다는 기록(記錄)은, 고구려(高句麗) 별도 한성(別都 漢城, 現平壤), 자칭 무강왕(無康王, 現 益山)이 있을 뿐이다. 원(元)나라 때 쓰여진 요사(遼史) 일부에 만주(滿洲)와 반도의 신라, 간신라(干新羅)를 기록(記錄)했을 뿐이고, 9세기 이전에는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요하(遼河)까지 기록(記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역사를 연구하지 않는 자들은 9세기 이전 신라(新羅), 백제(百濟)가 반도(半島)에 있었다고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기에 이를 바로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역사는 반도 역사가 아니다. 대륙 역사(大陸 歷史)임을 지나(支那)25사 동이(東夷)기록에서 신라(新羅) 김유신(金庾信)장군과 의장왕(義慈王)이 대륙(大陸)에 있었음은 식민사관자 이외는 세계 석학들도 인정하고 있는데도 시정이 아니됨으로, 오늘 다시 분명(分明)히 밝히려 하는 것이다.
지나25사 동이 기록에서 본 우리 역사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한국(韓國)사람이 아닌양, 일본(日本)이 날조(捏造)한 역사(歷史)만을 조국 광복이 된 후에도 오늘날 까지도 말하고 있는데, 참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지나(支那)25사 동이 기록(東夷記錄)에서 본 우리 역사는 말할 것도 없이 대륙사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사서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백제본기(百濟本紀), 신라본기(新羅本紀),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환단고기(桓檀古記) 등의 기록(記錄)들도 모두 대륙에 있어서 대륙사(大陸史)임에도 이를 반도(半島)에 가져다 놓고 반도 역사로 꾸미고 있으나, 모두 허구이다.
또한 KBS를 비롯해서 방송 매체(放送 媒體)에서 방영(放映)하는 사극(史劇)들도 하나같이 일제(日帝)가 조작(造作)한 내용(內容)으로 방영(放映)이 지속(持續)되고 있는 것은, 위대(偉大)하고 찬란(燦爛)한 우리 역사(歷史)를 망가트리는 행위이다. 역사(歷史)는 진실(眞實)만이 역사(歷史)이기에 조작(造作)하고 날조(捏造)한 것은 역사(歷史)가 아니고 잘못된 위사(僞史)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나(支那)25사(史) 동이 기록(東夷 記錄)에서 살펴보면 이미 수차례 말했으나 다시 살펴보면, 왜(倭)는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 이전부터 양자강(揚子江) 이남(以南)에 있었던 것이 확인(確認) 된다.
인물(人物)로서 삼국지(三國志)의 소강(小康), 사기(史記)의 비미호(卑彌呼)와 노자(老子), 후한서(後漢書)의 서복(徐福)이 후한서(後漢書) 이전(以前)에 이미 기록(記錄)되어 있는 것이다.
지명(地名)으로는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회계(會稽), 담이(儋耳, 南越), 주애(朱崖), 전주(전洲), 회계동야현(會稽東冶縣) 등이 기록(記錄)되어 있다. 이곳의 특징(特徵)은 문신(文身)을 하였고, 잠상(蠶桑, 비단)과 면(綿, 목화)를 사용(使用)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이후 남사(南史) 당태종 까지의 기록(記錄)도 같다.
국가별로 본 당시 정착지(定着地)들
한(韓), 마한(馬韓), 변한(弁韓)은 서화(西華) 동쪽에 있었다. 한(韓)은 50여국(餘國)이 있는데, 그중 백제국(伯濟國)은 구노국(狗盧國), 비미(卑(卑彌國), 사노국(駟盧國)은 백제(百濟), 왜(倭), 신라(新羅)로 발전(發展)되었다. 양서(粱書)에서 당서(唐書)까지 신라(新羅), 백제(百濟)는 지금의 하북성(河北省)의 석문(石門, 帶方), 산서성(山西省)의 진평이군(晋平二郡), 하남성(河南省)의 항성(項城)과 강서성(江西省)의 동쪽에 덕안(德安)이 있다고 했다.
