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주는 원래 도수가 높은 술이라 북쪽지방에서 즐기던 술이었다. 소주는 몽고군을 통하여 전래되었다고 한다. 몽고군은 추위를 막고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자극제로서 아락주를 가죽 주머니에 차고 다니면서 마셨는데, 몽고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안동을 전초기지로 삼았을 때 아락주를 몽고군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만든 술이 안동소주의 원조라 일컬어진다. 과거 고려소주의 본고장인 개성 뿐만 아니라 삼별초의 항전으로 元나라의 전진기지가 있었던 진도(*홍주)와 제주도 역시 소주의 고장으로 이름난 것은 같은 이유라고 한다.
술을 증류하여 마시는 법은 아랍 페르시아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인도 중국 유럽 등으로 전파되었으며, 몽고의 유라시아 대륙 정복으로 우리나라까지 전래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소주를 포함한 증류주를 아랍어로 아라끄(아락), 인도에서는 알락, 옛 중국에서는 아랄길주, 몽고말로 아리킬, 만주어로 알키, 평안북도에서는 아랑주, 개성에서는 아락주라 불렀다 하는데, 다 알콜의 어원과 관련 있는 말이다.
소주(燒酒)는 독하다고 화주(火酒), 소주고리에서 증류된 술이 이슬처럼 맺혀 방울방울 떨어진다 하여 노주(露酒)라고도 불렀다. 진로(眞露)의 ‘로(露)’도 거기서 따온 것으로 안다.
증류주를 내리는 일은 비용이 만만찮아 소주는 귀한 술로 주로 양반계층이 마셨고, 조선 후기 들어 일반 서민에게까지 전파되었으며, 그 부작용이 심하여 다산선생은 전국의 소주고리를 거두어 식량난 해결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고 선생다운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지금은 당시의 증류주와 관계없는 희석식 소주이므로 소주회사에서 표기하는 소주(燒酎)는 맞지 않다. 주(酎)는 여러 번 빚어 진해진 술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불경기에는 소주가 많이 팔린다는데 불경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그런지 근래 3년 연속 소주 판매량이 감소하다가 과일 소주의 출시로 판매량이 반짝 늘어났고, 이제 다시 감소하고 있다 한다. 도수를 낮추는 바람에 더 많이 팔리지 싶은데,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내 주변만 해도 다들 음주량이 줄었고, 젊은 사람들도 소주 덜 마시는 것 같더라. 소주 즐기는 사람으로서 좀 더 분발해야 하나?
2.
그런데 경주지역에서 소주고리 모양의 신라시대 토기가 발굴된 적이 있다 한다. 그렇다면 이미 고려시대 이전에 아랍과의 교역으로 직접 소주가 전래되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뭐시라! 신라시대에 아랍과의 교역이 있었다고라?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 괘릉(掛陵)의 무인석은 서역인(구체적으로는 이란인), 문인석(*사실은 이것도 무인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은 중앙아시아인(구체적으로는 위구르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8세기 신라 진골의 복식을 한 서역인 흙인형이 출토된 적도 있었다.
<경주 괘릉의 무인석 문인석 / 사진출처:두산백과>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출토된 서역인 토용(土俑)>
이러한 조각상들은 너무도 섬세하여 풍문으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가 없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왕의 수호석(守護石)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세웠을 리는 없을 것이니, 당시 정착하여 벼슬을 제수받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이 벼슬을? 그 당시 진골복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그런 복장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상류층으로 흡수된 서역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도 있다.
《삼국사기》 「헌강왕 5년 3월, 왕은 동쪽지방의 주・군(州郡)에 행차하였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4인이 왕 앞에 나타나 노래하고 춤을 추었는데, 그 용모가 해괴하고 의복이 괴이하여 사람들이 ‘산과 바다의 정령(精靈)’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헌강왕 때, 어느 날 대왕이 개운포(*울산)에 나가 놀다가 돌아오려고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었다. 왕이 괴상히 여겨 좌우에 물었더니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이는 동해 용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하여 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왕은 관리에게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짓도록 하였다. 그러자 구름이 열리고 안개가 흩어졌으므로 그곳을 개운포(開雲浦)라 하였다. 동해 용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임금의 덕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중의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들어와 왕을 보좌하였는데 이름을 처용(處容)이라고 하였다.(이하생략)」
대체로 위 두 기사는 동일한 사실의 다른 표현으로 간주되며, 처용의 주술적 효과로 볼 때 중국인이나 왜인과는 전혀 다른 이국인으로 생각된다.
