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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자존감] "나는 왜?" 질문의 함정
입력 : 2017.09.20 17:12:41 수정 :2017.09.20 17:33:44
전공의 시절 교수님께서는 자주 "내담자들에게 `왜 우울해요?` `왜 슬픈 거죠?` 하고 물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왜?"라는 말은 얼핏 원인을 파악하려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비난을 담고 있기 때문이란다. 예컨대 직원이 지각을 했을 때 상사는 "왜 늦었어?"라고 묻는다. 이때 당사자가 지하철이 고장 났다거나 몸이 안 좋아서라고 사실을 말해도 결국 "핑계 대지 마!"라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
질문형 문장이지만 사실 행동에 대한 지적이자 "앞으로 지각하지 마"라는 경고가 숨어 있다. 이처럼 `왜?`라는 단어는 비난과 책망을 내포하기 때문에 사용할 때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왜?"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 자기비난이 되기 쉽다. "남들은 잘 적응하는데 난 왜 이리 힘들지?"라는 질문은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선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기분만 나빠진다.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으면 그를 원망하게 되고 자신에게서 찾으면 성격이나 능력 탓을 하게 돼 자괴감이 커지고, 원인을 못 찾으면 혼란만 가중된다. 원인을 분석하려는 좋은 의도가 `자존감 셀프 공격`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는 셈이다.
하지만 막상 이 습관을 버리라고 하면 선뜻 내켜 하지 않는다. 살면서 하는 나쁜 경험의 원인을 파악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프로젝트가 실패하거나, 인간 관계에 갈등이 생길 때,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어떤 책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라고 한다. 어떤 책에서는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고 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냐는 불만이 터져 나올 법도 하다.
정답은 "자기비난은 끊고, 복기(復碁)를 하라"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매일 드라마가 펼쳐진다. 바둑을 끝낸 후 조용히 한 수 한 수 되짚어 보듯이 우리의 삶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부로 치면 복습이나 오답노트 같은 것이다. 본인이 틀린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따로 정리를 해두어야 다음에 같은 문제가 나왔을 때 틀릴 확률이 줄어든다.
문제는 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부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약점, 실수, 고쳐야 할 점들을 돌이켜 본다는 건 꽤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꾸어야 할 점들이 명확해지고 구체화되면 변해야 한다는 새로운 스트레스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진짜 문제 앞에서는 눈을 돌리거나 "난 원래 이런 놈이야.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게 낫겠어"라며 자조 섞인 비난을 하면서 현상 유지 쪽을 택한다. 복기는 잘하면 깨달음과 성장을 안겨 주지만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의 문제점을 직면하는 데서 오는 아픔을 위로해주고, 힐링을 시켜줄 무언가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지혜로운 `복기 노하우`를 갖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산책로를 걷는 사람도 있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명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스트레스나 불면에 시달리면서 하는 복기는 `자기비난`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신의 문제점이나 실패의 원인을 직면할 때는 내면을 회복시켜줄 풍경부터 확보해야 한다.
찬바람이 불면서 내담자가 늘고 있다. 여름이 무기력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아름답지만 감상에 젖는 시간이다. 바야흐로 "내가 요즘 왜 이럴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계절이 된 것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자신을 보호하면서 해야 한다. 부디 "나는 왜?"라고 자주 물음으로써 섣부른 원인 분석이나 자기비난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종현이 만났던 의사가 왜 우울하냐고 물어본것같아서 너무 안타까워서 글 올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서는 왜?라는 질문 잊고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