예(濊)는 하북성(河北省)에 있었다. 예군(濊君) 남여(南閭)는 28만구(萬口)를 들어 항복하니,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이라 하였다.(漢書6, 後漢書85)
팽오를 시켜 조선을 매수하고 창해(滄海)에 군(郡)을 설치하니, 산서성(山西省)의 연(燕 (사기(史記)69)), 산동성(山東省)의 제(齊) 사이에서 소요(騷擾)가 일어났다 라고 했다.(사기(史記)30)
고구려(高句麗)는 서기 247년 이전에 하북성(河北省) 서안평(西安平, 贊皇)까지 진출(進出)하였고, 5세기(世紀) 이전(以前), 안휘성(安徽省) 섭라(涉羅, 歙)까지 진출(進出)하였다고 하였다. 즉 49년(年)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평정하였다고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안휘성(安徽省) 섭라(涉羅, 歙)을 504년 이전(以前)에 백제(百濟)에 빼았겼다 라고 하였다. (魏書, 後漢書)
동옥저(東沃沮)는 요하(遼河) 서쪽 해주지역(海州地域)이다. 해주(海州)는 본래(本來) 옥저 국지(沃沮 國地)이다.(三國志, 明志 參考)
위에서 보듯 지나(支那)25사(史)에 의한 동이 기록(東夷 記錄)들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기록하고 있는데,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시대 백제(百濟), 신라(新羅), 왜(倭)가 서화(西華) 동쪽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이런데도 신라(新羅), 백제(百濟)가 반도(半島)에 있는 것 같이 날조(捏造)해서 왜곡하는 것은 천벌(天罰)을 받을 일이다.
조상(祖上)과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을 폄하(貶下)하는 행위(行爲)는 온 국민 이름으로 규탄하고 당장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48面~85面,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 고대사' 347面~384面 參考 引用하다.)
글을 맺으며
필자는 역사를 연구하면서 우리 역사가 뒤엎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환국과 배달국시대는 우리가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삼국시대도 우리가 중원대륙(中原大陸)을 지배한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위대한 우리 역사를 아는데, 신문과 잡지에 나오는 역사의 글들은 거의가 왜곡(歪曲)되고 진실(眞實)이 아님에서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에 환멸(幻滅)을 금(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부(敎育部)는 도대체 역사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기에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검토도 않음에서 재직시 이런 교육부는 달라지지 않으면 없는 것이 낳은 것이 아닌가! 라고 울분을 토로 한 적이 있다. 오늘날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탄소 측정을 하여서도 가려졌던 의문(疑問)들이 모두 밝혀지는 세상(世上)이기에 이제는 냉정히 우리 역사를 제대로 연구(硏究)하고 국민을 깨우쳐야 한다.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세계의 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시원국(始源國)이고, 우리나라는 구석기 시대를 거치지 않은 선진국임을 말하는데, 우리는 일제시대의 왜곡 역사만 말하니, 어찌 국민이 역사를 알 수 있겠는가? 우리 역사는 대륙사이고, 김유신(金庾信) 장군과 의자왕(義慈王)은 반도(半島)가 아닌 대륙에서 활약한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김유신 장군이 14번 싸운 곳이 대륙에 있고 의자왕이 패한 곳이 대륙의 웅진인 것이다. 백제가 망한 후 흑치상지(黑齒常之) 장군은 백제의 200성을 모두 회복하였는데, 반도에 백제 궁궐이나 백제성 하나라도 있는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기 바라는 것이다.
以上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 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地圖)로 보는 우리나라 역사(東夷疆域圖)’. 홍혜수, 단군朝鮮은 역사였다.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 고대사’.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없었다.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 열차’. 개정판‘ 한국인, 자부심 더알씨랑’ 개정판‘한국인, 자부심 더물이랑’ 개정판‘한국인, 자부심 더코어랑’ 개정판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 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유엔 부찐 저 [고조선].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정희철, ‘중국은 없다.’‘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 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 기마민족과 왜(倭)’.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日本史と世界史の關係が一目でつかめる[絶對中學社會歷史]‘, 李民樹, '朝鮮傳‘. 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