9~10C 아랍인들의 책에도 신라가 등장하며 아랍인들이 신라에 정착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그들이 그린 당시의 세계지도에도 신라가 있었고.
중국(唐)을 통해서든 아니면 직접적이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신라와 아랍의 교류가 있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에도 그런 교류를 인정하는 것에 학계는 매우 인색하다. 당시의 사람이 살아와서 증언해야 믿을랑가.
지나간 사실의 나열이 역사는 아니다. 어떻게 꿰느냐가 역사다. 거기엔 사람의 시선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객관적 역사란 상상일 뿐, 있는 그대로의 역사는 있을 수가 없다. 보는대로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다양한 시각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풍성하다는 얘기다. 그걸 인정 못하고 또 못 견뎌서 다른 사람의 시각까지도 독점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발상인가? 더군다나 하라는 일은 않고.. 지나고 나면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막으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부질없는 한때의 욕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련만….
음~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소주 탓이다.
3.
오래 전 얘기다. 내 사촌 형이란 동생은 8살 차이가 난다. 동생 녀석이 대학 들어갔다고 소주를 잔뜩 먹고 한밤중에 대문을 발로 차면서 고함을 질렀다. “상구야, 문 열어라!” 상구는 사촌형 이름이다. 형이 문을 열어주면서 하는 말, “아이구 형님, 이제 오십니까?”하였다. 그러자 녀석이 흘겨보며 하는 말, “니가 형이지, 왜 내가 형이고? 내가 술 취한 줄 아나?” 하였다나. 다음날 그 소식을 듣고는 "그래, 그냥 뒀단 말이요?"하자 형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우짤끼고. 술 취한 늠 갈블(갋을)끼가? 아부지 이름 안 부른 것만 해도 다행이지.” 하였다.
그런데 술 안 취해도 아부지 이름을 부르는 늠이 있었다. 어느 해, 내가 소주에 취해 쉬었다 들어간다고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있다가 누워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누가 “어이, 이재구!”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벌떡 일어났더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딩 아들놈이었다. “이 자식, 어디서 아부지 이름 함부로 부르노?” 했더니, 몇번이나 깨워도 안 일어나기에 그랬다나. 긴가민가 하면서 어깨동무하고 집으로 들어갔지. 집사람이 수험생하고 술 마셨나 하길래, 이만코 저만코 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자 집사람 왈, “당신도 참 순진하요. 저놈은 아예 처음부터 이름을 불렀을 놈인데 그걸 모르요?” 하데~ 헐!
형과 아부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이 위대한 소주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스신화에서 아폴론이 이성적인 것을 상징한다면 디오니소스는 감각적인 것을 상징한다. 아폴론적인 이성과 질서는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이 되고,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는 일견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축제와 같고 또 쉬어가는 삶의 마디와 같아서 서로 어우러지며 인간답기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 축제에 술이 빠질 수는 없는 법. 소주든 뭐든 술의 힘은 이런 데에 있지 않을까?
4.
정부의 빈병 보증금 인상으로 소주값이 들썩거리는 모양이다. 소주값 오른다고 내 가계에 타격이 올 정도는 아니겠지만, “또 국민을 봉으로 아나?” 싶어 몹시 기분 나쁘다. 그렇다고 “더러버서 소주 끊는다.” 할 수도 없고. 소주값 인상 얘기는 그저 괴담으로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쪼잔하게 기껏 소주값이나 따지는 나 같은 필부의 모습을 시인 김수영은 일찍이 갈파하였다. 슬프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이하생략) 」
-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년) 중에서 -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속물까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마지막 자존심이니까.
에이~ 쐬주나 마시자! <끝>
첫댓글 심심한 ktx 안에서 읽기에 알맞은 분량과 내용이네요ㅎ
소주는 즐기지 않지만 역사는 흥미 있네요ㅋ 감사합니다^^
오잉 내조하러 서울까징.. 대단하십니다.
@구용운 핑계삼아 서울 나들이 갑니다ㅎ
@구용운 오잉 전 아직 부산에 있는데용... 마눌이 왜 가지?ㅋ
저도 내일 서울 갑니다. 지난주는 춘천, 이번 주는 서울-수원